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63)
‘나, 교단의 수호자 서진혁은 성녀를 지지할 것이다.’
무명교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데에는 진혁의 한마디면 충분했다.
서로를 이단이라 말하는 성녀와 주교회의 사이에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무명교의 성기사와 사제들은 둘 중 어느 한쪽 편을 골라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선택은 한쪽으로 쏠렸다.
“성녀님이 이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분은 우리 교단의 위기를 직접 구해낸 분이라고!”
“게다가, 본단의 괴수들을 처리한 서진혁 님까지 싸잡아 이단으로 몰다니…… 말도 안 돼.”
본단에 머물고 있는 주교회의 직속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제외한 자들.
그들의 선택은 성녀와 서진혁이었다.
그들의 눈에, 새로 주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보다는 교단의 위기 앞에서 헌신했던 두 사람이 더욱 믿음직스러웠으니까.
“이름 없는 신이시여, 성녀를 보우하소서…….”
“내, 이 검으로 성녀님을 지키고 쾰른의 이단들을 직접 베어 버리겠소!”
쾰른에 위치한 본단을 뺀 대부분의 교구와 성기사 지부가 성녀의 편으로 돌아선 상황.
그들의 선택은 하나였다.
“쾰른의 이단들을 모두 처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본단엔 이단들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신도들에게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어쩔 수 없소. 이단자를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신도들도 이해할 거요.”
전 세계의 성기사들이 검을 들었고, 사제들은 경전을 쥔 채 신전을 나섰다.
하지만.
쾰른의 주교들을 공격하기 위해 일어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감히, 우리의 구세주인 서진혁 님에게 적의를 드러내다니!”
“그분 덕분에 그이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서진혁 님이야말로 괴수로 가득한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할 분입니다. 지켜야 합니다!”
일본과 중국, 한국.
진혁이 게이트를 닫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칭 ‘서진혁 교단’의 사람들이 움직였다.
각 국가의 길드와 가문, 혹은 엽사 개인.
진혁에게서 도움을 받거나 그의 행동에 감명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자들은 순식간에 숫자를 불려 나갔다.
“진혁 님을 지켜라!”
“우리는 쾰른으로 간다!”
무명교와 서진혁 교단.
같은 목적을 지닌 두 집단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 * *
“흠…….”
베리엘.
주교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마인.
“역시…… 그렇게 쉽게 뒤집히지는 않는 건가.”
무명교의 본단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에서, 베리엘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거였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하나씩 처리할 걸 그랬군.”
클레어와 서진혁.
둘 모두를 이단으로 묶어 처리하려던 그의 계획은 예상보다 더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교단의 절반 이상, 해외 교구의 거의 대부분과 성전기사단의 지부가 그에게 반기를 들었고, 베리엘 자신을 이단으로 지목한 상황.
게다가.
“서진혁 교단이라니…… 유치한 놀음이나 하는 것들이.”
서진혁을 숭배하는 이들까지 그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유치한 놀음이라고 폄하하기는 했지만, 그 놀음에 가담한 자들 하나하나는 분명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은 실력을 지닌 헌터들.
그들과 무명교의 절반이 힘을 합쳐 본단으로 공격해 온다면.
“아마, 지겠지.”
주교회의와 그들의 가문에 속한 성기사들이 아니라면, 질 게 뻔한 싸움에 가담할 리 없다.
아니, 가문 소속의 성기사들이라해도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이름 없는 신을 저버린 자로 낙인찍힌 채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자는 없을 테니까.
베리엘에겐 명백히 불리한 상황.
하지만.
“……혹시 몰라서 준비해 둔 건데, 정말로 쓰게 될 줄은 몰랐군.”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베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주교님, 도와드릴 거라도?”
그가 방문을 나서자, 문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성기사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아. 마침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그 말에, 베리엘은 성기사를 향해 미소를 머금으며 손짓했다.
성기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그때.
스으으!
베리엘의 손이 검게 번뜩였다.
푸욱!
“커, 커컥…….”
목을 꿰뚫린 기사의 입가에 피거품이 새어 나왔다.
치명상을 입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목에 박힌 베리엘의 검은 손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채 팔을 들어 올리기도 전.
스으으으!
베리엘이 박아 넣은 검은 손이 사악한 기운을 뿜어냈다.
마인이 품고 있는 고유의 기운, 마기.
신을 섬기는 사제의 껍데기를 벗어던진 그의 진정한 힘이, 성기사의 몸을 제멋대로 헤집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후우.”
