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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73화 (73/628)

제73화

전투가 끝났다. 지크는 포션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몸에 나 있던 얕고 깊은 상처가 모조리 사라졌다. 하지만 몸 내부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고통은 여전했다.

‘적어도 하루 이틀 정도는 고생하겠군.’

하지만 이런 아픔도 오랜만이다.

‘회귀 전에 가문을 막 나왔을 때는 정말 하루 걸러 이 아픔을 느꼈었는데.’

하루 걸러 뿐인가. 이 아픔을 짊어지고 연속으로 몇 번이나 전투를 한 적도 있었다.

지크가 한스와 스녹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아직 서로 등을 맞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격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몸엔 상처라는 증거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옜다!”

지크가 포션 두 개를 꺼내 둘에게 던졌다.

둘은 급히 포션을 들이마셨다. 사라지는 상처의 고통이 그들의 안색을 밝게 했다.

“이거 정말 좋다. 그지.”

스녹이 노웸에게 말했다. 마시면 몸의 상처를 온전히 낫게 해주는 포션은 스녹에게 아직까지 신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스는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신기해하는 스녹을 불쌍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도 곧 포션이 지겨워질 날이 올 거다.’

구체적으로 지크의 훈련과 휘말릴 사건들로 인해. 지크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일어난다는 자신의 예상이 완벽히 맞아떨어지고 있어 한스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크는 이번엔 상당한 양의 포션을 한스와 스녹의 앞에 내려놨다.

“너희는 신전 안의 사람들을 치료해 놔라.”

산더미처럼 쌓인 포션을 보며 한스는 말을 잃었다.

포션은 비싸다. 게다가 지크가 지금 내놓은 포션은 그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포션이니, 그 가격은 더욱 뛸 수밖에 없다.

‘그 비싼 걸 저런 평민들을 위해 쓰겠다니.’

그저 베푸는 걸 좋아하는 것뿐일까.

‘그럴 리가.’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지도 않아 한스는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정말 치료합니까? 우리에게 덤벼든 사람들이잖습니까.”

“실력과 움직임을 보건데 협박당해서 움직였을 뿐일 거다. 하지만 이런 건 확실하게 해두면 좋지. 치료하기 전에 먼저 경고해라. 만약 이번에도 덤벼들면 절대 봐주지 않는다고.”

“만약 덤벼들면요?”

“죽여.”

일고의 망설임도 없는 차가운 명령이 내려졌다.

그 살벌한 기세에 한스와 스녹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포션을 한아름씩 안고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지크는 몸을 돌려 암살자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암살자들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서 아티팩트와 이번에 사용하진 못했지만 자폭용 아티팩트가 나왔다. 전형적인 암살자 조직 놈들의 도구다.

하지만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

‘클로베이 놈도 조사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갈가리 찢어져 육편으로 화한 클로베이의 흔적을 한 번 훑어본다.

‘뭐, 됐어. 페스트랑 암살자 놈들이 손을 잡았단 정황 증거만으로도 충분한 정보야.’

게다가 아직 정보를 캐낼 인간은 남았다. 지크는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한스와 스녹이 일을 잘 처리했는지 주민들은 사지 멀쩡하게 신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둥글게 무리지어 있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한스와 스녹이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경고가 잘 통했는지 주민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크는 그들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있던 자들이 엉덩이를 질질 끌며 지크에게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곧 신전의 벽에 막혔다.

주민들 가까이에 간 지크는 그들을 천천히 살폈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지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소용없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지크는 이런 류의 함정은 진저리가 나도록 겪어봤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지크를 존중하는 요하임이 클로베이를 보내 따로 부탁했다는 점부터가 이상했다.

‘그리고 클로베이도 언뜻언뜻 살기를 흘렸고.’

전문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클로베이가 연기를 못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한스와 스녹은 눈치 채지 못했고 말이지.’

아마 대다수의 사람도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단, 그의 연기가 통하기엔 지크의 경험과 감각이 너무 뛰어났다.

