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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2화 (42/628)

제42화

한스가 가져온 포션으로 샘은 깔끔하게 회복했다. 그 귀한 포션을 한 병도 아니고 세 병이나 썼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샘은 바로 의식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정신적인 충격도 있으니 적어도 하루, 심하면 며칠은 있다가 깨어날 것이다.

샘을 무사히 집에 데려다준 후, 지크는 몬스터 퇴치사 지점의 입구에 등을 대고 가만히 서 있기 시작했다.

그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지는 뻔했다.

가끔씩 건물에서 나와 불안불안하게 그를 바라보던 폴체누가 말했다.

“이봐. 솔직히 우리는 자네들의 싸움에 관련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치안관도 그 샘이란 사람이 완벽히 치료가 됐으니 드루에 대해 심한 벌을 내리진 않을 거고.”

피해자가 고작해야 광부다. 게다가 도시 안에서 벌어진 사건도 아니니, 치안대가 적극적으로 나설 리 없다.

“하지만 그래도 싸움으로 인해 우리에게 피해를 주면 곤란해. 여기는 중요한 국가 기관이야.”

광부 한 사람의 목숨보다도 이 시설이 더 중요하다. 사람의 목숨이 싼 이 세상에서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지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불만을 내뱉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걱정 마십쇼. 당신이나 지점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해결할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죽이는 것도 좀 곤란해. 그래 봬도 우리가 고용해 온 모험가니.”

“그럼요. 저도 이래봬도 착하게 살려는 사람입니다. 함부로 살생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그리고 지크는 안심하라는 듯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안심하라는 것도 좀.”

폴체누는 어깨를 떨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어쨌든 적어도 우리가 휘말릴 상황만 만들지 말아달라고.”

본심은 그것일 터. 위험하고 복잡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의 심리다.

지크도 폴체누의 그 자기 보호 욕구를 욕하지는 않았다.

“그러죠.”

그저 짤막하게 긍정했다.

하지만 용건이 끝났음에도 무슨 일인지 폴체누는 들어가지 않고 빤히 지크를 쳐다봤다. 다른 용건이 있냐고 지크가 물으려 할 때였다.

“자신은 있나?”

폴체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우리가 고용한 모험가, 용병 중에서도 상당히 실력이 있는 놈이야. 어설픈 실력으로 덤벼들었다가는 역으로 자네가 당할 거야.”

지크는 눈을 깜빡였다. 처음 발견된 기괴한 생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폴체누를 쳐다봤다.

“뭐, 뭐야?”

“…아, 그렇군. 그래. 그랬어.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군요. 너무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어서 당황해 버렸습니다.”

“뭐야, 자네. 설마 자네가 진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은 건가?”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폴체누가 당황했다. 저런 자기 믿음의 화신 같은 인간이라니.

‘아니, 생각해보니 드루도 저런 느낌이잖아? 모험가나 여행자 같은 놈들은 전부 저런 녀석들뿐인가?’

새삼 자신의 집과 직장이 소중해졌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명, 가치관과 가족을 위해서 이 일을 고수하겠다고 폴체누는 굳게 다짐했다.

* * *

몬스터 퇴치는 몇날 며칠을 계속 하는 경우도 흔하다. 때문에 지크는 지부에서 며칠 정도 기다릴 각오는 충분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샘이 폭행을 당한 다음 날. 아침에 출근 할 때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지크를 발견하고 폴체누가 깜짝 놀란 지도 몇 시간이 지났다.

한스가 가져다준 간단한 요기로 끼니를 때운 채 그는 마치 돌처럼 지부 앞에 서 있었다.

슬슬 그림자가 길어진다. 조금만 있으면 파란 하늘이 노랗게 물들 것이다.

반쯤 눈을 감고 있던 지크의 눈이 빛났다. 그의 감각 범위에 무언가가 걸렸다.

아주 보고 싶고 보고 싶던 그런 기척이었다.

‘왔군.’

지크는 벽에서 등을 떼고 팔을 풀었다. 얼마 뒤, 여유롭게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드루였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그 어떤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마치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느긋함마저 느껴졌다.

