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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왕은 착하게 산다-7화 (7/628)

제7화

상석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백작과 그레이그 그리고 기사단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편이 옳았다.

그에 비해 백작 부인과 더불어 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다른 가신들은 주위에 깔린 기이한 분위기에 당황했다.

뭔가 지크가 대단하다는 건 느끼고 있지만 그게 얼마만큼 대단한 것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지크 공자님께서 선전하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기사 분들 분위기를 보아하니 제가 본 것보다 더 대단한 모양입니다. 혹,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베르덴 트레얼. 백작가의 집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다.

은빛 수염을 가지런히 기른, 중후하고 인자해 보이는 노년의 인물로 스틸월 백작이 어렸을 적부터 그를 보좌한 중신.

혹, 백작이 가문을 비울 시 백작을 대신해 가문의 대소사를 맡는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그리고 백작가에 희귀한, 지크를 차별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질문을 던진 인물은 백작의 뒤에 검을 차고 서 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강철검 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이름은 대니 크리스넌. 단장인 타이너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래도 백작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어, 어머. 지크 저 아이가 선전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바이너 경이 유리한 것 같은데, 아닌가요?”

지크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빈정이 상한 백작 부인이 얼른 바이너를 치켜세웠다.

트레얼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백작 부인의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다.

“검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지크 공자님이 상대이시니 당연히 바이너 경이 유리하게 경기를 펼치시겠죠. 그렇지 않다면 기사단의 체면 자체가 뭉개질지도 모릅니다.”

크리스넌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기사단의 체면 얘기가 나오니 거북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레얼은 그의 한숨 소리를 못 들은 척 얘기를 이어갔다.

“하나, 지크 공자께서 저희의 예상보다 더 선전을 펼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사분들의 반응을 보니 저희가 본 것보다 더 수준이 높은 것도 같고요. 검술도 제대로 못 배우신 지크 공자님께서 저 정도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계신 걸 보니 백작가의 가신으로서 기쁘기 이를 데 없군요.”

백작부인의 얼굴이 굳고 그레이그의 호흡이 조금 거칠어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트레얼은 백작 부인조차 대하기 어려워하는, 백작가의 핵심 인사였다.

“어떻습니까, 크리스넌 경.”

“집사님도 ‘감각의 확장’은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감각의 확장’은 마력을 통해 검과 신체를 동조, 정말로 검을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수준 있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히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무척이나 배우기 어려운 기술이기도 합니다. 마력을 무척이나 섬세하게 조종해야 하니까요. 바이너의 나이 대에서 다룰 만한 기술이 아닙니다.”

“바이너 경이 20대 초반이던가요?”

“스물 셋입니다.”

“후후후. 재능 있는 젊은 기사가 있다는 건 백작가의 홍복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크리스넌 경.”

“네, 집사님.”

“그 대단한 기술을 지크 공자님께서도 다루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썩어도 백작가의 집사다. 지크가 바이너와 같은 ‘감각 확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눈썰미는 갖고 있었다.

크리스넌은 슬쩍 백작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크 공자님께서 올해 나이가 열 아홉이셨죠? 바이너 경보다 네 살이나 어리시군요. 저 나이 대에 그 기술을 익힌 이가 얼마나 됩니까?”

“…제가 아는 한 적어도 우리 기사단에는 없습니다.”

“타이너 경도 말입니까?”

“단장도 바이너와 비슷한 시기에 배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대단하군요.”

트레얼이 감탄했다. 그의 눈이 또르르 굴러 백작 옆에 앉아 있는 그레이그를 향했다.

동요, 당혹, 질투, 열등감 등등. 그레이그의 얼굴에는 많은 감정들이 형언할 수 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결투장을 보는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 말은 곧 그레이그 공자님도 익히지 못하셨다는 뜻이겠죠?”

그레이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크리스넌은 그레이그의 안색을 살피면서도 이번에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크리스넌은 딱히 지크를 옹호하는 자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처럼 그레이그가 후계자감이라고 생각하는 자였다.

그저 순수한 무인인 그는 사실을 사실이라 대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서, 설혹 그레이그가 그 기술을 익히지 못했어도 이 아이도 나름 좋은 기술들을 알고 있답니다.”

“그건 백작 부인의 말이 맞습니다. 기사의 기술은 ‘감각 확장’만 있는 건 아니죠. 분명 중요한 기술이긴 하지만 다른 기술들도 충분히 중요합니다.”

