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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58화 (158/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58)

진혁의 인터뷰를 가장한 제안을 받은 전 세계 엽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저게…… 사실이라고?”

“정말 에피로나를 공략하겠다는 거야?”

“그걸 위해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고?”

물론,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일부 진혁의 의견에 동조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회의적인 반응.

백 년 동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에피로나 공략을 고작 일 년의 준비만으로 끝내겠다니, 엽사들이 시큰둥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그래도, 마왕을 잡은 그 서진혁이라면,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지구의 모든 엽사들이 전부 몰려가도 에피로나 정벌은 불가능해. 그걸 한 사람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다만, 무명교의 성녀는 진혁의 말에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희도 수호자의 의지에 동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녀님, 그건 무리입니다!”

“이름 없는 신께서 저희를 도우신다 하여도, 백 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입니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리 없지 않습니까.”

재건된 대성당의 대회의실에 모인 새로운 주교들은 성녀 겸 대주교인 클레어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만큼, 진혁의 제안은 그들의 눈에 허풍으로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수호자는, 서진혁 씨는 지금까지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이에요.”

S급 괴수, 용, 그리고 마왕까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이길 수 없다고 여긴 괴물들을 차례로 꺾은 자.

매일매일 새로운 기록을 갱신해 왔던 서진혁이라면, 에피로나를 공략하겠다는 말 역시 나름의 진지한 분석과 해결책이 있을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서진혁이라는 사람을, 그가 가진 능력을 옆에서 지켜봤던 그녀였기에 가능한 판단.

“제 생각이 맞다면, 이번이 교단에게 주어진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일 거예요. 이걸 놓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주교들.

그들을 바라보는 클레어의 눈은 어느 때보다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우선은, 이름 없는 신께 신탁을 부탁드려 보겠어요. 신탁을 확인한 다음, 다음 주에 다시 모이도록 하죠.”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주교들은 해산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각자가 머무는 숙소로 돌아갔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다섯.

다섯의 주교가 모인 곳은, 그들 중 하나의 저택이었다.

“……성녀께서 교단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소.”

“이대로라면, 정말로 교단이 에피로나로 출병할지도 모릅니다. 고작 헌터 한 사람 때문에요.”

“백 년 동안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갑자기 해내겠다니…….”

“저 미친 헌터도 헌터지만, 그 말에 동조하는 성녀께서도…… 하아.”

동그란 원탁 위로 한숨이 오갔다.

그들의 눈앞에, 수많은 괴수 앞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기사단과 사제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무리 교단을 구원한 수호자와 성녀의 말이라지만,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한 일.

이 원탁에 모인 사람들 중, 개죽음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을 연 것은,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주교였다.

“다른 방법이라면.”

“혹시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베리엘 주교?”

베리엘이라 불린 주교를 향해 나머지 셋의 시선이 모였다.

베리엘은 턱을 잠시 쓰다듬으며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반대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반대로라면?”

“교단이 에피로나에 출병하기 때문에 교단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교단을 멸망시키기 위해 에피로나로 교단을 보내는 건 아닐까, 하고요.”

“예?”

“아니, 그 말은……!”

베리엘의 말에 앉아 있던 다른 주교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들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담아 놓고 있던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낼 수 있을 만한 용기를 지닌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베리엘은 달랐다.

“수호자께선 마왕을 상대로 싸우고, 승리하셨지요. 그 이후에 갑자기 미국과 전쟁을 벌이셨고요. 그 다음엔 무리한 에피로나 공략 선언……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는 머뭇거리지도, 조심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대로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뿐.

“이상하다면…… 설마!”

“어쩌면…… 수호자는 지금 수호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마기에 침식당해서…… 새로운 마왕이 된 걸지도 모르죠.”

위험한 발언이었다.

교단을 구해 낸 공로로 교단의 수호자란 직함을 성녀로부터 직접 수여받은 자가, 사실은 새로운 마왕일지도 모른다니.

만일, 수호자와 친분이 있는 성녀가 이 말을 들었다면 곧장 베리엘을 파문시켰을지도 모른다.

“……너무 위험한 발언입니다, 베리엘 주교.”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 시기가 너무 공교로워.”

“만약 베리엘 주교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교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느새, 그들은 조금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은, 서진혁이 마왕인 것은 아닐까.

그들의 눈엔, 에피로나 공략을 시도하겠다는 선언보다 이 가설이 조금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주교들을 잠시 바라보던 베리엘은 입을 열었다.

“물론, 아직 확인된 사실은 아니니 당장 그를 마왕으로 몰 수는 없습니다.”

“그럼?”

