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82화 (82/628)

제82화

“치료가 끄, 끝났다고요?”

이것에는 천하의 바곳 부인도 놀랐는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거짓말이군요.”

그녀는 확신했다.

“진짜입니다. 부인은 갈두림에 걸리면 귀 뒤편에 작은 붉은 반점이 생기는 걸 알 겁니다.”

“그것까지 알아챘나요?”

그건 발견하기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귀 뒤편이라는 곳이 눈에 띄는 곳이 아닌 데다가 반점도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을 하지 병의 흔적이라고는 보통 생각하기 힘들다.

“당신이 영주성의 사람들을 감염시켰을 때 그걸 보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부터 오스프린의 일반인들에게 똑같은 반점이 있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마을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치료를 했습니다.”

“설령 미리 알았다고 해도 불가능해요. 약을 만들었다면 당신도 알잖아요? 거기에 들어가는 비울삼의 내장은 무척이나 귀한 약재예요. 어떻게 어떻게 영주성의 병력을 모두 먹일 정도의 약을 만들었다고 해도 오스프린의 모든 시민들을 치료할 양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해요.”

인력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문제다. 그것 때문에 바곳 부인은 확신할 수 있었다.

“비울삼의 내장? 그건 뭡니까?”

“시치미를 떼려는 건가요? 애초에 그게 없으면 약을 만들 수 없으니 쓸데없는 연극은 그만두세요.”

“정말 모릅니다. 무엇보다 난 당신이 암살자들에게 건넨 약을 분석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그러고보니 자신의 약을 분석해서 갈두림의 약을 재제조했냐고 물었을 때, 지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울삼의 내장? 아마추어 지식밖에 없는 나는 전혀 모르는 약이군요. 내가 쓴 건 훌큠입니다.”

“훌…큠…?”

바곳 부인은 들어보지 못한 약재다.

“그게 뭐죠?”

“왜 있잖습니까. 길 어귀마다 자라나는 보라색의 풀이요.”

짐작가는 게 있다. 바곳 부인의 눈이 커졌다. 뭔가 대단한 걸 깨달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럴 리 없어요!”

바곳 부인이 흥분해 소리쳤다.

“그건! 그, 그 풀은…!”

“네, 맞습니다.”

지크는 정말로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잡초죠.”

“……!”

바곳 부인이 모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훌큠은 이 시기에는 아무 곳에서나 억세고 질기게 자라나는 잡초일 뿐이었다.

생명력이 너무도 끈질겨 농부들에게는 ‘악마가 싸지른 똥’이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그런 풀.

‘그런데 그런 풀이 갈두림을 포함해서 페스트의 병에는 정말로 끝내주는 효과를 보였단 말이야.’

페스트의 병 중 치료가 가능했던 병의 약들은 대부분 이 훌큠을 기반으로 한 약이었다.

무척이나 아이러니했다.

온갖 비싼 약재들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페스트의 병을 일부라도 잡아낸 일등공신이 설마 사람들이 무심하게 밟고 다녔던 잡초일 줄이야.

“알겠습니까? 난 당신이 말한 비울삼의 내장은커녕 암살자들이 갖고 다니던 약의 원재료도 몰라요. 그저 당신이 모르는 훌큠의 효과를 알고 있었고 그걸로 약을 새로 만든 것뿐이죠. 때문에 당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재료의 수급은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지크가 손가락을 옆쪽으로 쭈욱 폈다.

“오스프린 바깥에 지천으로 널린 게 훌큠이니까요. 그리고 이 약은 제조법도 쉽거든요.”

“웃기지 말아요! 내가 만든 병이 고작 잡초 따위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는 건가요!”

“자부심에 상처라도 받은 모양이군요. 근데 어쩌겠습니까. 사실이 그런걸요. 뭐, 확실히 잡초로 치료되는 병이라면 우습게 들리긴 하는군요.”

지크가 바곳 부인을 삐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당신 실력이 그만큼 형편없는 것 아닙니까?”

“이익!”

바곳 부인의 얼굴에 분노란 감정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병으로 갖고 놀던 여유만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아무리 충분한 약을 만들었다고 해도 어떻게 오스프린 시민 전체에게 약을 먹일 수가. 그것도 영주성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몰래….”

“방법은 당신이 가르쳐줬지 않습니까. 이그람의 확산이 같은 수원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요. 이 약은 액체 상태인데다가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약이거든요.”

“…설마!”

“네, 당신의 생각이 맞습니다.”

지크가 상쾌하게 대답했다.

“우물에 약을 탔습니다.”

“……!”

보통 전쟁 같은 시기에 성이나 마을을 빼앗기기 전 초토화 작전으로 우물에 독을 타는 행위는 많이 들어왔지만, 우물에 약을 탄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이 넓은 도시에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약을 탄다는 건 정말로 빡세더군요.”

한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크, 스녹과 더불어 매일 한밤중에 사람들을 피해가며 우물에 약을 들이붓는 건 정말로 고된 일이었다.

요하임이 지원해주던 그 안락한 생활이 아니었다면 완전히 뻗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약이었구나.’

가슴 한편에 담아뒀던 미심쩍음을 슬쩍 버리면서, 의심했던 것을 절대 티 내지 않겠다고 한스는 굳게 마음먹었다.

“약을 뿌린 이후, 내가 확인한 시민들 중 귀 뒤쪽에 반점이 남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오스프린의 시민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회복됐다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만, 적어도 당신을 놓치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하죠. 이제 답은 됐죠?”

“…….”

바곳 부인은 말이 없었다. 지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일이 그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게 아님은 분명했다.

“그 말…정말입니까?”

요하임이 지크에게 물었다. 지크의 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정말입니다.”

요하임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곧 결단을 내렸다.