백작 부인의 말을 크리스넌이 얼른 옹호했다.

“물론이죠. 그레이그 공자님의 대단함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 백작가의 자랑 아니겠습니까.”

트레얼은 빙긋 웃으며 맞장구쳤다.

“알아주신다니 기뻐요.”

그제야 백작 부인의 표정이 풀어졌다. 하지만 일부러인지 아닌지, 트레얼은 다시 한번 백작 부인의 속을 긁어 놨다.

“이제 백작가가 자랑할 수 있는 분이 둘이 되었으니, 이 트레얼, 감동에 벅차 마음이 떨리는군요.”

“그, 그러네요.”

백작 부인이 반쯤 울상을 지은 채로 크리스넌을 쳐다봤다.

어떻게든 지크보다 그레이그가 더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해줬으면 하는 게 뻔히 보였다.

전투에 관해서는 짐승 같은 능력을 보여주는 크리스넌이지만 이런 정치질에는 약했다.

누가 봐도 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 애써 경기장을 지켜보던 그의 눈에 빛이 튀었다.

“저걸 보십시오!”

바이너가 검을 뒤로 빼는 게 보였다. 그가 빠르게 검을 허공으로 내질렀다.

퍼엉!

폭음이 터지며 바이너 앞의 공간이 묘하게 구불거렸다.

크리스넌이 연극톤 조로 침을 튀겼다.

“저건 ‘공간 찌르기’라는 기술로서 마력을 검 끝에 웅축, 허공을 거세게 찔러 마력이 섞인 공기를 화살처럼 쏘아내 떨어진 상대도 공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역시 배우기 어려운 기술이지만, 저건 그레이그 공자님도 시전하실 수 있죠.”

“대단하군요. 하지만 크리스넌 경.”

트레얼이 손으로 경기장 안을 가리켰다.

“지크 공자님도 사용하실 수 있는 것 같은데요?”

트레얼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찌르기’를 능숙하게 회피하고 오히려 같은 기술로 응수하는 지크가 있었다.

“그, 그렇군요. 지크 공자님도 익히고 계신 것 같군요.”

그렇게만 말하고 크리스넌은 입을 다물었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는 또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았다.

원망을 가득 담은 백작 부인의 눈길이 등허리를 쑤시는 것 같았다.

* * *

바이너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대체 뭐 이런!’

이렇게 될 거란 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는 이제 막 마력을 다루게 된, 검술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초보자인 것이다.

한데, 지금 그 상대가 고급 기술을 줄줄이 내뱉으며 선전하고 있었다.

당연히 관중들의 관심은 자신이 아닌 지크에게 향했다.

그의 목적인, 지크를 화려하고 압도적으로 꺾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은 진작 파탄나 있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이 결투의 주인공은 바이너가 아닌 지크였다.

‘이겨야 돼! 이겨야 돼! 이겨야 돼!’

바이너의 머릿속에 남은 건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어떻게든 이 결투를 이겨 남은 명예라도 지키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기술에 어색함이 있어.’

몸에 익숙하지 않은 기술을 억지로 구사하는 것처럼 지크에게는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묘한 딜레이가 있었다.

무척이나 작은 빈틈이었지만 바이너의 천재적인 눈썰미는 그걸 알아챘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저 녀석을 쓰러뜨린다!’

그렇게 바이너가 속으로 전의인지 살의인지 모를 감정을 태우고 있을 때, 지크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슬슬 몸이 삐걱거리는데.’

아무리 지크가 ‘힘의 마왕 지크 모어’인 시절 배우고 익힌 경험을 총동원하여 선전하고 있다지만 슬슬 한계에 부치고 있었다. 육체가 단련되어 온 시간 자체가 달랐다.

‘기술들도 애매하고.’

지크가 여러 고급기술을 구사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마력 컨트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의 마왕’이라는 칭호 때문에 그의 기술이 투박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칭호는 어디까지나 그가 내놓은 결과물이 워낙 파괴적이라서 붙었을 뿐이지 그의 기술은 무척이나 세련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뿐. 마력 컨트롤이 아닌 다른 요소가 중요한 기술은 거의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기술들도 몸에 붙지 않아 여기저기 빈틈이 나오고 있었다.