“아직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증거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죠. 그가 부리는 망자들이나, 사용하는 독특한 힘이라거나요. 그가 마왕이 맞다면, 어딘가에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겁니다.”

“……내 휘하에 믿을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조사해 보겠습니다.”

“나 역시, 연이 있는 자들을 찾아봐야겠소.”

“주교님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도움을 주겠다는 주교들의 말에, 베리엘은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그 덕에, 주교들은 베리엘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되었군.’

한쪽 입꼬리를 올린 그의 비웃음을.

*    *    *

진혁과 강진이 이야기를 나눈 뒤 나흘이 흘렀다.

순식간에 의논을 마친 한국의 다섯 엽사가문과 대한엽사회는 그 어느 나라나 단체보다 먼저 진혁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다음, 진혁에게 알렸다.

“한국은 오랜만이네요, 팀장님.”

“그렇군.”

그것이 지금 진혁과 주연이 오랜만에 인천국제공항에 발을 들인 이유였다.

“출발하겠습니다.”

진혁이 세한의 검은 세단에 몸을 싣자, 운전기사의 말과 함께 세단이 출발했다.

둘을 태운 검은 자동차가 향한 곳은, 칠성원과 세한의 본사가 위치한 강남이 아닌 강북.

세단은 그대로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의 앞에 멈춰 섰다.

진혁과 주연은 차에서 내린 다음 그대로 경복궁의 중앙에 위치한 근정전으로 향했다.

최첨단 마공학장치들로 도배된 수백 년 역사의 궁궐 건물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다섯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진혁을 마주한 아버지, 서강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늦었구나.”

“차가 좀 밀리더군요.”

“그러면 차가 아니라 헬기나 그 용을 탈 것이지.”

“눈에 띄지 않게 오라고 한 건 아버지시지 않습니까.”

“이젠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쯔쯔.”

말다툼처럼 보였지만, 혀를 차며 장남을 바라보는 강진의 눈엔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부자간의 시간은 그쯤 하는 게 어때?”

둘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유가의 가주, 유시현이었다.

“그래, 우리가 여기에 왜 모였는지는 알고 있겠지?”

넉살 좋은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보는 시현.

그 뒤로, 다른 세 명의 가주가 진혁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셨으니, 아마 직접 보고 싶으셨겠지요.”

“잘 알고 있구나. 도대체 어떻게 게이트를 봉쇄하겠단 건지 궁금해서 도무지 잠이 안 오지 뭐냐.”

전국의 게이트를 봉쇄하는 것.

진혁이 에피로나 공략에 참여하는 대가로 건 보상.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마법사들과 과학자들이 연구했음에도 실패한 일을 너무나 쉽게 입에 담았으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어려울 건 없습니다. 곧 보여드리죠.”

“지금 바로?”

“안 됩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혁은 눈을 감았다.

두근! 두근!

흑마력을 가득 머금은 심장이 빠르게 맥동한다.

심장에서 피와 함께 뿜어진 흑마력이, 진혁의 심상세계 안에 명계로의 길을 밝힌다.

‘들어간다.’

진혁의 생각과 함께, 그의 시야가 명계의 내부로 바뀌었다.

지난번과 다를 바 없는, 정체된 상태의 명계.

‘언젠가는…… 명계에 대해서도 조사해 봐야겠지.’

황폐해진 명계를 잠시 둘러보던 진혁은, 곧 쉴 새 없이 열고 닫히는 차원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개수만 족히 수천 개에 달하는, 지구 전역으로 통하는 게이트.

일 초에도 수십 번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이트 중, 진혁은 한국과 연결되어있는 게이트의 범위를 특정했다.

‘여기인가.’

한반도의 크기가 작은 덕분에, 한반도에 생성되는 게이트들을 추려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

지난번처럼 검지에 흑마력을 끌어 올린 진혁의 영안이, 게이트 너머의 통로를 세세하게 비추었다.

그 모두가 괴수의 세상 에피로나, 혹은 그들이 만들어낸 던전과 연결된 통로.

진혁은 그 통로를 잇는 무형의 관을 바라보며, 앞으로 뻗은 검지를 칼처럼 휘둘렀다.

‘자른다.’

그의 의지가 흑마력으로 가득 찬 손가락을 통해 발현된 순간.

양쪽 세계를 이어 주고 있던 수많은 통로들 중 일부가 칼로 벤 듯이 잘려 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끝났습니다.”

“뭐?”

“이렇게 쉽게 끝난다고?”

진혁이 게이트를 끊어 내는 데 걸린 시간은 약 오 분.

백 년 동안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라면 하나 끓이기도 힘든 시간 동안 해냈다니, 가주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 말에, 진혁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마, 조금 뒤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거짓말처럼, 한국의 게이트가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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