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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38화 (38/628)

제38화

“여기 맥주 두 잔과 토끼 구이 두 개!”

의자에 거칠게 걸터앉으며 지크가 크게 외쳤다. 한스가 얼른 지크의 맞은편에 앉았다.

“힘들면 숙소에서 쉬어도 돼.”

지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스가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훈련을 끝내고 마시는 한 잔은 요새 한스에게 유일한 낙이었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산에서의 노숙도, 몬스터와의 전투도 참아냈다. 아무리 지크가 눈치를 준다 해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크는 낄낄거렸다. 주문이 나오기 전 몸을 반쯤 돌리고 등받이에 팔을 올린 채 주점을 둘러봤다.

“어라?”

한쪽에서 왁자지껄 커다란 목소리가 들린다.

꽤 대규모의 무리가 식탁 몇 개를 겹쳐 놓고는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웃으며 흘린 눈물을 닦다 지크의 시선을 눈치챘다.

“지크!”

“샘이로군.”

지크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오오, 샘의 친군가?”

“예전에 광산 입구에서 만난 그 청년 아니야?”

“아, 몬스터를 잡아 우리 안전을 책임져주는 사람이군.”

“뭐! 그런 청년을 가만히 둘 순 없잖아!”

“물론이지! 광산 사나이로서 술 한 잔 대접하지 않으면 불알을 떼버려야지!”

그렇게 광부들이 자기들끼리 자기완결을 하더니 지크의 테이블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지크의 테이블을 자기들 쪽으로 강제로 붙였다.

“어? 어어?”

어리바리하게 한스가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였다. 그에 비해 지크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순순히 광부들의 움직임에 맞춰줬다.

그리고….

“위하여!”

“위하여!”

십 수 개의 술잔이 가운데서 부딪쳤다.

지크는 그대로 맥주를 목구멍 안으로 들이부었다. 맥주잔의 각도가 계속해서 기울었지만 지크는 끊지 않았다.

곧 미지근한 맥주가 잔 안에서 모두 사라졌다.

“푸하!”

시원한 탄성을 터뜨리며 지크가 맥주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놨다. 그 모습을 보고 광부들이 껄껄 웃었다.

“이야,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겼으면서 술 먹는 건 완전 남자군!”

“누구 친군데요! 내가 아무나 사귀는 줄 압니까?”

샘이 지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소리쳤다.

소란스럽고 천박한, 그러나 생기가 넘치는 그 광경을 한스는 아연하게 쳐다봤다.

깔깔거리며 맥주잔을 들고 소리 높여 노래하는 지크는 완전히 광부들 속에 섞여 있었다.

그 누가 거기 끼어 있는 사내가 얼마 전까지 스틸월 백작가의 정통 계승자라고 생각하겠는가.

“그에 비해 이쪽 친구는 잘 못 노네?”

“네, 넵?”

광부 한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자 한스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자신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었다.

“완전히 샌님인데? 샘 친구와 어떤 관계야?”

“내 종이야.”

지크가 대답했다.

“이해해 줘. 곱상하게만 자라온 놈이라 분위기 맞출 줄을 모르거든.”

귀족이었던 지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정작 지크는 광부 무리에 잘 섞여 놀고 있으니 한스는 할 말이 없었다.

“어라? 그냥 동료인 줄 알았더니 종이었어? 혹시 샘의 친구는 귀하신 분인가?”

그렇게 말을 했지만, 말을 한 광부도 설마 진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말 속에 장난기가 다분하게 섞여 있었다.

지크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후후후, 그럴지도. 어느 지방 높으신 분의 아들이 마음이 상해 뛰쳐나온 걸 수도 있지 않겠어?”

“어이! 그 높으신 분이 귀족은 아니겠지? 귀족 사칭죄는 사형이야.”

샘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주변 광부들도 웃어재꼈다.

지크마저 웃었지만, 진실을 아는 한스만은 웃을 수 없었다.

한동안 그 상태로 술자리가 계속 됐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많은 양의 맥주가 사라졌다.

