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응?’
착실하게 암살자들의 숫자를 줄여가며 감히 자신에게 덤벼든 죄를 목숨과 바꿔 새겨주던 지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또 기색이 바뀌었네?’
암살자들이 뭔가 담담해졌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수도자 같은 모양새.
지금까지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지금은 뭐랄까, 죽음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저거겠지.’
지크가 조금 전에 자신과 거리를 둔 클로베이를 쳐다봤다. 뭔가를 들이마셔서 포션을 마시나 했더니, 다른 것인 모양이었다.
“크아아아아아!”
클로베이가 비명을 질렀다. 온몸을 쥐어뜯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니까 이상한 음식을 함부로 주워 먹으면 안 되지.”
지크가 과장스럽게 혀를 찼다. 하지만 암살자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눈만은 클로베이에게서 떼지 않았다.
우드득!
클로베이의 피부가 물결치듯 흔들렸다. 입고 있던 경장 갑옷이 박살나고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몸집이 커지며 상체가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
“우오오오오오!”
비명이 어느새 괴성으로 바뀌었다. 그건 더 이상 인간의 음성이 아니었다.
머리 하나는 더 커진 클로베이가 지크를 내려다봤다.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제정신이 아님을 알렸다.
“으음!”
“저, 저…!”
한스와 스녹이 클로베이의 변화에 경악했다. 지크도 경계도를 한층 더 올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크는 그 와중에 기뻐했다.
저건 그가 아는, 그리고 경험도 했던 것이었다.
‘페스트다!’
드디어 완전한 확신을 얻었다.
페스트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지크도 페스트와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페스트가 한창 전염병을 퍼뜨리고 있는 곳에 지크 일행이 우연히 방문한 것이다.
도시에 도착하면 맛있는 걸 실컷 먹고 푹 자고 화끈하게 놀자며 떠들던 지크 일행이 마주친 건 전염병 때문에 초토화된 도시였다.
한창 페스트의 악명이 퍼져 있던 때라 지크 일행은 바로 페스트의 존재를 알았고, 분노로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들의 휴식이 방해받은 것이다.
당장 도시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지만 페스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단, 페스트도 지크 일행을 고깝게 여긴 건 마찬가지였는지 부하들을 보냈었는데, 그중에 저런 놈이 끼어있었다.
당연히 그때는 페스트의 부하 놈들을 포함해 도시 전체를 밀어버렸었다. 하지만 끝내 저것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페스트가 다루는 걸 보니 병의 일종으로 보이긴 하는데, 저런 육체를 변화시키는 병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것이 페스트의 짓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쁜 건 기쁜 것이고 전투는 전투다.
‘위기네.’
지크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클로베이가 울부짖더니 지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졌지만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크악!”
“아악!”
‘저래서 놈들이 그렇게 다 죽은 것처럼 굴었던 거군.’
변한 클로베이는 적아를 가리지 못하는지 그 자신과 지크 사이의 일직선상에 있는 암살자들을 전부 쥐어뜯으며 달려왔다.
‘회귀 전에는 그래도 피아식별은 가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그 때는 발전을 시킨 모양이다.
클로베이가 적아군 가리지 않고 날뛰는 중에도 암살자들은 클로베이에게 거리를 둘 뿐, 완전히 물러서진 않고 계속 지크의 빈틈을 노렸다.
자신들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어떻게든 지크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일단 장소부터 옮겨볼까.’
이대로 있다가는 신전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사지가 부러져 울부짖고 있는 주민들도 생매장될 것이다.
다행히 이성을 잃은 클로베이는 지크의 유인을 잘 따라왔다. 전장은 순조롭게 마을 거리로 이동됐다.
쿠웅!
클로베이가 지크의 앞에 도착했다. 묵직한 바위가 떨어진 것 같다. 녀석이 검을 휘둘렀다.
‘이것들은 이게 성가셔.’
