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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22화 (22/628)

제22화

“웃기지 마라! 그런 방법이 있다면 먼저 다른 조각상을 찾지 왜 이곳에 쳐들어온단 말이냐!”

“의식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모르니까. 당장 오늘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런 느긋한 짓을 어떻게 하고 있냐?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잖아.”

지크는 부시장이 들고 있는 책을 가리켰다.

“촉매가 그 꼴이 났으니 당장 의식을 하진 못할 터. 물론 시간은 며칠 벌지 못할 테지만 뭐 어때? 그 안에 조각상 하나라도 찾으면 게임 끝이야. 조각상 하나만 처치를 해도 네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줄어들고 의식은 뒤로 밀릴 테니까. 그 틈을 타 또 다른 조각상을 계속 찾아내면 돼.”

“저 녀석들을 잡아!”

지크의 말이 정곡을 찌른 듯 부시장은 지금껏 대기시켜 놓은 언데드들을 일제히 돌격시키며 책을 폈다.

하지만 지크가 한 발 먼저 빨랐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콰앙!

그의 검이 휘둘러지며 건물 벽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루벨라의 허리를 휘어감고 그는 구멍 밖으로 뛰었다.

과연 시장의 집에서 대량의 언데드가 튀어나오는 광경을 보여주면 위험하다 생각했는지 쫓아나오는 언데드들은 없었다.

‘괜히 성녀가 언데드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위험부담이 있을 테니까.’

기껏 언데드들의 출현을 루벨라 탓으로 돌렸는데 그녀가 언데드와 적대 세력이라는 정황 증거를 줄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는 오히려 루벨라의 누명을 더욱 깊게 박는데 쓸 테지.’

턱!

지크는 부드럽게 착지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탈출한 건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갑자기 건물 안에서 튀어나온 지크와 루벨라를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는 경비 병력이 서 있었다.

“뭐지?”

“침입자?”

“루벨라다! 마녀 루벨라다!”

“마녀가 다시 쳐들어왔다!”

경비병들이 루벨라를 발견했다. 그들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뭐, 이렇게 되겠지.’

이걸로 루벨라의 누명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자신이란 동조자도 도시에 널리 퍼질 것이다.

‘시장 암살 누명도 덧씌워지겠군. 아니, 누명은 아닌가? 내가 죽인 건 맞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시장을 죽이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크는 곧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당시 시장은 완전히 도구와 같은 상태였다. 상황을 본다면 그 ‘열쇠’란 책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도록 개조된 것일 터.

‘회귀 전 밸리드 놈들이 많이 하던 짓이긴 하지. 그자가 살아 있었으면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게 뻔해.’

지크는 짐짝처럼 들고 있는 루벨라를 향해 말했다.

“유명해졌네요, 루벨라 님. 루벨라 님을 보자마자 마녀라고 환영해주는데요?”

“마녀랑 같이 있는 저 남자는 누구야?”

“몰라! 마녀의 주구나 뭐 그런 거겠지! 저놈도 절대 돌려 보내지 마라!”

“마녀의 주구가 뭐야, 주구가. 나는 따지자면 마녀보다 더 높은 마왕님이라고.”

지크는 투덜거리며 검자루를 고쳐 잡았다.

“지, 지크 님! 저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

“압니다.”

위험한 상황이라면 루벨라의 간청 따위 무시할 테지만 고작해야 숙련된 일반병에 불과한 그들을 상대로 굳이 살상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어 검집째 들어 올렸다.

“뼈 몇 대 나가는 건 봐줘요.”

그리고 달려오는 경비병들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경비병들의 긴 폴암 병기들이 지크를 찔러왔다. 하지만 지크는 몸을 부드럽게 움직여 폴암 사이사이를 빠져나갔다.

자신의 눈앞을 지나가는 창날을 보며 루벨라가 작게 비명을 터뜨렸다.

콰직! 콰직!

“악!”

“크악!”

한 번 휘둘러 한 명씩. 팔이든 다리든 갑옷을 부수고 뼈를 박살내는 지크의 손속에 앞에 있던 경비병들이 순식간에 바닥을 굴렀다.

경비병들 사이로 커다란 틈이 생겼다. 지크는 망설임 없이 발을 굴렀다.

그의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다른 병력들이 부랴부랴 움직였지만 이미 지크와 루벨라는 담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 * *

도시는 아수라장이 됐다. 부시장을 죽이고 도시에 대한 저주를 시도했다는 루벨라가 이번엔 시장마저 암살한 것이다.

