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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52화 (152/174)
  •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52)

    검은 사막 위로 붉은 피가 흐른다.

    수많은 괴수가 시체가 되고, 시체가 된 괴수들이 망자로 되살아난다.

    어느새 되살아난 망자의 수는 수만에 이르렀다.

    “콰우우우!”

    그리고, 망자군단의 가장 앞에 나선 것은 마룡 데오르크.

    물론 지상에 남은 것은 그의 껍데기일 뿐, 영혼은 망령군주의 것으로 바뀐 지 오래였지만.

    콰드득!

    에인션트급에 버금가는 강력한 육체는 여전히 그 힘을 그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콰아아아!

    쏘아내는 검은 숨결을 맞은 괴수들의 뼈와 살이 녹아내린다. 검은 용의 꼬리와 발에 맞고 밟힌 괴수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짓이겨진다.

    망자가 된 마룡은 한때 자신의 동료와 권속이었던 괴수들을 압도적인 힘으로 파괴했다.

    하지만, 그의 파괴 행각은 그리 오래지 않아 저지될 수밖에 없었다.

    카아앙!

    “콰우우?”

    자신의 꼬리를 막은 거대한 검을 내려다보며 데오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검을 쥔 것은, 외팔과 외눈의 거인.

    갑 급 괴수, 외눈박이.

    “긍지 높은 용이 이런 꼴이 되다니, 못 봐주겠군.”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룡을 향해 외눈박이는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하지만.

    쐐애액!

    안타까운 그의 마음과 달리 거인의 검은 빠른 속도로 마룡의 목 뒤에 달린 용심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죽은 몸이라도 편하게 해 줄 심산.

    “콰우우!”

    하지만 마룡은 짧은 앞발로 검은 마기가 진득하게 묻은 검을 가로막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마기를 이겨 내지 못한 앞발은 그대로 검에 관통당했지만, 용심이 파괴되는 것에 비하면 생채기 수준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망자.

    “콰우우우!”

    검에 관통당하건 말건, 망자는 앞발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이대로라면 외눈박이의 남은 한 팔도 잘려 나갈 판.

    “쳇.”

    외눈박이는 하는 수 없이 검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콰아앙!

    조금 전까지 외눈박이가 서 있던 자리에, 마룡의 앞발이 만들어 낸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러나, 마룡은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다.

    지이잉!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붉은 광선.

    본능적으로 멈칫한 데오르크가 고개를 돌려 광선의 진원지를 살폈다.

    머리에 붉은 수정을 단 거미와 그 옆에 선 하얀 뱀.

    또다른 갑 급 괴수들이 외눈박이를 구하기 위해 나타났다.

    “콰우우!”

    마룡은 자신을 방해한 괴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롭게 빛나는 발톱과 이빨이 놈들을 찢어발기기 위해 휘둘러졌다.

    허나, 상대는 갑 급 괴수.

    에인션트급을 이길 수 있는 마룡에 비해선 부족하다지만, 혼자가 아닌 둘을 상대하는 건 그 마룡조차도 버거운 일이었다.

    거기에, 갑 급 괴수들을 지원하기 위해 몰려드는 권속들과 마룡을 도우러 온 망자들까지.

    카앙! 캉!

    발톱과 이빨이 부딪치고 비명과 고함이 뒤섞여 들려오는 지옥.

    ―마왕을 불러야 한다.

    ―마왕이 있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마구 섞여 난전을 벌이는 망자들과 괴수들의 뒤에서, 마룡을 상대하던 백구렁이와 보석거미는 의견을 일치시켰다.

    마기로 범벅된 대지를 만들어 낸 마왕이 도와준다면, 눈앞의 마룡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터.

    그렇기에, 두 괴수는 이 자리를 빠져나가 마왕을 불러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쿵!

    그들의 계획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저건 대체.”

    검을 잃은 채 뒤로 물러난 외눈박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쿵! 쿠궁!

    나무.

    검은 나무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    *    *

    “예상보다 빠르군.”

    유성처럼 쏟아지는 사령수의 비를 올려다보며, 진혁은 씨익 웃었다.

    쿠궁!

    사막의 검은 모래에 처박힌 사령수들이 빠르게 뿌리를 내린다.

    마기로 범벅된 대지에 단단히 박힌 나무들이 마기를 듬뿍 흡수해 정제한다.

    이내. 그들의 검은 줄기와 이파리에서 나온 망자들의 에너지, 흑마력이 연기처럼 어두워진 사막을 가렸다.

    모두 합해 사백마흔넷.

    흑마력을 공기처럼 뿜어내는 사령수들은, 어느새 사막 전체를 감싸는 진으로 변해 갔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은, 진혁과 그가 타고 있는 용, 청명.

    진혁은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안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명계의 율법에 따라, 죽은 자의 손이 닿는 모든 곳을 명계의 영역으로 선포한다.”

    진혁의 말과 함께, 검은 흑마력 안개가 회색으로 변해 마기에 침식당한 지면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마기와 반응을 일으킨 흑마력은 몇 초 지나지 않아 검은 사막을 회색으로 물들였다.

    조금 전까지 마왕과 괴수의 영역이었던 곳들 대부분이, 이제는 명계의 일부로 변해 버렸다.

    다시 말해.

    “콰우우우우!”

    명계의 영향을 받는 망자들의 힘은, 이전과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

    콰아아!

