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64)
구름 낀 쾰른의 밤하늘에선 비 대신 해골이 내렸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닌, 진짜 해골과 시체의 몸을 가진 망자들이.
딱딱! 딱딱딱!
무너진 대성당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망자들은 곧장 주변의 괴수들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서걱!
육체는 죽은 지 오래되어 녹슬고 삐그덕거리기 일쑤였지만, 그들이 손에 쥔 날붙이와 오랜 전투경험으로 다져진 망령들의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망자들은 순식간에 주변의 괴수들을 베어 버리고는 전방의 주인, 진혁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서 전선을 형성했다.
푸욱!
“키이이이!”
“크아아!”
망자들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괴수들의 시체가 바닥에 쌓인다.
아래와 연결된 계단으로부터 끊임없이 놈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지만, 고작해야 병급에 불과한 괴수들이 망자의 군세를 당해 낼 방법은 없었다.
곧, 망자들을 앞세워 괴수를 도륙하던 진혁은 대성당의 지하에 도달했다.
‘여기인가.’
지하의 예배당 한가운데서 여전히 수많은 괴수를 쏟아 내고 있는 게이트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게이트 주변으로 향했다.
갑옷을 입고 검을 든 성기사들과, 그들의 뒤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선 주교, 베리엘.
“주, 죽여! 공격해!”
베리엘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망자들 사이에 선 진혁을 가리키자, 성기사들이 참마검, 클레이모어를 빼 들었다.
‘죽었군.’
영안을 발동한 진혁은 성기사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죽은 상태에서 의지 없이 움직인다라. 망자의 조건은 간신히 갖춘 건가.’
망자를 부리는 마인이라니.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존재를 마주한 진혁은 흥미를 느꼈다.
척! 척!
그 와중에도, 성기사들은 진혁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쥔 것은 마를 베는 검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검게 빛나는 마기.
이미 신을 저버린 성기사들에게, 살육에 대한 망설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저급하군.’
사령술사의 정점에 오른 자.
망령군주 파슬란 드 노미크롬의 힘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진혁의 눈엔 어린아이 장난 수준도 되지 않았다.
그의 손이 삼 미터 길이의 검을 앞세운 채 흐리멍텅한 검은 눈으로 다가오는 성기사들을 향해 뻗어졌다.
“망령이여, 명계의 율법에 따라 내 명을 따르라.”
스으으!
망령군주의 손으로부터 칠흑의 기운, 흑마력이 쏟아져 나갔다.
쐐애애액!
연기처럼 퍼져 나가던 기운은 곧 수십의 작살로 뭉쳐 성기사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녀석들의 목표는, 완전히 멈춰 버린 지 오래된 기사의 심장.
검은 작살들이 성기사의 두꺼운 갑옷을 소리 없이 뚫고 그 뒤에 자리한 심장으로 파고든 순간.
척.
성기사들은 마치 누군가가 발목을 붙잡기라도 한 듯 그대로 자리에 멈춰 섰다.
이내, 그들의 몸이 반대로 돌아섰다.
“아…… 아니……!”
자신들을 죽이고 종으로 만든 존재, 베리엘 주교를 향해.
“말도…… 말도 안 돼……!”
순식간에 진혁의 것이 되어 버린 성기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베리엘은.
“이익! 이렇게 끝날 순 없다!”
곧장 뒤에 있던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에피로나로 돌아가서, 다음 기회를……!’
마왕과 함께 모든 마인이 목숨을 잃은 이상, 그는 지구상에 남은 최후의 마인.
새로운 마왕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이렇게 허망하게 잃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지이이잉!
베리엘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괴수들을 쏟아내던 게이트.
그 게이트가,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으니까.
“게…… 게이트가!”
그제야, 베리엘은 진혁의 능력을 떠올렸다.
에피로나와 지구 사이에 연결된 게이트를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인간 중에선 오직 진혁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
잠시 동안 게이트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베리엘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그곳엔, 서진혁과 수많은 망자들이 괴수의 시체를 밟고 서 있었다.
“이제, 도망갈 곳은 없겠군.”
딱딱! 딱딱딱!
진혁의 말에 호응하듯, 주변 스켈레톤들의 뼈마디가 소리를 냈다.
“자, 잠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베리엘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금 전 게이트가 있던 뒤쪽을 가리켰다.
‘흠.’
시선을 그쪽으로 향한 진혁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
렌 슈미트.
클레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그녀가, 이곳에 있었다.
검은 쇠사슬에 묶인 채 기둥에 매달린 은발의 그녀는 이미 의식을 잃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년은 이미 내 마기에 침식된 지 오래다! 나를 죽인다면, 저년 역시 멀쩡히 살아 있을 수는 없을걸?”
애초에 이런 목적으로 살려 둔 것인지, 기절한 렌을 가리킨 베리엘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진혁의 반응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런가.”
“뭐, 뭐라고?”
무덤덤하게 중얼거리는 진혁의 반응에 순간 당황한 베리엘.