겉모습은 무슨 오거의 일가친척처럼 생긴 주제에 기술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몸에 비하면 나뭇가지 같은 검을 용케도 물 흐르듯 휘두른다.
캉! 캉! 카앙!
몇 번의 공방이 오갔다. 지크는 손이 아려 미간을 찌푸렸다.
파워, 스피드 그 모든 게 올랐다. 갑자기 변한 신체와 능력 때문에 기술은 확연하게 떨어졌지만 상승한 육체 능력이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카앙!
게다가 암살자들이 간간이 던지는 단검이 집중을 방해했다.
“우어어어!”
클로베이가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지크를 내려쳤다.
지크는 그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했다.
콰앙!
괴력에 지면이 움푹 파였다. 드러난 빈틈으로 지크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피부에 부딪쳤는데 무슨 쇳덩어리를 친 소리가 난다. 아니, 마력을 두른 검이라면 쇳덩이도 자를 수 있건만, 클로베이의 피부에는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흐!”
비웃을 정도의 이성은 있는 모양이다. 입꼬리를 히죽 끌어 올린 채 클로베이가 다시 덤벼들었다.
‘역시 그렇겠지.’
공격이 실패한 지크지만 예상하고 있던 터라 별로 실망하진 않았다.
‘이 정도면 마력 공명도 먹히지 않을 테고.’
저놈들의 마력은 몸이 찢어지지 않을까 의심될 정도로 노도와 같이 흐른다. 지크가 지금 갖고 있는 마력량으로는 놈의 마력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할 수 없지. 무리를 좀 할 수밖에.’
마력을 점검해본다. 이루스 광산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더욱 많이 풀려난 마력이 느껴졌다.
‘이제 좀 마력 같아 보이네.’
대략 어느 군사력 높은 영지의 수위 기사 쯤 되는 마력이다.
적지 않은 아니, 평균적으로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양의 마력이지만 드래곤과 비견될 만한 거대한 마력을 다뤄 온 지크로서는 이제야 조금 쓸 만한 마력일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클로베이에게 미치는 힘은 아니다. 하지만 지크의 기술이 합쳐진다면 다르다.
감각 확장으로 검 끝까지 감각을 확장시켜 신체의 일부처럼 만든다. 그리고 마력 공명을 통해 주변 마력의 지배권을 잡는다.
단, 이번엔 상대의 마력이 아닌 주변에 흘러다니는 자연 마력을.
난이도는 인간의 일단은 가공된 마력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 마력을 다루는 게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지크의 상승한 마력과 마력 조작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덤벼드는 클로베이를 상대하며 기술에 집중했다. 아무리 지크라도 이번 기술은 신경을 상당히 써야 했기에 몸에 허용하는 공격이 많아졌다.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났다.
누가 봐도 수세에 몰린 모습. 그러나 지크의 눈은 고요했다.
엄청난 마력이 지크의 검끝에 집중됐다. 당장이라도 사방으로 뛰쳐나갈 야생마 같은 그것을 지크는 억지로 억지로 유지했다.
마력 공명을 사용해서 마치 바늘에 실을 꿰어 넣듯 검 끝 마력에 자연 마력들을 연결한다.
물론 정교하게 연결한 건 아니다. 연결은 어디까지나 장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자연 마력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지크는 발을 한 번 굴러 클로베이의 공격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지크가 도망친다고 판단했는지 클로베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암살자들도 협력했다. 몇몇은 급히 지크가 도망칠 퇴로를 차단하려 움직였고 몇몇은 클로베이와 거리를 둔 상태로 지크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저 녀석들도 참 징글징글하네.’
이미 클로베이에게 찢겨 죽은 암살자가 제법 된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끈질기게 전투에 참여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아서 기특해.’
구체적으로 녀석들을 쫓아다니느라 심력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지크가 검을 뒤로 쭉 빼 찌르기의 자세를 잡았다. 고민할 것 없이 클로베이를 향해 찔러 넣었다.
공간 찌르기.
검 끝에 압축된 거대한 마력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퓨웅!
