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스녹을 짊어진 암살자들은 계속해서 이동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느긋한 기색은 없었다. 지크라는 방해물이 그들을 다급하게 했다.
미리 준비해둔 밧줄로 성벽을 가볍게 넘은 그들이 계속 달려 도착한 곳은 광산이었다.
“남아라.”
광산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섰을 때 사내가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누구든 절대로 들이지 마라. 격상의 상대라도 마찬가지다. 네놈들의 목숨을 소모해서라도 시간을 끌어.”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기절한 스녹을 넘겨받았다.
다른 암살자들을 남기고 사내는 광산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남은 암살자들은 광산 안의 어둠에 몸을 숨기고 혹시라도 있을 침입자에 대비했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한밤의 광산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러나 사내의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여러 갈림길을 능숙하게 헤집고 나간 그는 붕괴 때문에 봉쇄되었다는 광구로 들어갔다.
거짓말은 아니었던 듯, 광구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커다란 바윗덩이들이 통로를 막고 있는 게 보였다. 낙반일 것이다.
사내는 스녹을 던지듯 내려놨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스녹의 등이 세게 부딪쳤다.
“아악!”
스녹이 정신을 차렸다. 사정을 파악할 생각도 못 하고 몸을 웅크려 등에 손을 갖다 댔다. 너무 아팠다.
“으으으…!”
신음을 흘리다 눈을 게슴츠레 떴다.
“여, 여기는….”
보이는 거라곤 새까만 어둠뿐. 하지만 스녹은 여기가 어디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답답하고 음울한데다가 꿉꿉한 이 느낌은 매일 그가 느끼던 것이다.
‘광산?’
대체 자신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스녹은 급히 기억을 되짚었다.
‘집에 있다가, 배고파서 빵을 먹으러 일어났고, 창문을 바라봤는데…!’
소름이 쭈뼛 섰다. 정체불명의 무리들이 자신의 집에 침입한 걸 생각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건 자신을 향해 뻗어진 우왁스러운 손길이다.
‘납치당했나?’
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여기저기가 욱신거릴 뿐, 묶여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몸 여기저기를 만져 보는데 무언가 몸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쿠!
짧은 비명이 들린다. 스녹의 안색이 환해졌다.
“노웸!”
그의 가족의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더듬더듬 울음소리가 들린 지면을 훑었다. 다행히도 노웸은 금방 발견되었다.
쿠! 쿠!
노웸도 스녹의 손길이 반가운 듯 얼굴을 비벼댔다.
스녹은 노웸을 꼭 껴안았다. 녀석의 온기가 품 안을 덥혔다. 불안감이 조금은 날아갔다.
화륵!
그때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갑작스러운 불빛에 스녹이 급히 눈을 가렸다.
눈꺼풀을 몇 번 깜빡여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조심스럽게 손을 내렸다.
몽롱한 횃불이 홰 위에서 넘실댄다. 불빛에 비쳐 한 사람이 보였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스녹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로브로 몸을 완전히 가린 새까만 이미지의 인간.
분명 창 밖으로 확인했던 그 정체불명의 인간이었다.
“일어나셨군요.”
폭력적인 행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상한 음성이 들린다.
하지만 왜일까. 그 목소리를 듣고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무언가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누, 누구십니까?”
“아, 자기소개가 아직이었군요. 생각 같아서는 향긋한 차 한 잔과 함께 느긋하게 서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제가 좀 바빠서요.”
사내가 손을 뻗었다. 납치되기 직전의 상황이 떠오르며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사내의 목표는 스녹이 아니었다.
덥썩!
쿠우우우우!
노웸이 거칠게 울었다. 노웸의 울음 소리에 스녹의 눈이 번쩍 뜨였다.
우왁스럽게 노웸을 잡고 있는 사내의 손이 보인다. 노웸은 이빨로 스녹의 옷을 부여잡고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노웸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퍽! 퍽!
한 손으로 노웸을 꼭 안고 다른 손으로는 사내의 팔을 때렸다.
“놔! 놔!”
하지만 사내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팔을 스녹의 목으로 뻗었다.
“끄윽!”
그대로 들어 올렸다. 발마저 땅에 떨어져 마치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처럼 매달렸다.
‘이것 참 흥미롭군. 정보에 따르면 이렇게 용기를 낼 인간이 아닌데 말이야. 역시 이 두더지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인가.’
우득!
“컥!”
사내가 손에 힘을 줘 목을 더 조르자 그제야 스녹의 손에 힘이 풀렸다. 끌려가는 노웸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사내는 스녹을 바윗덩이들이 가득한 곳으로 집어 던졌다.
