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90화 (90/628)

제90화

지크가 그저 소년이라고 부르는 아이는 풀이 죽어 있었다.

지크의 숙소에 갔더니 지크가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빵을 받을 수 없다는 건 둘째 치고 순수하게 지크와 만나는 일을 좋아했던 소년이라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됐어. 자주 있는 일인 걸, 뭐.’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 지크인지라 소년은 지크를 만나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았다.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언제나 엄습해오는 실망감은 당최 사라질 줄을 몰랐다.

소년은 마을 안을 터덜터덜 걸었다.

그의 부모님은 외부인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어릴 적 마을 근처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마을들은 외부인에 대한 경계와 반감이 심한 편이다. 때문에 그의 가족은 마을에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많은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럭저럭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 상황이었다.

‘응?’

지크도 만나지 못했으니, 당분간은 집에 있으라는 지크의 말을 따르려 집으로 돌아가던 와중 소년은 낯선 사람을 목격했다.

여행자인 모양이었다. 거기까지는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마을을 지나가는 여행자나 모험가는 종종 있었으니까. 그가 요새 친해진 지크도 여행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가 본 낯선 이는 무척이나 특이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머리카락이 없었다. 그리고 얼굴과 두피의 절반을 희한한 문신이 차지하고 있었다.

몸에 두른 무거운 분위기가 사람을 연신 위압했다.

낯선 이를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마을 주민이었다.

소년도 아는 사람이다. 낯선 이는 식량을 구하러 온 듯 마을 사람에게서 꾸러미 몇 개를 전달받고 돈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거래를 하는 마을 주민도 낯선 이의 분위기에 눌렸는지 몸이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낯선 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등허리에 내달리는 차가운 기운.

겁을 먹은 소년은 등을 돌리고 뛰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골목으로 뛰어들어 낯선 이의 시선이 자신을 쫓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낯선 이의 시선이 계속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아 소년은 더욱 빠르게 도망쳤다.

* * *

지크 일행은 산의 나머지 반도 쫙 훑었다. 다행히도 초반에 잡은 놈들이 산에 진입한 몬스터의 대부분이었는지 잡힌 몬스터는 오크 두 마리와 고블린 다섯 마리가 전부였다.

혹시 몬스터가 이동한 게 아닐까 싶어 처음 훑어본 쪽도 다시 훑어 봤지만 몬스터가 있는 기색은 없었다.

“좋아! 돌아간다!”

지크는 한스와 스녹에게 외쳤다.

몬스터는 사라졌고, 지크 일행과 몬스터들 탓에 맹수의 숫자도 적어졌다.

몬스터가 더 유입될 낌새도 없다. 주변을 훑어도 몬스터를 끌어들일 만한 외부 요인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주변 몬스터의 세력권 변화 때문에 밀린 몬스터가 이 산에 유입된 거라고 지크는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이 마을은 적어도 산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나 맹수 때문에 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슬슬 떠날 때군.’

더 이상 이 마을에 해줄 만한 일은 없다. 지크는 다음 마을로 이동할 결심을 굳혔다.

촌장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은 지크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아무리 외부인에게 경계와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지크가 워낙에 해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떠날 거란 말을 남기고 지크는 마지막으로 소년을 기다렸다. 적어도 그 아이와는 직접 만나 작별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보통 지크가 숙소에 머무르자마자 나타나던 소년이 그날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지크는 숙소의 주인에게 소년이 언제 들렀는지 물었다.

“글쎄요. 거의 매일 보이더니 요 이틀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숙소의 주인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그냥 떠날까. 하지만 소년이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한 번 그 녀석 집에 들러볼까.’

소년이 어디 사는지는 알고 있다.

목책 너머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 없다. 있는 자들은 전부 소년의 가정처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숫자는 얼마 되지 않으니 잠깐 발품을 팔면 그만이다.

‘얼굴만 보고 가자고.’

그래도 마지막 만나는 길인데 빈손으로 가긴 그래 빵을 한 바구니 샀다.

그러며 슬쩍 소년과 마을 밖에 사는 사람들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틀 전부터 본 적이 없네요. 보통은 허드렛일을 도우러 오는데 말이에요.”

빵을 판 마을 사람에게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위화감이 들었다.

소년만이 아니라 그 가족, 아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통째로 보이지 않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틀. 뭔가 다른 이유 때문에 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크는 빵 바구니를 들고 마을을 나섰다.

소년이 사는 곳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아무리 목책 밖에 산다고 해도 마을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살진 않는다.

슬슬 소년이 사는 곳이 보였다. 허름한 집 몇 채가 거리를 두고 드문드문 서 있었다.

턱!

순간 지크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가 조금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기척 감지 범위 안으로 들어온 집에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마을엔 없다고 했으니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지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기척 감지 범위에 다른 집이 들어왔다.

역시 그 집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마지막 집이 감지 범위 안에 들어왔다.

탓!

지크가 별안간 속도를 올렸다.

마지막 집에서 드디어 인기척 하나가 발견됐다. 하지만 그 기척은 무척이나 희미했다.

‘죽어가고 있어.’

지크는 직감했다.

순식간에 집 앞에 도착한 지크는 문을 열었다. 잠겨 있진 않았다.

방 안은 엉망이었다. 얼마 없는 세간살이가 박살나 흩어져 있고 방 중앙에 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둘은 죽었군.’

기척이 한 명의 것만 느껴진 이유가 그것이었다.

피가 말라붙어 검붉은 색으로 변색되어버린 바닥을 밟으며 지크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포션을 꺼내며 죽어가는 이의 상체를 안아 올렸다. 성인과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자그마한 체구.

“이봐, 소년! 정신 차려!”

