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65)
클레어가 머무는 저택 지하에 위치한 성녀 전용 예배실.
저택의 주인인 성녀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고요한 곳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무슨 일이냐.”
클레어가 진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
발밑의 개미를 향해 말을 거는 인간과도 같은, 오만하고도 고고한 목소리.
금발 소녀의 얼굴에서 나온 말투라기엔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진혁은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어 불렀다, 이름 없는 신이여.”
“인간 주제에 신을 오라 가라 하다니, 이런 불경한.”
이름 없는 신.
자신의 종에 강림한 신은 진혁의 말에 불쾌한 척했지만, 성녀의 표정엔 묘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인간 주제에 죽은 자의 힘을 다루고, 되살릴 수 있는 존재.
신조차도 다루기 힘든 것을 다루는 인간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오라가라 할 자격이 있었으니까.
“그래, 얼마나 대단한 이유인지 들어나 보도록 하겠다.”
신의 힘을 지닌 인간을 바라보며, 클레어의 몸을 덧입은 이름 없는 신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게 뭔지 알고 있나?”
진혁이 무언가를 내민 순간.
그의 흥미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흑진주를 주먹만 한 크기로 키워 놓은 듯한 형태의 검은 보석.
“아니, 처음 보는군. 하지만……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져. 죽은 자의 기운인가?”
클레어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알 수 없는 검은 빛을 슬그머니 내뿜는 구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혁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명계의 조각이라고 한다.”
“명계의 조각이라. 죽은 이들의 세계와 관련된 물건인가?”
“그렇지. 정확히는, 징표 중 하나다.”
“징표라면?”
신의 물음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현계와 명계가 섞이고 있다는 징표.”
그가 대답을 마친 순간.
“……뭐라고?”
이름 없는 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혁의 말이 이어졌다.
“이건 명계의 흑마력이 현계의 물질에 스며들면서 만들어지는 보석이다. 명계의 흑마력이 현계에 공급되는 경우는 세 가지. 나와 같은 사령술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거나, 현계에 흑마력을 지닌 망령이 너무나 많아 자연적으로 형성되거나.”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우선, 진혁은 자신의 영지 외에서 명계의 조각을 만든 적이 없었다.
또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
명계의 조각이 현계에서 자연 발생하기 위해선 십억 단위의 망령이 세계를 배회해야 하지만, 지구상엔 아직 그만한 망령이 생겨 날 만한 대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명계와 현계가 섞이면서 명계의 에너지가 유입된 것이거나.”
“말도 안 돼.”
신은 경악했다.
죽은 자들의 신이 아니었으니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지 못했으나,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가 뒤섞이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 정돈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이름 없는 신을 향해, 진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너희가 연 게이트 때문이겠지.”
“뭐?”
“에피로나와 지구를 잇는 게이트는 명계를 경유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양쪽 세계에 명계의 힘이 새어 나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명계와 현계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사령술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
그 의무를 고의로 어긴 이름 없는 신을, 진혁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다.
“네가 요정왕에게 그 방법을 귀띔해 줬을 테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내가 신이라고는 하지만, 죽은 자들의 세계를 알지는 못한다. 그곳을 관장하는 것은 오직 죽은 자의 신뿐이니.”
“그러면, 알지도 못하면서 명계를 통로로 이용할 생각을 한 거군.”
진혁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름 없는 신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름 없는 신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신의 물음에, 진혁은 짤막하게 답했다.
“말 그대로, 두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다.”
“그러니까, 그게…….”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없으니, 명계의 순환시스템에서 정화되어야 할 망령과 악령들이 산 자를 물어뜯겠지. 새롭게 태어난 망령들은 또다시 산 자를 공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녀의 몸을 뒤집어쓴 진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산 자들은 모두 죽어 망령이 되고, 지구와 에피로나는 명계에 흡수될 것이다.”
“맙소사.”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결과.
진혁의 대답을 들은 이름 없는 신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를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되돌릴 방법은…… 있는 게냐.”
“없지는 않다.”
침통한 표정을 지은 신을 향해,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선택을 해야겠지만.”
“선택이라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름 없는 신.
조언을 바라는 그를 향해, 진혁은 가리켰다.
“에피로나를 포기해라. 그러면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를.
* * *
게이트가 열리면서 에피로나의 괴수들이 지구에 쏟아졌을 때.
괴수가 인류에게 준 것은 파괴와 죽음뿐만이 아니었다.
괴수로부터 인류를 방어하고, 괴수의 부산물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부가가치들.