쿵!
“으억!”
단단한 돌덩이에 부딪친 뒤 땅바닥에 널부러졌다. 비실비실 일어서며 스녹은 자신이 부딪친 곳을 쳐다보았다.
‘…여긴!’
무너져 내린 무수한 낙반들이 갱도의 통로를 꽉 메우고 있다. 그 순간, 스녹은 여기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붕괴된 갱도!’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바윗덩이들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치 그러면 건너편이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노려봤다.
“왜 그러나요? 건너편에 뭐 찾는 거라도 있나요?”
사내의 말에 스녹은 흠칫했다. 새삼 공포심이 배가되어서 그런 건 아니다. 사내의 말이, 마치 자신은 중요한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스녹은 사내를 돌아봤다.
“어떻게 알고 있냐는 얼굴이네요. 별것 없어요. 당신의 눈이 무척이나 간절하고 슬퍼보였거든요. 마치 ‘아버지의 무덤’을 보는 것처럼요.”
로브의 어둠 속으로 가려진 사내의 얼굴에는 분명 무척이나 비틀린 조소가 걸려 있을 거라고, 스녹은 확신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갱도가 무너질 때 당시 작업을 하던 사람 둘이 깔렸다고 했었죠? 광부라는 거 생각하면 참 힘든 직업이에요. 둘 다 당시 어린 아들까지 있었던 모양인데 죽어서도 눈은 제대로 감았으려나 몰라요.”
“닥쳐….”
스녹이 욕을 뱉었다. 지금껏 벌벌 떨던 것이 거짓말처럼 그는 사내를 노려봤다.
사내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든 건 아니다. 단지 그보다 더 큰 분노가 샘솟았을 뿐이다.
“오오, 무서워라! 아, 하지만 이건 제가 잘못했네요. 원래 부모님에 대한 욕을 하는 건 아니죠. 그러니 제가 당신에게 아주 뜻깊은 정보를 드리죠.”
“…정보?”
안다. 지금부터 들을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척 보기에도 수상하고 납치라는 거친 수단을 쓴 상대가 자신을 위해서 저런 말을 하겠는가. 애초에 말투부터 조롱이 잔뜩 묻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아버지에 대한 정보이기 때문에, 스녹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 옛날 대지의 존재가 노해 대지가 물결치니, 여지껏 본 적 없는 재앙이노라.”
“그 노래는….”
“아시죠? 이 광산에 잠들어있다는 ‘광산의 괴물’에 대한 노래입니다. 당신들은 그게 그저 신화일 뿐이고, 노래는 위험한 광산에 어린애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요. 그것들 전부 사실이에요. ‘광산의 괴물’은 정말 존재하고, 노래는 그 ‘광산의 괴물’에 대해 말하고 있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실에 스녹의 눈이 흔들렸다.
“저기 보이시나요?”
사내가 손가락으로 돌무더기 쪽을 가리켰다.
스녹이 그 곳을 보자, 무너져 내린 돌덩이 사이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보였다.
얼핏 보면 다른 돌덩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인공적인 선이 여기저기 보이는 물건이었다.
“봉인석입니다. ‘광산의 괴물’을 봉인하고 있던 것이죠. 당신의 아버지는 갱도를 캐다가 저 봉인석을 건드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광산의 괴물’이 깨어나 버렸죠.”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수업을 시켜주는 자상한 선생님 같기도 혹은 순수한 아이를 꾀는 교활한 악마 같기도 한 목소리가 스녹의 귀로 흘러든다.
“그 여파로 이 일대에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진의 강도는 당연히도 봉인석이 있던 이 갱도가 가장 컸죠. 때문에 이 갱도는 와르르 무너져 버렸답니다. 당신의 아버지를 매장시키면서 말이죠.”
스녹의 머리에 그때가 떠오른다.
갑작스러운 진동. 그리고 이어진 혼란. 주변의 아는 아저씨들이 다급하게 뛰어다니고 성에서 높으신 분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오고 갔다.
그리나 그중에서도 가장 뇌리에 박혀 있던 건 자신을 안고 목놓아 울부짖던 어머니였다.
“화가 나죠? 분노가 치밀죠? 당신의 아버지를 빼앗고, 당신의 어머니가 홀몸으로 무리하게 일을 하다 죽게 만들고, 당신이 광부 일을 싫어하게 만든 그 ‘광산의 괴물’이!”
의식이 천천히 유도된다. 과거의 일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스녹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광산의 괴물. 그 정체 모를 개자식에 대한 분노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어요! 당신의 가정을 송두리째 빼앗은 괴물이 아닙니까!”
