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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62화 (62/628)

제62화

이미 한 번 당해본 탓일까. 사람들은 저번과 같이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나날을 보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체스나 책 같은 소일거리를 챙겨온 사람마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비를 해왔다고는 해도 아무런 의미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크는 그 시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스와 스녹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쉴 시간은 오스프린의 숙소에서 묵을 때 넘칠 정도로 줬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한스와 스녹의 입에서 거친 호흡 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이미 침이 말라붙어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고 입고 있는 옷에는 땀이 잔뜩 베어 있다.

그러나 지크의 눈에 동정심이 깃들 일은 없었다.

“슬슬 팔 내려간다, 앙?”

지크가 언성을 높이자 한스와 스녹 둘 다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둘은 마치 의자에 앉는 것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팔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일명 기마자세라 부르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기마자세가 아니었다.

둘의 몸에는 주변에서 주운 돌멩이가 가득 담긴 주머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마력 사용도 금지당한 상태. 오로지 근육만으로 그 자세와 무게를 견뎌야 하니 땀이 비오듯 날 수밖에 없었다.

“육체는 철저하게 단련해야 된다. 만약 마력이나 대지의 권능이 있는데 뭐 하러 육체 능력을 올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그 생각 버려! 유사시에 정말로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건 그 육체 능력이니까.”

지크도 회귀 후 육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데 상당히 노력했다. 그건 회귀로 갖고 온 지식이나 요령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철저한 노력. 오로지 그것뿐. 효율 좋게 가는 길은 있어도 쉽게 가는 길은 없다.

“그리고 육체 단련은 평시에도 너희에게 도움을 줄 거다. 너희가 철저하게 후방 지원형의 마법사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건 또 아니잖아. 스녹 너는 대지의 권능을 사용해 후방에서 화력지원은 물론 접근전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걸 안 하는 건 나태야.”

스녹을 향하던 지크의 시선이 이번엔 한스를 봤다.

“그리고 한스 너는 애초에 칼 들고 설치는 놈이고. 그러니까 똑바로 해! 두 놈 다!”

[네!]

“팔 또 내려갔다!”

지크의 고함이 터지고 둘은 다시 한번 자세를 다잡았다.

그렇게 훈련은 계속 됐다. 한스와 스녹은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긴 했지만 앓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 해서 지크가 훈련을 줄이거나 멈춘다는, 그런 환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낼 정도로 체력이 부족하냐며 훈련을 늘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그만.”

털썩!

털썩!

한스와 스녹은 바로 주저앉았다. 둘의 몸에 걸려 있던 돌멩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욱신거리는 근육을 부여잡으며 끙끙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의 지크라면 이 정도로 끝낼 리가 없다. 적어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는 자세를 유지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한스가 물었다.

“별것 아니다. 손님이 온 것 같아서.”

“손님이요?”

“나와라.”

순간 수풀이 바스락거렸다. 한스와 스녹의 눈에 경계의 빛이 어렸다.

수풀을 뚫고 나온 건 사람이었다. 숫자는 다섯. 하지만 한스와 스녹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다섯 사람 모두가 정체를 가리는 기다란 검은 로브를 입고 있던 것이다. 수상한 사람은 몬스터보다 위험할 수 있다.

“뭐 하는 놈들이냐?”

지크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목적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제히 빼어든 단검을 보면 적어도 호의를 품은 건 절대 아니었으니까.

“설마 너희, 지금 나한테 덤비려는 거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지크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하여간 세상에는 왜 이렇게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녀석들이 많은 거야?”

마치 조용히 살고 싶은데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넋두리 같다. 그러나 지크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선배.”

“왜?”

지크의 고된 훈련이 헛되지 않은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스녹이 한스에게 물었다.

“지크 님 말입니다. 말이랑 다르게 기분이 좋으신 것 같은데요? 제가 잘못 본 겁니까?”

“아니, 잘 본 거야.”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보는 한스의 시선이 일순, 경계에서 동정이라는 감정 변화를 일으켰다.

“심심한데 갖고 놀 인간들이 왔으니까.”

그것도 척 봐도 나쁜 놈들처럼 보이는 인간들이.

아무리 소리를 죽여 말했더라도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수련이 낮은 사람은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로브를 입은 자들의 살기가 폭발했다.

살기의 강도가 제법이었기에 한스와 스녹이 움찔했다. 본능적으로 한스는 검에 손을 가져갔고 스녹은 땅에 손을 댔다.

그러나 지크는 여전히 덤덤했다.

“누가 보냈냐?”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지크도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보자. 딱 보니까 암살자 놈들인데, 나한테 원한 갖고 있는 놈들이 누구더라?”

회귀 전에는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가볍게 생각나는 놈들만 해도 양손발가락을 다 동원해야 했고, 진지하게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두 세 본다면 양손발가락이 1억 개쯤 있어도 모자랐다.

하지만 지금의 지크는 회귀 후의 지크다. 깨끗하다. 순백이다. 생각나는 자들이 한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착하게 산다는 인간이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복수의 원한을 샀다는 것에 문제를 느낄만도 하건만, 지크는 오히려 자신의 삶의 만족했다.

‘원한 산 놈들을 세는데 한 손이면 충분하다니. 이번 인생 제대로 살고 있구나.’

희희낙락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스틸월 백작가. 하지만 생각나자마자 지워버렸다.

‘지금 집안 수습하기에도 바쁠 텐데 그럴 신경이 어디 있겠어.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거고.’

