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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40화 (40/628)

제40화

“나 참. 별 개 같은 놈을 다 보겠네.”

지크가 투덜거렸다.

‘이야, 정말 나 성격 좋아졌다. 저런 놈을 그대로 보내고.’

친구인 샘이 동생처럼 아끼는 스녹의 만류와 타이밍 맞게 등장한 트롤 때문에 김이 빠진 상황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사지 몇 개는 부러뜨렸으리라.

“저 둘은 무슨 사이일까요?”

한스가 지크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모험가와 광부. 별로 연관성은 없어 보이는데요.”

“저 스녹이란 녀석이 모험가에 환상을 품고 있었잖냐. 그걸 보면 아마도 모험가로서 이것저것 배우기 위해 아래로 들어간 것일 테지.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고.”

“그럼 잘 된 거군요.”

“글쎄다.”

지크는 부정적으로 말했다.

‘저런 진상 놈이 제자 같은 걸 키울 리가 없지.’

무엇보다 모험가가 제자를 키운다는 그런 재미있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쁜 놈들이 뭔 놈의 제자란 말인가.

‘좋은 말로 구슬려서 좋으면 짐꾼, 나쁘면 고기방패로 쓰겠지. 운 나쁘면 더 안 좋은 일에 쓸 수도 있고.’

다른 인간이라면 ‘제 인생 제가 살겠지’라며 관심을 끊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친구인 샘이 아끼는 게 딱 보이는 스녹이 그 대상이라는 게 개미 눈물만큼 걸렸다.

그래도 대단한 걸 해줄 생각은 없었다.

‘샘한테 언질 정도는 줄까.’

딱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그, 그런데 감사합니다.”

“앙? 뭐가?”

뭘 잘못 먹었는지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한스를 지크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만약 정신이 훼까닥해서 실없는 소리를 내뱉은 거라면 손수 한스의 머리를 두드려 그 치료를 도와줄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제가 등신 소리를 들으니까 화를 내주셨지 않습니까.”

예상과는 다르게 여행 기간 동안 지크가 상당히 잘 대해준데다가 이번에 자신이 욕을 당한 것에 대해 화까지 내주자 한스는 제법 감동을 먹은 상태였다.

지크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그대로 한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따악!

“악!”

한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누가 네 편을 들어줘? 감히 위대한 나의 종을 모욕하는 건 나를 모욕하는 것과 같은 건데, 당연히 화를 내야지. 솔직히 네가 등신인 건 사실이잖아?”

그럼 그렇지. 한스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그 모험가, 강했죠? 트롤을 그렇게 쉽사리 잡다니 말이에요.”

미성숙한 트롤도 간신히 잡았던 한스로서는 드루란 모험가가 까마득히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지크가 반문했다. 마뜩잖은 감정이 잔뜩 실려 있었다.

“누가 강하다고?”

“네? 그야 아까 그 모험가가….”

부스럭! 부스럭!

그때 다시 한번 수풀이 흔들렸다.

“응? 그 사람들이 돌아왔을까요?”

“아니.”

지크가 검을 빼들었다.

“이번엔 몬스터다.”

콰드득!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어기적대며 나타난 건 트롤 다섯 마리였다.

한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에게 트롤 다섯 마리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숫자였다.

그 대단한 모험가처럼 보인 드루조차 트롤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가.

아니, 그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오줌보를 부여잡으며 부리나케 도망갔을 그런 상대다.

챙!

하지만 지크는 달랐다.

‘짜증도 안 풀렸는데 잘 됐네!’

화풀이 할 대상들이 나타났다.

탓!

지크가 지면을 밟고 내달렸다.

쿠어어어어어!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조그마한 인간을 향해 트롤들이 괴성을 질렀다. 앞다투어 지크를 향해 달렸다.

거대한 다섯 마리의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지크가 몽둥이의 곤죽이 되는 상상이 쉽게 떠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후웅!

지크의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롱소드라고는 하나 트롤의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롱소드는 마치 가녀린 나무 막대기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검에 깃든 은은하고도 강렬한 마력의 힘은 롱소드의 크기의 한계를 가뿐히 벗겨버렸다.

서걱! 서걱!

가장 앞서서 달려오던 트롤 두 마리가 말 그대로 두 동강났다.

트롤의 가슴어림에서 피어난 일직선의 은빛 선은 몸체, 팔뚝, 몽둥이까지, 그 영향력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베어냈다.