성기사의 목에서 손을 빼낸 베리엘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은 스스로 아물어 가는 성기사의 구멍 뚫린 목으로 향해 있었다.
곧, 완전히 회복된 성기사와 눈을 마주친 베리엘의 입이 열렸다.
“내가, 누구냐.”
말과 함께, 주교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었다.
검은 눈에서 새어 나온 소량의 마기가 신성력으로 물든 주변의 공기를 침식했다.
곧, 성기사의 입이 열렸다.
“제…… 주인이십니다.”
신이 아니라 한낱 주교 따위를 주인이라 칭하다니.
이름 없는 신의 검을 자처하던 그의 입에선 나올 수도, 나와서도 안 되는 말.
그러나.
“정답이다, 기사여.”
대답을 들은 베리엘 주교는.
“이제…… 더 머뭇거릴 틈이 없겠어.”
아니.
잠식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마인, 발카누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 * *
강화도의 세한보안 인천지사 본관.
유리와 강철, 그리고 약간의 마법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가장 큰 사무실에 앉은 자는 단 둘뿐이었다.
진혁과 청명.
“세계가 너를 위해 돌아가고 있으니,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겠구나. 무명교의 본단도 곧 스스로 무너지겠어.”
진혁과 클레어가 무명교의 주교회의로부터 이단이라 지목당한 이후, 그동안 계속 상황을 살펴 왔던 청명은 결론을 냈다.
이미 성녀는 교단의 과반수를 손에 넣었고, 서진혁 교단이라는 이름의 지원군이 함께하고 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
그녀의 말대로, 진혁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혁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지.”
“어째서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분명,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모든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것이다.
한곳으로 모인 전 세계의 성전기사단과 무명교의 사제들, 그리고 서진혁 교단을 자처하는 엽사들이라면 그의 도움 없이도 쾰른을 탈환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문제였다.
“전 세계에 퍼진 교단이 한곳에 모이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리겠지. 그 사이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한 달.
전 세계에 퍼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일 만큼 긴 시간.
그동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면,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직접 나설 생각이겠구나.”
“그렇지.”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청명은 그의 뒤를 따라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곧.
“이미 마음을 결정한 것이었더냐.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구나.”
인천지사 건물 밖으로 나온 그녀는 정문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물체를 발견하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HV-13 검독수리.
기수 아래의 화물칸을 활짝 개방한 검은색의 비행정이 거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보다 앞서 바닥에 내려선 검독수리를 맞이하고 있던 진혁이 고개를 돌려 용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겠나?”
“거절해야 할 이유는 없겠구나. 그러도록 하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미소를 짓는 청명.
“그러면, 출발하도록 하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니.”
반쯤 망자가 된 그녀를 바라보던 진혁의 눈이 빛났다.
* * *
어느 순간부터, 무명교의 본단이 위치한 쾰른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요즘 성기사님들이 얼굴을 잘 안 비추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종종 순찰을 돌던 분들이 요즘 통 안 보여.”
“설마, 이단으로 낙인찍힐까 봐 탈출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 주교님들에게 묶여 있는 걸지도…….”
그 시작은, 쾰른의 치안을 유지하던 성기사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후.
대부분이 이름 없는 신의 독실한 신자였으니 치안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 사실이 신도들의 마음속 의문과 두려움까지 없애 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밤만 되면 대성당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더라고.”
“요즘 같은 때에 그런 소문이 돈다고? 이런 믿음 약한 사람들을 봤나…….”
“하지만…… 내 친구가 밤에 대성당 청소를 하러 갔다가 들었다니까? 그, 있잖아. 내 친구 빌.”
“그 친구면 제법 독실한 편 아니었나?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고?”
대성당과 관련된 이상한 이야기들까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바깥의 성전군과 대성당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문은 신도들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쐐애애액!
오늘 밤.
구름 위에서, 그 모든 소문을 합친 것보다 강력한 존재가 지상으로 강림할 것이란 사실을.
콰아앙!
“무, 무슨 소리야!”
대성당으로부터 들려온 굉음에 놀란 주민들은 창문을 열고 어둠에 잠긴 대성당을 바라봤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대성당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대성당을 둘러싼 화염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대성당이…….”
“불타고 있어…….”
몇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무너진 대성당을 마주한 신도들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키에에에!”
“크아아!”
대성당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괴수들.
그리고.
서걱!
퍼어억!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그들을 단숨에 베어 버리는 망자의 군세.
“역시…… 너희들이었나.”
마인.
달려드는 대성당의 괴수를 바라보며, 진혁은 싸늘하게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