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지크가 머무는 건 여행자가 머무는 숙소다. 규모가 큰 마을이 아니라 있는 건 허름한 숙소 하나뿐이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한 곳이었다.
그 숙소를 소년 한 명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략 열댓 살 정도 먹었을까. 허름한 옷과 때가 꼬질꼬질 묻은 얼굴이 그다지 넉넉한 생활을 하는 아이는 아니라는 걸 알리고 있었다.
뭔가 고민을 하는 듯 우물쭈물거리는 소년의 뒤에 갑자기 지크의 모습이 비쳤다.
사냥을 하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지크를 소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
“!!!”
지크가 소년의 어깨를 ‘툭!’ 쳤다. 소년이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꺽꺽대며 고개를 돌린다.
백지장처럼 물든 얼굴에 눈물마저 고여있다. 여간 놀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훔쳐보고 있냐?”
“노, 놀랐잖아요!”
소년이 항의했다. 나름 거칠게 소리를 친 것이지만 앙상한 덩치에 박력이나 위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지크는 소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손 하나를 내밀었다.
“자.”
거기에는 큼지막한 빵 하나가 들려 있었다.
소년의 눈이 커졌다. 겉모습처럼 소년의 가정 사정은 좋지 못하다.
그에게 어른의 팔뚝만 한 빵, 그것도 부드럽고 고소한 흰 빵은 천국의 음식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덥석 받기가 더 꺼려졌다.
“…이런 걸 받으려고 온 게….”
“아니면 뭐하러 왔냐?”
“…….”
기대를 하고 온 게 분명한 터라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지크는 억지로 소년의 손을 잡고 빵을 쥐여줬다.
“꼬맹이가 어른이 주는 거 거부하는 거 아니다.”
“…엄마가 다른 사람이 주는 거 함부로 받지 말랬어요.”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소년은 마지막 저항을 해 봤다.
“그건 나쁜 어른들 얘기고.”
“아저씬 착한 어른이에요?”
“아니, 착하게 살려고 하는 나쁜 어른.”
“그게 뭐예요.”
소년이 피식 웃었다.
지크가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땅바닥에 주저앉고는 자신의 옆 바닥을 손으로 탁탁 쳤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지크 옆에 앉았다. 그리고 빵을 덥석 물었다. 평소에 먹는 음식과는 전혀 다른 음식에 소년의 입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체한다. 천천히 먹어라.”
지크는 챙겨온 수통을 소년에게 줬다. 목이 메었는지 아이가 얼른 물을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빵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나 소년은 빵을 전부 먹지는 않았다. 반절은 남은 빵을 챙겨온 작은 자루에 담았다.
“오늘도 집에 가져다주게?”
“네. 엄마도 아빠도 고생하시니까요. 적어도 남은 건 부모님께 드리고 싶어요.”
“착하네. 그런데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시냐? 이상한 아저씨한테 음식 받는다면 하지 말라고 할 텐데?”
“아, 그….”
말을 흐리는 걸 보니 부모님에게 한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긴, 나 같아도 그랬겠지.’
아무런 속셈 없이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인간들은 무척이나 적다. 애초에 지크조차도 그렌 제너드의 권유(?)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뿐이지 않은가.
“예전에는 확실히 그러셨는데 지금은 안 그러세요. 아저씨가 대단하고 착한 사람인 거 마을에 소문이 많이 났으니까요.”
“착한 사람이라….”
회귀 후 착하게 산답시고 한 일이 헛고생이 아니라는 게 제법 만족스러웠지만 저 ‘착한 사람’이라는 칭호만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생리적 혐오감에 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처음 본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면 웬만하면 믿지 마.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마인 시대가 펼쳐진다면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알았어요.”
소년이 대답했다. 둘 사이에 몇 번의 사소한 대화가 더 오고 갔다.
“이젠 가봐야겠어요.”
해가 기울어진 걸 보고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조심해서 들어가라. 그리고 다음엔 오면 숙소로 직접 찾아와서 날 찾아.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골목 어귀에서 쳐다보지 말고. 애초에 내가 숙소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으니까.”
보통은 몬스터 퇴치나 마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오늘 지크가 소년을 발견한 건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다.
“그래도 저런 가게에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가면 혼나요.”
“내가 얘기해놓았으니까 상관없어. 그리고 저곳은 더러운 거로 뭐라 할 곳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무슨 대단한 고급 숙소도 아닌 데다 여행자라면 제대로 씻지도 않고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게 흔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주로 받는 숙소가 더럽다는 이유로 쫓아낼 리 없다.
게다가 지크는 저 숙소의 단골이자 이제는 마을에서도 상당히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뭐야? 왜 그렇게 봐?”
소년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지크가 물었다.
“…아저씨는 왜 제게 잘 해주세요?”
“착한 사람이니까 아니겠냐.”
지크는 대답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위장 속 내용물이 역류하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지크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지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서 착하다고 소문 난 사람도 우리랑은 엮이기 꺼려했거든요.”
소년의 가족은 이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부류 중 하나였다.
방어를 위해 마을 주변에 얼기설기 엮은 목책 안에조차 살지 못하는 부류.
꽤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상당히 유복한 마을이지만 그렇다고 평민들에게 많은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알게 모르게 차별받고 있는 소년에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푸는 여행자인 지크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다.
“그 착한 사람들보다 더 착한 사람이 아저씨라서 그래.”
“아까는 착하게 살려 하는 나쁜 어른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착한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살려고 하는 나쁜 어른으로 하자.”
“그게 뭐예요.”
소년이 웃었다. 빈곤하고 꾀죄죄한 모습이지만 미소만은 그 또래의 소년들과 같았다.