거기에 지크가 통 크게 한 턱 낸다고 하는 바람에 술자리의 열기는 몇 배로 증폭됐다.

전부 다 알딸딸한 기분을 한 채 떠들어댔다.

그때 지크의 곁에 누군가 조심조심 다가왔다.

“저….”

“응?”

지크가 말을 건 사람을 쳐다봤다. 낯이 익은 자였다.

‘분명 모험가를 동경하고 있던 광부였지?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뵀었는데….”

“네, 기억합니다. 스녹 씨라고 하셨죠.”

지크가 기억하자 스녹이 반색했다.

“네, 네! 스녹이라고 합니다! 기억하고 계셨네요!”

“분명 여행에 대해서 듣고 싶다고 했었죠?”

“네! 저는 모험가가 꿈이거든요! 너른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며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곳을 탐험하고 훌륭한 동료를 만나고 고대의 유적을 찾아내는…!”

스녹이 침을 한 사발은 튀길 기세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내뱉었다.

썩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책 같은 낭만과 모험이 가득한, 그리고 현실성이라곤 1도 없어 보이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스녹의 기대어린 눈은 지크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녹의 말을 받은 건 지크의 답변이 아닌, 한스의 질문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겁니까? 여행은 그렇게 낭만적인 게 아니에요.”

억지로 여행을 떠나게 된 후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한스의 음성에는 낮은 울분이 섞여 있었다.

여행에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던, 철모르던 예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더 울화통이 터지는지도 몰랐다.

스녹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주변의 눈치를 봤다.

주변의 사람들이 제각각 떠들며 이쪽에 관심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용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광부가 싫습니다.”

조용조용 말하지만 스녹의 어조에는 어떤 감정이 섞여 있었다.

“빛도 없는 곳에서 계속 곡괭이질만 해야 하는 생활이 싫어요. 답답한 공기에 주변에서는 계속 먼지가 날려요. 허리를 펴 위를 쳐다봐도 보이는 건 새까맣게 보이는 암벽층 뿐. 문득 주변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녹이 음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파고 있는 갱도가 마치 내 무덤 같다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스녹은 등에서 소름이 돋았다.

“또 그 소리냐?”

불쾌해하는 감정을 실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싸한 취기가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술에 잡아먹힌 발음은 아니다.

“…샘.”

스녹이 어깨를 움츠리며 말을 걸자, 샘을 돌아봤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던지, 샘은 마치 사고를 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네가 무슨 놈의 모험가를 한다는 거야.”

“내, 내가 뭘 하든 상관없잖아!”

스녹이 반항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샘의 눈치를 슬쩍슬쩍 봤다.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저씨랑 아주머니의 부탁만 아니었으면 네가 뭔 짓을 하든 상관 안 했을 텐데.”

샘이 스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리저리 돌렸다.

“아, 하지 마!”

스녹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쳤다. 하지만 억센 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키도 샘이 스녹보다 거진 10cm이상은 큰데다가 완력도 더 셌다.

‘형제 같은걸.’

지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철없는 동생과 그걸 말리는 형 같은 모습이다.

말을 들어보면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없는 것 같지만 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지내온 모양이었다.

“제 여행 얘기를 듣고 싶다고요?”

지크가 입을 열었다.

“어이! 지크!”

샘이 당황하며 지크의 말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반대로 스녹은 눈을 반짝였다.

“네!”

“그 정도야 충분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걸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꿈을 존중하는 사람이니까요.”

지크의 눈이 휘었다.

겉모습만 보면 아주 재연까지 하면서 친절히 설명을 해 줄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왜일까. 그 모습을 보던 샘의 피부에 이유 모를 한기가 스몄다.

“단, 그에 대한 책임도 전부 본인이 져야 하지만요.”

“…책임?”

“그래요, 책임.”

무엇보다 무거운 그 두 글자를, 지크는 조금 안색이 굳은 스녹에게 설명했다.