병자들의 태도도 그랬다. 그들의 눈이 간병인이나 주변에 누워 있는 특정한 자들을 스칠 때 두려움이 떠오르는 것을 지크는 놓치지 않았다.

만약 함정을 빨리 눈치채지 못해 병자들의 상태를 확인한답시고 그들에게 접근했다면, 그들은 병자로 분장한 암살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단검과 포위한 암살자들 사이에서 고된 전투를 강요받았을 것이다.

“어이.”

지크가 가장 가까이 있는 주민을 불렀다. 껄렁대는 태도가 양아치가 따로 없다.

“누가 대표냐?”

주민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곧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머리가 반 쯤 벗겨진 노인이었다.

“댁이 촌장이요?”

“네, 네. 그렇습니다.”

지크의 거친 말투에 부정할 용기마저 사라진 것인지 촌장이 순순히 인정했다.

“설명.”

아주 심플한 두 글자가 내뱉어졌다.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촌장은 바로 알아듣고 더듬더듬 자신들의 사정을 내뱉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고 한다. 이 전염병은 전염성이 너무 강해, 깨닫고 보니까 마을 사람들 전체가 이 병에 걸려 있었다.

너무나 고통이 심한 병이었다. 게다가 증상도 강해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져 죽었다.

그때 나타난 게 암살자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놀랍게도 약을 가지고 있었다.

주민들은 환호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선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약을 가지고 협박했다. 지크 일행을 죽이기 위해 협력하라고.

“그래서 댁들은 나를 죽이기 위해 협력했다는 거군?”

“사, 살려주십쇼! 저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 늙은 노인네가 무릎을 꿇고 펑펑 우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한스와 스녹도 그 모습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크의 새까만 마왕 하트는 동정심의 일부분조차도 느끼지 않았다.

지크는 주민들을 훑었다. 아직 병색이 완연한 얼굴빛이었다.

‘이거 그거지?’

병에 걸린 것으로 협박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떠오른 게 있었다.

‘페스트가 부하 놈들에게 잘 써먹은 그 병.’

아까 달려든 주민들의 육체 능력의 상승을 생각한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페스트는 자기 부하도 믿지 못하는지 부하들에게 어떤 종류의 병을 감염시켜놓았다.

잠복기가 길고 일단 발병하면 반드시 죽으며 그 과정이 끔찍하리만큼 고통스럽고 잔혹한 병. 자신을 배신하면 그대로 죽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겸사겸사 육체능력의 상승도 따라왔었고.’

그래서 페스트의 부하들은 모두 죽여주는 게 인도적인 일이었다. 당연히 ‘인도적’이라는 단어와는 세계 끝에서부터 끝까지 떨어져 있던 지크는 페스트의 부하들을 일부러 숨을 끊지 않고 내버려두기도 했다.

‘이 병도 나중엔 치료제가 없었지.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러나 그 전에 이게 그 병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더 좋았다.

지크가 울고 있는 촌장의 귀를 잡아당겼다. 촌장이 고통에 신음하고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지크는 아랑곳없이 촌장의 귀 뒤쪽을 쳐다봤다.

‘있다.’

지크가 눈을 빛냈다.

* * *

드라큘 영지의 집사는 바쁘다. 게다가 지금은 영주의 부재와 전염병이라는 악재가 겹쳐 몇 배는 더 바쁜 상태.

기사 출신이라 엄청난 체력을 보유한 살롬이 아니었다면 몇 번은 과로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바쁘고, 지금도 바빠야 할 살롬이 웬 일인지 오늘은 성의 인적 없는 뒤뜰에 나와 있었다.

누가 봐도 업무를 보기엔 적절치 않아 보이는 곳.

하지만 살롬은 눈에 한껏 힘을 준 채 뜰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를 쳐다보고 있었다.

“…좀 늦었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롬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얼굴은 움직이지 않은 채 눈동자만 휙 돌아가는 모습이 섬뜩했다.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로브를 입은 남자가 뜰 안에 서 있었다.

“네놈들은 시간 개념이라는 걸 모르는 거냐.”

