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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56화 (156/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56)

유타주에서 벌어진 전투는 세 시간여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중 전투라고 부를만한 장면은 초반의 삼십 분 정도.

그 이후엔, 전투가 아닌 사냥과 살육의 시간이었다.

죽지 않는 망자들이 병사들과 엽사들을 일방적으로 추격하는 시간.

그리고, 세 시간이 모두 지났을 때.

“끝났군.”

진혁은 자신의 앞에 선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자신을 공격하려던 미국의 엽사들과 군인들.

허나, 그들의 상태는 조금 이상했다.

수만의 괴수를 앞에 두고도 공포에 질리거나 동요하기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몸 여기저기에 난 치명적인 상처들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서 서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결정적으로, 그들의 눈엔 생기가 없었다.

죽어 되살아난 자, 망자.

진혁은 그들을 망자로 되살린 것이다.

“죽은 인간들을 다시 되살린 것이냐.”

“그렇다.”

“네 동족들이 탐탁지 않아 할 텐데.”

진혁의 대답에, 함께 새로운 망자들을 바라보던 청명이 의문을 표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분명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 대상이 자신의 동족이라면 더욱 거부감이 들 테지.”

그건 세계의 수호자라 자칭하는 용, 그녀와 아피루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피루스가 봤던 또 다른 미래에서, 진혁이 용들의 시체를 되살려 부리는 것을 본 그는 진혁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다짐했었으니까.

“그럴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진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하지 않았겠지.’

인간을 죽여 망자로 만드는 일은 지구의 어떤 인간이 보더라도 끔찍한 악행.

완전히 힘을 되찾지 못했던, 그렇기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던 진혁이 인간을 망자로 되살리는 것을 꺼린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어.’

아니, 힘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지금은 숨은 채 힘을 길러야 할 때가 아니라, 힘을 드러내고 적과 아군을 구분해야 할 때.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슬슬 움직이지.”

“어디로?”

“동부로 간다.”

“동부?”

자신을 적대한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것.

“워싱턴D.C로 가서, 대통령을 만난다.”

진혁의 귀기 어린 눈이, 동쪽의 지평선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    *

워싱턴 D.C.

심장인 뉴욕과 함께 미국을 움직이는 합중국의 두뇌.

대부분의 정부부처와 국회의사당, 연방대법원이 모두 모여 있는 행정과 정치의 중심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이리라.

허나, 오늘 백악관의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요?”

백악관의 서편 지하에 위치한 상황실.

수많은 정각료와 군 장성들로 가득 찬 좁은 방의 중앙에 앉아있던 대통령의 물음에, 옆에 앉아있던 참모총장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마력소멸탄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통령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없었다.

“참모총장, 그러면 저것들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오?”

앉아있던 대통령의 손가락이, 맞은편의 거대한 화면으로 향했다.

현장 상공을 비행 중인 드론을 통해 비쳐진 화면엔, 버섯구름과 흙먼지 뒤로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니, 검은 무언가‘들’이었다.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괴수들.

괴수의 검은 물결이 마력소멸탄에 의해 파괴된 지상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분명, 마력소멸탄은 마나를 가진 생명체에게 치명적이라고 하지 않았소?”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괴수들이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이번엔 괴수들의 행렬 뒤편으로 향했다.

드넓은 벌판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숫자의 괴수 무리 뒤를 따르는 것은, 괴수가 아닌 인간이었다.

부르르릉!

미군의 장갑차와 전차, 자주포를 포함한 온갖 차량들에 탑승한 채 괴수를 뒤쫓는 헌터들과 병사들.

다름 아닌, 미국을 저 괴수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섰던 미국헌터협회의 헌터들과 미군의 대괴수부대, BSG였다.

“……저 반역자들은 어째서 저 괴수들을 따르고 있는 거요?”

“위성 스캐너를 통한 확인 결과, 저들에게선 생명 반응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시체가 걸어다니는 데다 전차랑 장갑차를 몬단 말입니까?”

“아마도…… 미스터 서가 가진 능력으로 보입니다.”

“괴수만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이젠 좀비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참모총장의 대답을 들은 대통령은 주름진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상대는 유타주의 사막을 벗어나 중부의 대초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상황.

“저들의 목표가…… 정말 워싱턴이란 말이오?”

“저희 측 분석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정확히 워싱턴과 일직선방향으로 이동 중인 데다, 중간에 덴버 등의 대도시들을 지나치면서도 사상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워싱턴에 도착하겠단 셈인가.”

“저희의 예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예상 도착 시간은 15일 뒤 오전 8시경입니다.”

