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57)
“아, 안녕하십니까,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세상에 이런엽사가?]의 조유진입니다! 오늘은 정말로 특별한 분을 모셨는데요…….”
‘지루하군.’
조유진이 웃는 얼굴로 대본을 읽는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 있던 진혁은 손에 깍지를 낀 채 주변을 둘러봤다.
회색으로 범벅된 모래와 하늘로 가득한 세상.
서진혁 자신이 이 세상에 불러낸 명계의 한 조각이 이곳에 있었다.
눈앞의 카메라 감독은 명계로부터 전해지는 흑마력을 느끼곤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그의 육체는 오히려 소모한 힘을 조금씩 회복하는 중.
망자의 힘을 다루는 사령술사에게, 명계의 영역이란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일 년을 소모한다면, 에피로나를 침공하기에 충분한 힘을 비축할 수 있으리라.
“자, 요즘 가장 핫한 분이시죠? 서진혁 씨를 소개합니다!”
진혁이 딴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유진은 어느새 오프닝을 끝내고는 환한 얼굴로 진혁을 소개했다.
“서진혁이다.”
자기소개는 그것으로 끝.
“아……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시청자분들께서도 다들 잘 아시겠지만, 말 그대로 세계를 놀라게 한 분이죠!…….”
유진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고치고는 텐션을 끌어 올렸다.
제법 프로다운 모습이었지만 진혁에게 딱히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자, 그러면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진혁씨께선 이번…… 일 때문에 굉장히 바쁘실 것 같은데, 저희의 인터뷰를 수락하신 이유가 있나요?”
“내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건지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이 수많은 인터뷰 요청 중 하나를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전까지는 그저 조금 강한 헌터로만 세상에 인식되었던 그가, 어째서 영역을 선포하고 미국과 전쟁을 벌였는가.
그 사실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
“아…… 그렇군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그 부분일 거거든요!”
처음부터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자 조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서진혁이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을 벌였는가에 대해선 수많은 추측이 나돌았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인의 입에서 대답을 듣는 것만큼 더 정확한 설명은 없을 테니, 그녀가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럼, 어째서 미국과 전……쟁을 벌이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개인과 국가의 전쟁이라는, 영 어색한 단어를 입에 담은 그녀가 어색한 미소로 물었다.
‘복수? 아니면, 한국의 패권?’
진혁이 입에 담을 법한 예상 답안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하지만.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예……?”
진혁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니,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그의 대답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계……를 지킨다고요?”
어린애 입에서나 나올 법한, 미국과 전쟁을 벌인 사람이 내놓은 대답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소리.
“그렇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그의 발이 바닥의 사막을 툭툭 건드렸다.”
“이곳에서 마왕을 제거한 이후, 아니 그 전부터 나는 괴수에 대해 고민했다.”
“그건…… 모든 엽사들이 하는 일이죠.”
“그럴지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지구의 괴수들을 처리하는 게 끝이 아니다.”
“그러면…….”
“에피로나.”
조주연이 눈을 부릅떴다. 감독의 카메라가 진혁의 얼굴을 클로즈업헀다.
에피로나.
이능, 그리고 괴수와 함께 백 년 전 갑자기 등장한 또다른 세계.
그로 인해 지구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만큼, 괴수로 인해 멸망한 에피로나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에피로나를 침공하는 것. 그리고 에피로나의 괴수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
진혁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 모두가 새로운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엄청난 이야기들.
“그게, 내가 굳이 미국과 전쟁을 벌인 이유다.”
“그……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하군요. 에피로나……를 침공하겠다니.”
소규모의 탐험만 진행되었을 뿐, 아직 제대로 된 지도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
무명교나 다른 이종족들조차 백 년 동안 생각만 할 뿐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계획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조금의 주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계획을 갖고 계신데요, 혹시 언제쯤 에피로나에 진출하는 걸 목표로 잡고 계신 건가요?”
“일 년 뒤. 그전까지 준비를 마친 다음, 군대를 모아 에피로나로 들어갈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수 없는 말만 하는 진혁.
‘저게…… 진담이라고? 장난하는 게 아니고?’
그를 바라보는 유진의 동공은 방송인 것도 잊은 채 떨리고 있었다.
“일 년…… 정말, 진혁 님의 계획대로 괴수들을 몰아낼 수 있다면 인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는데요. 그럼,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어느덧 인터뷰는 막바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조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전 세계에 전한다.”