‘걷기 위해서 어느 근육을 얼마나 어떻게 움직일지를 일일이 생각하고 사용하는 거랑 마찬가지니 원.’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지껄이냐고 기함할 말을 여지없이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시점에서 지크의 괴물 같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척!

다시 한번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가 났다.

“몰래 상당히 연습을 하신 것 같소. 설마 ‘감각 확장’까지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감각 확장 정도야 껌이지.”

도발이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마력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지크에게 ‘감각 확장’은 무척이나 터득하기 쉬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바이너는 그걸 도발로 받아들였다.

“그럼 계속 버텨 보시오.”

바이너가 다시 달려들었다.

카앙!

쇳소리가 계속 울려 퍼진다. 상황은 지금까지와 같았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바이너가 노도 같은 공격을 퍼붓고 지크가 잘 퍼티며 요소요소 반격을 한다.

하지만 눈썰미 있는 자들은 알아챘다.

‘곧 끝나겠군.’

타이너는 이 놀랍고도 예상치 못한 결투의 끝을 짐작했다.

지크의 선전은 무척이나 놀라웠지만, 백작가 최고의 기사답게 그는 이미 지크의 빈틈을 알고 있었다.

바이너가 그 빈틈을 찌르기 시작하자 지크의 손발이 서서히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크 공자님의 실력은 정말 놀랍군. 저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 건가?’

기술들의 빈틈을 보아하면 아직 터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걸 포함한다 해도 완성도는 무척이나 놀라웠다.

‘아마도 기술 자체는 계속 연습을 하고 있었을 거야. 그게 마력을 각성하면서 급속도로 완성된 거겠지.’

지크가 사용한 기술들은 대단하지만 널리 퍼져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가르침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터.

‘그래도 대단한 건 변함이 없어. 어쩌면 정말로 그레이그 공자님을 밀어낼 수도 있겠는 걸.’

그가 흘끔 뒤에 있는 그레이그를 쳐다봤다. 그레이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결투에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파앗!

피가 튀었다. 관중석에서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피가 나온 곳은 지크의 팔뚝이었다.

‘깊어. 이걸로 끝이군.’

이제 지크는 항복 신호를 하고 결투는 끝날 것이다. 타이너가 무대로 내려갈 준비를 할 때였다.

푸욱!

다시 한번 피가 튀었다. 하지만 이번엔 지크의 피가 아니었다.

‘맞찔렀어?’

타이너의 몸이 얼어붙었다. 절대 예상 못한 상황이 지금 결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 *

“크으윽!”

바이너는 화끈거리는 상처 부위를 내려다 봤다.

왼쪽 팔뚝 안쪽에 긴 검상이 나 있고 그곳에서 피가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대체 뭐야!’

바이너는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지크의 기술 틈틈이로 보이는 허점을 노린 바이너의 전략은 통했다.

지크의 빈틈은 점점 커졌고 결국 방어를 뚫고 성공적으로 지크에게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 순간 같이 내질러진 지크의 검에 그 또한 상처를 입었다.

‘설마!’

거기서 바이너는 깨달았다.

‘아냐. 방어를 안 한 게 아냐. 방어를 포기한 거야!’

더 이상 방어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자신의 방어를 포기한 채 바이너를 공격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것이었다.

‘침착해라! 침착해, 바이너!’

이미 교육으로 많이 들어본 상황이다. 오히려 상황만 보면 자신이 유리한 상태다.

상대는 스스로 방어를 포기할 만큼 몰려 있었다. 상처가 쓰리긴 하지만 이 정도의 상처는 수십 번을 겪어 봤다.

하지만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산적단 토벌 같은 때 자포자기하고 달려드는 놈들은 많이 봤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의 상대가 전략적으로 이런 전술을 들고 온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천재 기사라고 해도 그의 경험은 일천한 것이다.

“긴장되지?”

지크가 말했다. 심각하게 스스로를 다잡는 바이너와는 다르게 지크는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바이너는 섬뜩함을 느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결투가 아닌 혈투가 될 거야. 정신 바짝 차리라고.”

지크가 바이너를 향해 달려갔다.

지금처럼 세련된 움직임이 아닌, 여기 저기 빈틈을 드러낸 무식한 돌진.

하지만 바이너는 그 빈틈을 찔러 넣을 수가 없었다.

그가 빈틈을 공격할 때, 지크의 강한 공격이 그의 몸에 직격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바이너는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말 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결투가 펼쳐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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