“바깥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다운 풍경, 푸른 하늘, 그리고 자유. 운이 좋다면 도적이나 몬스터에게 습격 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은인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죠. 그 와중에 아름다운 여인과의 만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낭만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력이 있을 때죠. 바깥은 자유, 낭만과 더불어 위험도 득시글거리니까요. 조금 잔인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힘이 있다면 오히려 영웅이 되기에 적합한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힘이 있어보이진 않군요.”

스녹의 팔은 근육으로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동으로 만들어진 근육. 전투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육만으로는 그가 꿈꾸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제가 당신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습니다. 바깥에서의 모험 이야기? 얼마든지 해줄 수 있죠. 그게 뭐 힘들다고요. 그 때문에 당신이 모험가가 된답시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있습니다만, 그거야 제 알 바 아니죠. 그리고 당신이 이름 모를 산길에서 몬스터에 죽어 한 끼 식사거리가 된다 해도 알 바 아니고요. 그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뿐이니까요.”

지크는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크를 따라 웃는 자는 없었다.

지크와 얘기를 하던 스녹도, 스녹을 말리던 샘도, 어느새 떠드는 걸 멈추고 지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다른 자들도.

“자, 그럼 이제 제 여행 이야기를 해 볼까요? 걱정 말아요. 아무리 여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당신이 흥미를 가질 이야기는 몇 있으니까요.”

지크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몸을 바로 했다. 하지만 그를 샘이 막아섰다.

“이제 됐어, 지크.”

그는 스녹에게 다가갔다. 엄격한 시선이 스녹을 향했다.

“저 봐. 저게 진짜 도시 밖을 다니는 여행자가 하는 소리야. 내가 누누이 말했지? 네가 생각하는 모험가는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스녹이 고개를 숙였다.

누가 봐도 풀이 죽은 표정. 샘이 엄격한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동생을 어르는 형처럼, 조용조용 달래기 시작했다.

“이래봬도 우리가 하는 일은 왕국에서도 중요한 일이야. 다른 일에 꿀리는 일이 아니라고. 수입도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풍족하고. 네 아버지도 광산 일을 하셨잖아. 그러니까 너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싫어.”

약하고 약해 사람들이 간신히 들을 수 있는, 그러나 그럼에도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녹, 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도시 밖으로 나갈 거야. 계속해서 광부 일이라니 죽어도 싫어.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탕!

스녹이 탁자를 거칠게 치며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구르며 큰 소리를 냈다. 그는 주점을 뛰쳐나갔다.

“어이, 스녹!”

샘이 불렀지만 스녹을 막을 수는 없었다. 주점의 문이 삐걱이며 돌아오지 않는 스녹의 대답을 대신했다.

“저 녀석, 정말!”

당장이라도 쫓아나갈 것처럼 샘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포기했는지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상당히 고집이 있군. 보통은 사실을 알면 포기를 하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만 삭일 뿐 저런 식으로 반발하진 않는데.”

“미안하네. 네가 그렇게 충고를 해줬는데도 저 모양이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야. 저 사람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난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냉정하네.”

샘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어쩌다 의기투합했지만 그가 아는 지크란 존재는 간간이 이렇게 냉정한 말을 내뱉곤 했다.

‘모험가, 아니 여행자의 특성일까.’

그렇다면 더더욱 스녹을 헛된 꿈에 매달리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약간 스녹을 변호해주고 싶기도 했다.

“저 녀석은 사실….”

“거기까지 해, 샘.”

지크가 말을 끊었다.

“저 스녹이란 사람의 사정을 안다고 해도 내 생각이나 대응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말할 필요 없어. 애초에 흥미도 없고.”

“…여행자는 전부 너 같아?”

“글쎄다. 그거에도 별로 흥미가 없어서 모르겠어. 뭐, 그래도 전부 똑같진 않지 않겠냐. 광부만 봐도 벌써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두 명을 봤는데.”

“그건 그렇네.”

같은 광부이면서도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자신과 스녹. 그것처럼 여행자도 전부 같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 마라. 너는 친구니까. 죄를 지어 처단당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디서 억울하게 맞고 오기라도 하면 내가 복수해줄게.”

“그거 고맙네.”

샘은 피식 웃으며 지크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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