그는 지크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

“응?”

지크가 말을 걸자 드루가 인상을 찡그리며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지크의 정체를 깨닫고는 조소를 머금었다.

“이게 누구야. 미성숙한 트롤 한 마리에게 쩔쩔 매던 등신 같은 놈의 동료 아니야?”

역시나 고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크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런 반응은 이미 예상했던 바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놈이라고 했었을… 아니, 됐다. 그러고 보니 넌 무척 아픈 놈이었지? 그렇다면 얼마 지나지 않은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그것에 관해서는 내가 잘못했다. 괜히 사람의 약점을 들춰내 버렸어.”

지크가 사과를 한다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게 사과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행위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기운 내라. 아픈 건 죄가 아냐. 앞으로 세상 사는 데 무척이나 힘이 들 수도 있지만 굳세게 살아야 돼. 알았지? 힘내!”

지크이 말이 계속될수록 일그러지던 드루의 얼굴이, 지크가 두 주먹을 꾹 쥐고 격려를 하자 폭발할 듯 붉어졌다.

“…저번에도 생각했다만 역시 너는 한 번 짓밟아야겠군. 아니면 그 잘 돌아가는 혓바닥을 뽑아버리는 것도 좋겠어.”

드루가 검을 뽑자 지크도 마주 검을 뽑아들었다.

“이것 참! 아픈 녀석이랑 싸우는 건 싫은데 말이야!”

살살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곧, 언제 웃었냐는 듯 지크가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말이야. 샘을 두들겨 팼다면서?”

“샘?”

“네가 스녹이란 인간을 제자로 거뒀다가 내팽개치자 항의하러 온 사람.”

“아, 그 쓰레기?”

드루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샘을 모욕하며 히죽 웃었다.

“어쩐지 날 기다리던 낌새더니, 그 쓰레기의 보복으로 온 건가.”

“일단은. 친구거든.”

“친구?”

드루가 크게 웃었다.

“누가 그 등신 같은 놈의 동료 아니랄까 봐 친구란 놈도 모자란 놈만 사귀는군! 아니, 아니지.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어울려. 그래! 패배자면 패배자답게 같이 진흙탕에서 구르는 게 낫지! 혼자가 아니니 얼마나 안도될까! 안 그래?”

“뭐야, 너. 친구의 수준으로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뭐, 그런 생각의 소유자냐?”

“원래 사람은 수준에 맞게 어울리는 법이다! 네놈들을 보면 알 수 있지!”

“뭘 모르네. 하긴, 너 같은 녀석이 알 수 있는 게 아니지.”

지크는 혀를 찼다.

“잘 들어. 평범한 인간들은 비슷비슷한 친구들을 사귀는 게 맞아. 그래야 친구 덕을 보니까. 수준이 높은 사람한테는 쳐내지고 수준이 낮은 사람은 쳐내니까 당연히 비슷한 놈들끼리 모이게 돼. 하지만 말이야. 나 같은 사람은 달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 따위는 지크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나는 친구의 수준을 따지지 않아. 왜? 나 같은 초천재에게는 친구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거든. 그리고 내 친구를 보고 나를 판단하는 어리석고 멍청한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친구? 수준 같은 걸 왜 따져? 내가 어울릴 때 즐거우면 그만이야.”

지크가 검으로 드루를 가리켰다.

“너같이 평범하고 개성 없고 남의 눈치나 보고 친구를 이용해야만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놈은 전혀 모르겠지만.”

“혓바닥 하나만은 잘 돌아가는군.”

“보통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할 훌륭한 말들을 그렇게도 깎아내리지. 그런데 넌 혓바닥도 나한테 이기지 못 하면 뭘로 이길래?”

드루가 이를 갈았다.

“그렇게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어디 한번 증명해 봐!”

탓!

드루가 움직였다.

몸을 좀 숙이고 단순하게 지크에게 일직선으로 파고든다.

단순한 움직임지만 마력으로 강화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속도는 그 단순한 움직임을 파괴적인 돌진으로 바꿨다.