그리고 그 집안 특성상 이렇게 암습을 가하지도 않는다. 물론 전쟁이 일어났거나, 상대가 먼저 암습을 걸어온다면 암습으로 맞받아칠 주변 머리정도는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전선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깨진 게 마음에 안 든다고 계승권도 박차고 나온 장남에게 암살자를 보낼 정도도 아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밸리드 놈들.

하지만 부시장은 끌려갔고 카르위먼에서도 정보 통제를 한다고 하니 그놈들에게 자신이 알려질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카르위먼을 향해서만 이를 박박 갈고 있을 터.

세 번째는 스울에서 스녹을 ‘대지의 폭군’으로 만들려 한 암살자 놈들이다.

‘이미지만 보면 그놈들이랑 비슷한데.’

하지만 그놈들은 지크가 싹 죽이지 않았던가. 놓친 놈도 없으니 그놈들에게서 자신의 정보가 새어나왔을 것 같진 않다.

네 번째는 비욤 드라큘. 자신이 요하임을 돕는 게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니야. 그건 너무 갔어.’

고작해야 협력자 하나가 아니던가. 게다가 벌써 지크의 실력을 파악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아니, 솔직히 비욤이 지크의 존재를 알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음, 모르겠군.’

모르는 걸 계속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지크는 생각을 접었다.

‘저놈들을 잡아서 정보를 캐내자.’

“한스. 스녹.”

“네?”

“한 놈씩 맡아라.”

둘의 표정이 굳었다.

“저, 저기 지크 님. 저희가 훈련 때문에 지금 체력도 없고 근육에 힘도 안 들어가서….”

그래도 지크의 종 노릇 좀 더 했다고 한스가 말했다.

하지만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 누가 봐도 지금 한스와 스녹은 전투를 치를 만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예정된 훈련 일정을 채우지 않았다고 해도 지크의 훈련이 어디 보통 훈련이던가.

그러나 말을 꺼낸 한스조차 이런 변명이 지크에게 통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한스의 이런 예상은 틀린 적이 없었다.

“나중에 네가 체력을 엄청 소진해서 적을 물리쳤는데, 그 뒤에 적의 지원군이 왔다고 치자. 그럼 ‘나 힘 빠졌으니까 다음에 싸우자.’ 같은 소릴 할 테냐? 만약 그런 말을 한다 해도 적이 ‘그래? 그럼 다음에 올게’라고 해준다냐?”

역시 통하지 않는다.

한스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일어섰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마치 갓 태어난 사슴 같다. 검을 들고 있는 팔도 마찬가지였다. 검이 마치 육중한 쇳덩이 같았다.

계속 휘둘러 온 탓에 친숙해졌던 검이 지금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한스에 비해 스녹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범용성이 좋은 그의 능력은 근육이나 체력이 없어도 마력만으로 어떻게든 전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크는 그런 꼴을 보지 못했다.

“스녹은 암석갑옷을 금하고 적을 상처입히는 수단은 칼만 허용한다. 그리고 노웸도 떨어져.”

“으엑!”

말 그대로 자신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명령에 스녹이 비명을 내질렀다.

쿠….

스녹에게 떨어지기 싫은 노웸이 힐끔힐끔 지크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지크의 매서운 눈초리에 스녹의 어깨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지의 환수로서 과거에는 광산의 괴물이라는 전설이 될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 된 노웸이었지만 지크에게 반항할 순 없었다. 그만큼 지크는 무서웠다.

“좋아. 준비됐으면 둘이 거리 좀 둬. 한 놈씩 던져줄 테니까.”

마치 가득 잡은 물고기라도 나눠주겠다는 투다. 게다가 한스와 스녹이 지크의 말대로 거리를 벌리기까지 했다.

화가 났다. 참을 필요도 없다.

암살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스와 스녹이 암살자들을 한 명 씩 맡기로 했지만 그거야 지크 일행의 사정. 암살자들이 따를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크에게 달려들었다.

지크를 가장 먼저 끝장내고 그 다음에 누가 봐도 지쳐보이는 한스와 스녹을 죽일 셈이었다.

단검 다섯 개가 순식간에 지크를 찔러 들어왔다. 그에 맞춰 지크가 검을 꺼냈다.

채채채채챙!

연속적으로 들리는 다섯 번의 소음.

마치 그렇게 약속이라도 한 듯 단검을 든 암살자들의 팔이 높이 들렸다. 물론 그런 약속을 했을 리 없다.

단순하게 지크의 검에 단검이 튕겨나간 것뿐이었다.

품이 텅 빈 암살자들을 향해 지크가 발을 뻗었다.

퍽! 퍽!

두 번의 타격음이 들리고 암살자 중 둘의 몸이 튕겨나갔다.

그러나 몸이 붕 떠 날아간 것 치고는 두 암살자들에게 큰 타격은 없었다.

지크의 가벼운 발차기를 조소하며 두 암살자는 사뿐하게 지면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자기 옆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지크의 의도가 무언지, 왜 사람의 몸을 날릴 만한 발길질이 그렇게 가벼웠는지 깨달았으니까.

“잘 처리해라!”

한스와 스녹 앞에 암살자 한 마리씩을 배달한 지크가 나머지 세 마리를 향해 미소지었다.

“너희는 나랑 놀자고. 걱정 마라 적어도 입을 나불댈 수 있을 정도로는 봐줄 테니까.”

지크가 암살자들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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