“무슨 좀비 영화 같군.”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상황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것도, 대통령 자신을 포함해 무수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려있는 현실.

저들이 아직은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다지만, 워싱턴에 도착한다면 어떻게 돌변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전에,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미스터 서, 그 사람과 만나 봐야겠소.”

“너무 위험합니다. 상대는 이미 미국헌터협회의 헌터들과 미군을 학살한 적입니다.”

대통령의 말에 뒤에 있던 비서실장이 만류했다.

“그럼, 저 적들을 막을 방법이 우리에게 남아 있소?”

하지만 대통령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후우.”

침묵이 이어지자,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미국엔 헌터도, 미군도 없소. 대항할 방법이 없다면, 상대의 자비를 구해 보는 수밖에.”

“적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신다면 다음 선거, 아니 당장의 지지율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이 나라 자체가 사라지겠지. 마린 원을 준비시키시오.”

“……알겠습니다.”

상황실의 각료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만류했지만, 대통령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투투투투!

곧, 대통령과 경호원들이 탑승한 헬기가 이륙했다.

목표는 현재 대평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서진혁의 망자군단.

수 시간여의 비행 끝에, 대통령의 헬기는 미주리의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다.

거기서 또다시 대통령 전용 경호 차량, 비스트에 탑승해 한 시간여를 질주한 끝에.

“저건가.”

대통령은 망자군단과 마주할 수 있었다.

평원의 지평선을 가득 메운 검은 무리.

구구궁!

괴수들은 분명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지만, 놈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은 그의 발밑까지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는 직감했다.

‘이런 게 워싱턴까지 쳐들어온다면, 워싱턴은 그대로 박살 날 거야.’

비록 다리는 공포에 질려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문제는 단 하나.

“미스터 서와 연락할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군.”

연락할 수단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헌터들은 모두 망자가 된 상태.

서진혁의 출신인 한국의 세한그룹에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그들 역시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답을 끝으로 소식이 끊어졌다.

그의 참모들이 반대한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 아니었던가.

허나.

쐐애액!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의 고민은 별반 의미가 없었다.

검은 무리들로부터 날아온 한 마리의 용.

쿵!

용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대통령 일행의 앞에 착륙했다.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착륙하는 충격에 대통령은 순간 휘청했지만, 그의 시선은 용의 머리 위에 탄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스터 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직접 나올 정도라니, 이제 모든 수단을 다 쓴 모양이군.”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적의 수괴.

하지만,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진혁의 말대로, 그와 미국엔 더 이상 저 망자들의 군단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협상을 요청합니다.”

굴욕적인 표정을 지은 채, 대통령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허나.

“아니.”

진혁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해야 할 건 협상을 요구하는 게 아냐.”

“그게 무슨……!”

“항복이지.”

“키이이이이!”

진혁의 대답과 함께 터져 나온 멜리나의 울음소리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항복했다.

그것도, 국가가 아닌 서진혁이라는 개인에게.

그 사실이 알려진 순간, 전 세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거인의 몰락! 세계의 정세는?]

[카우보이는 죽었다.]

[국가에게 승리한 남자! 서진혁은 누구인가?]

지구의 모든 언론사에서는 이 일을 특종으로 내보냈고, 세계 어디에서나 미국이 패배했다는 이야기가 TV, 인터넷, 신문 할 것 없이 모든 뉴스를 밀어내고 있었다.

[1. 미합중국은 서진혁에게 항복을 선언한다.]

[2. 서진혁은 미합중국의 불안한 안보를 위해 미합중국의 영토 내에 군대를 진주할 권리를 지닌다.]

[3. 미합중국의 영토 중 유타 주를 서진혁에게 할양한다.]

.

.

서진혁과 미 정부의, 사실상 무조건 항복이나 마찬가지인 협상 내용이 공개되자 그 관심과 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물론, 그 관심의 대부분은 무수한 생명을 앗아갔다고 알려진 서진혁에 대한 비난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개들이 짖는 걸 보니, 당분간은 조용하겠군.”

진혁은 그들에게 별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나섰을 거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

물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인터뷰, 시작할 건가?”

“아, 네, 네!”

자리에 앉은 진혁의 물음에, 한국의 엽사와 관련한 이슈를 주로 다루는 방송사 중 하나인 Hnet의 리포터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카메라에 잡힐 텐데,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좋아 보이진 않을 것 같군.”

“앗, 죄송합니다!”

자신의 말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이 진혁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진혁은 꾸중하는 대신 옆에서 얼어붙어 있던 PD를 향해 눈짓했다.

“그럼 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셋, 둘, 하나!”

짝!

슬레이트를 내려치는 소리.

그와 함께, 진혁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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