    데오르크의 아가리에서 쏘아져 나간 검은 숨결이 그대로 보석거미를 녹여 버렸다.

    조금 전까지는 사막을 장악한 마기가 갑 급의 괴수인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줬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상태.

    흑마력과 명계의 영향을 받아 수 배는 강해진 마룡의 숨결 앞에서, 약해진 갑 급 괴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뿐.

    “키이이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동료를 보고 두려움에 빠진 백구렁이가 거대한 몸을 틀어 뒤로 도망쳤다.

    갑작스러운 도망에 휘말린 수백 마리의 괴수들이 깔려 죽었지만, 백구렁이의 생존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살아, 살아야 해!’

    이미 자신과는 비할 바 없이 강한 상대.

    싸워 개죽음당할 바엔, 어떻게든 도망가서 목숨을 부지하는 게 낫다.

    판단을 마친 거대한 구렁이가 회색으로 변한 사막의 모래를 기어 차원문으로 향했다.

    허나, 백구렁이의 시도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푸우욱!

    “키이이이이!”

    ―잡았습니다.

    몸통 한가운데에 깊숙이 박힌 대검, 아스칼론이 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백구렁이를 바라보며 성준은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처리하지.

    그곳엔 고렘에 깃든 악령, 무명이 양팔에 달린 마력포를 가동하고 있었다.

    콰아아!

    마력포로부터 쏟아져 나간 검은 광선이 순식간에 거대한 구렁이의 몸통을 토막 내 버렸다.

    ―제거 완료. 다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절명한 갑 급 괴수를 내려다보며, 무명은 진혁에게 의지를 보냈다.

    돌아온 진혁의 명령은 짧았다.

    ―마왕.

    *    *    *

    “이런…… 말도 안 되는……!”

    마왕은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인간을 뛰어넘기 위해 마기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최악의 마인인 마왕이란 이름을 받은 그에게 진혁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였다.

    자신의 마기를 뿜어 만들어 낸 마의 영역을 장악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괴수들을 죽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괴수 중의 괴수라는 갑 급의 괴수조차도, 서진혁이 부리는 권속들 앞에선 한낱 시체가, 그리고 놈의 부하로 전락할 뿐이었다.

    “……이래선, 내가 아니라 저놈이 마왕같잖아.”

    죽은 시체를 부리고, 죽인 자를 다시 되살려 적에게 보내는 존재.

    이것이 마왕이 아니라면, 무엇이 마왕이란 말인가.

    “떠나야겠어.”

    서진혁을 갖고 싶다는 욕망과 호기심은 어느새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한 지 오래.

    그의 생존본능이,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저 망자들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것이라 외치고 있었다.

    “에피로나로 돌아가서, 방어를 준비한다.”

    최소한, 저자가 죽을 때까지 지구를 점령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니, 이미 괴수의 영역인 에피로나라도 지키기 위해선 남은 괴수들이라도 뒤로 물려야 했다.

    스윽!

    마왕은 손날을 세워 허공을 그었다.

    지이잉!

    그러자, 차원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갈라진 차원의 틈이 옆으로 벌어졌다.

    “다시 기회를 잡으면…… 되는 거야.”

    에피로나로 통하는 차원문을 향해, 마왕은 한 걸음씩 나아갔다.

    *    *    *

    “도망가는군.”

    차원문을 연 마왕이 눈에 들어오자, 진혁은 눈을 빛냈다.

    이대로 놈을 돌려보낸다면, 분명 자신을 막기 위한 준비를 펼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피로나로 진출하겠다는 진혁의 계획 역시 귀찮아질 터.

    ‘그건 곤란하지.’

    “청명, 마왕에게로 가라. 지금 당장.”

    ―알았어.

    진혁의 말에 청명은 묻지도 않고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마왕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용 위에서,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차원문의 원리는 명계와 연관되어 있다.’

    모든 차원과 연결되어 있는 명계를 중계소로 삼아, 차원과 차원을 잇는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요정왕이 만들어 낸 차원문의 기본적인 원리다.

    그렇다면.

    ‘명계의 흐름을 조작한다면.’

    차원문을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두근! 두근!

    흑마력을 가득 담아 둔 검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손끝으로 모여든 흑색의 기운은 이내 손가락 끝에 집중되었다.

    진혁은 그것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사람 크기의 육망성을 시작으로, 그 안에 수많은 마법문자들이 채워진다.

    명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비술.

    채 오 초도 지나지 않아 완성된 마법진의 중심점을, 진혁은 흑마력이 뭉쳐 있던 손가락으로 찔렀다.

    목표는, 마법진 너머에 있는 명계의 문.

    ‘명계와의 연결을, 끊는다.’

    생각한 순간, 몸이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에 뭉쳐진 흑마력의 칼날이 차원 너머에 있는 명계의 통로들을 찾아 헤맸다.

    곧, 그는 지구와 연결된 통로들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자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검은 칼날이 명계에 만들어진 몇 개의 통로를 잘라냈다.

    이내.

    “마, 말도 안 돼!”

    아래에서 들려오는 마왕의 비명소리.

    진혁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래를 바라봤다.

    “어떻게…… 차원문을 마음대로 닫아 버린 것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마왕은 하늘의 진혁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의 표정은 알 수 없는 공포와 억울함, 절망이 섞여 일그러져 있었다.

    물론, 진혁이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끝이다, 마왕.”

    수십 년을 끌어온 싸움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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