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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74화 (완결) (174/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74)

파슬란에겐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세 망자가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에블린, 아크 리치 마덴, 데스나이트 카게룬.

망령군주가 가장 신뢰하였으며, 그만큼 애정을 쏟았던 이들.

그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던 진혁이었기에.

척!

마덴과 카게룬이 동시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에선, 연유를 알 수 없는 따스한 감정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말로는 주군이라면서, 조금 전까지는 죽일 듯이 공격했던 것 같은데.”

허나, 마음과는 달리 그의 입가엔 차가운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송구합니다, 주군. 하지만 저희에겐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비꼬는 진혁의 말에 입을 연 것은 아크리치, 마덴이었다.

“확인?”

“주군께서, 저희 생각대로 진정 되살아난 것인지에 대한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답하는 리치.

진혁은 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너희 생각대로라니?”

“주군을 되살리기 위해, 에블린을 포함해 명계에서 숨어 살던 저희 셋은 주군의 영혼을 몰래 현계로 내보냈습니다.”

“그건 중죄일 텐데. 명계의 신이 어째서 너희를 가만히 둔 거지? 아니 그보다…… 영혼을 현계로 내보냈다고?”

“기억에는 없으실 겁니다. 영혼 전체가 아닌, 영혼이 담고 있는 정보만을 흩어 내보냈으니까요.”

“……영혼을 마음대로 조작하다니, 그딴 짓을 하라고 내가 사령술을 가르쳐 준 줄 아는 것인가.”

순간, 진혁은 분노했다.

영혼의 형질 자체를 변환시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명계의 신이 직접 나타나 처벌해야 할 중죄.

그 죄를 다른 누구도 아닌, 사령술을 가르쳐 준 망자가 직접 범했다는 사실이 그는 불쾌했다.

“제 영혼을 소멸시킨다 하더라도 감당하겠습니다. 허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알아 주십시오.”

“그럴 만한, 이유? 어디 들어는 보겠다.”

이미 죽은 심장을 뚫어 버릴 것처럼 노려보는 진혁.

마덴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계의 신이, 사라졌습니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명계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죠.”

“전쟁?”

전쟁.

마덴의 입에서 나온 두 글자의 단어는, 진혁을 머뭇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마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명계는 셋으로 나눠진 지 오랩니다. 명계의 신이 사라진 이후, 그 아래에서 명계를 관리하던 세 사도가 명계의 신이 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죠. 명계의 혼란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요. 이대로라면, 언제 명계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네.”

진혁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지만, 마덴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까 말씀드렸듯, 저를 소멸시키신다 하더라도 감당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죽은 망자의 회색 눈이, 산 자와 마주쳤다.

“주인이시여, 이 혼란을 정리하고 명계의 신좌에 올라 주십시오.”

*    *    *

“……뭐지.”

“이건…….”

게이트를 넘어 망자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던 선발대는, 어느 순간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괴수들이 공격을 멈췄습니다!”

“무슨 고렘도 아니고, 그냥 멈춰 버렸잖아?”

“지금이 기회다, 부상 당한 인원은 게이트 너머로 보내!”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동작을 멈춘 괴수들.

동상처럼 굳어 버린 괴수들의 파도를 바라보며, 선발대는 재빨리 정비를 시작했다.

“……성공한 건가?”

그 모습을 두정갑 안에서 지켜보던 설화는 진혁과 망자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분명, 망자들의 우두머리를 처리한다 했었지.’

그리고, 성공했다.

그것 말고는 셀 수 없이 많은 괴수들이 동시에 멈춘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해결된 모양이지.”

멈춰 버린 억 단위의 괴수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 괴수들과 직접 싸우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하, 싱겁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는 거대한 전쟁.

문자 그대로 수억의 괴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괴수로부터 지구를 지켜 내는 것이 이 자리에 선 자신들의 의무였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섰다는 사실은 선발대 오천 명 모두가 동일할 터.

허나, 그들에겐 목숨을 바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서진혁이 부리는 망자군단의 뒤를 받쳐 준 정도.

억 단위의 괴수를 막아 내기 위해 그들이 한 일이라곤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이었으니, 그녀가 어처구니없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서진혁, 넌 진짜…… 뭐 하는 새낀지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설화는 주변을 둘러봤다.

무명교의 성기사도, 오대 가문의 엽사도, 영국에서 온 왕실기사들도.

그들 모두의 표정이 허탈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단은…… 쉬어 볼까.”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긴장을 풀어선 안 되는 게 전투의 기본.

