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42)
세한빌딩의 회장실.
“국제엽사연맹(Hunter League of Nation)에서 비정기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곳에서 아버지, 서강진의 말을 들은 진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연맹에 그만한 힘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마왕과의 전쟁 이후, 이에 준하는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
하지만 설립된 지 70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선 강대국의 의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광고판일 뿐이다.
당연히, 비정기총회 같은 게 열린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 성녀가 무명교의 이름으로 요청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빛냈다.
“마왕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마왕.
지구를 마인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전 세계를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만든 최악의 마인.
그의 이름을 입에 담은 회장의 표정은 무거웠다.
그리고.
“진혁아, 네 생각은 어떠냐?”
“사실입니다. 이미 쾰른에서 확인했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 번째 대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구나.”
아들이 함부로 허언을 뱉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최소한, 마왕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완전한 헛소리는 아니리라.
강진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총회에 참석해서, 다른 나라의 분위기를 살피고 오거라.”
곧, 그의 입이 열렸다.
“지난 전쟁 때도 그랬지만, 이미 마인들에게 포섭된 나라가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건 서가…… 아니, 한국의 안전과도 관련 있는 것이니.”
서가는 지난 대전쟁에서 마왕을 처치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가문들 중 하나.
그 수장인 서강진의 말이 가진 무게는 그만큼 무거웠다.
허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대답하는 진혁의 표정엔 조금의 부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겐 너무나 쉬운 일이니까요.”
“그 자신감은 여전하구나.”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서로를 마주 보는 둘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걸렸다.
샌프란시스코.
미 대륙의 서부 해안에 위치한 거대한 도시.
그곳의 금싸라기 땅을 장악한 수많은 마천루들 중, 유독 눈에 띄는 빌딩이 하나 있었다.
미국헌터협회.
주변의 초고층 건물들이 아이처럼 보일 만큼 독보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건물의 최상층, 213층에선 미국 헌터들의 미래를 결정할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연맹에서 연락이 왔어요.”
에이미 카터.
미국헌터협회를 대표하는 협회장의 말에, 자리에 모인 다섯 헌터들이 침묵을 지켰다.
미국을 지키는 S급 헌터집단, 센티넬.
그들 하나하나가 한 나라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였지만, 눈앞의 평범해 보이는 중년 여성은 그들 모두를 제치고 협회장의 자리를 차지한 자였으니까.
“마왕의 부활 가능성이 있다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사실일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에이미의 말에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미녀였다.
S급 빙결능력자, 제니퍼 메이슨.
“마왕의 사망이 확인된 것이 벌써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실을 뒤집을만한 증거가 나온 적도 없고요.”
“정보부의 의견도 같습니다.”
그녀의 말을 이어받은 것은 옆에 앉아 있던 검은 양복의 남자였다.
“초감각능력자, 예지능력자, 마도위성…… 저희가 가진 모든 정찰자산을 동원했지만, 마왕이 부활했다고 여길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떻죠, 짐?”
“무명교, 혹은 연맹에서 다른 무언가를 노리기 위해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짐이라 불린 검은 양복 사내의 대답에,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곧, 그녀의 입이 열렸다.
“마왕의 부활…… 분명 놀라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신빙성은 많이 떨어지죠.”
연맹의 초대를 받은 자들 중 상당수 역시 그렇게 생각하리라.
직접 확인해 본 것이 아니었음에도 에이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만큼, 마왕의 부활이 임박했다는 연맹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다.
“연맹…… 무명교……하필 둘 다 맘에 안 드는 족속들이라니.”
피식.
에이미의 닫힌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결정을 내린 그녀의 눈이 자리에 앉은 센티넬 중 하나에게로 향했다.
“제이슨, 이번 총회에는 당신이 가 줘야겠어요.”
“제이슨을, 보낸다고요?”
“너무 위험합니다!”
협회장의 말에 짐과 제니퍼가 놀라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내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에이미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제이슨?”
“……어디까지 허용되는 겁니까.”
그녀의 물음에 답한 것은 붉은 피부의 남자였다. X자 모양의 흉터가 얼굴을 크게 가로지르고 있는, 흉측한 얼굴의 사내.
에이미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죽이지만 않는다면, 뭐든지.”
“……재미있겠군요.”
S급 절단 능력자, 제이슨 클라크.
그의 눈빛에서, 진득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낸 진혁은 곧장 강화도로 돌아왔다.
영지에 도착한 그가 가장 처음 마주한 광경은, 한곳에 모인 망자들이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것은, 다름아닌 거대한 고렘.
―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군요.
―이게 갑 급 괴수의 진정한 힘인가? 저 사자놈하고는 질이 다르구먼. 하하하!
―인간에서 변이한 괴수의 육체랑 비교하다니, 이런 무식한 놈을 봤나.
―기왕 만들 거 날개도 좀 달아 주시지. 짐꾼 노릇 좀 그만 하고 싶다고!
