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51)
최초의 마룡 데오르크.
용들 중 가장 먼저 마기에 침식당한 그는 같은 일족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직 에인션트급에 이르지 못한 젊은 나이임에도, 에인션트급에 들어선 고룡을 이기고 나선 더더욱 그랬다.
몇 명의 변절자가 더 생긴 이후로, 놈은 자신을 ‘용들의 진정한 왕’이라 칭하며 한때 같은 일족이었던 자신들을 공격했다.
놈에게 부모를 잃었던 아피루스에게, 마룡 데오르크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그런데.
“마룡이…….”
죽어가고 있었다
딱딱! 딱딱딱!
마치 개미 떼처럼, 바닥에 쓰러진 흑룡의 몸을 뒤덮은 망자들의 칼날이 비늘 사이의 살점을 파고들었다.
마룡은 몸을 바닥에 구르기도 하고, 꼬리로 망자들을 쳐내기도 하며 거세게 저항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죽어 죽을 수 없는 망자들은 부서지고 뭉개져도 그뿐, 다시 되살아나 놈에게 달려들었다.
“콰우우우우!”
영원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놈의 모습은 적인 아피루스조차 몸을 떨 만큼 처량했다.
결국.
서걱!
식귀가 놈의 등에 박힌 붉은 검을 뽑아 휘두른 순간, 잘려나간 마룡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렇게…… 쉽게 상대했다고? 마룡을?”
분명, 마룡이 방심한 탓도 있었다.
어찌나 쉽게 본 것인지, 자신의 권속이 죽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앞으로 나설 정도였으니.
허나, 그렇다 해도 상대는 마룡이다.
일족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강적.
고작해야 한 명의 인간과 그의 수하들이, 방심했다지만 고룡보다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마룡을 사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만약, 일족 전체가 달려든다면.”
서진혁을, 상대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둘 모두 큰 피해를 입게 되리란 것.
세계의 수호자라 자칭하는 자신들이 고작 인간 하나와 양패구상을 걱정해야 하는 꼴이 되어 버렸단 것이, 아피루스는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아피루스.
진혁의 통신 구슬로부터 전해진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으로 들려 온 것은.
―해줘야 할 게 있다.
‘해 줘야…… 할 거요?’
그는 현재 진혁을 도와 침식된 대지 바깥에서 마법으로 진혁과 망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상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래.
아피루스의 물음에 진혁은 짧게 답했다.
그리고, 아피루스는 볼 수 있었다.
“키이이이이이!”
침식된 대지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비룡들을.
“저건…….”
아피루스는 저 비룡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마룡 데오르크가 부리던 권속들.
분명 망자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놈들이, 어느새 망자로 되살아나 대형을 이룬 채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곧, 진혁의 말이 이어졌다.
―저들이 돌아올 때까지 보호해 다오.
‘알았어요, 금방 돌아올게요. 어디로 가는 거죠?’
아피루스는 진혁의 말에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강화도.
‘……네?’
진혁의 다음 말을 들은 아피루스는, 미처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 * *
‘가고 있군.’
고개를 돌려 한국을 향해 날아가는 아피루스와 비룡들을 바라보던 진혁은 재차 고개를 돌려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를 바라봤다.
푸욱! 서걱!
“키에에에!”
끔찍한 비명과 파육음, 절단음이 뒤섞인 인세의 지옥.
아니, 진혁이 자리 잡은 곳은 명계의 일부이니 지옥의 모습 그 자체라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챙! 채챙!
“키이이이이!”
죽어 다시 살아난 망자와 마왕의 지배를 받는 괴수들 간의 싸움은 생각 외로 치열했다.
이미 죽어 죽을 수 없는 망자들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괴수에게 발톱과 이빨을 박기 일쑤였지만, 그 숫자가 줄지 않는 것은 괴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우웅!
‘역시 마왕인가, 게이트를 저렇게 많이 열 수 있다니.’
저 멀리에서 또다시 열리는 다섯 개의 차원문.
그 안에서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을 바라보며 진혁은 혀를 찼다.
죽어도, 죽어도 죽은 괴수의 시체를 넘고 새로운 괴수가 나타나 망자들을 향해 발톱을 들이댄다.
괴수들의 천문학적인 희생이 요구되기는 했지만, 전장은 꾸준히 교착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후엔 내가 이길 것이다.’
그에겐, 무한히 흑마력을 공급해 줄 사령수가 있었으니까.
진혁은 생각과 함께 등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지평선 근처에 새로운 동산이 생겨난 것이 눈에 띄었다.
미국엽사협회의 협조로 모인 괴수들의 시체.
동산 하나를 치운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새롭게 쌓인 시체들을 향해, 진혁은 손을 내밀었다.
스으으!
주변의 여섯 사령수로부터 뽑아 올린 순수한 흑마력이 시체의 산으로 향했다.
그와 함께, 영혼 구슬에서 명령을 기다리던 망령들이 검은 궤적을 따라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망령이여, 명계의 율법에 따라 새로운 몸에 깃들어라.”
진혁의 입에서 망자를 되살리는 술법의 주문이 쏟아져나옴과 동시에.
“키이이이이!”