형태도 소리도 없이, 오로지 기운만이 공간을 찢었다. 회전하며 나아간 무형의 기운이 클로베이에게 작렬했다.
클로베이도 위험을 느꼈는지 회피하려 했지만, 찌르기가 좀 더 빨랐다.
푸슉!
이번 공격은 클로베이의 단단한 피부도 막아낼 수 없었다. 클로베이의 가슴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뻥 뚫렸다.
“컥!”
클로베이가 신음을 흘렸다. 상처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저 그뿐. 클로베이는 보란 듯 씩 웃었다.
고작 이 정도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지크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겪어 봤으니까.’
퍼엉!
순간 주변 마력이 움직였다. 지크의 공격이 지나간 그 작은 공간으로 서로 들어가겠다는 듯 휘몰아쳤다.
지크가 주변의 자연 마력에 붙여 놓았던 ‘장치’의 영향이었다.
공간을 직진하며 주변으로 흩뿌려진 지크의 마력과 주변 마력이 공명하며 회전했다.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기류. 회전하며 날뛰는 마력이 주변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중심권역에 있는 클로베이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암살자와 건물들까지 닥치는 대로 부쉈으며 지면까지 뒤엎었다.
그건 말 그대로 수평으로 놓인 거대한 회오리였다
“아악!”
“크악!”
클로베이 근처에 있던 암살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기류에 휘말린 그들의 몸이 말 그대로 난도질당했다.
산채로 몸이 뜯겨 나가는 고통에 그들도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크으으으!”
폭풍의 중심에 있던 클로베이는 그나마 단단한 육체와 마력, 그리고 경험으로 버텼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몸에 난 구멍으로 마력이 쏟아져 들어갔고 폭풍이 피부 위를 두드려댔다.
몸 전체에 균열이 가며 피가 샜다.
“아아아아악!”
퍼어엉!
마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둑처럼, 커다란 단말마와 함께 클로베이의 몸이 조각조각 났다.
폭풍은 그 후로도 잠시 동안 지속됐다.
마치 세력권 안에 있는 모든 걸 분쇄해버릴 때까지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폭풍이 가라앉았을 때 보인 건 완전히 초토화된 마을 일부의 모습이었다.
가히 인간이 그랬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의 대파괴. 한스와 스녹, 암살자들도 일시 전투를 멈추고 넋이 나갔을 만큼의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런 파괴를 일으킨 장본인은 콧방귀를 끼었다.
‘고작해야 이 정도 위력이라니.’
대충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니 한탄만 나온다.
폭풍 나선 찌르기.
조금은 촌스러운 명칭이지만 이 기술은 이래 봬도 지크가 슬슬 마인에서 마왕이라는 칭호로 넘어갈 즈음 즐겨 쓰던 기술이다.
어떻게 보면 지크에게 마왕 칭호를 달아준 공신 중 하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울컥!
목구멍 너머로 비릿함이 올라온다.
‘어이구! 가지가지하네.’
지크는 핏덩이를 ‘퉤!’ 뱉었다.
‘고작해야 이거 썼다고 내장이 상했어?’
자신의 일이지만 너무 한심했다.
“지크 님!”
다급한 한스의 목소리. 흘끗 주변을 바라보자 암살자들이 덤벼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팍 쫄아 있었는데 어느새 다시 전의를 일으킨 모양이다.
‘내가 피를 뱉어서 그런 거겠지.’
그 때문에 지금은 상대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물론 섣부른 판단의 대가는 죽음이다.
지크는 검을 고쳐 잡았다.
실제로 지크의 몸은 좋지 않았다. 마력이 뒤틀리며 상한 내부는 포션으로도 금방 낫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녀석들 쯤이야.’
지크는 날아온 단검을 떨어뜨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암살자를 베어 들어갔다.
잠시 후.
전장에는 자신이 흘린 피 웅덩이에 잠긴 암살자들과 느긋하게 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는 지크의 모습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