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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97화 (97/628)

제97화

호수에 차곡차곡 말뚝 징검다리와 뗏목 다리가 놓여지고 있을 무렵, 소로에서는 카르위먼과 밸리드의 성기사들이 충돌했다.

“흐아아앗!”

“하아앗!”

가장 앞서 있던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다.

이미 신관들의 가호가 부여되어 육체적 능력이 오른 상태. 성력이 가득 담긴 검들이 부딪치며 섬뜩한 충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싸움은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길이 좁아 직접적으로 맞붙어 검을 휘두르는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머지 자들은 뒤에서 칼을 빼들고 형형한 눈초리로 상대 진영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카르위먼도 밸리드도 시선만으로 상대를 찢어버리는 기적은 배우지 못했다.

소로의 싸움은 처음엔 병력의 수와 질이 높은 카르위먼이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밸리드의 성기사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 신전의 결계의 영향권으로 들어가자 전세가 변했다.

결계를 이루고 있는 기운이 그들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르위먼 성기사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질을 바탕으로 잘 견뎠지만 피해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호수에서도 본격적인 싸움이 붙었다.

이미 뗏목 다리와 말뚝 징검다리는 호수의 중앙까지 도달해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져 대부분의 성법의 사거리가 닿게 되자 밸리드의 공격 또한 거세졌다.

퍼엉! 퍼엉!

물기둥이 솟아올라 다리를 만들고 있는 자들에게 날아간다.

촤아아악!

호수의 표면이 거세게 움직여 뗏목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흔들어 카르위먼 병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내친김에 뗏목의 연결마저 끊어버리려 한다.

투화악!

작은 물방울들이 솟아올라 벌떼처럼 카르위먼의 병력을 향해 날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카르위먼의 병력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미 흔들리지 않는 말뚝 징검다리 위에 포진하고 있던 고위 신관들이 두 손을 꼭 맞잡고 성력을 일으켰다.

동굴 안에 다시 빛이 가득 들어찼다.

콰앙! 콰앙!

빛의 방벽이 밸리드의 공격을 막아섰다. 동시에 호수 표면으로 은은하게 빛이 깔리기 시작했다.

스으윽!

거칠어진 호수로 빛이 지나가자 미친 듯 출렁이던 호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퍼엉! 퍼엉!

이번엔 자기들의 차례라고 말하듯 카르위먼이 다시 빛덩이와 빛줄기를 날렸다.

하지만 밸리드의 결계는 여전했다. 소로에서 싸우는 밸리드의 성기사들을 노려봤지만 밸리드의 결계 영역은 그곳까지 미쳤다.

빛이 번번이 무효화 됐다. 오히려 밸리드의 신관들이 소로의 카르위먼 성기사들을 노려 카르위먼의 신관들이 급히 장벽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때리고 막고를 반복하는 중에 드디어 뗏목다리와 말뚝 징검다리가 건너편 호숫가까지 접근했다.

조금만 있으면 소로 말고도 새로운 공격 루트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러면 카르위먼의 공격이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밸리드가 두고 볼 리 없었다.

밸리드의 신관들이 호수를 향해 손을 뻗고 눈을 감는다.

다시 물결이 미친 듯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카르위먼의 신관들이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전투 지점이 신전에서 너무 가까웠다.

신전에서 새어 나온 밸르의 기운이 밸리드 신관들의 공격을 증폭시켰다.

“악!”

“크윽!”

몇 몇의 카르위먼 성기사가 물기둥에 직격하거나 출렁이는 호숫물에 빠졌다.

말뚝을 박아넣으려 한 성기사가 말뚝을 잘못 박기도 하고 뗏목 다리의 일부분이 파손되기도 했다.

와이그는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슬슬 카르위먼에 피해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색은 변함이 없었다.

전쟁은 이런 것이다. 얼마나 완벽하고 압도적인 승리라 할지라도 아군의 피해는 나온다. 나올 수밖에 없다.

“아…!”

옆에서 루벨라가 신음을 내뱉었다. 호수 건너편까지 접근한 성기사들이 피해를 입을 때마다 그녀는 계속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와이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익숙해져야지.’

적어도 밸리드가 존재하는 동안은 루벨라도 이런 일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버텨야 한다. 당장이라도 ‘괜찮냐’고 묻고 싶은 감정을 꾹 누르고 와이그는 묵묵히 전장을 쳐다봤다.

또다시 몇 명의 성기사가 희생됐다.

‘역시 저 결계가 문제야.’

원거리에서 쏘는 카르위먼의 성법을 막고 밸리드 신도의 힘을 증폭시키는 결계.