사내의 목소리도 스녹의 분노만큼이나 커져갔다. 쩌렁쩌렁 동굴을 울리는 그의 말이 마치 진리처럼 꽂혔다.
“자, 그 밉기 짝이 없는 녀석에게 분노의 심판을 내리죠! 당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뻔뻔하게 이 세상을 쏘다닌 그 녀석에게 당신의 분노를 알려주세요!”
스윽.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분노에 잠긴 스녹이 사내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움찔거렸다.
사내가 내민 손에는 노웸이 잡혀 있었다.
계속 발버둥치다 힘이 떨어진 것일까. 노웸은 사지를 추욱 늘어뜨리고 있었다. 뭔가 공포에 잠긴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어서 하세요. 욕을 해도 좋고 폭력을 써도 좋습니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무, 무슨…소립니까? 노, 노웸은 왜….”
분노가 가라앉고 몸이 싸해졌다. 본능적으로 느낀 진실이 그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하지만 사내는 잔인했다. 아니, 그건 즐기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사내는 떠들었다.
“이 녀석이 바로 당신의 원수! 갱도에 지진을 일으켜 당신의 아버지를 죽인 ‘광산의 괴물’입니다!”
“!!!!”
스녹의 동공이 커졌다.
“그 옛날 이곳에 봉인된 대지의 환수죠. 이름을 노웸이라고 지었죠? 정말로, 자기가 죽인 자의 아들에게 접근해 가족 행세를 하다니. 성질이 못돼 처먹었다니까요. 분명 당신을 비웃고 있었을 게 분명해요!”
쿠! 쿠!
사내의 말을 부정하듯 노웸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내도, 그리고 스녹도.
“자, 이 빌어먹을 놈에게 어서 정의의 철퇴를 가하세요. 뭘 망설이는 겁니까? 당신의 아버지를 죽인 녀석이잖아요? 설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녀석과의 가족 놀이 때문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할 건가요?”
“!!!”
덜덜 떠는 스녹을 보며 사내는 소리없이 웃어댔다.
* * *
턱!
지크는 광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중간에 암살자들의 방해 때문에 상당히 거리가 멀어지긴 했지만 지크의 넓은 감각은 끝까지 암살자들의 꼬리를 놓치지 않았다.
방해랍시고 남았던 암살자들이 시간을 많이 벌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광산 안으로 들어갔군.’
이 시간에 대체 무슨 이유로 광산을 찾은 것일까. 그것도 광부까지 하나 납치해서.
물어볼 게 점점 많아졌다.
‘그 전에 일단 저놈들부터 처리해야지.’
지크는 팔을 늘어뜨렸다. 검 끝이 땅바닥에 닿을락 말락 내려갔다.
터벅! 터벅!
몸에 힘을 쭉 빼고 걸었다.
어느 모로 빈틈투성이다. 습격당할 걱정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 태평한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지크가 광산 입구 즈음에 도착하자 근처에서 어둠이 일렁였다.
푹!
지크가 발치의 그림자에 검을 꽂아 넣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 만약 검이 다가오는 걸 본다고 해도 반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그런 찌르기였다.
암살자가 죽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컥!”
스윽!
작은 단말마와 함께 검은 먹물이 물에 씻겨나가듯, 어둠이 스르르 벗겨지며 암살자가 드러났다.
목을 부여잡은 그는 숨이 끊어져 있었다. 목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들켰다. 그렇게 판단한 다른 암살자들이 바로 지크를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들에게 닥친 무정한 검격은 너무나도 쉽게 그들을 도륙했다.
촤륵!
순식간에 시체로 변한 암살자들의 시체를 뒤로 하고 지크가 검을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냈다.
‘흠, 마치 지옥의 입구 같네.’
저녁에 보는 광산이란 것은 상당히 분위기 있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레이스와 스켈레톤이 튀어나와 왈츠를 출 것 같았다.
‘암살자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남은 놈은 한 놈뿐인가.’
아직 대장 같은 놈을 베지 않았다. 아마도 그놈이 스녹을 끌고 광산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어서 그놈을 찾아서 목적이 뭔지 족쳐봐야지.’
정보는 대장이 가장 많이 알고 있을 터. 이미 스녹의 구출은 두 번째 목적으로 미뤄져 있었다.
물론 구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암살자 놈들의 정체에 더 호기심이 일 뿐이었다.
지크가 광산에 한 걸음 발을 들여놨다.
“응?”
그가 걸음을 멈췄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설마.’
발밑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