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사내는 지금껏 상당히 깔끔한, 그러나 살기 가득한 검술을 사용해 지크와 스녹을 상대했었다.
그러나 변화 후, 그의 전투 스타일은 완전히 변했다. 비대해진 그의 몸에 비하면 마치 짧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검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육체만으로 덤벼들었다.
기술도 기교도 없다. 있는 건 오로지 파워와 스피드, 그리고 지독하리만치 단단한 피부뿐.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내가 지크를 몰아붙이기엔 충분했다.
콰아아앙!
사내의 주먹이 지면을 강타한다. 단단한 암반이 움푹 패며 돌부스러기들이 흩날렸다.
사내의 주먹을 피한 지크가 조금 떨어진 곳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콰득!
사내가 지면을 힘주어 디뎠다. 돌바닥에 사내의 발자국이 깊게 찍히며 사내의 몸이 발리스타처럼 쏘아졌다.
후웅!
손바닥을 쫙 펴 휘두른다. 옆에서부터 넓게 휘두르는 그 공격은 무척이나 무디고 빈틈이 많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단, 비대해진 팔과 거기에 실린 힘과 스피드가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할 뿐이었다.
지크가 검을 세워 막았다.
카아앙!
검신과 피부가 맞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추세운 지크의 검이 힘에 밀려 기울었다. 지크는 급히 팔뚝에 마력을 집중했다.
퍼억!
끝끝내 검신을 밀어낸 사내의 공격이 지크의 팔뚝을 가격했다. 걷어차인 꼭두각시 인형처럼 지크의 몸이 옆으로 날아갔다.
균형이 흐트러졌지만 지크는 능숙하게 허공에서 몸을 바로 세워 착지했다.
촤아악!
지면을 길게 미끄러진 후 지크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욱신!
타격을 받은 팔에 통증이 일었다. 지크는 팔을 휘휘 내저어봤다.
‘단순한 타박상이군.’
뼈가 부러진 건 아니다. 싸움에 지장이 있을 만큼 통증이 크지도 않다.
그러나 그건 지크가 타이밍 좋게 팔에 마력을 모아 방어를 한 덕이었다. 만약 아무 대비 없이 맞았다면 팔 뼈는 물론이고 늑골도 몇 대 나갔을지 모른다.
게다가 같은 곳을 여러 번 맞는다면 아무리 마력으로 방어를 한다 해도 성치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저 녀석이 나보다 위다.’
지크는 깔끔하게 인정했다.
‘대체 저건 뭐지?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없는 기술인데. 비슷한 건 있었지만, 그것들에 비해 저건 힘의 증폭률이 너무 커. 아니, 기술이긴 한 건가?’
기술이든 아니든, 별의 별 경험을 겪어온 지크의 지식 속에도 없는 것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거 뭐냐?”
지크가 대놓고 물어봤다.
“후후후! 이제야 위기감을 느끼는 겁니까?”
“워낙에 특이한 기술이라서 호기심이 샘솟아서 말이야. 그거 기술이긴 하냐?”
“물론 기술이죠. 호기심이 든다면 우리 조직에 들어오면 어떻습니까? 호기심을 푸는 걸 넘어서 당신도 직접 익힐 수 있어요.”
사내는 아직 지크를 스카웃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콧방귀를 끼었다.
“누가 봐도 자기 수명 깎아가면서 쓰는 기술인데 그딴 걸 내가 왜 배우겠냐. 나는 그딴 것 없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어.”
“당신이라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젊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기술을 써야 할 정도로 강자인 지크다. 나이를 먹으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모른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데 그건 당신이 여기서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죠.”
그리고 사내는 지크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승리가 확실시된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높이는 사내가, 지크는 무척이나 아니꼬웠다.
“분명 지금 실력은 네가 위야. 그건 확실해. 인정하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하는 걸, 지크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것, 이건 이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고작’ 그 정도로 승리를 확신하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냐?”
회귀 전, 지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투를 치러왔다. 1대 1의 전투도 있었고 다대다의 전투도 있었으며 1대 다의 전투도 있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적과도, 비슷한 적과도, 그리고 뛰어난 적과도 싸워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전투는 항상 동일하게 끝났다.
지크의 승리라는 결과로.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지.’