쿵!

드루가 지크의 앞에서 급격하게 멈춰 섰다. 디딘 지면이 ‘으적!’ 하며 소리를 지른다.

관절이 삐걱대며 충격이 발생했다. 그 충격을 드루는 익숙하게 자신의 검에 흘려 넣었다.

‘죽일 생각은 없다만.’

드루는 히죽 웃었다.

‘적어도 팔 하나 정도는 받아가마!’

감히 자신을 조롱하다니. 만약 이곳이 인적이 아예 없는 곳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검로를 녀석의 목으로 향했을 것이다.

자신을 조롱한다는 건 그만큼 커다란 죄였다.

‘만약 출혈과다로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고.’

관대하게 팔 하나로 끝내 준 걸 제가 조치를 제대로 못 해서 뒤진 것뿐이다.

그건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드루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드루의 검이 시시각각 지크의 어깨 부위로 다가선다. 그때까지 지크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말만 앞서는 녀석. 이제야 슬슬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드루의 검이 썩은 고기를 자르듯 지크의 팔을 도려낼 것 같았다.

땅!

“어?”

드루의 검의 궤도가 꺾였다.

‘검면을 튕겼어?’

고작해야 손가락 하나. 지크가 구부린 검지 손가락으로 드루의 검 옆면을 쳐버린 것이다.

대체 어느새 손을 들어 올렸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고작 그 정도의 사소한 행동만으로 거력이 담긴 검의 궤도를 뒤틀어 버렸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러웠다.

‘이게 뭐….’

너무 놀라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다.

옆으로 튕겨나가는 검 때문에 자신의 몸까지 회전을 시작한 걸, 드루는 마치 타인처럼 쳐다봤다.

퍽!

고개가 쳐들렸다. 갑자기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유감.

하나부터 열까지 상황이 따라가지 못한다.

‘뭐지? 대체 뭐야?’

나름 경험이 많은 드루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하나 짐작 가는 게 있긴 했다. 하지만 드루는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쳐맞았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눈앞으로 다가온 지면이 그에게 강제로 현실성을 부여했다.

우당탕!

“크으으윽!”

드루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낙법으로 충격을 줄이지도 못 해 온몸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아픈 건 왼쪽 볼이었다.

“퉷!”

입 안에 걸리는 이물질을 뱉어냈다. 새하얀 덩어리 두 개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치아였다.

입 안으로 고인 피마저 내뱉고는 욱신거리는 볼에 손을 갖다 댔다. 그 짧은 사이에 볼은 이미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 이견 무어…!”

빠진 이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오며 발음을 짓뭉갰다.

“어때? 짜릿하지?”

드루의 뺨을 후려갈긴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지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일어서, 이 새꺄. 고작 한 방 꽂고 그만둘 정도면 시작도 안 했어.”

드루가 급히 일어섰다. 지면에 가만히 쓰러져 있다면 저항도 못 해보고 지크의 검에 난도질당할 것 같았다.

“뮤슨 쇽임슈를 쓴 겨야!”

드루가 벌컥 외쳤다. 발음 때문에 무척 웃기게 들렸지만 드루는 진지했다.

“속임수? 이 새끼 이거 정말로 아픈 놈인가? 아, 하긴. 현실 부정을 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해.”

지금껏 계속 무시해왔던 인간의 공격에 반응조차 못 해보고 쳐맞았다.

그 말인 즉 지크의 실력이 그보다 한참은 위라는 뜻.

하지만 드루 같은 성질 더러운 인간이 그걸 쉽게 인정할 리 없었다.

“여태까지 너보다 약한 놈들만 괴롭히느라 설마 네가 쳐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지? 내가 그 인식을 바꿔줄게. 세상에는 너보다 강한 놈들이 우글거린다는 인식을 싫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그 아픈 머리 안으로 쑤셔 넣어주마. 수업료는 필요 없어. 이번 수강은 특별히 공짜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지크가 먼저 덤벼들었다. 지크의 검이 야생마처럼 일직선으로 내달린다.

