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당연히 검을 뽑는 자세부터가 엉성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스는 나름 자세를 잡았다. 썩어도 스틸월가의 하인. 보고 들은 건 있는 것이다.
끄륵!
감히 인간 따위가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낸 것이 불쾌한 것일까. 고블린이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나무 몽둥이를 위협스럽게 흔들었다.
‘녀석의 무기는 고작해야 나무 몽둥이야.’
이 순간, 한스는 별로 믿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자신의 숏소드가 무척이나 강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수수해보이더라도 자신의 무기는 제련된 철인 것이다.
‘이길 수 있어!’
한층 더 부풀어오른 자신감을 숨기지 않은 채 한스는 슬금슬금 고블린에게 접근해갔다.
끄이이이익!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녀석이 나뭇가지를 힘껏 치켜들었다.
“어, 어?”
한스가 당황한 소리를 냈다.
머릿속에는 이미 많은 전술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고블린이 이렇게 공격해온다면 이런 식으로, 저렇게 공격한다면 저런 식으로 등등.
하지만 그래봤자 검 한 번 배우지 못한 초보의 망상일 뿐이다.
갑자기 고블린이 달려들자 한스가 할 수 있던 일은 휘둘러오는 몽둥이에 칼을 갖다 대는 것뿐이었다.
퍽!
“아악!”
검과 함께 두 팔이 높이 튕겨졌다.
중심이 흔들리며 몸이 비틀거린다. 무척 꼴사나운 모습.
“호오?”
하지만 팔짱을 끼고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지크는 오히려 눈을 빛냈다.
‘완전히 생초짜가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하다니.’
그것만 해도 분명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게다가 검을 놓치지도 않았어.’
검을 쥔 한스의 손에서 핏기가 비쳤다. 손아귀가 찢어진 게 분명했다.
처음 검을 잡은 생초보가 손아귀가 찢어질 만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검을 놓지 않았다.
‘역시 썩어도 스틸월 백작가에서 자랐다 이건가? 아니면 녀석의 개인적 재능인가?’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다.
후웅!
고블린이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한스는 자세가 무너져 있으면서도 간신히 피했다. 다음 공격은 다시 검으로 받았다.
‘이 녀석 힘이 왜 이렇게 세! 속도도 빠르고!’
고작해야 1미터 남짓의 작은 체구를 가진 몬스터. 하지만 일격 일격은 둔중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스가 막연히 생각해오던, 주인공의 앞에서 무참하게 깨지는 약한 몬스터는 없었다.
“우와아아아악!”
극한까지 고양된 위기감이 한스의 육체를 움직였다.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성을 내며 고블린과 맞섰다. 말 그대로 눈이 뒤집힌 움직임이었다.
고블린의 몽둥이가 몇 번 한스의 몸을 때렸다. 대미지를 입긴 했지만 갑옷 위로 맞아 충격이 덜어진데다가 극도의 흥분 때문에 한스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 비해 고블린의 머리에 꽂힌 한스의 검은 치명상을 주기 충분했다.
켁!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고블린이 쓰러졌다. 동시에 한스도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이겼네?’
덜덜 떠는 한스를 지크는 조금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진짜 이길 줄은 몰랐는데.’
고블린이 약한 몬스터이긴 하지만 몬스터는 몬스터. 평범한 하인, 그것도 백작 부인의 비호로 나름 곱게 커온 한스가 이기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철부지나 다름없는 여행 초보인 한스에게 몬스터의 위험성을 각인 시키고 겸사겸사 녀석이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알아보려 했는데, 한스는 지크의 예상보다 전투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뭐, 잘했다.”
지크가 넋 나간 표정의 한스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줬다.
“아, 감사합…, 악!”
한스가 비명을 질렀다. 흥분이 가라앉으며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몸을 웅크리고 끙끙 앓는 한스의 위로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고통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포션?”
“특별 서비스다. 앞으로는 얄짤없으니까 기대하지 마.”
백작가에서 나올 때 챙겨온 포션은 아직 여유가 있긴 했지만 포션값은 비싸기 이를데가 없기에 지크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한스의 외상이 완전히 회복했다.
“처음으로 몬스터를 상대해 본 소감은 어때? 아직도 고블린 정도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아셨습니까?”
“네깟 녀석이 생각할 거야 뻔하지. 그래서 붙어보게 한 거다. 일단 몬스터에 대한 위험함을 직접 경험하는 게 제일이니까. 운이 좋았지. 본래 무리로 다니는 고블린이 지금처럼 한 마리만 어슬렁거리는 일은 웬만하면 없으니까. 뭐.”
지크의 눈동자가 옆으로 향했다.
