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지크와 한스는 산길을 헤치며 내려왔다. 당연히 썰매는 한스가 끌고 있었다.
수풀과 나무에 걸려 끈다기보다는 거의 반쯤은 들어야 했다.
오크 사체의 무게가 합쳐져 썰매는 상당히 무거웠다. 한계에 달한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마력은 당장이라도 메마를 것 같다.
그러나 한스는 귀환길이 기쁘기만 했다.
“오늘은 어땠냐?”
가로막는 키 작은 나무를 통째로 베어버리며 지크가 한스에게 물었다. 언제나 하는 자기반성의 시작이었다.
썰매를 끌랴, 오늘의 일을 생각하랴 복잡했지만 항상 하던 일이라 한스도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은 나름 잘한 것 같습니다.”
“그럼 합격이다?”
“아, 아뇨!”
한스는 급히 부정했다.
“첫 번째 녀석과 싸울 때 도끼의 힘을 제대로 흘리지 못했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한동안 손목이 아려서 검을 휘두르는데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녀석과 싸울 때 간격을 제대로 재지 못했습니다. 반 걸음을 더 들어가서 도끼질에 두 동강이 날 뻔했습니다.”
“그리고?”
한스는 계속해서 전투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결국 기죽어 대답했다.
잠시 지크는 말이 없었다. 한스가 힐끔힐끔 지크의 눈치를 봤다.
“뭐, 여러 가지 더 있지만, 일단은 합격이다. 큰 건 다 알아챈 것 같으니까.”
한스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오늘 추가 훈련은 없는 겁니까?”
“거 참, 훈련을 왜 그렇게 싫어하냐? 별로 힘든 훈련도 아닌데.”
“…….”
아무 말도,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스는 입술에 힘을 꽉 줬다.
“이 관대한 주인께서 네 소원을 이뤄주려는 거라니까? 그림책에서 나온 것 같은 영웅이 되고 싶다며. 그러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나한테 훈련 받는 거야.”
한스는 술김에 어렸을 적 -솔직히 최근까지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갖고 있던 꿈을 털어놓은 걸 후회했다.
“영웅이 되려면 일단 힘이 있어야 돼. 그래야 악당 놈들 쥐어 팬 다음에 그 위에서 기고만장하게 웃을 수 있지.”
지크는 자기 안에 있는 영웅이란 족속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한스의 표정이 불만스러운 게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은 힘이다. 영웅이 되든 악당이 되든 정하는 건 그다음이지. 내가 시킨 훈련을 하면 넌 적어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다.”
한스는 그 말이 과장됐다고 여겼다.
지크가 강하고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지크의 말이 뚜렷한 경험에 의한, 대단히 신빙성이 높은 말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물론 네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초천재인 나를 추월할 순 없겠지만.”
오늘도 결국 자기 자랑으로 끝난다. 한스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걷기를 얼마.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던 나무와 수풀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온 건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단단한 회색 바닥이었다.
“벌써 여기까지 왔나?”
지크가 중얼거렸다.
나무와 수풀이 사라졌다지만 그들이 있는 곳의 고도는 아직 높았다.
높게 솟아오른 산에서도 암반으로 이루어진 곳이 바로 그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스울의 존재의의인 이루스 광산이 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 아래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광부들이었다. 오늘의 일을 모두 끝낸 모양이었다.
“어라? 지크 아니야?”
광부들 중 한 명이 지크에게 아는 척을 했다. 온몸에 묻은 흙먼지와 힘줄이 도드라진 팔뚝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여, 샘!”
지크가 느긋하게 손을 들었다. 샘이란 사내가 곡괭이를 어깨에 걸치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눈이 한스가 끌고 있는 썰매, 정확히 말해서 썰매에 쌓여있는 오크들에게 쏠렸다.
“오늘도 열심히 일한 모양이네? 부지런한걸?”
“설마 광부들만 할까.”
둘은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해대며 낄낄거렸다.
