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61)
쾰른에 위치한 무명교의 본단.
괴수로 변이한 주교들에게 본단이 파괴된 이후, 무명교는 가용 가능한 모든 역량을 본단의 복구에 투입시켰다.
그 덕분일까.
복구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만에, 뼈대만 남아 있던 대성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옛 모습을 거의 되찾아가고 있었다.
대성당을 되찾은 쾰른과 무명교는 서서히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지만.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새롭게 뽑힌 열두 주교 중 하나, 베리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수호자가 게이트를 닫은 이후로, 수호자를 신처럼 여기고 숭배하는 자들이 나타났다더군. 아직은 한국에서만 퍼지는 수준이지만…….”
“이단이잖습니까.”
“……그렇지.”
설명하는 주교를 향해 베리엘이 차갑게 말하자, 주교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
신의 뜻에 반하는, 존재만으로도 교단에 위협이 되는 것.
그 중심이 무명교의 수호자 직함을 받은 자라면 더더욱 큰일이다.
베리엘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주교들을 향해 말했다.
“교단이 둘로 갈라질 수도 있는 일이니, 이단의 존재는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합니다.”
물론, 베리엘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망자를 끌고 다니던 놈이 이제는 산 자들까지 끌고 다니려 하는군. 가만히 내버려 두면 곤란해.’
혹여나, 정말로 무명교가 진혁의 밑에 붙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진혁을 마왕으로 몰아가려는 그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그자를 무슨 수로?”
베리엘의 말에 다른 주교가 반문했다.
“죽은 자들의 군대를 수만씩 끌고 다니는 자요, 그자를 잡으려면 교단 전체가 움직여야겠지.”
동의한다는 듯, 베리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그러니 우선은, 교단에서 성전을 선포해야겠죠.”
“허나, 가능하겠습니까? 성녀께서 그자를 비호하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였다.
성녀, 클레어는 과거부터 서진혁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
그를 대상으로 성전을 선포한다는 주교들의 요구에, 과연 성녀가 따라 줄까?
“아무리 우리가 성전을 열려 해도, 성녀께서 움직이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을 거요.”
“그렇다면, 움직이게 해야지요.”
“그게 무슨…… 설마?”
의미심장한 베리엘의 말에, 주교 하나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베리엘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단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 역시, 이단이 아니겠습니까.”
“……당신, 미쳤군.”
다른 주교들 역시 그의 말에 놀란 것은 마찬가지.
“그 어느 때보다 신도들의 지지가 굳건한 성녀를 이단으로 몰겠다니, 까딱 잘못했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이 날아갈 거요.”
“그러니, 주교님들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말을 마친 베리엘이 씨익 웃었다.
“우린, 한 배를 탄 몸이 아니겠습니까?”
* * *
한국의 게이트를 모두 폐쇄한 진혁의 다음 목표는 일본이었다.
국토 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게이트 폐쇄의 효과가 더욱 극대화될 수 있는 곳.
게다가, 도교에서 괴수들의 공격을 막아 낸 이후 한국과 서진혁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은 남달랐다.
벌써부터 한국의 열풍에 영향을 받아 서진혁을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 나타날 정도였으니까.
“오랜만이에요, 신 님.”
“너도 그 놀음에 끼어 있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당신의 업적은 유명하거든요.”
시마즈 카스미.
진혁의 물음에 시마즈 가문의 후계자인 그녀가 싱글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도쿄를 괴수로부터 구해 줬던 존재가 이제는 일본을 구원하러 왔다니, 누가 봐도 신이잖아요?”
“허상일 뿐이지.”
“그럴 수도 있지만, 당신이 해낸 일은 신이란 허상에 힘을 줄 만큼 대단했으니까요.”
경외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카스미.
진혁은 그녀에게서 잠시 눈을 떼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게이트의 폐쇄식을 진행하기로 한 도쿄의 아사쿠사 신사 안은 이미 사람과 카메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장소는 일부러 이곳으로 고른 건가?”
“게이트를 마음대로 열고닫는 건 보통은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에 어울리는 자리를 제공했을 뿐이에요.”
“나쁘지 않군.”
원치 않는 일이긴 했지만, 그에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늘어나는 일이니 나쁠 것은 없었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기다리는 사람도 많으니.”
말을 마친 그녀는 주변의 부하들 중 하나를 잡고 무어라 말했다.
곧, 명령을 받은 부하가 어딘가로 뛰어갔다.
“진혁 님, 게이트를 닫는 건 얼마나 걸리나요?”
“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 어떤 전조증상도 없이.”
“그건 좀 아쉽네요. 시각적인 효과가 있어야 더 극적인데.”
진혁의 말에 카스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채 오 초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낯빛은 완전히 바뀌었다.
타앗!
수많은 군중과 카메라 사이에서 진혁을 향해 날아드는 몇 명의 사람들.