살롬이 비난했다. 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한마디만 내뱉었다.

“실패했다.”

“…실패?”

“그래. 전멸했다.”

살롬의 얼굴에 깃든 감정이 짜증에서 분노로 변했다.

“너희에게 빌려 준 클로베이는 이쪽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놈이다. 네놈이 변수가 어떻고 하며 바득바득 우기기에 어쩔 수 없이 빌려준 거지. 그런데 실패했다고? 그것도 전멸?”

“그래. 변수가 예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놈은 그냥 내버려두자고 하지 않았나!”

“이쪽에게는 이쪽의 계획이 있다. 그쪽에게 그쪽의 계획이 있듯이. 그리고 나는 변수를 엄청나게 싫어한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고 변수란 항상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은 계속 수정돼야 하는 법이고! 그 변수가 사라지면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나겠지! 그럼 계속해서 변수를 제거할 셈인가! 무엇보다 변수라니! 대체 네놈들이 변수를 특정하는 기준이 뭐냐!”

“우리 계획에 특정되어 있지 않은 이물질.”

“흥! 마치 네놈들이 세운 계획의 등장인물들을 전부 알고 컨트롤할 수 있단 소리처럼 들리는군. 미래라도 보나?”

“물론.”

“개소리.”

살롬은 딱 잘라 부정했다.

미래를 본다니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평소에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내가 슬쩍 웃었다.

“요하임의 경우를 봐도?”

“…….”

거기선 살롬도 할 말이 없었다.

몸이 약해 마력조차 터득하지 못한 둘 째 공자. 아무리 현장에서 부하들이 보호한다고는 해도 지방에 퍼진 그 전염병이라면 감염되어 죽었어야 한다.

그러나 요하임은 지금껏 잘 살아 오고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 녀석은 살아돌아 올 거라고.”

“…고작 그 정도로 네놈들이 미래를 봤다고 주장하지는 마라.”

아무리 그래도 미래를 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그도 그렇군.”

둘 사이에 신뢰는 없다. 그저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을 뿐이다.

“주민들은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더군.”

“어차피 죽을 테니까 알 바 아니다.”

“인공적으로 병을 퍼뜨렸다는 걸 들킬 수도 있다.”

“고작해야 병의 약이 있다는 정보가 흘러갔을 뿐이야. 네 부하들의 입이 싸지 않다면 그게 들킬 리는 없어.”

“내 부하들의 입은 무겁다. 그 쪽의 클로베이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놈은 이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놈도 마을 주민들과 같이 협박에 굴복했을 뿐이니까. 광폭화 약도 그런 약쯤은 귀하긴 해도 비슷한 건 얼마든지 있어. 너희도 비슷한 기술이 있을 텐데?”

“그도 그렇군.”

남자는 별 반박을 하진 않았다.

딱딱한 말투로 정보만이 오가는 너무나 무감정한 대화.

하지만 살롬도 사내도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이 정도가 딱 좋았다.

“그놈을 처리하지 못했더라도 변수를 싫어하는 네놈의 변덕에 어울려 더 이상 계획을 연기할 순 없다. 그녀를 불러오겠어.”

“변수도 의학지식이 있지 않나?”

“그놈의 의학지식은 별 거 없는 걸로 밝혀졌다. 정말로 어디서 우연히 약의 제조법을 본 모양이야.”

“…정말 여기저기 변수 투성이군.”

살롬은 처음으로 남자가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 걸 봤다.

정말로 어지간히 변수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뭐, 좋다. 나도 내 할 일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야.”

남자가 순순히 동의했다. 그도 더 이상 변수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음모의 밤은 깊어갔다.

* * *

지크는 한스, 스녹과 오스프린으로 돌아왔다. 일단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알리기 위해 요하임을 찾았다.

그러나 마침 요하임도 지크에게 용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크가 그를 찾아갔을 때, 요하임이 딱딱한 얼굴로 먼저 지크에게 말했다.

“영주성에서 바곳 부인을 데려갔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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