그 모습을 한스는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가 알기로 저 샘이란 자는 근래에 지크가 사귄 친구다.
지크는 분명 귀족 출신이다. 그것도 고위 귀족인 변경백의 후계자였다.
물론 가문의 대다수는 그가 백작위를 잇는 걸 반대했었지만 그래도 귀족은 귀족이다. 당연히 샘 같은 광부와는 그 신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지크는 샘 같은 자와 어울리는 걸 전혀 꺼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신기한 분이란 말이야.’
한스는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지크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늘은 꽤 많이 잡았는걸? 어디서 잡았어?”
“여기서 우리 걸음으로 한 반나절 정도 거리쯤일까?”
샘의 얼굴이 굳었다. 아닌 척하지만 귀를 쫑긋 세워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광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나절?”
“그래. 그래도 우리는 마력을 사용해 다니니까 너보다 걸음이 빨라. 험한 길에서도 잘 움직이고. 네 속도라면 적어도 한나절에서 한나절 반 정도는 걸릴 걸?”
“젠장! 그래도 충분히 가까워.”
샘이 다시 썰매를 봤다.
“거기에 오크잖아! 고블린은 몰라도 난 오크는 무리야!”
“나도 무리야.”
“우리가 오크를 어떻게 이겨?”
샘의 말에 광부들도 한마디씩을 덧붙였다.
그들의 일터인 이루스 광산은 이 근처에 있다. 그런데 지크는 이곳에서 한나절 반 거리에까지 몬스터가 진출해 있다고 했다. 그것도 고블린 정도의 약한 몬스터가 아닌 오크가.
“다음 토벌전은 언제지?”
“다음 달.”
“시기를 조금 당기면 안 되나?”
“그걸 우리가 어떻게 정해. 높으신 분들이 정하겠지. 우리가 왈가왈부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그래도 뭔가 수는 내야지. 벌써 몬스터가 이 근처에서까지 발견됐다는 건 심각한 문제야.”
“예전에 이런 경우는 어떻게 처리했지?”
광부들이 심각하게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샘도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젠장! 안 그래도 요새 광산이 뒤숭숭한데!”
“무슨 일 있어?”
지크가 물었다.
“아침에 광산에 들어가 보면 보관해뒀던 물건들이 헤집어져 있거나 쓰러져 있어.”
“착각이나 짐승의 짓이겠지.”
“일단 착각은 아니야. 몇 번이고 확인해봤어. 그래서 우리도 짐승의 짓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몬스터가 예전보다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사실이거든.”
“몬스터가 가까이 다가왔다고는 하지만 광산 근처까지 얼쩡거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을 거야.”
“그럼 다행이고. 역시 짐승의 짓이겠네. 아니면 광산의 괴물의 짓이거나.”
“광산의 괴물?”
“스울에 전해져 내려오는 케케묵은 옛날이야기야.”
그러며 샘은 뒤를 쳐다봤다. 그의 동료들이 아직도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밀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이거 꽤 심각한 사안이라 나도 토론에 좀 끼어야겠거든. 아, 정보는 고마워.”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
“너무 비싼 거만 아니면.”
샘이 허둥지둥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꽤 심각한 일인가 보네요.”
지크의 명령에 그저 오크를 잡기만 한 한스는 자기가 잡은 오크가 저렇게 중대한 사안으로 비화될 줄은 몰랐다.
이제 막 경험을 쌓아가며 목숨을 걸고 오크를 상대하는 한스에게 저런 사안까지 생각하는 건 무리였다.
“누구나 각자의 고민이 있는 법이지.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자, 다시 이동하자.”
지크의 말에 한스가 다시 썰매의 손잡이를 잡았다.
“저….”
망설이듯 우물쭈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크와 한스가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광부 한 명이 서 있었다. 차림새는 방금 본 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몸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얼굴은 꽤 앳돼보였다. 지크보다 몇 살 어린 것 같았다.
“모험가신가요?”