당연히 도시 경제는 더더욱 얼어붙었다. 시장과 부시장 다음으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가 간신히 도시를 이끌어나가고 있었지만 시장이 있을 때와 같을 리 없었다.

이대로라면 다시 자치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당연히 사람들은 마녀와 이번에 새로 발견된 마녀의 주구를 욕했다.

그렇다면 절찬리에 사람들의 욕을 먹고 있는 그 둘이 지금 뭘 하고 있냐 하면….

“이야, 잘 나왔네.”

야음을 틈 타 시내로 나온 지크는 루벨라 수배서 옆에 붙은 자신의 수배서를 봤다.

루벨라와는 달리 대략 윤곽만이 그려져 있어 이걸로 인물을 특정하기엔 빈약해 보였다.

“이렇게 대충 그린 그림에도 잘생김이 묻어나다니. 역시 나도 인물 하나는 좋단 말이야.”

과장스럽게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다. 그러고선 낄낄거렸다.

‘내 수배서를 이딴 식으로 그려놓은 걸 보니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경비병들은 몰라도 부시장 그놈은 내 얼굴을 똑바로 봤을 텐데.’

아무리 죽은 척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수배서에 지크의 얼굴을 똑바로 그려 넣을 정도의 영향력은 있을 터. 그런데 수배서가 이따위라면 관여를 안 했다는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불빛과 갑옷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다가오는 것이 어슴푸레하게 느껴졌다.

‘어이구! 그래도 수배자니 얼른 숨어야지. 이거 옛날 생각나는 걸?’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전에는 이렇게 숨어 다니기도 일쑤였다. 추억을 회상하며 지크는 능숙하게 병사들을 피해 움직였다.

그가 걸음을 옮긴 것은 도시 안 빈민가였다. 허름한 건물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고 퀘퀘한 냄새가 주변을 싸고돈다.

지크가 도착한 곳은 빈민가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건물이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약속한 대로 연속으로 네 번, 쉬었다가 두 번, 그리고 다시 쉬었다가 다섯 번.

끼익!

연약한 노인이 허약한 신음을 삼키듯 문소리가 먹먹한 정적을 깼다.

“들어오세요.”

루벨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라도 따라붙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며 말했다. 지크가 들어가자 문이 닫혔다.

“이젠 확연한 범죄자가 다 되셨습니다.”

“그러게요. 직업을 바꿔야 할까 봐요.”

루벨라는 지크의 짐을 받아 들며 대꾸했다.

요 근래 겪은 사건이 너무 농후했기 때문인지 루벨라도 슬슬 여유와 능청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루벨라는 지크가 가져 온 짐을 뒤졌다. 여러 식재료가 가득 나왔다.

“이건 어디서 가져 오셨나요?”

“빌렸죠.”

지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빌렸다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훔쳤군요.”

“적어도 지금 정당한 거래를 할 순 없죠.”

“그렇죠.”

알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훔친 건 아니니까.”

“네?”

지크가 쪽지를 하나 건넸다. 거기엔 상회의 이름과 위치 그리고 물건들의 목록이 가득 적혀 있었다.

“물건을 갖고 온 곳들입니다. 돈이야 나중에 일이 전부 해결되면 한꺼번에 치르면 되죠. 말하자면, 외상입니다. 도둑질이 아니에요.”

“…외상은 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되지 않나요?”

“세상사 원칙대로만 살 순 없죠. 사과의 의미로 가격을 두 배 정도로 쳐주기로 하면 어떨까요?”

지크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루벨라는 허탈하게 한 번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외상값은 경비처리 할게요. 그러면 되죠?”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지크와 루벨라는 낡아빠진 탁자에 먹거리들을 내려놨다.

더러워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빈민가에서도 버려진 집이라 이 정도 가구가 갖춰져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딱딱한 빵을 씹으며 둘은 얘기를 나눴다.

“이제 밸르의 조각상을 찾으러 갈 거죠?”

“그래야죠.”

“찾을 방법은 있나요?”

도시를 이잡듯 뒤져 찾는다고는 했지만 포르티는 넓었다. 거기에 그들은 수배를 받는 상태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정도는 발품을 팔아야 할 겁니다. 일단 빈민가부터 찾죠.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는 움직이기 쉽고, 생각해 놓은 곳도 있으니까요.”

“그래요.”

루벨라는 전적으로 지크의 의견을 따랐다.

“그러고 보니 한스 씨란 분은 어떻게 하셨어요? 설마 그냥 방치하신 건….”

“그놈은 이미 옛적에 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시킬 일이 있어서 말이죠.”