“크아아아아아!”
시체의 산에서 되살아난 수천의 괴수들이 괴성과 함께 진혁의 영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키이이?”
“키이이이!”
전장에 쌓인 시체의 산이 흔들리자, 산을 오르던 괴수들이 놀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쑤욱!
당황한 괴수들은 난데없이 시체의 산 안으로 빨려들어 가더니, 곧 조용해졌다.
이윽고.
쿠르르릉!
산이 무너져내렸다.
그와 함께, 산을 이루던 시체들이 망자가 되어 다시 깨어났다.
푸푹!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료였던 괴수들이 발톱을 들이댔다.
뭔가 반응하기도 전, 명계의 영역이 뿜어내는 흑마력에 강화된 망자들이 괴수들의 목줄기에 이빨을 드러냈다.
과거, 망령군주라 불렸던 파슬란 드 노미크롬.
진혁이 부리는 괴수의 군세는, 그와 그의 망자군단이 재림했다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군세는 더 강해진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소모를 강요하고, 자신은 상대가 죽을 때마다 병력을 늘려 나간다.
상대의 모든 군세가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그것이, 망령군주가 가진 진정한 두려움.
사령수가 만들어 내는 흑마력의 대부분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진혁이 끌어 낼 수 있는 진정한 힘이었다.
이대로라면, 상대가 보내는 괴수는 결국 모두 자신의 군대로 되살아나게 될 터.
그러면, 승리는 진혁의 것이다.
“어떻게 할 거지, 마왕?”
청명의 등 위에서 진격하는 망자의 군대를 내려다보며, 진혁은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있을 마왕을 향해 중얼거렸다.
곧, 마왕은 그의 중얼거림에 응답했다.
쿵! 쿵!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을 흔드는 진동.
흑마력으로 강화된 진혁의 눈이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바라봤다.
“……나타난 건가.”
외눈박이.
그리고 그들의 옆에서 함께 다가오고 있는 갑 급의 괴수들.
권속들만을 죽음으로 내몰던 에피로나의 지배자들이, 더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전면으로 나섰다.
―위험하다. 놈들의 기운이 심상치 않아. 후퇴하는 게 어떻겠느냐.
진혁을 등에 태운 청명이 갑 급 괴수들로부터 피어오르는 강력한 마기를 느끼곤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듯, 이 곳이 가장 안전하다.”
그가 밟고 있는 땅은 명계의 일부.
명계와 망자를 움직이는 원동력, 흑마력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진혁에게 이 대지는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하고, 가장 강력한 출력을 낼 수 있는 곳이었다.
약간, 아주 약간의 보완이 더해진다면.
이 땅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서두르길 바라지, 아피루스.’
강화도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을 아피루스를 떠올린 진혁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 * *
비룡들과 함께 태평양을 건넌 아피루스가 강화도에 도착한 것은 세 시간쯤 뒤였다.
“후우…… 바닷바람에 완전히 찌들었네. 끝나면 샤워라도 해야겠어.”
오랜만에 본신으로 현현해 흰색의 비늘을 드러낸 용은 자신의 몸에 쌓인 소금기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물론, 그런 걸 걱정할 때는 아니었지만.
“자, 빨리 가자 얘들아.”
아피루스는 짧은 팔로 팔짱을 낀 채 망자가 되어버린 비룡들을 재촉했다.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가진 호기심이 참을 수 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
‘대체, 이곳까지 와서 뭘 가져가려고 하는 거지?’
강화도, 정확히 말하면 그중 진혁의 영지는 텅 비어 있었다.
검독수리와 멜리나를 이용해 남은 망자 하나까지 모두 미국으로 실어 날랐기 때문.
그렇기에, 빈자리에 남은 것은 영지에서의 생활을 위해 쳐 둔 몇 개의 천막과 수백 그루의 검은 나무들뿐이었다.
대체 이 텅 빈 공간에서 뭘 챙겨가겠다는 것인지, 아피루스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응?”
아피루스는 곧, 호기심을 풀 수 있었다.
“나무……?”
하나둘씩 지면에 착륙한 비룡들이, 강인한 앞발로 주변의 아름드리나무를 한 그루씩 뽑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 나무를 대체 뭐에 쓰려고…….”
평범한 나무와 다르게 검은색으로 물든,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빠 보이는 나무들.
하지만 그것뿐이다.
아피루스가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검은 나무들에선 무언가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키이이이!”
하지만 비룡들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주변의 나무들을 들거나 등에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마구잡이로 뽑아 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 가장 선두에 선 비룡이 아피루스에게 다가왔다.
“키이이!”
“뭐, 뭐야.”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비룡을 본 아피루스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그는 비룡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이걸 나보고 들라고?”
“키이이이!”
“……허, 뭐 이런.”
비룡이 자신에게 검은 나무 한 그루를 들이대며 울부짖자, 아피루스는 순간 이 비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대면 진혁 님이 가만 놔두지 않겠지.’
그의 머릿속에서, 진혁의 날카로운 눈빛이 떠오른 순간.
“그래, 내놔.”
“키이이이이!”
아피루스, 최후의 다섯 용 중 하나인 그는 비룡의 요구를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