드루가 검을 들어 방어했다.

카앙!

“큭!”

전술도 기교도 없는, 오로지 힘만으로 휘두른 검.

속도도 그다지 빠른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힘에 담긴 거력은 드루가 침음을 흘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카앙! 카앙!

지크의 검이 연신 드루에게 쇄도한다.

무성의하게 아무렇게나 휘두른 검 같았지만 그 검은 기가 막히게 드루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드루는 정신없이 물러서며 지크의 검을 쳐냈다.

검의 위력 때문에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다. 잠시만 정신을 흩뜨렸다가는 속절없이 검을 놓칠 것이다.

“여기 비었어.”

툭!

지크가 드루의 발목 부분을 가볍게 걷어찼다.

“억!”

휘청!

몸의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을 노린 절묘한 공격이었다.

균형이 무너지며 드루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 틈을 지크의 무릎이 파고들었다.

쩍!

“컥!”

무릎은 정확히 드루의 명치에 적중했다.

안 그래도 급소인 곳이다. 드루는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가 받은 피해는 숨이 막히는 것만이 아니었다.

으직!

불길한 소리가 가슴에서 울렸다. 끔찍한 고통이 몰아쳤다.

우당탕!

이번엔 몸이 구르지도 않았다. 쓰레기 더미처럼 땅바닥에 처박혔다.

“컥! 커헉!”

드루가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음, 이 감촉이면 두 대 부러졌네.”

뼈를 부러뜨리는 감촉은 많이 느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때운 끼니보다 뼈를 부러뜨린 경험이 많을지도 모른다.

드루가 입고 있는 갑옷 너머로 느껴진 미세한 감촉만으로 지크는 드루의 부상 정도를 알 수 있었다.

“크흑!”

드루가 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격통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다.

“그 잘 돌아가던 혀는 왜 가만히 있으려나? 나 같은 등신에게 계속 독설을 퍼부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자그마치 트롤도 사냥하는 훌륭한 모험가시니까 말이야.”

지크가 조롱했지만 드루는 대답하지 못했다.

“조용해지니까 재미가 없네.”

지크가 검을 휘적대며 걸어온다. 마치 사냥한 쥐를 갖고 노는 고양이 같은 모양새였다.

“그나저나 네 실력 정말로 형편없구나. 태도가 오만하기 짝이 없기에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기대 이하야. 상대가 이렇게 약하면 부수는 재미도 없는데.”

여전히 대꾸는 없다. 드루는 그저 땅에 기댄 검에 의지한 채 간신히 숨을 헐떡이고 있을 뿐이었다.

“뭐, 됐어. 어차피 나도 너와 대등한 승부 같은 걸 바란 게 아니니까.”

지크가 드루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냥 이대로 짓밟혀라.”

“누규 마음댸료!”

순간 드루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포기라는 개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살기와 독기가 복잡하게 이지러진 감정의 격앙뿐이었다.

“쥭어!”

새는 발음으로 목청을 높여 드루가 손을 뻗었다.

손 앞에서 마력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목청 높은 새의 울음 같은 것이 들렸다.

‘걸렸어!’

그건 드루의 비장의 무기였다. 온갖 위험에 노출된 모험가에게는 당연히 위기의 순간에 목숨줄을 구명해 줄 비책이 한 가지씩은 있는 법이다.

어쩌다 발견한 던전에서 얻은 아티팩트. 지금껏 드루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며 그와 그에게 해를 끼치려 했던 자들의 관계를 역전시켰던 물건이다.

드루는 이제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였던 지크가 무릎을 꿇고 수세에 몰렸던 자신이 역으로 상대를 털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크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볼 때까지는.

“무, 뭐…!”

드루가 더듬더듬 신음한다. 지크는 검지와 중지를 까딱였다. 그 사이에는 자그마한 화살 하나가 잡혀 있었다.

“너 같은 놈이 할 일이야 뻔하지. 설마 내가 이 따위 기습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어?”