촤아아악!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동료 트롤들을 덮쳤다.

트롤들이 움찔거렸다.

그것들도 갑자기 동료의 몸이 두 조각나며 그 피를 뒤집어 쓴 경험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크는 몸을 낮춰 흩뿌려지는 피를 피하면서 계속 전진했다.

푹!

가장 가까이 있는 트롤의 배에 검을 찔러넣었다. 인간이라면 치명상이지만 트롤에게는 그저 생채기일 뿐이다.

실제로 찔린 트롤도 아파서 인상을 찡그릴 뿐, 뭔가 대단한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우웅!

지크의 몸에 있는 막대한 마력이 검을 통해 트롤의 몸으로 과격하게 주입되기 시작했다.

불룩!

마치 물을 잔뜩 넣어버린 돼지의 방광처럼, 트롤의 몸이 순식간에 부풀었다.

잠시 후.

퍼어엉!

트롤의 몸이 터져나갔다. 살점, 피, 뼈, 내장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척이나 끔찍한 광경. 더욱 끔찍한 것은 박살나 흩어지는 트롤의 잔해들 중 지크의 마력을 잔뜩 머금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퍽! 퍽! 퍽! 퍽!

나머지 두 트롤의 몸에 그것들이 틀어박히기 시작한다.

트롤의 재생력이 계속해서 발동했지만 노도처럼 몰아치는 잔해의 폭격은 그 재생력을 웃돌기 충분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두 트롤은 온몸에 커다란 구멍들이 뚫린 채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흥!”

눈 깜짝할 새에 트롤 다섯 마리를 말 그대로 도살해버린 지크는 사방에 널린 트롤의 피와 잔해들을 뒤로 했다.

놀랍게도 그의 몸엔 상처는커녕 피 한 방울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검을 집어넣은 지크는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한스를 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가자.”

“네, 넵!”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앞서가는 지크의 등을 보면서 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드루라는 모험가도 강하긴 했지만, 지크 님은 정말로 차원이 다르구나.’

저 무서운 트롤을 마치 길가의 쓰레기를 치우듯 날려버렸다.

그 막강하기 그지없는 힘에 한스는 전율을 느꼈다.

* * *

이루스 광산의 밤은 스산하다. 밝았을 때는 광부들의 힘찬 곡괭이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당장이라도 음울한 귀곡성이 갱도 안으로부터 들려나올 것 같았다.

그런, 다른 사람들은 발조차 붙이지 않을 것 같은 한밤 중 갱도에 움직이는 인영이 있었다.

어슴푸레한 등불이 갱도 안을 비춘다. 등불을 들고 앞장서 걷는 스녹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깊은 밤에 다른 동료들 없이 갱도에 들어오는 건 스녹도 처음이었다.

“저, 저기 정말로 괜찮을까요?”

쭈뼛쭈뼛 자신의 뒤에 따라오는 자, 드루에게 묻는다.

“뭐가 말이지?”

“저녁에 마음대로 광산에 들어가는 건 위험….”

“내가 허락을 받았다고 했을 텐데?”

“그, 그렇죠.”

스녹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뭐야. 설마 너 내 말을 못 믿는 거냐?”

“아, 아뇨! 믿죠! 믿습니다!”

바로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 드루는 못마땅한 눈으로 스녹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불안한 건 안다. 하지만 모험가란 건 언제 위험에 빠질지 몰라.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 내가 널 몬스터 사냥에 매일 데리고 다니는 것도 그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다. 모험가란 건 소설같이 낭만만 있는 일이 아니니까.”

스녹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샘도 그렇게 말했고, 모험가는 아니라지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는 지크도 그렇게 말을 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야. 나는 너를 위해서 이런 경험을 시켜주는 거다. 웬만한 경험은 모두 해보는 게 좋으니까. 근처에 이런 광산이 있다면 이용을 해야지. 간간이 발견되는 던전 중엔 이런 동굴 형태가 많으니까. 이런 것도 경험이야.”

“그렇군요.”

모험가의 위험함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대비까지 갖춰준다. 잠깐 고개를 들던 의심이 다시 슬슬 내려갔다. 게다가 던전이라니. 모험가의 꿈의 무대 중 하나 아니던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스녹은 멈출 수 없었다.