“다행이네요.”

괜히 부시장에게 잡혀가 고초를 겪을까 걱정했던 루벨라는 안도했다. 도시를 떠났다니 적어도 그들보다는 안전할 터다.

둘은 묵묵히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 끼니를 때웠다.

* * *

“여, 오랜만이지?”

지크가 루벨라를 데리고 간 곳은 빈민가 한쪽에 있는 작은 공터였다.

악취가 진동하고 오물과 쓰레기가 쌓여 있는 그곳에 세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지크는 낯익은 지인을 만나듯 손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성정이 거친 사람들인 듯 그들이 인상을 쓰고 돌아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크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젠장! 튀어!”

“기다려, 기다려. 물어볼 게 있단 말야.”

지크는 어렵지 않게 세 명의 도주를 차단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크의 앞에 나란히 선 세 명을 확인한 루벨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어디서 본 사람 같습니까?”

“네. 낯이 익으신 분들이네요.”

“루벨라 님이 이 도시에서 절 처음 만났을 때 있잖습니까. 그때 상인 놈을 같이 다구리치던 그놈들입니다.”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지크와의 충격적인 재회 때 봤었던 양아치들인 모양이다.

루벨라를 확인한 그들의 얼굴이 아예 거무죽죽하게 죽어갔다.

“마, 마녀!”

“역시 그 마녀의 주구라는 인간이 저 인간이 맞았어!”

“앙? 누가 주구라고?”

양아치들이 일제히 쫄았다. 하지만 셋 중 한 명. 지크와 루벨라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것 같은 사내였다.

“당신이 여긴 무슨 일이야?”

“왜 이래, 친구. 뒷골목에서 같이 사람 패면서 쌓은 인연이잖아.”

절대로 자랑할 만한 인연이 아니다. 루벨라는 지크의 뻔뻔스러움에 혀를 내둘렀다.

양아치들도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지크는 사내의 어깨에 팔까지 걸쳐 어깨동무를 했다.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말이야. 어떻게, 협력 좀 해줄 수 있어? 대가는 넉넉하게 줄게.”

지크가 품에서 돈자루를 꺼냈다.

사람들과 직접적인 거래를 할 수 없었을 뿐, 지크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외상은 다른 이야기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금은 금전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법. 어차피 그 돈은 상황이 잘 끝나면 카르위먼에서 계산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데서는 아끼지 말아야지.’

주먹이나 공포로 말을 듣게 할 순 있지만 자발적으로 머리를 짜내게 하는 게 효율이 좋다. 물론 돈이 통하지 않는다면 주먹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양아치 세 명의 시선이 일제히 주머니에 쏠렸다. 주머니 안에서 환하게 빛나는 돈이 그들의 시각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싫어.”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 해 봐. 별것 아냐. 요새 갑자기 시름시름 앓아눕거나 급사한 인간들 없어? 표현하자면 갑자기 생기를 잃은 것 같은 사람들 말이야.”

양아치들의 표정이 굳었다. 지크의 눈이 반짝였다.

“너희들, 뭔가 알고 있구나?”

“모른다고!”

“좋게 이 돈 받고 얘기해주는 게 좋을 텐데? 너희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나도 물러설 생각이 없거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생각도 없고. 아픈 꼴 보느니 돈 받고 원만하게 해결되는 게 낫지 않아?”

지크가 사내의 어깨 위에 올리고 있던 팔에 힘을 줬다.

“큭!”

사내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으려 했다.

지크의 눈이 독해졌다. 그의 머릿속으로 온갖 고문법이 떠오를 때였다.

털썩!

루벨라가 사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빈민가의 더러운 진창이 그녀의 옷을 더럽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탁드릴게요.”

그녀가 호소했다.

“저희의 이익 때문이 아니에요. 쉽게 믿으실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 도시는 엄청난 위험에 처해 있어요. 자칫하다가는 이 도시가 죽음의 도시로 변할지도 몰라요. 지금도 밤마다 언데드가 돌아다니는데 더 끔찍한 일이….”

“웃기지 마! 그건 너희들 때문이잖아!”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일단 말하건대, 우리는 그 뼈다귀 새끼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이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안 믿기냐?”

지크가 최대한 눈을 크게 뜬 채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러나 결과는 썩 신통치 않았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네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내 동생도 그 꼴이 나지는…!”

“응? 동생?”

사내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필요한 정보는 모두 들은 후였다.

“오호라. 우리가 찾는 사람이 바로 네 동생인가보군.”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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