모험가. 낭만 섞인 단어처럼 들린다. 미지에 싸인 던전을 탐험하고 위험한 용을 토벌하며 아름다운 공주님을 구하는, 동화책 속의 주인공.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 속 이야기.
현실 속 모험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일확천금을 찾아 떠도는 도박사이자 양아치에 가까웠다.
소설 속처럼 정의롭기는커녕, 그 환경 때문에 금전적 부족 속에 있는 경우가 많아 도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랬기에 모험가라는 사람들은 그리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크와 한스에게 모험가인지 묻는 광부는, 아무래도 소설 속 상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세상을 정처없이 떠도는 지크와 한스지만 그래도 모험가랑은 거리가 있었다.
“세상을 여행하고 계시다던데….”
사내가 슬쩍 광부들이 토론하고 있는 곳을 보았다. 시선은 샘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아! 아직 자기소개를 안했네요. 전 스녹이라고 합니다.”
“지크입니다.”
“혹시 하신 여행에 대해서 들을 수 있을까요?”
동경하는 자 특유의 눈빛을 빛내며 그가 물어온다. 하지만 그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어이, 스녹! 뭐 하냐! 이제 가야지!”
“아, 난 이분에게 뭘 좀 듣고…!”
“헛소리 말고 따라와! 그 사람들도 자기 할 일 해야지! 해도 넘어가는데 왜 사람을 괴롭히고 그래!”
샘이 크게 소리쳤다.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스녹은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물러났다.
“다음에 만나면 여행 이야기를 꼭 좀 들었으면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스녹은 급히 광부들 사이로 섞였다. 광부들은 계속해서 의견을 교환하며 산을 내려갔다.
멀어진 광부 무리를 보며 지크가 한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리도 가자.”
한스가 썰매 손잡이를 잡았다.
* * *
한동안 지크와 한스는 스울에 머물며 훈련을 계속했다. 한스의 실력은 부쩍부쩍 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경악할 만한 속도였다. 그러나 그런 놀라운 한스의 발전 속도도 지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우우웅!
순환하는 마력이 부드럽다. 정도 이상의 마력을 흘릴 때마다 삐걱이던 몸도 끄떡없다.
이번엔 마력을 멈췄다가 급격하게 최대로 일으켜봤다.
움찔!
지크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는 마력을 멈췄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어.’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터다.
‘그래도 늦진 않겠군.’
점점 이 스울에 참사가 들이닥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 전까지는 준비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푸슉!
지크가 그렇게 생각할 즈음, 오늘도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던 한스가 오크를 토막냈다.
지크가 자신의 힘에 거의 익숙해진 것과 같이, 한스의 몬스터 사냥도 굉장히 숙련돼 있었다.
날도 슬슬 저물어간다. 지크는 오크의 사체를 수레에 싣는 한스를 보며 외쳤다.
“가자!”
둘은 산을 내려가 몬스터 퇴치 사업 지점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언제나 몬스터의 사체가 들락날락하는 곳을 도시 가까운 곳에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 오늘도 왔군.”
우락부락한, 산적 같은 이미지의 중년인이 둘을 반겼다. 이 지점의 지점장인 폴체누라는 자였다.
“오늘은 몇 마리나 잡았나?”
“오크 여섯에 고블린 셋이요.”
지크가 대답했다. 폴체누가 인상을 찡그렸다.
“빌어먹을! 점점 늘어나고 있군. 잡은 거리는 어땠어?”
“평범한 사람 걸음으로 대충 한나절 거리?”
그 정도면 정말 코앞이다. 폴체누는 고개를 저었다.
“끄응! 역시 그 인간들을 부르길 잘 했군.”
“그 인간들?”
“그래. 이번에 실력 있는 모험가나 용병들을 고용했어. 몬스터 토벌은 다음 달에나 시작할 텐데 몬스터가 벌써 코앞까지 내려왔다며. 광산 일을 쉬게 할 수도 없으니 자체적으로 해결을 해야지.”
그때 누군가 지점으로 들어 왔다.