“조심!”
스르릉!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그녀가 진혁의 앞으로 나선 다음 칼을 뽑아 들었다.
곧, 공중으로 떠오른 자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름 없는 신을 위하여!”
“마왕에게 천벌을!”
“이단에게 죽음을!”
그들은 말과 함께 품에서 동그란 물체를 꺼내 들었다.
마정석으로 만든 마력 폭탄.
보구의 등급 중 가장 낮은 무급으로 평가되지만, 위력만은 정 급의 괴수도 일격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물건.
“죽어엇!”
습격자들은 활성화가 완료되어 푸른 빛을 뿜어내는 폭탄들을 품은 채 진혁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한발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스미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흑마력을 가득 머금은 그의 오른손이 신사 한 편에 놓아둔 상자로 향했다.
“열려라.”
철컥!
진혁의 명령에 따라, 상자가 잠금장치를 풀고 입을 열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괴수의 뼈로 만들어진 창, 검, 방패 따위의 병장기 수십 자루.
곧.
“가라.”
쐐애애액!
그의 짧은 한마디와 함께, 상자에 담겨 있던 병기들이 침입자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방패가 날아드는 마력 폭탄을 바깥으로 멀리 튕겨내는 동안, 뾰족한 창과 검이 습격자들의 급소를 노렸다.
푸푸푹!
결국, 온몸에 창칼이 박힌 습격자들은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절명했다.
콰아아앙!
“꺄아아악!”
“사람 살려!”
뒤늦게 공중에서 폭발한 마력 폭탄의 폭음과 섬광에 놀란 사람들이 신사 밖으로 도망치려 아우성쳤다.
“……오늘 행사는 취소해야겠네요. 우선 안전한 곳으로 가시죠.”
카스미는 여전히 검을 빼 든 채 혼란스러운 신사를 살피며 진혁에게 말했다.
“아니.”
그러나,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은 배후를 확인해야 한다.”
그 말과 함께, 진혁은 죽은 습격자들에게로 다가갔다.
영안을 발동시킨 그의 눈에 습격자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망령들이 나타났다.
진혁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망령이여, 명계의 율법에 따라, 네 기억을 보여라.”
스으으으!
술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쏘아져 나가는 흑마력.
영혼을 칭칭 감은 흑마력의 사슬이 망령들의 기억을 진혁에게로 내려보냈다.
곧, 진혁은 이들의 배후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무명교라…….”
교단 전체가 아닌 일부의 소행이기는 했지만,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들의 말이 맞다면, 무명교의 일부는 자신을 이단자나 마왕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성녀가 위험하겠군.”
고개를 든 진혁의 시선이, 서쪽으로 향했다.
무명교의 본단, 쾰른이 위치해 있을 곳을 향해.
* * *
쾰른에 위치한 무명교의 본단.
그 안에 세워진 성녀의 저택에선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민 성기사들.
그들을 향해 클레어가 눈살을 찌푸리자, 성기사들 사이에서 사제 한 명이 나타났다.
베리엘 주교.
그의 검지손가락이 클레어에게로 향했다.
“성녀님에게 이단의 혐의가 있다는 주교회의의 결정입니다.”
말을 마친 베리엘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와 반대로, 클레어는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요?
“농담이 아닙니다. 성녀님께서는 이 시간부로 성녀로서의 자격이 박탈되고, 한 사람의 신도로서 재판을 받으시게 될 겁니다.”
“날 성녀로 만든 건 주교회의가 아니라 이름 없는 신이세요. 당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지 알고는 있어요?”
클레어의 말에, 베리엘은 미소를 지었다.
“이단자의 협력자를 체포하는 것뿐입니다.”
“미쳤어…….”
베리엘에게서 알 수 없는 광기를 느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발 물러났다.
겁에 질린 성녀를 잠시 바라보던 베리엘은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체포해라.”
그 말과 함께, 성녀를 포위한 기사들이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걸음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성녀님, 물러나십시오.”
어느새 클레어의 뒤에서 나타난 호위기사, 렌 슈미트.
참마검, 클레이모어를 쥔 채 전신에 갑옷을 차려입은 그녀가 성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끼기기긱!
불쾌한 소음과 함께, 그녀의 검 끝이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반원 모양의 흠집을 냈다.
“이 이상 다가오는 자는 성녀와 이름 없는 신을 모독하는 불신자라 생각하겠다.”
당장이라도 모두를 베어 버릴 것 같은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성기사들은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멈칫했다.
“성녀님, 여긴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알겠어요.”
호위기사의 말에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밀통로가 위치한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죄인이 도망친다! 잡아라!”
채채챙!
고함 소리와 칼 소리를 뒤로한 채, 클레어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한국으로 가야 해.’
지금의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서진혁의 얼굴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