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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15화 (15/628)

제15화

“착하게 사는 방법이요?”

“그렇습니다.”

루벨라는 눈을 끔벅였다. 설마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 여전히 ‘허허!’거리는 와이그도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지크는 나름 굉장히 진지했다.

‘착하게 살라고 해도 뭔가 감이 잡히지 않는단 말이야. 단순히 때리고 부수는 건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편한데.’

대부분의 생을 자기 멋대로 행동하던 지크다. 이제 와서 ‘착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해도 그 방법이 바로 떠오르진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고는 있지만 그게 정말 ‘착하게 사는 일’인지 의문이었다.

‘이 여자라면 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회귀 전 자그마치 성녀였던 그녀다. 아직 성녀가 아니라고는 해도, 카르위먼의 성녀 선정이 쉬울 리 없다.

어려서부터 분명 성녀의 자격, 즉 지크가 생각하기로 바보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음, 그러니까….”

루벨라는 말끝을 흐렸다. 착하게 사는 방법. 쉽다면 쉬운 질문이다. 하지만 그 범위가 너무 광범위했다.

“먼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여쭤도 될까요?”

“누군가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한 번 착하게 살아보라고 말이죠. 그런데 제가 꽤 거칠게 살아온 터라 정확히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말이죠.”

지금껏 나쁘게 살아왔다고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말이다. 하지만 루벨라는 오히려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대단하세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텐데.”

역시 그녀는 착한 사람 특유의, 모든 걸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장착되어 있었다.

“착하게 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혹시 뭔가 특기나 잘 하시는 것이 있나요?”

“뭔가를 때려 부수거나 하는 건 잘 합니다.”

“그, 그래요?”

루벨라가 당황했고 와이그가 숨 죽여 웃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말로 둘은 어느 정도 지크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힘쓰는 일을 잘 한다고 들어도 될까요?”

“그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그럼 곤란한 사람을 돕는 건 어떨까요?”

“곤란한 사람 말입니까?”

“네. 착한 일은 여러 가지가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착한 일이란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크든 작든 말이죠.”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이라….”

지크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그걸 넘어서 완전히 반대되는 영역에 있는 일이다. 남의 눈에서 피눈물 쏟게 한 적은 자주 있어도 행복을 준 적은 없다.

“힘쓰는 일을 잘하신다고 했으니 일단 그쪽으로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보세요.”

“곤란한 사람을 도우면 되는 겁니까?”

“그래요. 일단 그렇게 익숙해져 가면 조금씩 착한 일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을까요?”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아뇨. 새로운 길을 걸으려는 분께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당신에게 카르나 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

카르나의 이름으로 하는 축복에 지크는 잠시 몸에 오한이 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크는 내색 않고 그녀의 축복을 받아들였다. 자신은 더 이상 카르위먼의 적대자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면서.

지크는 마차에서 내려 자신의 야영지로 돌아 왔다.

“무슨 일로 가셨습니까?”

한스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여전히 루벨라에 대한 관심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별것 아냐. 착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착하게 사는 법을요?”

‘설마 그 정신 나간 발언이 진심이었던 거야?’

분명 백작가를 떠날 때 들었지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던 발언이다.

“뭘 그리 놀라?”

“노, 놀라지 않았습니다!”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한스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그랬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었다.

“왜. 안 어울려?”

“그, 그럴 리가요.”

입 안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슬금슬금 지크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의외로 지크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장작을 뒤적여 불을 키우며 작게 콧노래를 부른다.

다행히 보복의 주먹은 날아오지 않을 것 같아 한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히려 질문을 조금 더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분이 뭐라고 하던가요?”

“곤란한 사람을 도우라더라고. 내가 잘 하는 게 뭔가를 때려 부수는 거라니까 힘을 쓰는 일에 관련된 거면 좋겠다고도 했고.”

“…….”

어쩜 저렇게 딱 맞는 처방을 해 줬을까.

하인에게 무시당해도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순하디 순한 지크를 더 오래 봐온 한스였지만, 요 근래 지크의 모습이 너무 임팩트가 강해 완전히 최근 이미지만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모든 것을 힘과 폭력으로 해결하는 이미지로.

‘그래도 그분에게 조언도 들었고 지크 님도 정말로 착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크를 보는 한스의 눈에는 미묘한 의심의 눈초리가 섞여 있었다.

* * *

카르위먼의 성녀는 카르위먼의 얼굴 마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르위먼은 성녀를 정하는데 꽤 많은 공을 들인다.

그 과정 중 하나가 바로 지금 루벨라가 하고 있는, 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출발하죠.”

오늘도 한 마을에서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 준 뒤 카르나의 축복을 기원한 루벨라는 마차를 출발시켰다.

“지치십니까?”

“조금 그러네요.”

와이그의 질문에 루벨라는 힘없이 웃었다. 하지만 스스로 기운을 불어 넣듯이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카르나 님의 신자로서 그 분의 가르침을 행하는데 소홀히 할 수는 없죠. 많은 건 할 수 없어도 다른 분들에게 마음의 위안 정도는 드릴 수 있으니까요. 제 피곤 따위는 사소한 일이에요.”

“겸사겸사 성녀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말이죠.”

“와이그 님.”

루벨라의 샐쭉한 말에 와이그는 껄껄 웃었다.

“후후후, 이거 나이가 드니 주책만 느는 모양입니다.”

