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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66화 (66/628)

제66화

한스는 묘한 표정으로 지크가 들어간 건물을 바라봤다.

드라큘 영지로 넘어와서부터 시작된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곳 오스프린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염병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 병자들의 끔찍한 모습 때문에 이 일이 무척이나 싫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 감정을 완전히 떨칠 순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병자들에 대한 동정심과 안쓰러움이 늘어났다. 마을을 구할 수 없었을 땐 정말 서럽게 울었을 정도였다.

그러니, 죽어나가는 환자가 있긴 하지만 차도가 있는 사람도 나오는 이곳에서 그는 희망을 봤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더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지금의 지크에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선배. 무슨 일 있습니까?”

스녹이 한스에게 다가왔다. 그는 흙의 권능을 십분 사용해 요소요소마다 흙벽을 세워 감염 구역을 격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스녹이 한스가 보고 있는 곳을 쳐다본다. 자연스레 지크가 있는 건물에 시선이 닿았다.

“지크 님에게 뭔가 용무라도 있습니까?”

“소문 때문에 말이야.”

소문. 그 말을 듣고 스녹의 눈빛도 변했다.

“그거 진짜일까요?”

음습한 음모라도 꾸미는 양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한스의 귀에 속삭였다.

스녹의 입김이 귀에 닿자 한스가 진저리를 쳤다.

도끼눈을 뜨고 스녹을 밀쳐 거리를 벌렸다.

“아, 쫌!”

스녹도 자신의 행동이 찝찝하다고 생각했는지 무안하게 볼을 긁적였다.

쿠!

어깨에 있는 노웸마저 그의 귀를 살짝 깨물어 타박했다.

잠시 도끼눈을 유지하던 한스가 한숨을 한 번 쉬고 질문에 대답했다.

“난 진짜일 확률이 크다고 봐. 아무리 지크 님의 성격이 개…변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거짓말을 할 분은 아니니까.”

‘개 같다’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잠시 당황했다. 다행히 스녹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진짜로 이 병의 치료약이 만들어진다는 거죠?”

소문. 그것은 지크가 이그람의 치료약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녹도 이그람은 알고 있다. 스울에도 몇 번 퍼진 역사가 있었고, 광부들끼리 하는 술자리에서도 이따금씩 이야기가 나왔었다.

물론 그 이야기가 나올 때의 술자리는 평소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닌, 공포와 두려움이 섞인 자리가 되기 일쑤였다.

드라큘 영지에 들어와 겪은 지독한 전염병에 비할 바는 못 하지만 그래도 이그람은 그 정도로 유명하고 위험한 전염병이었다.

그런데 그런 병의 치료약이 있다니.

“일단 주변에 퍼뜨리지는 마. 둘 째 드라큘 공자님이 이 일을 철저하게 함구하신 건 알지?”

아무리 짧은 기간 동안 깊은 신뢰를 쌓아온 지크가 상대라 할지라도 이그람의 치료약을 알고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만약 그 말이 흘러나갔다가 결국 치료약을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병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뻔히 예상이 가는 바. 사람은 원래 희망 이후에 찾아오는 절망에 더 취약한 법이다.

“넵!”

스녹도 이유에 동감하기에 굳게 대답했다.

“그럼 다시 자기 일 하자고. 나는 이대로 병자들을 살피러 갈 테니 너는 격벽에 이상이 없나 확인….”

한스가 입을 다물었다. 지크가 건물에서 나와 어디론가 걸어가는 걸 확인한 것이다.

지크가 있던 건물은 바로 치료약의 임상실험을 위해 마련된 장소였다. 치료약의 존재가 존재인 만큼 아는 사람도 얼마 있지 않은 곳.

한스의 눈이 급하게 지크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처럼 자신감 넘치는, 오만이란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얼굴이다.

하지만 지크라고 항상 저런 표정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찡그리기도 하고 인상도 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 빈도는 무척이나 미약하지만.

그래도 일이 잘못 돌아가거나 잘 풀리지 않을 때 저런 얼굴을 하진 않는다.

즉!

‘치료가 성공했구나!’

한스는 직감했다.

* * *

지크는 바로 요하임을 찾았다.

오늘도 비쩍 곯은 외모로 인상을 찌푸린 모습이 여전히 누가 병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외견이었다.

“공자님.”

“음?”

지도를 펴고 조금 확장된 감염구역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요하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용무를 물으려던 요하임은 그러나 지크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설마!”

“그 설마입니다.”

“가봅시다!”

지금껏 하던 고민을 모조리 내팽개치고 요하임이 나섰다.

지크의 저 자신감이 맞다면, 지금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문제를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

지크와 요하임은 임상실험 건물로 향했다.

요하임의 조용한 압박에 둘의 걸음은 상당히 빨랐다. 저렇게 걷다가 연약한 요하임이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벌컥!

요하임이 세차게 문을 열었다. 건물 안은 지크가 나올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 공자님 오셨습니까!”

환자들을 살피던 간병인이 요하임을 맞았다. 하지만 요하임은 그를 무시하고 바로 침상에 누워 있는 병자들을 살폈다.

병자들이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요하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간병인이 공자라고 부르며 깎듯한 자세를 취하는 걸 보고 자연적으로 높으신 분이라는 걸 안 것이다.

“그냥 누워 있어요.”

요하임이 병자들에게 손짓을 하자 병자들이 다시 주춤주춤 몸을 눕혔다.

이들의 상태가 어땠는지 요하임은 기억했다.

지크에게 인계될 때 이들의 상태는 말 그대로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라면 대략 하루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슬픈 희생양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침대에 누워 당혹감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이 병자들은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은 없었다.