극복할 순 있을 것이다. 카르위먼의 병력은 정예니까.

하지만 없는 것이 낫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다.

부관에게 지휘를 맡기고 와이그가 다시 움직였다.

말뚝 징검다리를 표표히 건너간다. 그가 건너편 호숫가 근처에 도달했을 때였다.

쿠웅!

그의 움직임이 무뎌졌다. 몸의 무거움을 느끼며 와이그는 허공을 한 번 쳐다봤다.

더러운 밸르의 기운, 그것이 그를 억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퍼엉! 퍼엉!

이때다 싶었는지 밸리드의 신도들이 와이그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를 노려온 공격들은 그의 칼질 한 번에 모조리 무효화했다.

‘흠, 버틸 만하군.’

일반인이라면 그 압박에 몸이 짜부라졌으련만, 와이그는 여전히 쌩쌩했다. 그러나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을 보니 다른 카르위먼 병력들의 상황이 굉장히 호전된 것이 보였다.

‘내게 밸르의 기운을 집중하느라 다른 놈들에게 백업을 제대로 못 해주고 있군.’

자신이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전장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와이그는 말뚝 하나에 당당히 서서 밸리드의 신전을 노려봤다.

‘지크 님이 결계를 깨주셨으면 좋겠는데.’

신전에 잠입한 지크를 생각하며 와이그는 쉽지 않은 기대를 내심 품었다. 그리고 호수의 말뚝 위에서 다시 지휘를 시작했다.

* * *

호수에서 카르위먼과 밸리드가 살벌한 전투를 하고 있을 때, 신전 안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몰아치고 있었다.

“젠장!”

트리슬로와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벽을 주먹으로 쳤다.

감히 자신을 조롱한 개자식을 산 채로 찢어버려야 하거늘. 하지만 그는 지크를 놓친 상태였다.

아무리 트리슬로와가 현재의 지크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신관이다.

육체를 한계까지 쥐어짜 수련을 하고 있는 지크에게 육체적 능력으로 이길 순 없었다. 게다가 지크는 상당히 많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어 실력까지 상승한 상태였다.

더욱이 지크는 이 신전의 비밀 통로와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트리슬로와는 그렇지 못했다.

어처구니없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대체 여기에 왜 이런 비밀 통로가….’

지크가 사라진 비밀 통로에서 나오면서 트리슬로와가 허망해 했다.

그도 나름 이 신전의 비밀 통로를 알고 있다. 아니, 지금 밸리드가 파악하고 있는 모든 통로를 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발견한 비밀 통로는 그가 알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외부인이 우리조차 모르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다고?’

처음 이 신전이 세워졌을 때, 밸리드는 그들이 항상 그러하듯 도망칠 구멍을 많이 파놨다. 신전의 비밀 통로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비밀 통로는 하나둘 잊혀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밸리드의 구성원도 인간이다. 이곳이 너무 완벽한 은신처라는 맹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트리슬로와도 그 정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인인 지크가 비밀 통로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설계도 같은 걸 얻었을 리도 없어.’

적어도 비밀 통로가 전부 적혀 있는 설계도 같은 건 없다. 신전이 완공된 후, 신전을 공사한 인부들과 함께 전부 매장했다고 했다.

‘어쨌든 신전의 비밀 통로를 놈이 알고 있는 건 자명하다. 그리고 놈이 ‘사각뿔의 원혼’을 가지고 있는 것도.’

“형제!”

“네!”

트리슬로와는 옆에 있는 신도를 불렀다.

“당장 전선에 나가 발이 빠른 성기사들을 추려서 불러주게. 오십 명 정도. 기도실에 모아두도록.”

“네!”

신도가 사라지자 트리슬로와는 이를 갈았다.

‘카르위먼과의 전투도 있으니 그 이상 빼는 건 무리다. 하지만 ‘사각뿔의 원혼’은 어떻게든 회수할 필요가 있어.’

최대한 빨리 놈을 찾아 족쳐야 한다. 전선에서 뺀 병력도 병력이고 무엇보다 현재 밸리드의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리슬로와 자신이 최대한 빨리 전선에 나가야 했다.

트리슬로와는 신전에 남은 소수의 병력을 최대한 분산시켰다. 한 무리는 모든 입구를 막으라 지시했고, 지크를 찾으면 죽더라도 신호를 보낸 후 죽으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그 자신도 지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지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놈! 설마 도망친 건 아니겠지!’

일단 모든 문의 폐쇄를 지시하긴 했지만 자신조차 모르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던 놈이다. 밖으로 몰래 통하는 통로를 알고 있다고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는 그 생각엔 회의적이었다.