허나, 진짜 놀랄 일이 벌어진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스으으!
진혁이 손을 한 번 휘젓자,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빠르게 렌을 휘감은 사슬로 향했다.
검은 심장에서 퍼 올린 진득한 흑마력과 마기의 사슬이 접촉한 순간.
파삭!
순식간에 흑마력에 힘을 빼앗긴 마기의 사슬이 힘을 잃고 부서져 내렸다.
그녀의 몸에 남아 있던 마기 역시 마찬가지.
털썩!
“말도…… 말도 안 돼…….”
힘없이 기둥 앞에 쓰러진 호위기사.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베리엘의 시선이 진혁에게로 향했다.
“그래, 더 보여 줄 것은 없는 모양이군.”
그 말과 함께, 진혁의 영안이 푸른 빛을 뿜었다.
* * *
대성당에서의 전투는 채 해가 뜨기 전에 끝났다.
베리엘을 처치하고 망자들을 시켜 주변 정리를 끝낸 진혁은 떠오르는 해를 등진 채 베리엘이 죽은 자리를 바라봤다.
놈의 시체는 이미 치운 지 오래였지만.
‘뭔가 있군.’
진혁은 베리엘이 죽은 자리에서 익숙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곤 미간을 좁혔다.
그 자리는 분명, 조금 전 진혁이 닫은 게이트가 열려 있던 장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파라.’
딱딱! 딱딱딱!
진혁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자, 몇 명의 망자들이 뼈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병장기를 내려놓은 그들의 손은 이미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오러에 의해 검게 물들어 있는 상태.
진혁이 가리킨 곳에 도착한 망자들은 망설임 없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하실의 바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카각! 카가각!
망자들의 손이 바닥을 헤집는다.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이루고 있던 암석이 모래처럼 으스러진다.
‘저건…….’
스켈레톤들이 손으로 퍼낸 모래 사이에서, 진혁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딱딱! 딱딱딱!
곧, 망자들은 진혁에게 문제의 물건을 가져왔다.
그는 스켈레톤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든 물건을 집어 들고는 눈앞으로 가져왔다.
‘어째서…….’
흑진주가 열 배쯤 커진다면 이런 모습일까.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색으로 물든 동그란 보석을 바라보며, 진혁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에겐, 망령군주 파슬란에겐 너무나 익숙한 물건.
하지만,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명계의 조각이라니…….’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색으로 물든 동그란 보석을 바라보며, 진혁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 * *
클레어.
이단자들의 위협을 피해 탈출했던 무명교의 성녀가 다시 본단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성전기사단!”
“그 옆에는 각 나라의 사제들인 것 같은데. 숫자 좀 봐.”
“해외의 사제와 기사들은 모두 성녀님을 따른다고 했던 게 사실이었어.”
“그 주교놈들, 우리한테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더니!”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숫자의 사제들과 기사들로 이루어진 행렬을 마주한 쾰른의 신도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녀님이다!”
“성녀님께서 돌아오셨어!”
“이름 없는 신이시여…….”
행렬의 중앙에서 걸어오는 성녀를 발견한 사람들은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클레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렌…….”
성녀를 탈출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기사.
혹시나 그녀가 이 자리에 나와 있지는 않을까, 클레어의 눈은 자신을 향해 환호를 보내는 신도들 사이를 바삐 오갔다.
그리고.
클레어와 그녀를 호위하는 일행들이 무너진 대성당 앞에 도착했을 때.
“아……!”
성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얼마 전 괴수들의 공격에 무너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폐허가 된 대성당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폐허엔, 그녀가 찾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렌!”
서진혁.
그리고 렌 슈미트.
폐허 위에 선 두 사람을 발견한 클레어는 곧장 둘을 향해 달려갔다.
“성녀님!”
“위험합니다!”
성녀를 호위하던 성기사들이 놀라 소리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렌!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호위기사를 붙잡은 클레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혹시나 다친 곳은 없는지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성녀님.”
“다행이다…… 정말 걱정 많이 했단 말이에요…….”
호위기사를 꼭 끌어안은 그녀의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렌의 흙먼지 묻은 옷에 눈물 자국이 졌지만, 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성당 지하의 게이트 근처에서 발견했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인질로 삼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더군.”
예상치 못한 진혁의 기습에 의해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실제로 일어났다면 클레어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을 터.
“……고마워요. 진혁 님께는 번번이 신세를 지네요.”
곧, 성녀는 울음을 그치고는 옆의 진혁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허나.
“이게 뭔지, 알고 있나?”
진혁은 대답 대신 그녀에게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구슬.
“아뇨.”
주변의 빛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 같은 진한 검은색의 보석을, 성녀는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에요. 혹시 어디에서…….”
“대성당의 지하를 파 내려가니 나오더군.”
진혁은 고개를 갸웃하는 클레어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 분쯤 지났을까.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진혁의 입이 열렸다.
“네, 뭐든지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성녀.
그녀를 향해, 진혁은 짧게 말했다.
“이름 없는 신을 연결해 다오.”
진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