곧, 진혁의 입이 열렸다.
“일 년 뒤, 나와 함께 에피로나를 공략할 자들을 모을 것이다. 참여하고 싶은 개인, 단체, 국가가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해도 좋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진혁.
“그 대가로, 너희에게 괴수로부터의 영원한 안전을 선물하지.”
그의 눈에서, 푸른 귀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 * *
진혁의 인터뷰는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고작 한국의 조그마한 방송사가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그램에 세계의 모든 엽사들, 헌터들이 주목했다.
서진혁, 그가 가진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그것은 한국의 오대엽사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흐음…….”
“저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군.”
서울에 위치한 서가의 호텔.
그 곳의 프레지던트 룸에 모인 다섯의 가주들은 거대한 화면에서 나오는 진혁의 인터뷰를 듣고 신음을 흘렸다.
“세한에서 큰 일을 벌여주셨군.”
“나도 내 아들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네. 혼자서 미국을 이길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을 거라곤 더더욱 몰랐고.”
이가의 가주, 이정의 말에 서강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 자식,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는…….”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입가는 조금씩 실룩이고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와 홀로 싸워 승리한 것이 자신의 아들인데, 좋아하지 않을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주가의 가주, 주미선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실제로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게 뻔해요.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해야 할 텐데.”
“그럼, 저 자살 행위에 동참하잔 말입니까?”
그 말에, 윤가의 새로운 가주인 윤미르가 버럭 화를 냈다.
“저 멍청한 놈의 헛짓에 놀아났다간, 한국 전체가 박살날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놈과 연관이 없다는 걸 확실히 해야…….”
“윤 가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그 말에 고개를 저은 유가의 가주, 유시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히려, 이번이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 미국을 홀로 이긴 엽사가 다름 아닌 서가의 핏줄을 이은 자니까. 이참에 그 뒤를 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여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 말에 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선택을 해야 한다면, 더 유용한 쪽을 택하는 게 맞겠지.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게 미국을 이긴 서가의 자식일 뿐이고.”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최소한 저와 주가는 진혁 씨에게 진 빚이 있기도 하고.”
“나쁠 건 없지, 안 그런가?”
주미선의 말에 유시현은 씨익 웃으며 서강진을 바라봤다.
서가의 사람이니, 서가의 가주인 그가 직접 결정하라는 의미.
잠시 다물고 있던 강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면, 우선 진혁이에게 연락하도록 하겠네. 에피로나 공략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으니, 아비 연락 정돈 받아 주겠지.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그의 눈이 스리슬쩍 감겼다.
곧.
“‘괴수로부터의 영원한 안전’이 뭘 말하는 건지부터 알아본 다음…… 다시 얘기해 보자고.”
번쩍 뜬 그의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흘러나왔다.
* * *
진혁이 인터뷰를 마친 지 하루가 지났다.
지난번 아피루스와 청명이 사막의 지하에 파 둔 지하 공간.
그곳의 가장 큰 방을 연구실로 사용하고 있던 진혁은 잠시 통신 구슬을 들고 있었다.
통신 구슬 위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서강진의 홀로그램.
“네, 아버지.”
―네 인터뷰는 잘 봤다. 속이 시원하더구나. 내 자식이 벌써 이렇게 컸다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강진.
―그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하지만, 그는 곧 웃음을 거두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말씀하시죠.”
―네가 인터뷰 중에서 말한, ‘괴수로 부터의 영원한 안전.’이 뭔지 들어야겠어.
“아.”
진혁은 강진의 의도를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것 아닙니다.”
―별것 아니라고?
“그저, 제 군대에 합류하는 국가의 게이트를 차단해 버리는 게 전부니까요.”
어제 무슨 밥을 먹었는지 대답하는 것처럼, 진혁의 목소리는 평이했다.
―뭐…… 뭐라고? 게이트를 차단한다고?
하지만, 그걸 듣는 강진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이냐?
강진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의 아들이 입에 담은 건,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진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꽤 큰 비용이 소모되긴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는 이 지구의 유일한 사령술사이자 명계의 대리인.
에피로나와 지구 간의 게이트가 명계를 경유하는 이상, 그것을 차단하는 것 정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진심이구나. 에피로나를 공략하겠다는 게.
여전히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아버지를 향해, 진혁은 씨익 웃었다.
“전, 언제나 진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