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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8화 (48/628)

제48화

끼기기긱!

두 개의 검이 서로의 힘을 겨룬다. 마력이 가득한 검은 날카로운 기세를 품은 채 상대의 목을 날려버리기 위해 계속 기회를 노렸다.

“제 부하들은 전부 죽은 모양이죠?”

사내가 물었다.

“설마 그딴 실력의 놈들이 아직까지 목숨 줄을 부여잡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전 그렇게 양심 없는 놈이 아닙니다. 역시 급하게 충원한 놈들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요.”

캉!

지크와 사내는 서로의 검을 밀어내 거리를 벌렸다.

잠깐의 대치 상태. 지크의 눈이 잠깐 스녹을 훑었다가 사내를 직시했다.

“일단은 확인 삼아 묻는데 말이야. 스녹을 저렇게 만든 놈이 너지?”

“잘 만들었지 않습니까?”

사내가 자랑스럽다는 듯 허리에 손을 대고 가슴을 내밀며 젠체했다.

“이 친구가 여간 쑥쓰럼쟁이가 아니라서 말이죠. 오지랖 넓게도 친절이란 걸 한 번 베풀어 봤죠. 마음에 들려나 걱정이에요.”

“너무 그렇게 겸손해 하지 마. 자신감 번쩍이는 게 충분히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뭘. 그런데 저 녀석의 자신감이 저렇게 상승한 원인이 궁금해서 묻는데 말이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서로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고 있지만, 지크와 사내의 대화는 태연하다 못해 즐겁게까지 느껴졌다.

“광부 일이나 하던 평범한 인간에게 저렇게 순식간에 자신감을 심어줄 방법은 별로 없지. 들고 있는 무기는 없으니까 마검 같은 걸 쥐여준 것 같진 않고, 그럼 누군가 힘을 부여했거나 다른 존재와 융합 시켰을 확률이 높은데. 폭주하는 상황이긴 해도 갑자기 부여받은 힘을 다루는 어색함이나 갑갑함 같은 건 없으니 뭔가를 융합시킨 쪽이구나? 뭘 넣었냐?”

“…당신, 제법 견문이 넓군요?”

상황 증거만 가지고 답을 도출해낸 지크에게, 사내는 여전히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적잖이 놀랐다. 지크에 대한 경계도를 한층 더 올렸다.

“칭찬은 내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걸로 대신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혹시 드루라는 인간에 대해 아십니까?”

사내가 역으로 질문한다. 지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분수를 잘 모르는 것 같길래 친히 주먹으로 가르침을 내려준 적은 있지. 걱정 마. 그걸로 다 풀었으니까. 더 이상 악감정은 없어.”

‘찾았다! 변수!’

범상치 않은 실력에, 자신들의 계획을 계속 방해하고 있던 터라 찔러봤는데 당첨이었다.

사내의 안에서 변수를 찾아냈다는 환희와 변수에 대한 증오가 한껏 어우러졌다.

“대답 고맙습니다. 저도 보답으로 대답을 해드리고 싶긴 합니다만, 불행하게도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순 없네요. 저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렇게 말한다면 계속 물어보기도 그렇지.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니까.”

“이해심 많은 사람은 좋아합니다. 당신, 인기 많죠?”

“이야, 쑥쓰럽지만 부정할 순 없네!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만 따져도 저 광산을 가득 채울 정도지.”

“캬! 과연! 외모에서부터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예상대로 인기인이었군요!”

“아하하! 얼굴에 금칠을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그런데 우리 슬슬 다음 화제로 넘어가자고. 나도 계속 스녹 저놈이 강해질 시간을 주긴 싫거든.”

지크의 미소가, 대책없이 환한 것에서 의미심장한 그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야속하네요. 당신의 그 넓은 마음은 거짓말이었던 겁니까? 당신에 대한 신뢰가 깨질 것 같습니다만.”

“실망시켜서 미안해. 하지만 방금 내 마지막 호기심이 채워져서.”

지크의 눈동자가 스녹에게 옮겨갔다.

“육체가 재생됐어. 인간과 융합시킬 수 있는 대상은 기껏해야 환수 아니면 정령인데, 실체가 없는 정령은 재생 능력을 부여해주진 않지. 숙주에게 재생 능력을 부여하는 걸 보면 융합 대상은 환수. 뿌리는 기운을 보면 대지의 환수겠네. 그러고 보면 이루스 광산에는 ‘광산의 괴물’이 봉인되어 있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었지?”