지크가 소년을 흔들었다. 포션의 뚜껑을 열고 소년에게 부으려던 지크의 손이 멈췄다.

‘이건….’

소년의 가슴팍에 뭔가가 보였다. 날카로운 칼로 피부를 도려낸 상흔이 특정한 문양이 되어 섬뜩하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아저씨?”

꺼질 듯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지크는 포션을 옆에 내려놓고는 소년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 소년이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래, 아저씨다.”

“…여긴 어떻게….”

“네가 안 오길래 이번엔 내가 와 봤다.”

지크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냉정하고 침착했다. 누군가 본다면 아무런 일도 없이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할 것도 같았다.

“…그…랬…구나….”

지크가 자신을 찾아 왔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은지 소년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창백하고 생기없는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오히려 소년을 더욱 초췌해 보이게 했다.

“누가 이랬어?”

지크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서늘한 냉기가 섞인 걸, 소년은 눈치채지 못했다.

끔찍한 기억이 되새겨지는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모…몰라요…. 마을에서 처음 본… 낯선 사람…이었는데…. 밤…에… 갑자기 나타…나서….”

소년이 눈물을 주륵 흘렸다.

“아, 아빠를…먼저…그리고 엄…마를…!”

구체적인 묘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소년의 부모임이 분명한 두 구의 시체를 보면 그들이 죽기 전 어떤 꼴을 당했을지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내, 내가 비명을…지르지 않으…면… 엄마 아…빠를 살려주겠…다고 했는데…. 나…너무 아파서…어떻게든 참으…려…했는데….”

소년의 몸에는 칼자국이 즐비했다.

아마도 범인은 소년에게 비명을 지르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고문을 하는 ‘게임’을 한 모양이다.

“엄마 아…빠가… 죽은 후…에는…다른 집 사…람들을….”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다른 집 사람들도 역시 전부 죽은 모양이다.

“전부…내…탓…이…라고…! 나…때문이…라고…!”

울부짖지는 않는다. 아니, 못 하는 것이다.

이미 제대로 말을 할 여력조차 없다. 의식조차 반쯤 놓은 상태일 것이다.

그저 소리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만이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걱정 마라. 네 탓은 아니니까.”

일단 말을 해봤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 소년의 감정이 가라앉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혹시 그놈의 특징 중 기억나는 것 있어?”

“…머리카락이…없고…이상한 문신…이 얼굴의…절…반을….”

지크의 눈이 빛났다.

“그래. 알았다. 수고했어.”

지크는 손을 들어 소년의 가슴 어림, 흉측한 문양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손가락에 마력이 모였다.

푸슉!

마력을 머금은 손톱이 문양을 길게 가로질렀다. 새로운 상처가 문양의 중앙으로 새겨졌다.

스윽.

소년의 몸에 머물고 있던 비릿한 기운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가늘게 떠진 소년의 눈이 감겼다. 숨이 멎었다.

“걱정 마라. 뒤처리는 내가 해주마.”

지크는 잠든 소년의 머리를 한 번 어루만졌다.

* * *

화르르륵!

불길이 거세게 타오른다. 많은 장작들로 인해 불길은 기세를 높여 춤을 췄다.

범위 안의 모든 것이 타오른다. 장작은 물론 불꽃을 향해 겁 모르고 뛰어든 벌레, 그리고 처참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까지.

살았을 때 알게 모르게 차별받던 그들은 죽어서도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지 못했다.

전부 다른 곳에서 와 마을에 정착한 외지인이었기에 뚜렷한 연고가 없다. 게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해 마을 사람들이 두려움을 품은 이유도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가는 길을 지켜보는 건 지크와 한스, 스녹뿐이었다.

“…불쌍해….”

쿠우….

스녹이 노웸을 껴안고 한탄했다.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르길 꺼려 했고 지크의 자원도 있어 시체를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 장례 일은 모두 지크 일행이 담당했다.

그때 한스와 스녹은 경악을 했다.

시체들이 하나같이 사람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던 것이다.

세 사람은 묵묵히 불길을 쳐다봤다. 하지만 한스는 힐끔힐끔 지크를 곁눈질했다.

지크의 표정은 여느 때와 같았다. 하지만 한스는 오히려 그게 더 불안했다.

‘가만히 계실 리가 없어.’

직접적인 안면은 없지만 지크가 웬 소년 하나를 아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끔찍한 고문을 당해 죽었다.

‘정이나 정의감 같은 것 때문에 움직이진 않으실 거야.’

착한 일을 한다고 하지만, 지크가 그런 걸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란 걸 한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도와준 상대가 죽어 자신의 호의가 쓸데없어진 점, 그리고 지크와 관련이 있는 자가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은 지크의 자존심을 확실하게 자극했을 것이다.

한스의 분석은 정확했다.

지크의 내면은 무척이나 냉철했다.

마치 수천만 년을 얼어붙어 있는 동토와도 같이.

한치도 움직이지 않고 지크는 불길이 사그라들길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불길이 꺼졌다. 지크는 허물어진 장작 사이에서 유골들을 그러모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곱게 가루로 빻고는 항아리에 넣어 유골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유골함을 마법 상자에 넣었다.

“가자.”

그게 장작에 불이 붙은 뒤 지크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복수하실 생각이십니까?”

한스가 물었다.

“당연하지.”

“상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지크가 흐릿하게 웃었다. 그러나 한스와 스녹은 마주 웃을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지크의 미소가 무서웠다.

“한스는 루벨라나 와이그, 기억하지?”

“아, 네!”

“오랜만에 만나러 가자.”

“…네?”

카르위먼의 성녀 후보를 무슨 동네 친구 만나러 가듯 하는 말에 한스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크는 한스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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