‘힘의 마왕’이라는 절대적인 칭호를 얻기까지의 엄청난 고난들을 생각하면, 이번 건 위기 축에도 끼지 못했다.
“자신감은 여전한 모양이군요.”
“고작해야 네 실력이 조금 상승했다고 패배를 논하기엔 내가 너무 천재거든.”
“흐음,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좋습니다만, 그게 넘쳐 자만심이 되어버린 사람은 별로 취향이 아닌데요.”
“자만심이 아냐. 사실일 뿐이지.”
“좋습니다. 그럼 그게 자만심인지 사실인지 시험해보도록 하죠.”
사내의 공격은 말 그대로 노도와 같았다. 커다란 팔과 다리를 연신 뻗었고 종종 팔꿈치와 무릎으로 무거운 공격을 행하기도 했다.
받아넘기기 힘들어 지크는 그의 공격을 대부분 피했지만, 사내의 속도는 그런 지크를 점점 압박해 왔다. 간간이 지크가 하는 반격들은 튕겨나가거나 단단한 피부에 막혔다.
뚜렷이 수세 몰린 상태. 지크의 몸에 멍과 터진 상처들이 계속해서 늘었다.
“뭐 하고 있습니까? 역시 자만심이었나요? 뭔가를 슬슬 보여주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처럼 보이는데요.”
사내가 이죽였다. 천재운운하며 패배따윈 없을 듯 지껄인 주제에 지크는 이렇다 할 반격조차 못 하고 있었다.
사내의 빈정거림에 계속해서 유쾌하게 대꾸하던 지크가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굳게 입을 다물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꾸할 여유조차 없다. 사내는 그렇게 판단했다.
“조금 기대를 했습니다만, 당신은 여기까지군요. 뭐, 수고했습니다. 그 나잇대 치고는 잘 했어요. 솔직히 많이 놀랐답니다. 당신에게 모자란 건 시간뿐이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세상 일이란 게 그런 건데요.”
그가 앞으로 그 자신을 더욱 빛나게 할 시간은, 아쉽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온갖 고문과 약물로 그가 어떻게 노웸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변수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아낸 후, 그의 시간을 사내가 손수 끝장낼 생각이었으니까.
“죽기 직전의 짧은 시간이라도 반성을 하세요. 젊음이란 건 그렇게 발전….”
“정말 말 많네.”
꾹 다물려 있던 지크가 입을 열었다.
“어라? 겨우 입을 열었나요? 말을 안 해서 벙어리가 된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여유가 없다고 해도 사람의 말에는 대꾸를 해줘야 하지 않나요?”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말이야. 아직 마력이 부족해서 몇 배나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거든. 미안하게 됐어.”
“준비?”
“그래. 널 쓰러뜨릴 준비.”
사내가 웃었다. 유쾌하고 유쾌해서, 그래서 상대가 불쌍해서 어쩔 수가 없다는 듯.
“아하하하! 아직도 꿈에서 깨지 못했군요? 좋습니다! 당신이 신경 써서 했다는 그 준비, 어디 한 번 견식해보죠!”
콰아앙!
사내가 달려들었다.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공격이라고 하기도 뭐한 돌진이었지만 그 위력은 대단했다. 스치기만 해도 뼈 몇 대는 그냥 나가리라.
그에 비해 지크의 반격은 단순하다 못해 연약했다. 기세도 힘도 실리지 않은 검이 흐늘흐늘 찔러 넣어졌다.
방어할 필요도 없다.
다가오는 검을 무시하고 사내가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엉!
“어?”
화려하게 흩뿌려지는 피의 축제에 사내는 의문성을 토했다.
아직 그의 주먹은 지크에게 닿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피가 뿌려지다니.
눈을 끔벅거렸다.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팔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그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신음을 내지르며 팔을 부여잡았다. 그의 강철 같던 육체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휘둘렀던 팔이 내부에서 터져나간 듯 커다랗게 패여 있었다.
예상치 못한 부상에 사내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부상당한 팔이 힘없이 대롱거리며 부상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닌 걸 알렸다.
지크는 사내의 당황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태연히 검을 어깨에 걸쳤다.
“어때? 마음에 들어?”
“어, 어떻게…!”
지크의 공격은 그저 허접한 찌르기였다. 하지만 그 매가리 없는 공격에 사내의 팔은 꿰뚫렸다. 폭발했다.