성준, 자이츠, 민호, 멜리나.
진혁이 가장 믿고 쓰는 심복들부터, 그 주변을 빼곡히 채운 수백의 스켈레톤까지.
모든 망자들의 주의가 한 곳에 몰릴 만큼, 고렘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용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누나, 정말 엄청나지 않아요? 이런 걸 가디언으로 둘 수 있다면…….”
“일족만큼 강하지는 않아도, 그 바로 아래 등급 정도는 되겠구나.”
“마구 찍어 낼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죠. 인간들의 탐욕이 얼마나 끔찍한지 생각하면…… 어휴.”
청명과 아피루스.
얼마 전부터 영지에 머물고 있는 두 용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금속 거인을 바라봤다.
어쩌면, 자신들 역시 저 고렘의 기술 일부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이봐 자네…… 이름이 무명이랬나? 나랑 대련 한 번 해보지 않겠나?
―저……말입니까?
정작, 당사자인 악령, 무명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아니,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아스칼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군요.
―이봐, 잠깐 이리 와 보라고.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생각나서.
―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야? 내가 먼저 얘길 꺼냈으니 당연히 나 먼저지!
우물쭈물하는 거대한 고렘을 가운데 두고 식귀와 스켈레톤 킹, 전갈사자가 으르렁댔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장면.
진혁이 다가갈 때까지, 셋의 대치는 계속되었다.
“왔구나, 진혁.”
“어, 진혁 님?”
인기척을 느낀 청명과 아피루스가 몸을 돌려 손을 흔들자, 셋의 고개가 순식간에 한 방향으로 향했다.
―진혁 님, 오셨습니까.
―생각보다 빨리 오셨구려.
―주인, 마침 잘 왔소. 이놈들이…….
자신을 반기는 망자들의 인사를 한 귀로 흘리며,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얼마 뒤에 참가할 국제엽사연맹의 총회에 대해서.
‘분명, 조용하진 않겠지.’
아니, 분명 문제가 벌어질 것이다.
전 세계 백여 개의 국가에서 몰려들 각 나라의 대표 엽사들.
서로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얽힌 자들이 한 곳에서 만났는데 아무 일도 없을 리 없다.
허나, 걱정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지.’
혼란은 곧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이므로.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엽사들을 그가 휘어잡을 수만 있다면.
‘에피로나 공략이 좀 더 쉬워질 터.’
언제 마왕이 다시 부활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시선을 끌어야겠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
그리고.
“청명, 아피루스.”
“왜 그러지?”
“무슨 일이에요?”
진혁의 앞엔, 그 목적에 딱 알맞는 자들이 있었다.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다.”
용.
스스로를 세계의 수호자라 칭하는 이계의 강자들.
“어디지?”
“뉴욕.”
지구 최강의 생물 둘을 바라보던 진혁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괌.
한때 미국의 것이었지만, 괴수의 등장 이후 여느 섬들처럼 괴수의 것이 되어 버린 태평양의 작은 섬.
그러나.
지금 괌에 모여 있는 것은, 괴수들이 아니었다.
사람들.
그것도, 전신에서 검은 마기를 풀풀 풍기는 마인들이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자들과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자들, 그리고 온몸에 문신을 덕지덕지 새긴 자들.
각기 폴른과 다크게일, 그리고 인세인이라 불리는 마인들의 집단.
그 앞에 선 것은, 한 명의 남자였다.
“돌아왔군, 서무진.”
서무진.
한 때 흑룡대를 이끌던 대주.
하지만 모든 대원을 잃은 지금은 그저 조금 강한 개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세 집단을 이끄는 나이트와 트리커, 버서커는 그를 얕볼 수 없었다.
스으으!
무진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핏빛 오라.
그것은, 분명 마왕의 고유한 마기였으니까.
“정말로…….”
“……마왕의 힘을 얻을 줄이야.”
무진의 검붉은 기운을 마주한 셋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그중에서도, 마왕과 함께 싸워 본 경험을 가진 나이트의 감회는 남달랐다.
“흠.”
무진은 감격에 벅차 몸을 부르르 떠는 나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내.
“아직 살아 있었구나.”
철가면을 바라보던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펜리르.”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괴하게 울리는 목소리.
그러나.
“헉!”
나이트가 충격을 받은 것은,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담고 있는 내용 때문이었다.
펜리르.
과거 대전쟁 시절, 마왕의 호위였던 그에게 마왕이 직접 붙여 준 별명.
그 누구에게도 말해 주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이름이 익숙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을 때.
“서, 설마.”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선 이 남자는.
서무진이 아니다.
철푸덕!
꼿꼿하게 서 있던 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다른 두 명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공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나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 마왕이시여…… 돌아오셨군요.”
“그래, 맞다.”
새로운 싸움을 하러 왔지.
경악한 표정으로 하나둘 예를 갖추는 마인들을 바라보며.
서무진.
아니, 마왕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