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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69화 (169/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69)

진혁이 아일랜드 방향에서 거대한 기운을 감지하고 한 시간 뒤.

그는 멜리나와 함께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사이의 좁은 바다, 아일랜드해 위를 날고 있었다.

-흑마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수준인데…….

바다 너머 섬 위로 보이는 검은 아지랑이.

그 속에 담긴 강력한 힘에 멜리나는 신음했다.

경계하는 것은 진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수준의 흑마력이라면, 나와 엇비슷한 수준일지도.’

그가 가진 흑마력이 망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

지금껏, 진혁이 만난 상대 중 사령술사인 그만큼 흑마력을 잘 다루는 존재는 없지 않았던가.

흑마력을 다루기는커녕,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자들이 대다수인 지구에선 사실상 나타날 수 없는 존재였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곧 육지가 보일거 예요, 주인.

“알았다.”

멜리나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서히 다가오는 육지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검은 심장 속의 흑마력을 양손에 끌어 올려 둔 채로.

곧.

“……저건.”

지상의 무언가를 발견한 진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은색으로 물든 거대한 고리.

그리고,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고순도의 에너지.

일점에 집중된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갈라져 버린 차원의 틈을 확인한 순간.

진혁은 눈앞의 고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인공 게이트라……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거였나.”

아일랜드는 크레온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땅.

그 위에 세워진 거대한 구조물과 구조물 내부에 형성된 게이트는, 분명 크레온의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진혁이 에피로나와 연결된 게이트를 폐쇄하는 데 위협을 느끼고 설치한 것이리라.

‘실패한 것 같지만.’

흑마력에 물들어 불길한 검은 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

그리고, 그 주변에 널려 있는 토막 난 시체들이 그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래도, 흑마력의 근원은 게이트인 것 같네요.

“명계와 직접 연결된 모양이다. 흑마력이 새어나오는 이유도 그때문이겠지.”

그러나.

모든 의문을 풀었음에도 진혁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저 게이트가 정말로 명계와 연결된 게 맞다면…….

‘명계에서 넘어온 존재 역시, 이곳에 남아 있겠지.’

그가 본 것이 맞다면, 명계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영혼의 순환시스템은 멈춰 버렸고, 시스템 안에서 정화되어야 할 악령과 망령들은 시스템 밖으로 빠져나와 쌓여 가고 있었으니까.

그들 중 일부만 게이트를 벗어났다 해도, 눈앞의 참상을 만들어 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어디냐.’

스으으!

흑마력을 빨아들인 진혁의 영안이 푸르게 빛나며 숨어 있을 악령과 망령을 쫓았다.

그 순간.

타아앗!

무언가가, 도시의 폐허 속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화살이 쏘아지듯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른 무언가가 향한 곳은, 진혁과 멜리나가 머물고 있던 허공.

-주인, 조심!

위협을 감지한 멜리나가 급히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떠올랐지만, 녀석은 마치 살아 있는 듯 방향을 꺾으며 멜리나를 따라갔다.

곧, 그들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너희, 뭐야?”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색 갑옷.

그리고, 가녀린 팔과는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낫을 오른손에 쥔 그녀의 입가엔, 생글거리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판타지 배경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우스꽝스러운 차림새였지만,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망자인가.’

망령도, 악령도 아닌 망자.

다시 말해, 상대는 사령술에 의해 되살아난 존재란 의미.

지구에 존재하는 사령술사는 오직 서진혁뿐이었지만, 상대는 그가 일으켜 세운 망자가 아니란 게 문제였다.

“용의 몸을 뒤집어씌운 망자에, 사령술사라…….”

한참 동안 용과 그 등에 올라탄 사령술사를 바라보던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진혁을 향해 물었다.

“너, 어째서 우리 주군의 사령술을 쓰고 있지?”

“……뭐라고?”

순간, 진혁은 경악했다.

주군의 사령술이란 단어를 들은 그가 떠올릴 수 있는 자는, 오직 한 명뿐이었으니까.

“……파슬란.”

“뭐야, 우리 주군의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야?”

진혁의 중얼거림을 들은 여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것도 잠시.

“너…… 아무래도 수상한데?”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진혁과 그의 손에 뭉쳐져 있는 흑마력으로 향헀다.

“어떻게…… 우리 주군의 사령술을 익힌 거지? 그분에겐 제자가 없었는데…… 설마…….”

한참 동안 혼자서 중얼거리던 그녀의 미소가, 점점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여자의 눈빛에 점차 광기가 깃들었다.

이내.

“……네가, 우리 주군을 죽인 거냐?”

여자가 쥔 낫이, 검게 빛났다.

촤아악!

조금 전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묵빛의 섬광이, 용과 사령술사를 두 동강 낼 기세로 공간을 갈랐다.

그러나.

카앙!

섬광은 끝까지 뻗지 못하고 중간에 가로막혔다.

“흐응?”