지크의 눈이 빛났다.

“그놈이구나?”

“…….”

사내는 이번엔 대꾸하지 못했다.

‘뭐 이런 인간이….’

몇 가지 정보만으로 정답을 때려맞췄다. 계획을 어그러뜨린 변수라 만만찮은 인간이란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통찰력 깊은 인간인 줄은 몰랐다.

하지만 사내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혹시 그 환수 놈 이름이 노웸이냐?”

“……!”

“맞구나?”

지크는 이걸로 왜 스녹이 노웸이란 명칭으로 불렸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의문이 풀린 지크와는 다르게 사내의 의문은 오히려 늘었다.

사내가 알기로 스녹은 대지의 환수에게 노웸이란 이름을 지은 후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그들도 조직의 정보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그런 정보를 지크가 태연스레 내뱉은 것이다.

지크가 ‘대지의 폭군 노웸’이란 이름을 꺼냈을 때 그의 부하들이 동요했던 것처럼, 사내 또한 경악을 추스르는 게 힘겨웠다.

‘반드시 정보를 빼내야겠어!’

지크의 존재에 대해, 그는 그저 그들의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변수에서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정체모를 인간으로 인식을 올렸다.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사내가 검을 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먹고 사는 문제라서 말이야. 함부로 말해줄 수는 없어.”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서로 검으로 물어보자고요.”

“그건 나도 찬성이야. 뭐, 스녹 놈도 재생을 끝낸 듯하니 같이 어우러져 보실까?”

스녹이 괴성을 내지르는 걸 신호로 둘은 검을 휘둘렀다. 광산 입구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 * *

광산의 전투는 삼파전 형상을 띄고 있었다. 사내는 오로지 지크만을 공격하려 했지만 폭주한 스녹은 지크, 사내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자신 외의 인간들을 모두 쓰러뜨리려는 둘과는 달리, 사내의 목적은 지크뿐이었다.

스녹의 공격은 적당히 받아 넘기며 지크에게 집중하면 상당히 편하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이 자식, 삼파전에 능숙해! 아니, 난전에 능숙하다고 해야 하나?’

스녹이 사내를 같은 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식하자마자, 지크는 사내의 공격을 슬쩍슬쩍 튕겨내거나 유도해 스녹과 충돌하게 만들었다.

사내가 그걸 알고 저항했지만 능글맞은 지크의 검은 계속해서 둘의 충돌을 유도했다. 스녹의 공격도 점점 강하고 날카로워져 막기 고되졌다.

‘아직 젊은데.’

지크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본다.

젊은 걸 넘어 어리다. 아직 얼굴에 앳된 기가 묻어난다. 헌데, 이 정도의 실력에 이 정도의 능숙함이라니.

그러나 지크라고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사내의 실력은 제법이었고 스녹의 힘도 상승세는 한 폭 꺾였지만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콰아아앙!

셋의 공격이 한 곳에서 충돌하며 폭음이 일었다. 셋은 각자 거리를 벌렸다.

“인정하겠습니다. 당신 정말 대단하네요.”

사내가 지크를 향해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냥 가볍게 받은 쉬어가는 임무에서 당신 같은 골치 아픈 작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와.”

“진심입니다. 빈정거림의 대가인 제가 이렇게 솔직히 감정표현을 하는 건 정말로 드문 일이에요. 그 정도로 당신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죠. 예에. 제가 지금부터 임무보다도 당신의 확보를 우선적으로 하려고 할 만큼요.”

그 순간, 사내의 기세가 변했다.

딱히 사내가 더 강해진 건 아니다. 그저 그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기세를 타고 흘러나올 뿐이다.

“크으으으!”

스녹도 그걸 느낀 모양이다. 오히려 본능으로 움직이는 만큼 기세의 변화에 더 민감한지도 몰랐다.

“아아, 이걸 쓰는 건 정말로 싫었는데 말이죠.”

우우웅!

순간 사내의 몸에서 강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스녹이 몸을 움찔했고 지크의 안색이 딱딱해졌다.

주변 마력이 사내를 중심으로 휘몰아친다.

콰직! 콰직!

로브로 꽁꽁 감싸져 있던 몸이 부풀었다. 마치 피부 속에 억지로 근육을 계속해서 주입하는 것 같다. 로브가 찢어지고 사내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드디어 세상에 내보인 사내의 얼굴이었지만 사내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변화는 사내의 얼굴에도 일어나, 그의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후욱! 후욱!”