“지금 당장 살롬과 바곳 부인을 포박해라!”

“네!”

브로드가 크게 대답하고는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지크를 믿기로 한 것이다.

바곳 부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지크를 찌를 듯 노려봤다.

“…설마 당신이 이렇게까지 방해가 될 줄은 몰랐어요.”

“날 적대한 자들은 보통 그렇게 말을 하곤 하죠.”

그리고 박살났다.

“어쩔 수 없나. 이건 쓰기 싫었는데….”

바곳 부인이 한탄했다. 동시에.

콰직!

그녀의 옷이 터졌다. 가녀린 팔뚝의 핏빛 근육이 부풀어 올랐고 슬림하던 체형이 울룩불룩 커졌다.

‘변형!’

클로베이나 살롬의 그것이다.

지크가 바곳 부인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사람 얼굴만큼이나 커진 그녀의 손바닥이 지크의 검을 막아섰다.

“과연. 만든 본인은 뭔가 다르다 이겁니까.”

클로베이, 살롬이 했던 변형과는 그 속도가 전혀 다르다.

“저도 이 상태는 싫었어요. 무척이나 추해지거든요.”

유일하게 아직 변형이 끝나지 않은 그녀의 얼굴이 말을 내뱉는다.

거대한 괴물의 몸에 사람의 얼굴이 얹혀진 그 모습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도 점점 변해갔고, 그에 따라 목소리 또한 거칠고 기괴하게 변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네요!》

바곳 부인(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많이 변했지만)이 크게 팔을 휘두르자 지크의 몸이 날아갔다. 굉장한 힘이었다.

지크는 천장을 걷어차고 다시 지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녀의 변형에 요하임을 비롯해 사람들이 놀랐다.

그러나 지금껏 쌓아온 훈련, 무엇보다도 살롬이라는 케이스를 먼저 봤기에 그나마 빠르게 진정할 수 있었다.

“기사들은 저걸 포위해라!”

부인 아니, 사람이라고 생각조차 않는지 브로드의 바곳 부인을 부르는 호칭은 ‘그것’이라는 사물을 대하는 것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보면 별로 틀린 것도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괴물 같은 괴성을 울리며 그녀가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성을 잃은 건 아니지만 성격이 광폭하게 변한 건 분명해 보였다.

“크윽!”

“크악!”

변한 바곳 부인은 클로베이나 살롬처럼 기술을 사용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육체적 성능은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 같았다.

기사들이 그녀의 공격을 막으며 번번이 뒤로 물러섰다. 완전히 날아가는 자도 있었다.

“막기보단 피하는 것에 집중해라! 전면에 있는 자들은 공격에 대비하고 후방에 있는 자들이 공격을 주도하도록!”

브로드의 명령에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곳 부인의 공격을 흘려 넘기고 뒤의 사람들이 검을 찔러넣거나 베었다.

캉! 카캉!

단단한 그녀의 피부 때문에 검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들도 도박으로 기사 직위를 딴 게 아니다.

같은 곳을 계속 공격하거나 나름의 기술을 사용해 그녀의 피부를 공략했다.

콰직!

어떤 기사의 검이 그녀의 피부를 관통하는 데 성공했다.

“좋아! 통한다!”

그 기사는 자신의 성공을 큰 소리로 알리고 검을 뽑았다.

촤악!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기사의 몸에 조금 묻었다.

기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이 정도의 피가 튀는 것쯤은 싸움에서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그저 자신의 공격이 통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흐아아압!”

무섭게 보이긴 하지만 공격이 통한다는 사실에 고무된 기사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이 녀석, 재생을 한다!”

“그럼 재생하기 전에 죽여!”

재생하는 몬스터와의 싸움도 익숙한 듯 기사들은 동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바곳 부인을 몰아쳤다.

휘청!

“어?”

순간 한 명의 기사가 중심을 잃더니 쓰러졌다.

“뭐야!”

“왜 그래!”

뚜렷한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에 기사들이 당황했다.

“모, 모르겠어. 몸에 힘이….”

쓰러진 기사도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몸에 힘이 안 들어…끄르륵!”

갑자기 그가 거품을 물었다. 침이 질질 흐르더니 곧 새빨간 피를 토했다.

그리고 얼굴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더니 눈이 돌아갔다.

기괴한 현상에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풀썩! 풀썩!

기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처음 쓰러진 기사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저건 병 같은데?’

지크는 기사들의 상태가 마을에서 본 그 지독한 전염병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항력이 높은 기사들이 병에 걸렸다고? 그것도 이렇게 순식간에?’

뭔가 바곳 부인이 수를 쓴 게 분명하다. 그때 쓰러진 기사들의 몸에 흠뻑 묻어 있는 바곳 부인의 피가 눈에 들어왔다.

‘과연!’

“피! 그녀의 피에 닿으면 안 됩니다!”

상대하는 기사의 숫자가 줄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바곳 부인의 공격을 검으로 때려내며 지크가 소리쳤다.

사람들도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피를 피하기 시작했다.

“누가 전염병을 뿌리는 작자 아니랄까 봐 핏속에 병을 가득 키우고 있었군요, 부인.”

《후후후! 이건 특제랍니다. 아무리 기사들이 병에 대해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짧은 시간 안에 바닥을 구르게 만들죠.》

바곳 부인이 입을 벌리는 걸 보고 지크는 본능적으로 뒤로 뛰었다.

퉷!

그녀의 침이 기도실 한편에 흥건하게 떨어졌다.

‘설마 침마저 병의 매개인가.’

지크는 혀를 찼다.

‘빌어먹을 용사 파티 같으니. 페스트의 정보를 감추는 건 좋아도 이런 정보는 풀어 놓으란 말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