“그만 놀려주세요.”

“사과드리죠.”

와이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루벨라 님이 성녀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 성녀가 되기 위해서만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바로 그런 태도가 루벨라 님을 더욱 성녀에 어울리게 만들 겁니다.”

경험이 얼마 없는 루벨라가 온갖 역경을 딛고 살아온 능글능글한 와이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루벨라는 입을 삐죽이고 고개를 픽 돌렸다.

‘역시 어리시군.’

감정이 바로 겉으로 드러난다. 타박할 순 없다. 지금껏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그녀다. 그것을 고치기 위한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 지금 여행 아니던가.

‘하지만 다른 후보들 중에서도 가장 성녀에 어울리시는 것도 확실하다.’

성녀 후보라고 해도 전부 착실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기본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천한 자들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루벨라는 가히 천사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너무 강단이 없어.’

“이번 여행만 끝나면 잠시 교단에 돌아가게 되는군요.”

와이그는 슬쩍 운을 뗐다. 그리고 루벨라의 반응을 살폈다.

루벨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루벨라 님. 상냥함과 인자함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카르위먼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지키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마음이 필수입니다.”

“…알고 있어요.”

몇 번이나 들은 얘기이기에 루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무척이나 작았다.

‘쉽게 되는 일이 아니지.’

육체적 능력이야 빡세게 구르면 싫어도 올라가지만 마음의 강함이야 어디 그러던가.

더 이상 말해봐야 루벨라를 괴롭히는 일밖에 되지 않기에 와이그는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잘 해내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 친구요?”

“그 왜, 루벨라 님께 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 했던 청년 말입니다.”

“아!”

루벨라도 그 기억을 떠올렸다. 오래된 것도 아닌 일이니 떠올리는 건 쉬웠다.

“그때는 깜짝 놀랐어요. 설마 그런 질문을 해올지 몰랐거든요.”

“그래도 그 청년 나름으로는 중요한 일이었을 겁니다.”

삼엄한 보호를 하는 성기사들에게 루벨라를 만나고 싶다고 말을 거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 그 분의 눈은 진지했거든요. 과연 그 분이 자신의 목표를 어떻게 이뤄나갈지, 제 조언은 도움이 됐는지 한 번 보고 싶네요.”

부디 그가 자신의 길의 빛을 찾기를. 루벨라는 조용히 기도했다.

* * *

여정을 계속하던 카르위먼 일행은 커다란 도시에 도착했다.

그들은 일단 숙소를 잡았다. 도시의 규모에 걸맞게 이곳에는 카르위먼의 신전이 있었지만 성녀 후보와 그녀의 호위로서 세계를 보는 여행을 하고 있는 그들은 신전을 숙소로 쓸 수 없었다.

루벨라는 성기사 몇 명을 대동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가까이에서 호위를 하던 와이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교단에서 명령이 내려 와 그는 잠시 이탈한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성기사들의 수준으로도 루벨라를 보호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번엔 저쪽으로 가보죠.”

루벨라가 가리킨 곳은 인적이 드문 골목이었다. 척 봐도 안전할 만한 장소는 아니기에 성기사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루벨라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게 어떤 밑바닥 세계든 루벨라는 이번 여행에서 봐야할 의무가 있었다.

일행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성기사들은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골목 깊은 곳에서 험악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물건만 내 놓으면 살려준다고 했잖아! 말귀를 못 알아들어!”

퍽! 퍽!

“악! 아악!”

거친 협박 소리와 공포에 떠는 목소리가 들리고는 곧 무언가를 때리는 듯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루벨라와 성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멈춰라!”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성기사가 크게 외쳤다.

둔탁한 소리가 멎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루벨라는 현장을 살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이었다. 얼굴 여기저기가 붓고 코와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폼이 상당히 많이 맞은 것 같았다.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그 사내는 루벨라와 성기사들을 마치 구원자처럼 쳐다봤다.

그녀는 이번엔 가해자들을 쳐다봤다.

인원은 네 명. 껄렁껄렁한 면상과 차림새가 누가 봐도 건달이나 양아치였다.

그들은 루벨라와 성기사들을 보고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은 양아치들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 루벨라 님과 카르위먼의 성기사 분들 아닙니까? 여긴 무슨 일입니까?”

“당신은…!”

루벨라는 깜짝 놀랐다. 앞장서 쓰러진 사내를 밟고 있었던 사내. 그의 얼굴이 낯이 익었던 것이다.

사내는 지크였다.

“이렇게 빨리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다급하게 오신 겁니까?”

“무슨 일 때문이냐고요?”

너무도 뻔뻔한 지크의 말에 루벨라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곧 빽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죠! 당신이야말로 뭐 하는 건가요! 착한 일을 하며 살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이게 뭐하는 짓이죠!”

정말로 오랜만에 루벨라는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지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당신의 조언대로 행동하고 있었는데요?”

“대체 이게 어딜 봐서 제 조언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요!”

“루벨라 님이 분명 곤란한 사람을 도우라고 했잖습니까.”

지크는 자신의 뒤에 있는 세 명의 양아치를 가리켰다.

“그래서 곤란한 사람을 돕고 있었습니다.”

‘고, 곤란한 사람을 도우라니까 양아치를 돕고 있었어?’

지크의 파격적이다 못해 참신하기까지 한 해석에 루벨라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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