사내가 숨을 몰아쉰다. 변화가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이라도 하듯 과장스럽게 몸을 움직여봤다.

“묘기 좋은데? 어디 서커스단 출신이라도 되나?”

“서커스단 출신은 아니지만, 나중에 은퇴할 때 그쪽으로 진출할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어때요. 제법 괜찮은 재주 아닌가요?”

사내의 어조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그 목소리는 잔뜩 거칠어져 있었다. 그 소름끼치는 대조가 사내의 위압감을 더욱 강조했다.

“크, 크아아아아!”

스녹이 사내를 향해 뛰어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위협을 배제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돌덩이들이 솟아나 스녹의 팔에 휘감겼다. 마치 거대한 돌거인의 것이 된 듯한 팔을 스녹이 휘둘렀다.

“흠, 제 고생의 결과인 당신을 상처입히고 싶진 않습니다만….”

사내가 스녹의 팔을 슬쩍 피하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지금은 당신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어서요.”

퍼어억!

사내의 팔이 스녹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복부에 암석을 갑옷처럼 두른 스녹이었지만 사내의 강맹한 주먹질은 갑옷을 찢어발기고 스녹의 몸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크어어억!”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스녹의 신형이 저 멀리 사라졌다.

궤도로 보면 아마 산 중턱 어딘가로 떨어진 것 같았다.

“자, 방해물도 없어졌겠다. 이젠 둘이서만 오붓하게 칼부림을 하죠.”

“괜찮겠어? 저 녀석을 만든다고 고생한 거 아냐?”

“당신이 제 관심을 독차지해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저 사람도 괜찮을 겁니다. 이 정도로 죽지도 않을 거고, 웬만한 상처는 다 재생할 테니까요. 폭주 상태라 의지도 거의 없으니 제가 당신을 처리하고 찾으러 갈 때까지 가만히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리고 날 처리한 다음 저 녀석을 스울까지 유인하시겠다?”

“정답! 당신 정말 눈치 빠르네요. 혹시 우리 쪽으로 올 생각 없습니까? 당신이라면 빠르게 위쪽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남을 섬기는 건 취향이 아니니 거절하겠어.”

“차여버렸네요. 슬퍼라. 그럼 어디 이 질투 어린 울분을 풀어볼까요?”

* * *

한스는 산중턱에서 위를 쳐다보며 곤란해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샘이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광산을 살펴보기 위해 이루스 광산이 있는 산을 오르던 둘.

아직 이곳까지 몬스터가 진출해 있지도 않았고, 야생동물 정도야 한스의 상대가 아니니 산 중턱까지는 꽤 수월하게 올라왔다.

문제는 그 곳에서부터였다.

갑자기 산 위쪽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가 일어난 게 분명했다. 한스는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간 지크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지크 님과 관련이 있을 것 같지?’

그럴 확률이 높다고 한스는 생각했다.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이따금씩 들리는 괴성은 광산이 있는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샘을 광산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논외다.

한스가 고민하는 건 여기서 다시 샘을 도시까지 데려다 주느냐, 아니면 샘을 방치하고 아마도 지크가 싸우고 있을 전투 현장에 달려가느냐였다.

고민에 빠진 것도 잠시.

한스는 곧 답을 내렸다.

‘지크 님의 수준이라면 내가 도우러 가봤자 방해만 될 가능성이 높아. 설혹 내가 참전을 한다 해도 샘 씨의 안전을 먼저 확보한 후에 하는 게 낫지 않겠어?’

결정을 내린 한스가 샘을 향해 돌아가자 말을 하려 할 때였다.

허공으로부터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콰직! 콰지직! 쿠웅!

나뭇가지 몇 개를 사정없이 꺾어내고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떨어져 내린 그것에 한스와 샘이 깜짝 놀랐다.

챙!

한스가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떨어진 것을 경계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 지금껏 훈련의 성과를 보여줬다.

떨어져 내린 건 인간이었다.

지면에 충돌했을 때 생긴 듯, 몸 여기저기가 터지고 꺾여 척 봐도 적지 않은 부상을 입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섰다.

마치 좀비처럼 보이는 움직임에 소름이 돋았다.

샘이 횃불을 그 인간에게 가까이 했다.

붉은 광원이 그 사람을 비쳤다.

“…스녹?”

샘의 놀란 음성이 산중턱에 낮게 깔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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