그러나, 그녀는 이미 진혁이 모든 상황을 해결했단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각을 마친 설화는 두정갑의 출입구를 열 다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입에 문 금색 곰방대를 빨아들이던 그녀의 시선이, 맞은편의 두정갑으로 향했다.

이가의 두정갑이 장비하고 있는 원거리 병기들 대신 여섯 자루의 근접무기를 전신에 장비한 강철 거인, 북두.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오직 한 대만이 존재하는 형태의 거인에서, 한 여자가 뛰어내렸다.

북두와 같이 여섯 자루의 병장기를 몸에 걸친 여자.

망자들을 제외하면 진혁과 가장 가까운 사람, 세한보안의 신주연이었다.

“나랑 똑같은 판단을 했나 보네?”

“설화 님도 마찬가진가 보네요.”

“천하의 서진혁이, 설마 죽어서 돌아오진 않을 테니까.”

“죽어도 다시 살아날 분이긴 하죠.”

“그러니깐 말야.”

그 말을 끝으로, 둘은 침묵을 지켰다.

곰방대를 입에서 뗀 설화와 옷매무새를 다듬는 주연.

둘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가 피어올라 부딪치던 그때.

쐐애애액!

하늘에서 들려온 공기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둘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마리의 용과 그 위에 탄 한 명의 사람.

서진혁과 그의 망자였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착륙한 용.

녀석의 등 뒤에서 지면으로 뛰어내린 진혁은 설화와 주연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주인공이 벌써 왔잖아?”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각자의 방식으로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

하지만, 그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뭐야,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없다.”

진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설화를 향해 고개를 내저은 다음, 입을 열었다.

“그저, 멀리 떠나야 할 일이 생겼을 뿐이다.”

“뭐, 일 끝났으니까 여행이라도 가겠단 거야?”

“멀리라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들을 향해, 진혁은 입을 열었다.

“명계로 갈 거다.”

“……죽으러 간다고?”

그것 말곤 산 사람이 명계에 갈 이유가 없으니, 설화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했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명계에 문제가 생겨서, 해결할 필요가 생겼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해결하고 나면 다시 돌아오겠다.”

“얼마나 필요한데?”

“못 해도 십 년, 어쩌면 그 이상.”

그의 마지막 말에, 설화와 주연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    *

진혁이 명계로 떠난 건, 에피로나 공략이 싱겁게 끝난 지 고작 이틀 뒤였다.

바로 출발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이틀이라는 텀을 둔 것은 작별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

“십 년이라면 한 번 기다려 봤으니 못 기다릴 것도 없겠다만…… 쯧, 몇 년 되지도 않아서 또 가 버리다니.”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명계가 안정화되고 나면 더 이상 제가 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버지, 서강진의 핀잔에 진혁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강진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돌아오는 건, 맞는 게냐?”

진혁은 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강진은 코웃음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욘석아. 쯧.”

“아마, 아버지 생전엔 돌아올 겁니다.”

“그래야지, 내 수명도 아직 오십 년은 족히 남았는데. 어서 가 보거라.”

그 말과 함께 애써 몸을 돌리는 아버지의 등을, 진혁은 잠시 동안 응시했다.

곧, 아버지가 사라진 그의 시야에 다른 이들이 들어왔다.

요정과 용, 난쟁이.

무명교의 성녀 클레어와 오대 엽사가문의 주요인물들에, 세한그룹에서 자신과 함께 일해 온 부하들까지.

스윽.

그와 친분이 있던 모든 사람들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그는, 몸을 돌려 오른손으로 허공을 그었다.

곧, 그의 앞에 차원의 틈이 열렸다.

죽은 자의 세계, 명계로 통하는 차원 문.

‘간다.’

진혁은 미련 없이 문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진혁의 망자들, 그리고 망자로 변한 에피로나의 수억 망자들이 그 뒤를 따라 새로운 세계로 향했다.

곧, 진혁의 눈앞에 명계의 모습이 펼쳐졌다.

‘심각하군.’

명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순환시스템은 멈춰 버린 지 오래.

시스템을 상징하는 백색의 나선 고리가 군데군데 끊어진 것을 보며,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명계의 신이 사라졌기 때문인가.’

결국, 이 혼란의 원인은 그것 하나였다.

세 사도가 신좌에 앉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 역시 그 때문일 테고.

그리고.

그 전쟁에, 진혁 역시 끼어들 생각이었다.

아니.

‘판을 뒤엎고, 명계를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

진혁이 데려온 수억의 망자들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이루어 주마.’

산산조각 난 순환시스템과 그 아래 폐허가 된 명계.

끊임없이 망자가 된 괴수를 뱉어 내고 있는 게이트 앞에서.

“가라.”

진혁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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