잘려 나가지 않고 자신의 낫을 막아 낸 비늘 덮인 꼬리.

그 모습을 본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막아 낸 건 아니었지만.

-아우, 내 꼬리! 다시 재생시키려면 얼마나 고생해야 하는데!

흑마력이 서린 낫에 반쯤 잘려 나간 꼬리를 보며 울상을 짓는 멜리나.

스으으!

진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흑마력을 모아 둔 손을 움직였다.

그의 바로 옆, 용의 등에 실어 둔 검은 상자를 향해.

철컥!

상자의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수의 뼈를 재료로 만들어진 수많은 병장기들.

쐐애액!

창과 도끼, 검과 방패가 기관포의 포탄처럼 연달아 쏘아져 나갔다.

흑마력을 가득 머금어 검은빛을 띄는 병기들의 칼날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평범한 괴수 정도는 단칼에 꿰뚫어 버릴 수 있는 예기.

“고작, 이 정도야?”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드는 무구를 향해, 그녀는 코웃음 치고는 손에 쥔 낫을 앞으로 내밀었다.

후우웅!

이내, 그녀의 낫이 빠르게 회전했다.

카강! 카가각!

창과 검으로 이루어진 탄환들이, 낫과 부딪칠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진혁이 쏘아 낸 병기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갑 급에 이르는 강력한 괴수조차도 당해내지 못할 힘을 가진 그녀를, 고작 리빙웨폰 따위로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흥.”

그사이 사라져 버린 진혁과 멜리나.

둘이 있던 자리를 노려보며, 그녀는 낫을 거두고는 남아 있는 흑마력의 흔적을 찾았다.

“도망칠 수는 없을 거다, 이 도둑놈.”

쐐애액!

흔적을 쫓아 비행하는 그녀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    *    *

여자를 따돌린 진혁은 멜리나의 등 위에서 생각에 잠겼다.

‘역시…….’

그녀의 모습은 분명 진혁의, 파슬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니까.

‘에블린.’

망자의 종류 중 하나인 흡혈귀, 뱀파이어.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흡혈귀들의 정점에 선 진조(眞祖), 뱀파이어 로드다.

‘게다가, 파슬란의 세 심복 중 하나지.’

세 심복 중 가장 늦게 파슬란의 손에 들어왔으나, 그 누구보다 망령군주에게 충성을 바쳐 온 자.

그녀가 파슬란의 사령술을 사용하는 진혁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하나.

‘파슬란은 죽었을 텐데.’

어떻게, 그 권속이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망자는 사령술사의 흑마력과 의지에 의해 유지된다.

그 의지와 흑마력을 담아 낼 육체가 사망한 순간, 그 권속인 망자들 역시 힘을 잃고 망령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야만 한다.

망자들이 육체를 가진 채 현계를 어지럽히는 것은 명계의 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니, 그렇게 내버려 둘 리도 없고.

‘명계가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인가.’

그렇기에, 진작 영으로 돌아가야 할 망자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리라.

그것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몸에 지닌 채.

‘우선은, 게이트를 부숴야 한다.’

아마도, 에블린의 몸을 유지하는 흑마력은 게이트 너머 명계의 것일 터.

게이트와 거기에 동력을 공급하는 인공구조물을 파괴한다면, 에블린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녀의 발을 묶어야 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갑 급 괴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지닌 데다, 죽지도 지치지도 않는 존재.

진혁이 부리는 망자들 역시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파슬란의 권속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로서도 전력을 다해야만 가까스로 상대를 저지할 수 있으리라.

‘우선은…….’

진혁은 품에서 꺼낸 검은 구슬, 명계의 조각을 힐끔 내려다봤다.

이내, 그는 구슬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삭!

그의 손에 쥐어진 명계의 조각이 손아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그러나, 구슬의 파편은 그의 손에 상처를 입히는 대신 스며들듯 흡수되었다.

스으으!

그와 함께, 파편 속에 깃들어 있던 명계의 권능이 진혁의 몸 전체를 휘돌았다.

등줄기로 올라오는 짜릿한 감각 속에서, 진혁은 목적지인 히드로공항을 내려다봤다.

수많은 비행기들이 멈춰 선 주기장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비행정.

스으으!

세한을 상징하는 일곱 별이 새겨진 HV-13 검독수리의 동체를 향해, 진혁은 흑마력을 불어넣었다.

‘움직일 시간이다.’

그의 명령과 함께.

곧.

쿵! 쿵!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혁 님.

-이번엔 어떤 상대요, 주군?

-마침 새 마법을 개발했는데, 데이터를 쌓을 좋은 기회군요.

-후후…….

성준과 자이츠, 민호와 무명.

진혁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들.

각자 자기 할 말만 지껄여대는 망자들을 향해, 진혁은 짧게 답했다.

“강적.”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으으으!

진혁의 뒤를 쫓아온 에블린의 검은 기운이, 하늘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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