“자, 그럼 다시 가 보자고.”

“네!”

방금 전보다 조금은 더 활기차게 스녹은 갱도를 걸었다. 그런 스녹의 등을, 드루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그들은 갱도를 계속 걸었다. 지리는 스녹이 알고 있었기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마력은 계속해서 개방하고 있지?”

드루가 물었다.

드루가 스녹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가르쳐준 것이 마력을 개방하는 일이다.

“네. 오늘 아침에도 계속 마력을 자극했어요.”

“마력을 활성화하면서 걸어봐라.”

“네.”

스녹은 마력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막 마력을 다루게 된 터라 그 양은 무척이나 미약하다.

거기에 제대로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툭, 툭 끊기기 일쑤였다.

“우왁!”

마력을 흐르게 하는데 정신을 집중하던 터라 돌부리가 있는지도 몰랐다. 스녹은 철푸덕 바닥을 굴렀다.

“으으!”

무릎이 까져 피가 흘렀다. 하지만 드루는 걱정의 말은커녕 계속 걸으라 명령했다.

스녹은 주춤주춤 일어나 다시 걸었다. 그리고 다시 넘어졌다. 그 일이 반복됐다.

얼마 정도 걸었을 때, 스녹의 몸은 멍과 생채기투성이로 변했다.

툭!

“윽!”

또다시 돌부리에 걸린 걸, 이번엔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던 스녹의 눈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앞에 새로운 갱도 하나가 나타나 있었다.

“뭐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녹은 황급히 대답하고 몸을 세웠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새로 나타난 갱도에는 철저하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마치 터부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이쪽은 가지 않나?”

드루가 갱도를 보며 물었다. 스녹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하지만 곧 태연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붕괴된 곳입니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않는 게 좋아요. 어차피 들어가봤자 붕괴된 잔해만 보일 거고요.”

“흐응, 그래?”

드루도 더 이상 묻진 않았다. 하지만 스녹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한동안 드루의 시선은 붕괴됐다는 갱도에 머물렀다.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으악!”

다시 한번 발을 헛디뎠다. 한심하게 여기는 듯 내쉬는 드루의 한숨 소리가 스녹의 귀를 찔렀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몸을 무시하고 스녹이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쿠우.

흠칫!

근처에서 들려오는 낯선 울음소리에 몸이 얼어붙었다.

급히 떨어뜨린 등불을 잡고 소리가 들린 곳을 비췄다. 작은 그림자가 갱도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쿠우! 쿠우!

뾰족하게 튀어나온 코가 스녹 쪽을 향해 킁킁거린다.

“뭐야. 두더지였잖아.”

스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 두더지가 신기했다. 여타의 약한 동물이 그러듯 보통 두더지는 인기척이 나면 바로 도망친다. 하지만 이 두더지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스녹의 발목 어림에 코를 묻고 계속 냄새를 맡았다.

쿠우!

녀석이 스녹을 보며 울어댔다. 스녹도 두더지에게 관심이 갔다.

하지만 드루는 스녹의 관심이 계속 이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뭐하냐. 빨리 걸어라.”

“네!”

스녹이 허둥지둥 걸었다.

뚜벅! 뚜벅!

타탁! 타탁!

스녹의 걸음 소리에 맞춰 작은 동물의 가벼운 발소리가 울린다.

스녹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두더지가 스녹의 옆을 따라오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맞추려는 듯 고개를 들어 그 작은 눈으로 스녹을 바라본 채 쫄래쫄래 따라오는 모습이 귀여웠다.

툭!

스녹이 두더지를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두더지가 조금 밀려났다. 움찔움찔거리더니 다시 스녹에게 도도도 달려왔다.

다시 툭 밀었다. 두더지가 다시 돌아왔다. 다시 밀고 다시 돌아오고.

그 작은 장난에 스녹의 정신이 잠시 팔렸다.

“뭐 하고 있지?”

싸늘한 음성이 귓가에 꽂힌다.

‘훈련 중이었지!’

“죄, 죄송합니다! 계속하겠습니다!”

다시 마력을 끌어올려 돌린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더 이상 두더지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쿠우.

하지만 두더지는 계속해서 스녹을 따라다녔다. 발길에 채일 위험도 모르는지 스녹의 발밑에서 알짱거렸다.

그 모습을 뒤에 있던 드루는 의미심장하게 쳐다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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