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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57화 (57/628)

제57화

지크는 한스와 스녹을 데리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거친 움직임이었지만 한스와 스녹 누구도 불평불만을 내지 않았다.

자그마한 마을에 퍼지는 검은 연기는, 누가 봐도 수상함을 넘어 불길하게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습격인가? 아니면 단순한 화재인가?’

상당히 먼 거리였기에 지크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정확한 원인은 마을에 도착해봐야 알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착한 일을 할 거리가 있을 확률이 높아.’

나쁜 놈들을 쳐죽이는 것으로 착한 일을 한다 정했지만 꼭 그 일만 할 생각은 없었다.

나무와 수풀이 잔뜩 우거진 산길을 주파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걸음 속도는 빨랐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인지라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건은 끝나지 않은 모양인지 검은 연기는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마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연기는 더욱 확연하게 보였다.

한스와 스녹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한스는 검자루에 손을 올렸고 스녹은 노웸을 품 안으로 옮겼다.

킁! 킁!

지크의 코가 움직였다. 마을 지척까지 오자 매캐한 냄새가 주변을 떠돌았다.

“이건…. 시체 타는 냄샌가.”

한스와 스녹의 경계도가 단번에 올랐다.

시체를 태우는 냄새라니. 절대 좋은 일로 들리진 않는다.

숲의 경계에 있는 수목을 빠져나가자 도시의 모습이 완벽하게 눈에 들어왔다.

방어를 이유로 세워진 목책이 가장 먼저 보였다. 검은 연기가 나는 것은 그 너머였다.

“도적이나 외적한테 습격 받은 걸까요?”

한스는 벌써 검을 반쯤 빼 든 상태였다.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지크가 목책 이곳저곳을 살폈다.

“습격이라기엔 목책이 너무 멀쩡해. 그리고 도적놈들이 불을 질렀다면 이렇게 연기만 뿜지는 않았을 거야. 화광이 넘실대겠지. 이미 잿더미로 화한 뒤라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산 정상에서 본 마을 풍경은 정상이었다.”

셋은 목책을 따라 걸었다. 문이 나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 병사 두 명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마을을 지키는 문지기는 아니로군.’

그러기엔 무장이 너무 충실하다.

“응?”

병사 중 한 명이 지크 일행을 발견했다. 그의 눈이 험악해지다니 들고 있던 창을 겨눴다.

“어떻게 마을 밖으로 나왔지!”

다른 병사도 지크 일행을 발견하고는 똑같이 창을 내밀어 위협해왔다.

한스와 스녹이 놀라 ‘어버버!’거리는 와중, 지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행잡니다. 오늘 이 마을에서 묵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만.”

“헛소리! 이 마을로 향하는 가도는 모두 봉쇄되어 있다!”

‘그랬나?’

문지기의 살벌한 목소리를 생각하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그들은 가도를 따라오지 않고 일직선으로 산을 주파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가도가 봉쇄됐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저희는 가도를 타지 않았습니다. 산을 주파했죠.”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산을 탔다고?”

병사의 의심이 깊어졌다.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고 허리에 찬 칼을 툭툭 두드렸다.

“이 근처에서 나오는 수준 낮은 몬스터에게 당할 만큼 약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굳이 산을 탈 필요는 없지. 가도가 훨씬 더 편하니까.”

“뒤에 있는 녀석들을 훈련시킨다는 이유가 없었다면 그랬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병사는 경계를 좀처럼 풀지 않았다.

확실히 과도한 경계심이다. 아마 마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지크가 목책 너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잠시 모여 무언가를 쑥덕였다. 하지만 지크의 좋은 귀는 그 말들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저 말 정말일까?”

“글쎄. 일단 무장을 하고 있으니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마을에 도망쳐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어떡하지?”

“어떡하긴. 일단 공자님께 데리고 가 봐야지.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한 병사가 스산한,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저들도 병에 걸려 있을지도 모르니까.”

‘병?’

그 말을 듣는 순간 지크는 마을에 일어난 대략적인 일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모양이군.’

검은 연기는 병에 걸려 죽은 병자의 시체와 집, 살림살이 같은 것들을 태우는 것일 거고 가도는 다른 마을로 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봉쇄한 것일 터다.

도적이나 외적의 습격 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것들보다 더 위험하고 골치 아픈 문제가 튀어나왔다.

“일단 따라와.”

병사가 여전히 창을 내세운 채 명령했다. 일체의 반론이나 반항 따위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어떡하시겠습니까?”

한스가 지크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죄인 취급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행 초창기와 비교해보면 안절부절 못 하는 기색은 적어졌다. 그도 경험을 쌓은 것이다. 게다가 그 경험이 보통 경험이었는가.

단, 아직 이런 경험이 부족한 스녹은 누가 봐도 심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일견 겁을 먹은 것처럼도 보였다.

“일단 따라간다.”

“알겠습니다.”

셋은 병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병사가 안내한 곳은 마을 안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병사는 마을로부터 어떻게든 멀어지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였다.

‘전염병이 퍼져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

심하다면 나라 하나를 지워버릴 수 있는 게 바로 전염병이란 존재다. 치사율과 전염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공포는 더더욱 커져간다.

병사의 반응으로 보아 마을에 퍼진 전염병은 상당히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것 같았다.

병사가 그들을 데려간 곳에는 커다란 막사들이 세워져 있었다.

‘지휘부로군.’