당한 척해서 상대를 방심시키는 일 정도야 흔해빠진 일이다. 회귀 바로 전에 지크 자신도 그렌 제너드에게 써먹지 않았던가.

‘그때는 당한 척이 아니라 진짜 죽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어쨌든 죽은 척, 당한 척은, 적어도 지크에겐 별 효과가 없는 전술이다.

‘그래도 이놈한테는 상당히 쏠쏠한 전술이었을 테지.’

새파랗게 질린 드루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전술이 왜 실패했는지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크는 그의 이해를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신경은 자신이 잡은 작은 화살로 옮겨갔다.

일반 화살보다 1/3정도 짧은 사이즈다. 하지만 날아온 속도나 날카롭게 갈린 화살촉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살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익!”

정신을 차린 드루가 이를 물고 다시 팔을 지크에게 향했다. 지크는 가볍게 그 팔을 걷어찼다.

휙!

지크의 머리 위로 화살 하나가 또 날아갔다. 지크는 드루의 가슴을 차 넘어뜨리고는 널브러진 팔을 밟았다.

“카아아악!”

갈비뼈가 부러진 가슴에 다시 충격을 받은 데다가 지크가 사납게 짓밟은 팔에서 올라오는 통증도 더해져 드루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티팩튼가?”

지크는 드루의 소매를 발끝으로 슥 걷었다. 손목과 팔꿈치 중간 부분에 가느다란 팔찌가 메어져 있었다.

“소형 화살을 아공간에 저장해 뒀다가 쏘아 보내는 도구인 모양이군.”

지크는 화살촉을 쳐다봤다.

“독 기운까지 첨가해서 말이야.”

녹색의 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촉에는 마법적 기운이 어려 있었다.

지크야 산전수전을 다 겪어가며 이런 암습을 몇 번이나 당한 터라 이런 도구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하지만 드루는 경악했다. 지크가 자신의 비장의 수를 완전히 꿰뚫어본 것이다.

‘뭐, 뭐 이런 놈이…!’

그제야 드루는 눈치챘다. 자신은 건드리면 안 되는 인간을 건드렸다고.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미치지 못할 인간이 눈앞의 인간이라고.

“비장의 수도 박살났으니 이제 어떻게 할래? 조심성이 넘쳐흘러서 비장의 수를 두 개, 세 개 준비해두는 놈들도 있긴 한데, 너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어라? 그럼 이제 완전히 무방비네?”

“크흑!”

드루가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에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가슴의 통증은 겨우 실은 힘마저 도로 빼앗아 버렸다.

탁!

마치 화살을 잡아챘던 것처럼, 지크는 드루의 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아!”

설마 최후의 공격이 맨손에 막힐 줄은 몰랐던 드루가 신음을 흘렸다.

휙!

지크는 그대로 검을 빼앗아 멀리 내동댕이쳤다.

“저항은 끝이냐?”

할 게 있다면 더 해보라는 투다. 실력에서 오는 극도의 여유로움. 하지만 그에 비해 드루의 눈은 암울하게 젖어갔다.

“끝났나 보네.”

사냥감의 송곳니를 뽑고 발톱을 부러뜨렸다. 그럼 남은 건 숨통을 끊고 몸을 해체하는 것뿐.

지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 살려…!”

지금까지의 오만한 기색은 어디로 가고 드루는 창백한 안색으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아, 걱정 마. 널 죽이지는 않을 거야.”

지크는 웃었다. 놀랍게도 그때의 얼굴은 병자를 안심시키는 성자에 비교해도 될 정도로 선량해 보였다. 드루가 무심코 마음을 놓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그 얼굴과 완전히 대비를 이뤘다.

“딱 네가 샘에게 했던 짓만 고스란히 돌려줄 거거든. 죽이다니. 그런 끔찍한 짓은 할 생각이 없어.”

턱!

지크가 드루의 가슴을 밟고 있던 발에 힘을 줬다. 드루가 비명을 질렀지만 지크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았다.

“일단 갈비뼈 네 개부터 시작해볼까?”

그 후로 한동안 지부 앞에는 드루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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