‘놈은 분명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진입했어.’

아까의 대화에서도 자신에 대한 살의를 진득하게 드러내지 않았던가.

최종 목적은 아마도 자신에 대한 복수. 그리고 지금 이 신전에 잠입한 목적은 아마도….

‘양동이겠지.’

카르위먼의 공격에 맞춘 내부로부터의 혼란. 그리고 놈은 빌어먹게도 그 짓을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냐.’

그게 문제다.

성물인 ‘사각뿔의 원혼’을 보고 보인 반응을 생각하면 녀석은 성물을 노리고 들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녀석은 바로 성물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강탈했다.

‘양동보다 성물의 확보를 우선하고 바로 후퇴했을 가능성도 있어.’

그건 트리슬로와에게 있어 이 북부 총지부가 함락되는 것보다도 더 끔찍한 악몽이었다.

하지만 지크를 놓친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직 나가지 않았기를 바랄 수밖에.’

결국 트리슬로와는 기도실로 몸을 틀었다.

기도실에는 이미 트리슬로와가 요청한 성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신전 안에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들어왔다.”

트리슬로와가 바로 말을 꺼냈다.

“놈은 ‘사각뿔의 원혼’을 훔쳐 갔다. 지금이 아무리 비상사태라도 그 성물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그건 우리 북부 총지부보다 중요한 물건이다!”

성기사들이 심각해졌다. 광기어린 트리슬로와의 눈빛이 그가 얼마나 이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그 쥐새끼의 실력이 제법이다. 내 공격을 몇 번이나 피했고 몸놀림도 잽싸다. 절대 만만히 볼 실력이 아니야.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이 신전의 구조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러니 둘씩 붙어다녀라. 그리고 놈을 보면 함부로 덤빌 생각하지 말고 바로 신호를 보내라. 놈이 공격하면 철저히 피하고 놈이 도망치면 철저하게 엉겨 붙어. 엉겨 붙어서!”

힘 있게 말을 끊은 트리슬로와는 살기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놈을 막다른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자신을 쥐새끼라고 표현했으렸다.’

그렇다면 쥐새끼처럼 다뤄줘야 하지 않겠는가.

트리슬로와의 눈이 충혈되어 번들거렸다.

* * *

트리슬로와가 그렇게 지크에 대한 살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 지크는 지하실로 내려가 있었다.

아까 봤던 감옥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지크는 고개를 돌려가며 지하를 체크했다.

‘간수는 없군.’

간수마저 전쟁에 동원된 듯 한쪽 구석에 있는, 간수를 위해 마련된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지크는 간수의 자리로 걸어갔다.

‘있군.’

벽에 감옥 열쇠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지크는 열쇠를 잡았다. 커다란 고리에 걸린 여러 열쇠가 서로 부딪치며 짤랑거렸다.

열쇠를 챙긴 지크가 감옥 앞을 천천히 걸으며 감옥 안을 확인했다.

아까 희미하게 봤을 때완 다르게 감옥 안 사람들의 상태가 확실하게 보였다.

하나같이 상태가 심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고문과 폭력을 겪은 게 분명했다.

온몸에 피딱지가 앉고 피부는 걸레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다. 기본적으로 사지의 힘줄을 전부 끊어 놓는 듯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신을 놓은 듯 뭔가를 중얼중얼거리는 자와 사지 중 몇 개가 없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자도 있었다.

감옥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 듯 감옥엔 사람들이 배설한 온갖 오물들이 흩어져 있었고, 공간이 협소해 사람들은 대부분 온몸에 그것들을 고스란히 묻히고 있었다.

정말로 사람이 살긴커녕 가축조차 이런 식으로 취급하진 않을 것 같은 상태.

하지만 지크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이것들이 과연 쓸 만할까’라는, 마치 상품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감옥 안을 쳐다봤다.

처음 감옥 안의 사람들은 지크를 보고 겁내 했다. 밸리드의 신도인 줄 안 것이다.

그러나 지크의 태도나 차려 입은 옷차림이 여타의 밸리드 신도들과 다른 걸 보고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지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태도와 옷차림이 다를 뿐, 그가 밸리드 신도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지크는 감옥을 한 바퀴 돌며 모든 사람들을 살폈다.

지크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이 정도면 뭐.’

지크는 감옥 중앙에 섰다. 분노와 공포가 섞인 눈으로 사람들이 창살 너머 지크를 쳐다봤다.

“여러분.”

지크가 입을 열었다.

“복수를 원하지 않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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