“세상에는 아저씨 같은 이상한 사람들도 있는 거야.”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세상은 무척이나 멋있어지겠지.”
“정말 그럴 것 같아요.”
농담 반 삼아 한 말에 소년이 격하게 공감하자 지크는 조금 무안해했다. 아직도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에 익숙지 않은 지크였다.
그렇게 뻔뻔함의 화신이랄 수 있는 지크에게, 그게 설령 무척이나 작다 하더라도 무안이라는 감정을 심어준 위업을 이룩한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까보다도 태양이 조금 더 기운 것 같았다.
“이젠 정말 갈게요! 다음에 봐요, 아저씨!”
“그래. 잘 가라.”
소년이 뛰어갔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길을 똑바로 뛰다 어떤 골목 앞에서 멈췄다.
몸을 돌려 지크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소년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왜 잘 대해주냐라….’
지크는 소년이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장난스럽게 ‘착하게 살려는 나쁜 어른’ 운운을 했지만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역시 그거겠지.’
예전 루벨라와 같이 밸리드 놈들을 때려부쉈을 때 만났던 티미의 말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자기를 처음으로 순수하게 도와준 사람이 지크라 미워할 수 없었단 그 말.
지크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던지라 아직도 기억한다.
때문에 주린 배를 끌어안은 채 터덜거리며 걷고 있는 소년에게 손을 내어준 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어울리게 됐다.
‘진짜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은걸.’
자기가 생각해도 개소리라고 생각하며 지크는 웃었다.
* * *
크아악!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는 몬스터의 소리가 들린다.
평범한 이라면 모골이 송연해질 그런 소리.
키에엑!
다시 한번 몬스터가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건 상대를 위협하는 것도, 살육의 희열에 잠겨 지르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저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에 불과했다.
콰드득!
한스가 휘두른 검에 트롤의 팔뚝이 너무나 쉽게 잘려나갔다.
트롤이 잘려나간 팔을 잡고 울부짖는다. 그러나 한스의 무정한 검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서걱!
한스의 검이 트롤의 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두터운 피부, 질긴 근육, 딱딱한 뼈까지 한순간에 가르는 섬뜩한 일격.
트롤이 힘없이 쓰러졌다.
쿠웅! 쿠웅!
다른 트롤을 처리하기 위해 한스가 몸을 돌렸을 때 묵직한 소음 두 개가 퍼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 트롤 두 마리가 쓰러져 있고 녀석들의 머리 부분에 거대한 바윗돌이 얹혀 있었다.
돌바닥으로 새어 나오는 피들을 보니 아무리 재생력 좋은 트롤이라도 살 순 없어 보였다.
자기가 해치운 트롤들의 곁으로 가 톡톡 두드려보는 스녹이 보인다.
노웸도 스녹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코로 트롤을 건드렸다. 죽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죽은 게 분명해 보였지만 상대가 재생력 끝장나는 트롤이니 확인을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걸로 끝났네.’
한스는 검을 집어넣었다.
고개를 돌리자 지크가 보였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지 눈을 찡그리고 죽어나자빠진 트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부 처리했습니다, 지크 님.”
“수고했어.”
지크가 담백하게 대답했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여기에 트롤이 이만큼이나 있는 게 이상하지.”
한스, 스녹이 처리한 트롤의 숫자는 총 일곱.
적지 않은 아니, 트롤이란 몬스터의 위험도를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숫자다.
여기가 평원이 널리 펼쳐진 곳에 있는, 그리 깊지 않은 산이라면 더더욱.
‘오크 놈들이 취락을 세운 것도 그렇고, 뭔가 있군.’
원인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세력권에서 밀린 놈들일 수도 있고, 먹이가 떨어져 이동한 놈들일 수도 있고, 이상한 놈들이 개수작을 부리는 걸 수도 있고.’
지크는 산속 깊은 곳을 쳐다봤다.
‘한동안은 여기 머물면서 몬스터나 사냥할까.’
그리 깊은 산은 아니라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가자!”
지크가 한스, 스녹을 향해 소리쳤다.
* * *
지크 일행은 노숙을 이어가며 산의 절반을 훑었다.
다행히 생각한 만큼 몬스터가 존재하진 않았다. 트롤이나 오크 취락은 보이지 않고 그저 떠돌이 오크 몇 마리만을 더 찾아냈을 뿐이었다.
지크는 마을에서 하루 정도 휴식을 한 후에 나머지 산 절반을 훑기로 했다.
덥석!
오늘도 이름 모를 소년에게 빵을 준 지크는 소년이 먹는 걸 구경했다. 소년은 오늘도 반절만 먹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넣었다.
“다 먹었냐?”
“네!”
입가에 묻은 빵부스러기를 깨끗이 핥아먹은 소년이 말했다.
둘은 평소처럼 얘기를 나눴다. 별로 의미 따위는 없는 대화다. 소년이 어떻게 지냈는지 듣고 지크는 세상의 여러 이야기를 해준다.
“아, 그러고 보니 앞으로는 웬만하면 집에 있어라.”
“네?”
“산에 위험한 몬스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들었어요.”
이미 지크가 마을 촌장에게 알려 정보는 전부 퍼진 후였다.
“아저씨가 열심히 퇴치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놓치는 놈이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당분간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말고. 특히 밤에 마을 밖에서는 더욱.”
“그럴게요.”
“그리고 혹시라도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아저씨한테 얘기해주고.”
“네!”
그러곤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소년은 여느 때처럼 자신의 집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군.’
소년을 배웅하던 지크에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볼 때마다 음식을 나눠주며 잠깐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인 터라 이름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름도 모르는 녀석이랑 잘도 대화를 하고 있었어.’
다음에는 이름을 물어볼까. 지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