“그중 한 명이다.”
폴체누가 턱짓을 했다.
단단한 무장을 한 사내 한 명이 입구 근처에 서 있었다. 삐딱한 자세와 건들거리는 본새가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인상은 아니었다.
“여, 드루! 이제 왔나?”
폴체누가 손을 들어 반겼다. 하지만 사내, 울존 드루는 고개만 까딱였다.
누가 봐도 무례한 모습. 하지만 폴체누는 어깨만 으쓱였다. 이 바닥에 성질 더러운 놈들은 널렸다.
‘뭐, 저 녀석은 그중에서도 더 더럽지만.’
물론 폴체누는 현명하게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늘은 많이 잡았나?”
드루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작은 상자였다.
나무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 상자에는 기묘한 문양들이 표면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
상자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땅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묵직한 무게음. 작은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 치고는 무척이나 크다. 그러나 떨어진 물체의 부피를 보면 이해가 갔다.
그것들은 어떻게 그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커다랬다.
“아티팩트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한스에게 지크가 말했다.
“저게 말입니까?”
“보아하니 부피, 무게 상관없이 물건들을 수납하는 능력을 가진 물건 같군. 아티팩트 중에서는 그나마 흔한 거야. 물론 그렇다고 그 희소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한스가 상자에서 나온 것과 상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런 것도 물건으로 취급합니까?”
상자에서 나온 것들은 몬스터, 정확히는 몬스터의 사체였다.
오크와 고블린 같은 몬스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중형 몬스터인 트롤의 사체까지 끼어 있었다. 사체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
“사체도 충분히 물건이지. 살아있을 때나 생명체지 죽으면 그냥 고깃덩이 아니냐. 인간의 시체도 마찬가지고.”
한스가 정말로 싫어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굉장하군.”
폴체누가 몬스터들의 사체를 살피며 감탄했다. 하지만 그의 지위는 그저 감탄만 내뱉고 끝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몬스터들은 어디 있었나? 특히 트롤이 나온 거리는 얼마 정도 되지? 한 달 안에 이 도시나 광산 근처까지 진출할 것 같아?”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고블린, 오크 같은 소형 몬스터와 트롤 같은 중형 몬스터는 그 힘과 위험도가 궤를 달리 한다.
도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빠삭하게 파악을 해 놓아야 한다.
그러나 드루는 귀찮다는 듯 폴체누를 한 번 흘끗 쳐다보더니 등을 돌렸다.
“액수 파악해서 저녁까지 준비해 놔.”
그리고 뚜벅뚜벅 지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 어? 이봐! 이봐, 드루!”
폴체누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지만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지점을 나갔다.
“…뭐 저런 사람이 있답니까?”
“왜?”
어처구니없어 하는 한스에 비해 지크는 시큰둥했다.
“아니, 태도가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뭘 그 정도로 흥분을 하냐. 저 정도는 귀여운 편이지.”
자기 말에 집중 안 했다고 척추를 뽑거나, 자기를 노려봤다고 눈을 도려내거나,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목을 날려버리는 놈들에 비하면 녀석의 태도는 아이의 투정과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당한 것도 아닌데 열 낼 필요 없잖아. 착한 일을 위해 쳐죽여야 할 정도의 죄를 지은 것 같지도 않고.”
“만약 저 사람이 지크 님에게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면 어쩌실 겁니까?”
지크의 ‘내가 당한 것도 아닌데’라는 말에 문득 든 생각을 한스가 물었다.
“대가리를 깨버려야지. 당연한 거 아냐?”
역시 지크는 지크였다.
“아니, 그거 착하게 사는 게 아닌가? 아니야. 보통 사람한테 시비를 걸면 대가리 깨질 각오 정도는 하고 그러는 거잖아. 음, 그렇다면 난 무죄가 확실해. 정당방위란 거지. 아무런 문제도 없군.”
맞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한스는 지크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길 포기한 채, 그냥 조용히 받아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