괴수가 인류의 삶을 파괴하는 만큼, 괴수로 인해 생겨나는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이 인류의 삶을 지탱했다.
다국적 기업, 크레온의 최대주주이자 CEO인 스미스 헤인즈워그 역시 그중 하나였다.
전 세계의 게이트를 닫고 에피로나의 괴수를 모두 청소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다.
“그러면 곤란하지.”
런던의 중심, 시티 오브 런던에 위치한 크레온의 본사.
사장실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진혁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스미스는 고개를 저었다.
“괴수는 이 시대의 금광이야. 그 광산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닫아 버리겠다고?”
현대사회에서 괴수의 부산물은 일상에 널리 보급되어 있다.
마정석을 이용한 동력원부터 그 부산물을 활용한 각종 화학물질과 자재까지.
그리고 크레온은 괴수의 사냥부터 생산, 판매까지 모든 산업에 관여하는 거대기업이다.
버려진 섬, 아일랜드에서 사냥되는 괴수들로부터 얻어 내는 이익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수준.
그러나, 서진혁이 아일랜드의 게이트를 닫아 버린다면.
“그렇게 되면, 크레온은 파산입니다.”
함께 인터뷰를 지켜보던 부사장, 윌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괴수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기업에게, 원료인 괴수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그래, 우리가 20년 넘게 일궈온 이 기업이……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겠지.”
당연히, 두 사람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그럴 만한 자본도, 기술도 있었다.
“윌슨.”
“네.”
“지난번에 말했던 그 계획…… 정말로 가능한 건가?”
“이미 실증단계에 들어간 상태고, 곧 아일랜드에서 프로토타입을 시험해 볼 계획입니다. 연구진의 말에 따르면 실패할 가능성은 10% 이내입니다.”
“그래, 성공한다면 우리가 세계 최초가 되겠군.”
윌슨의 말에, 스미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에, 크레온의 농장이나 다름없는 괴수들의 천국, 아일랜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놈이 게이트를 닫는다면, 우리가 열어 버리면 그만이지. 안 그런가?”
그 위에서, 자신이 새롭게 만들어 낸 인공 게이트의 모습도.
“아무래도, 직접 보러 가야겠어. 언제라고 했지?”
“사흘 뒤입니다.”
“좋아.”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스미스.
스크린 속 서진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담겨 있었다.
‘다국적기업 크레온, 서진혁의 게이트 폐쇄 선언에 반대성명. ‘괴수산업의 종말을 강요하지 말라.’
“재밌군, 이런 말을 정말로 입에 담는 자가 있을 줄이야.”
“크레온이라면 괴수 산업의 비중이 90% 이상이니까요. 세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집중돼 있죠.”
검독수리.
영국으로 향하는 수직 이착륙 극초음속 비행정의 내부에서, 진혁과 주연은 태블릿의 기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연의 대답을 들은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왕이 급히 우리를 부른 것인가.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크레온은 영국 정계와 재계 전체에 손을 뻗은 거대기업이니까요. 한국의 다섯 가문을 합린 것과 비슷한 수준의 규모니까, 사실상 영국을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닌 것과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일까.
진혁의 인터뷰 발표 이후, 영국의 의회와 정부는 게이트 폐쇄를 환영하는 다른 나라들과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괴수산업을 지켜야 하니 게이트의 폐쇄를 유예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크레온의 주장과 비슷한 이야기.
이미 괴수에게 버킹엄 궁이 파괴된 적이 있던 왕실 입장에선 영국의 게이트를 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크레온이 고깝게 보일 수밖에.
“그러면, 우리가 가서 할 일은 뭐지?”
“공식적으로는 여왕의 생일 기념 파티 참석입니다만, 비공식적으로는 그 자리에서 게이트의 폐쇄를 원한다고 합니다.”
“쉬운 일이군.”
이미 여러 나라에서 수차례 해 온 일이었으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오 분 정도 집중해 명계와의 연결을 끊어 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아마, 진혁을 방해하려는 자들은 그가 언제 게이트를 폐쇄했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히드로 공항 도착까지 3분 남았습니다.”
“좋아.”
주연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착륙 이후에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은 게이트를 미리 폐쇄해 놔야겠군. 혹여나 방해할 가능성도 생각해 두어야 하니.’
그러나.
그의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영혼에, 진혁은 생각을 멈추곤 표정을 굳혔다.
전신이 검게 물든 채, 흑마력을 조금씩 주변으로 흩뿌리고 있는 영혼들.
진혁이 이미 한 번 마주쳤던 존재들이, 그곳에 존재했다.
‘악령…….’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악령들을 마주한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