아니, 병자라는 명칭을 붙여도 될까 싶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어떻습니까?”

등 뒤에서 자신만만한 소리가 들렸다.

요하임이 등을 돌렸다. 건물 입구에 지크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게 보인다.

그의 앞으로 걸어간 요하임이 팔을 활짝 벌렸다. 그리고 지크를 꽉 껴안았다.

“당신을 만난 건 내 최고의 행운입니다!”

* * *

‘기뻐하는군.’

구김살 하나 없이 활짝 웃는 요하임의 얼굴은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여과없이 보이고 있었다.

요 근래 전염병 때문에 그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한지 생각해보면 저 기쁨은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지크는 자신을 안고 있는 요하임을 떼어냈다.

그는 철저한 이성애자다. 동성의 포옹 따위 얼마나 기쁜 일이 있어도 사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흥분했군요.”

요하임이 머쓱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기된 표정은 아직 그가 기쁨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걸 알렸다.

그러나 과연 지금까지 일선에서 전염병과 싸워온 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일까. 요하임은 빠른 속도로 감정을 추스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차도는 어떻습니까?”

겉모습만 보면 모두 완치된 것 같지만 이런 건 철저하게 확인해야했다.

“대부분의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아직 기침 증상이 남긴 했지만 그것도 심하진 않습니다.”

“적어도 치료약에 대한 신뢰를 얻기엔 충분하군요. 재료가 뭐라고 했죠?”

“여러 약재가 들어가긴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플라즈의 잎, 부클의 뿌리 그리고 윔의 열매입니다.”

“음, 전 잘 모르는 약재들이군요.”

아무리 전염병과 싸우는 최전선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요하임은 기본적으로 의사나 약사가 아니다.

지크는 다른 설명을 다 때려치우고 -사실 지크도 잘 모른다- 요하임이 필요로 할 정보만 콕 찝어 말해줬다.

“셋 다 상당히 비싼 약재들입니다. 나머지 재료들의 가격도 제법 나가고요.”

“음….”

아무리 사태가 심각하더라도 돈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병자의 수도 상당하니 자칫하다간 방법을 알고도 전염병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수량은 맞출 수 있겠습니까?”

“웃돈을 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겁니다. 비싸긴 하지만 희귀한 약재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니까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습니다. 그 세 가지와 다른 약재들의 목록을 뽑아 주세요. 자금이야 어떻게든 마련하죠. 제 사비라도 털고, 안 된다면 형님의 멱살이라도 잡겠습니다.”

요하임이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반짝이는 요하임의 눈빛을 보면, 정말로 자금을 제공하지 않았다간 영주성까지 쳐들어갈 것도 같았다.

요하임이 바깥에 있던 병사에게 종이와 필기구를 가져오라 명령했다.

“목록에 있는 약재들을 최대한 긁어모을 테니 지크 씨는 의사들에게 치료약을 만드는 걸….”

요하임이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제 와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 합니다만, 괜찮은 겁니까? 자그마치 이그람의 약입니다. 독점해서 판다면 어마어마한 부를 얻을 수 있을 텐데요.”

병자들을 물론이고 왕이나 영주 같은 지배계급도 어떻게든 갖고 싶어 안달이 날 자료다. 하지만 지크는 고개를 저었다.

“돈 같은 건 애초에 별 관심 없습니다. 게다가 나름 착하게 살고 싶어 하는 몸이거든요. 이게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된다면 저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겸사겸사 요하임의 백작 계승을 돕고 페스트도 끌어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하임은 환하게 웃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몹시도 감격한 것 같았다.

“당신을 만난 건 내 최고의 행운입니다.”

* * *

지크가 치료약을 공개한 뒤로 환자들이 하나둘 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죽기 일보직전인 사람들의 증세가 호전됐고 다른 환자들의 증상도 점차 가라앉았다.

물론 사태가 바로 해결된 건 아니었다.

약초의 수급과 약의 제작에 필요한 시간도 있었고, 전염력은 여전한지라 새로 발병한 환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염병의 기세가 한층 꺾였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다른 의사들과 한창 치료약을 제작하던 지크에게 한 병사가 요하임의 호출을 알렸다.

지크는 병사를 따라 대책 본부에 도착했다.

“지크 님을 모셔 왔습니다!”

“모셔라!”

“들어가시죠.”

치료약을 공개한 후, 지크의 권위는 드라큘 영지에서 말 그대로 하늘을 찔렀다. 때문에 병사는 물론 요하임조차 지크를 공손하게 대했다.

지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많이 들렀던 곳인지라 이제 와 어색하진 않았다.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주변에 상황판으로 쓰는 거대한 나무판과 보고서가 수북이 쌓인 책상이 아직 상황이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익숙한 풍경.

그 안에 못 보던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현장에서 못 본 사람이었다.

‘예전에 비욤, 그 돼지 새끼 옆에 서 있던 놈이군.’

누가 봐도 비욤의 측근이라고 자기 주장을 하던 늙은이. 전염병이 심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그가 마치 점령군이라도 되는 양 턱을 들고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지크 님.”

이제는 님자를 붙여 완연히 지크를 높이 부르는 요하임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요하임의 미간에 잔뜩 주름이 져 있었다. 치료약을 제공한 후 언제나 신뢰 뚝뚝 떨어지던 눈으로 보던 걸 생각하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저 인간 때문인가?’

지크가 그렇게 생각할 때, 그 인간이 지크의 앞에 다가왔다.

“네가 지크인가?”

딱딱한 얼굴과 불쾌한 말투.

‘얼씨구?’

지크도 얼굴을 찡그렸다.

‘이 새끼, 말투가 왜 이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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