“마력 공명이란 거다.”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
하지만 그건 절대로 가벼운 기술이 아니다.
요컨대 이론은 ‘감각 확장’에서 출발한다.
검에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어 검을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감각 확장’.
하지만 지크는 ‘감각 확장’을 검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검을 넘어 그 이상까지 뻗어나가길 원했다.
그래. 상대의 육체까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내가 지크의 말을 부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지크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지크의 말은, 검이 상대의 신체에 접촉했을 때 접촉된 육체에 흐르는 상대의 마력을 지크의 뜻대로 지배할 수 있단 뜻이었다.
“불가능해!”
“가능해.”
지크가 이번엔 다른 쪽 팔을 찔렀다. 사내가 급히 피하려 했지만 부상과 당황 때문에 행동이 늦었다.
퍼어엉!
“크악!”
나머지 팔마저 터져나갔다.
“지금은 마력이 적어서 마력을 공명시킬 부위를 십 수 번을 강타해야했지만, 한 번 마력간 공명이 일어나면 그 이후는 간단하지.”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계속해서 같은 부위만 공격하던 이유가…!’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단단한 피부를 뚫으려는 발악인 줄 알았는데, 설마 마력의 지배권을 얻기 위한 의도일 줄이야.
“의지나 마력 제어가 월등한 놈들한테는 통하지 않지만 너는 그렇게 대단한 놈은 아니니까 말이야. 게다가 너같이 무식하게 마력을 사용하는 놈들한테는 더더욱 효과가 좋지.”
그래서 검에 접촉한 녀석의 피부 아래로 흐르는 마력을 쥐어짜 내부에서 폭발시켰다. 그의 힘도 속도도 단단한 피부마저 마력의 은혜로서 기동하는 녀석들이었으니, 일부분이라도 마력 제어권이 지크에게 떨어진 이상 그의 요새 같은 육체는 더 이상 기능할 수 없었다.
지크는 검으로 마력을 공명시킨 부위를 연신 찔러댔다. 사내의 육체가 족족 터져나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의 몸은 걸레짝으로 변했다.
“쿨럭!”
사내가 피를 토했다. 파리한 안색이 그의 몸 상태를 단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사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단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마력 공명. 지크의 기술 중에서도 한껏 악명을 떨친 기술이다.
특히 단단한 방어력을 믿고 나댄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기에 이만큼 탁월한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지크는 이 기술을 사용한 게 썩 달갑진 않았다.
‘마력만 전부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냥 힘으로 눌러버리는 건데.’
그러나 그런 감상도 잠시. 지크는 다시 사내에게 집중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알려줄 수 있냐?”
지크는 사내의 정체와 그의 조직이 궁금했다.
회귀한 지크조차 알지 못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조직. 호기심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러나 사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존대조차 때려치우고 차갑게 말했다.
“내가 알려줄 것 같나?”
“아니.”
지크가 아는 사내 같은 자들은 고문 같은 것에 입을 열지 않는다.
사내의 성향에 대해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지크도 사내에게서 정보를 얻을 생각을 하지 않고 암살자 부하 몇을 정보용으로 살려뒀을 것이다.
“내 정체에 대해서도, 스녹 그 녀석에 대해서도 말해줄 건 없어.”
“아, 스녹에 대해서는 필요 없어.”
지크가 말했다.
“보통 환수와 억지로 융합을 시킨다면 평범한 사람은 거부반응 때문에 육체가 붕괴하기 마련이지. 그런데 스녹은 붕괴는커녕 오히려 재생까지 했어.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스녹의 마력 성질이 환수와 무척 친화력이 높다는 것. 아마 태생적으로 대지에 가까운 성질을 타고 나지 않았을까?”
그의 분석은 계속됐다.
“그런 케이스라면 억지로 융합을 시켰다고 해도 폭주하진 않을 테지만 뭐, 네가 뭔 짓을 했겠지. 아마도 심리적으로 뒤흔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야.”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까 드루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그 녀석도 너희들의 계획의 일부분이었지? 어쩐지 모험가가 제자를 들인다는 재미있는 일이 왜 생겼나 했네.”
“빌어먹을 자식!”
사내는 침을 뱉듯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