“완전히 무리에서 벗어난 녀석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던 수풀의 소리가 거칠어졌다. 지크와 한스를 포위하듯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낮게 잡아도 열 이상.
“머리 나쁜 놈들 주제에 미끼를 썼다 이거냐?”
그 미끼인 동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게 내버려뒀다는 것 자체가 녀석들이 인정이라곤 존재 않는 몬스터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 지크 님? 이건 좀 위험한 거 아닙니까?”
고작 한 마리에도 고전했던 한스가 벌벌 떨었다.
“괜찮아. 숫자는 충분해. 이런 일이 있어서 충분히 챙겨뒀으니까.”
지크가 왼손을 움직였다. 움켜쥐고 있던 무언가들이 부딪치며 달그락거렸다.
“돌멩이 아닙니까? 그걸로 뭘….”
한스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지크가 왼손에 쥔 돌멩이 하나를, 마치 딱밤을 때리려는 것처럼 엄지로 고정시킨 오른손 중지 앞에 올려놨다.
피융!
중지가 펴지며 돌멩이를 밀어낸다.
아이나 할 법한 장난스러운 행동. 하지만 지크 정도 수준의 인간이 한다면 그 결과는 다르다.
대기를 찢으며 날아간 돌멩이가 정확히 한 고블린의 머리에 명중했다.
퍼억!
새빨간 꽃이 피었다. 커다란 망치로 내려친 것처럼 고블린의 머리가 으깨지듯 터져나갔다.
지크는 계속해서 돌멩이를 튕겼다.
피융! 피융!
퍼억! 퍼억!
지크가 손가락을 튕기면 파공음이 일고 파공음이 일면 머리가 터져나간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대응, 회피, 도망 그 어떤 행위를 할 여유조차 없다. 어버버 거리던 고블린들이 전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뭘 한 겁니까?”
평소에 지크를 대할 때 조심스러움을 한껏 품는 한스지만 과연 이번만큼은 그도 조심스러움보다는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더 강했다.
자신이 고생고생하며 잡은 고블린을 지크는 발을 떼지도 않고 전멸시킨 것이다.
“봤잖아. 그냥 돌멩이를 튕긴 것뿐이야.”
지크는 남은 돌멩이를 바닥에 내던졌다.
“굳이 고블린 상대로 검을 뽑을 이유도 없고. 이거면 충분하니까.”
한스는 아연한 표정으로 지크를 올려다봤다.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돌멩이만으로 몬스터를 쓸어버릴 정도였어?’
그 짧은 시간 내에 지크가 더 강해진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 정도는 전부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한스가 고민할 여유는 거기까지였다.
“빨리 일어나. 비싼 포션까지 부어줬으니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잖아.”
“…네.”
움직이기 싫었지만 한스는 어쩔 수 없이 어기적어기적 일어났다.
“다시 출발하자고.”
지크와 한스는 다시 험한 산 속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 * *
그 이후로도 둘은 몬스터를 몇 번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지크가 장난스럽게 튀긴 돌멩이에 머리가 터져나갔고, 돌멩이가 통하지 않은 녀석들도 지크의 검에 손쉽게 토막났다.
덜덜 떨면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스는 다시 한번 지크에게 덤비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슬렁거리던 오크 몇을 처리한 지크는 주변 풀잎을 한 움큼 따 검신의 피를 닦아냈다.
‘역시 이 정도 들어오면 몬스터들도 상당히 나오기 시작하는군.’
길 부근과는 다르다. 상당히 깊은 곳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이라 어떻게 보면 인간들에게 무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 무해한 몬스터가 있을 리가 있나.’
몬스터란 것들 중 무해한 몬스터는 없다. 눈에 보이면 일단 전부 쳐죽이는 편이 낫다.
‘크게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솎아내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지크가 멀쩡한 길을 내버려두고 험준한 산을 타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스에게 여행의 쓴 맛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
영지의 몬스터들을 어느 정도 솎아내 백작가에 도움을 주는 것.
하지만 이 이상 해줄 생각도 없었다. 그들이 자신이 몬스터를 토벌한 걸 알 리도 없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아주 작은 죄책감마저 짓밟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이걸로 끝. 나머지는 혹 나중에 백작가에 뭔 일이 있다면 상황 봐서 도와주면 되겠지. 응, 응. 애초에 착하게 살기로 했으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나 너무 착해진 것 아닌가?’
한스가 들었다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에 앞뒤 안 가리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한스가 항의를 했더라도 지크는 깔끔하게 무시했을 것이다. 건방짐을 고칠 주먹을 곁들여서.