마을로 통하는 가도를 봉쇄하고 상당한 숙련도의 병사가 마을 입구에 배치되어 있는 걸 보면 이미 중앙에서 보낸 컨트롤 타워가 기능하고 있음이 명확했다. 자신들도 감염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휘부를 세운 모양이었다.

병사는 막사들 중에서도 가장 큰 막사로 그들을 데려갔다.

“무슨 일이지?”

막사를 지키고 있던 병사가 물었다. 지크를 데려온 병사가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보니 그가 상관인 모양이었다.

“수상한 자들을 발견해 데려왔습니다.”

“수상한 자들?”

상관이 지크 일행을 슥 훑었다.

“갑자기 마을 입구에 나타났는데, 본인들 말로는 산을 통해서 와 가도 봉쇄를 피했다고 합니다.”

“산을? 어째서?”

“훈련을 위해서랍니다.”

상관의 시선이 지크 일행의 무장에 잠시 머물렀다.

“마을 사람은 아니고?”

“아닌 것 같긴 합니다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공자님께 보고를 드리려고 데려왔습니다.”

그때였다.

“데려오세요.”

막사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상관이 막사 입구를 쳐다봤다가 다시 지크를 본다. 그리고 병사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데리고 들어가.”

지크 일행은 안내한 병사를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은 제법 아늑했다. 한 쪽에 수면을 취하기 위한 침상이, 한 쪽에는 집무를 위한 책상이 있었다. 그 외의 가구는 존재하지 않아, 커다란 천막 안의 공간을 낭비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척!

병사가 창을 들어 집무 책상 앞에서 예를 차렸다.

그 곳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상당히 젊어 보인다. 지크와 비슷하거나 많아봐야 두세 살 정도 차이가 날 것 같았다.

뺨은 홀쭉하고 눈두덩이가 움푹 패여 광대가 도드라진 것이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일어섰다. 키는 컸지만 몸이 말라 그의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하지만 그의 반짝이는 두 눈은 그의 총기가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다는 걸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전 요하임 드라큘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에 파견된 대책팀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이죠.”

요하임 드라큘. 지크가 아는 인물이다.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다.

‘설마 벌써 만나게 될 줄이야.’

그가 바로 지크가 찾던, 회귀 전 지크의 네 측근 중 한 명이었다.

반가울 수밖에 없다. 지크와 함께 세상을 주유했고, 지크와 함께 온갖 일을 겪은 그다. 그가 그렌 제너드의 검에 명을 달리했을 때 얼마나 마음 아파했었는가.

당장이라도 어깨동무를 하고 과거이자 미래의 이야기 -대부분이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지만- 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하지만 이 생에서 그와 요하임은 어디까지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때문에 지크는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을 억눌렀다.

“지크입니다. 뒤에 있는 놈들은 제 종들로 각각 한스, 스녹이라고 합니다.”

“지크 씨군요. 처음 뵌 분에게 이런 심문을 하긴 뭐 합니다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부디 양해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요하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지크 일행을 안내해 온 병사가 창대를 꽉 잡았다.

“스울에서 오는 길입니다. 병사분에게 말했다시피 제 종들을 훈련시키며 산으로 움직인 탓에 가도가 봉쇄된 걸 몰랐죠.”

“흐음.”

거짓을 꿰뚫어보려는 것처럼 요하임이 지크의 눈을 직시했다. 하지만 지크의 눈에 표정변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믿도록 하죠.”

“공자님!”

병사가 다급히 외쳤다.

“마을에서 몰래 도망치려던 자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진정하세요.”

요하임이 손을 들어 병사의 말을 막았다.

“무턱대고 이 사람들을 신용하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사람들의 정체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요하임이 지크와 한스, 스녹을 차례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 출신이든 이곳에서 내보낼 생각은 없으니까요.”

“네? 그게 무슨…!”

한스가 놀라 외치다 입을 닫았다. 요하임이 자신을 바라보자 절로 말이 막혔던 것이다.

연약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요하임이었지만, 정체를 모를 어떤 기세가 자신을 옥죄는 것 같았다.

‘대단하군, 이 녀석. 이때부터 벌써 이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었나?’

지크가 감탄했다. 과연 자신의 측근이 될 만했다.

“당신들에겐 안 될 말이지만 이 마을에 온 이상 당신들은 당분간 우리와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이곳에는….”

“전염병이 퍼져 있죠.”

지크가 요하임의 말을 대신했다. 한스와 스녹이 크게 놀라고 요하임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습니까?”

“봉쇄된 가도. 봉쇄된 마을. 마을에서 올라오는 연기. 중앙에서 파견된 것처럼 보이는, 대책팀이라 자칭하는 군사집단. 단서야 많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맞습니다. 이 마을에 전염병이 퍼졌고 우리는 그 전염병을 막기 위해 파견된 병력입니다. 우리와 접촉했으니 당신들도 전염병에 걸렸을 수 있어요. 밖으로 내보낼 수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지크는 순순히 긍정했다. 한스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역시 지크 님도 전염병이라는 이유 정도면 받아들이시는구나.’

지크 성격상 억류를 거부하며 들이받아 버릴지도 모른다고 전전긍긍하던 그다. 전염병보다 오히려 그쪽이 더 걱정일 정도였다.

그러나 한스는, 상대가 전 측근이었던 요하임이기에 지크가 정도 이상으로 부드럽게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뭣하면 저희가 일손을 도와 드리죠.”

이렇게 과잉친절을 베푸는 이유 또한 같다는 것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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