지크는 계속해서 험한 길을 주파하며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그렇게 무조건 일직선으로 전진한 지 얼마나 됐을까. 지크에게는 옛날 방랑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한스에게는 온갖 고난의 첫발이 돼버린 이 여정이라도 끝은 있었다.
눈앞에 보인 길을 보며 한스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곧 온갖 근육통을 안은 채 언제 몬스터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안고 모포 하나를 의지해서 불편한 잠을 취하며 훌쩍이는 것도 끝이었다.
“해도 졌고, 오늘 잠은 여기서 자자.”
“넵!”
지크의 명령에 한스가 힘차게 대답했다. 똑같은 노숙이었지만 길 주변이라는 이유 하나가 한스의 마음을 무척 편안하게 했다.
한스의 잠자리 준비는 처음보다 빨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색한 동작이 많았다.
당연히 대부분의 준비는 지크가 했다. 물론 이것도 당분간만 그럴 뿐, 한스가 익숙해진다면 대부분 떠넘길 생각이었다.
탁! 탁! 탁!
불 속에 갇힌 나무가 아련한 소리를 내며 불길을 더욱 키운다. 길 옆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은 식사를 했다.
울창한 수풀 때문에 하늘이 잘 보이지 않던 숲속과는 달리 길 주변에서는 밤하늘의 별이 잘 보였다.
“야.”
“네, 넵!”
“힘드냐?”
갑작스러운 지크의 질문에 한스가 흠칫흠칫 눈치를 봤다.
당연히 힘들다. 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가는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러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가도 괜찮….”
“사실 힘듭니다!”
반사적으로 외친 한스가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목을 움츠리고 혹시 보복의 주먹이 날아올까 움찔거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 지크가 크게 웃었다. 한스는 얼굴을 붉혔지만 그래도 험악한 분위기가 되지 않은 것에 더 안도했다.
“새끼, 쫄기는. 걱정 마라. 이렇게 가는 건 스틸월 영지를 벗어날 때까지만이니까.”
“…아직 스틸월 백작가를 벗어나는 데는 한참 걸리지 않습니까?”
“맞아. 그러니까 이번 마을에서 보급만 하고 다시 산을 탈 거야.”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소리없이 무너지는 한스를 보고 지크는 낄낄거렸다.
다각! 다각!
그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크와 한스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저 멀리서 어렴풋한 빛이 점점 다가왔다.
“이 시간에 누구일까요? 상인?”
“아니. 말발굽 소리에 비해 마차 소리가 작아. 상인이라면 말발굽 소리와 마차 소리가 비슷하게 나야지. 수레를 짐말이 끌고 있을 테니까.”
“그럼 여행자일까요?”
“말과 마차를 끌고 다니는 여행자는 없어.”
“그럼?”
“가장 가능성 높은 건 마차 타고 있는 높으신 분과 높으신 분을 지키는 호위대겠지.”
지크의 말대로 모닥불의 빛 아래로 들어온 자들은 척 봐도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커다란 전투마를 타고 단단한 전신갑옷을 입은 채 커다란 마차를 호위하는 자들.
‘카르위먼의 성기사들이잖아.’
카르위먼은 상당한 세력을 자랑하는 종교집단이다. 신성신 카르나를 믿으며 많은 왕족과 귀족, 평민들이 믿고 따르는, 한마디로 찍히면 피곤한 걸 넘어 목숨마저 간당간당한 세력.
‘카르위먼의 성기사들이 호위를 하는 존재라니.’
예사인물은 아닐 것이다.
성기사들과 마차는 지크와 한스가 야영하는 곳으로 계속 접근하더니 바로 앞에서 멈췄다.
푸르륵!
말이 투레질을 한다.
성기사들의 규모와 박력에 긴장하고 있던 한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지크는 몸을 일으켰다.
‘전투를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카르위먼은 제대로 된 종교조직이다. 물론 썩은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온갖 악행들을 즐겨 하는 사교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귀여울 정도다.
하지만 지크와는 썩 좋은 인연을 맺은 곳이 아니다. 아니, 좋은 인연은커녕 회귀 전 목숨을 걸고 대판 붙었었다. 자연스레 경계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도 카르위먼 소속이었으니까.’
소속 정도인가. 자그마치 그곳의 성녀였다.
엄청난 축복으로 파티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데다가 파티원들을 인간인지 좀비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로 회복시키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지녔던, 용사 파티의 일원.
‘그러고 보니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지크가 잠시 딴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달칵!
마차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내렸다. 마차를 호위하던 성기사들이 일제히 주변 경계를 올린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이 호위 대상일 것이다.
흥미로운 시선으로 마차에서 내린 자를 쳐다보던 지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자는 지크에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성녀?’
방금 전 지크가 생각을 하던, 지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에 당당히 한몫을 했던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