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38)
사흘 뒤.
진혁은 쾰른의 대신전에 들어섰다.
참사가 일어난 지 고작 일주일.
그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붕괴되었던 대신전은 어느정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전투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건물에 걸려 있던 복구 마법과 사제들의 신법이 이뤄 낸 기적.
그곳의 대예배실에 도착한 진혁은 제단 앞에 선 클레어를 마주했다.
회색 사제복을 입고 대주교의 상징인 모자를 쓴 그녀의 가는 손목에 매달린 것은, 회색의 작은 도장.
무명교의 세 성물 중 하나, 천상의 열쇠를 지닌 그녀의 모습은 거대한 교단의 우두머리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가 진혁을 이곳까지 부른 이유는 하나였다.
“이름 없는 신께서 내려주신 권한으로, 서진혁 그대를 교단의 방패, 신앙의 수호자로 임명합니다.”
파앗!
클레어가 선언함과 동시에, 그녀의 몸에서 신성력의 회색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녀를 성녀로 선택한 존재, 이름 없는 신의 의지가 함께한다는 증표.
“이름 없는 신이시여…….”
그 모습에, 대예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렸다.
클레어의 말이 이어졌다.
“그대는 신앙의 수호자로서, 교단을 지키고 신앙의 적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
“받아들인다.”
진혁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다름아닌 이 것을 위해서였으니까.
무명교로부터 신앙의 적으로 규정된 동방의 가문, 이가를 징벌할 권한을 손에 넣는 것.
“이름없는 신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성녀의 마지막 말과 함께 임명식이 끝났다.
저택으로 돌아온 클레어의 눈이 함께 돌아온 진혁에게로 향했다.
“이제, 돌아갈 건가요?”
“곧.”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쾰른에서의 일이 끝난 것도 있었지만, 그에겐 돌아가서 매듭지어야 할 일이 생겼다.
이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부디, 현명하게 행동해 주세요. 저 역시 성녀로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분노한 신도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 줘야 하니까요.”
대주교의 자리에 앉은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건만, 그녀가 진혁을 향해 지은 굳은 표정은 소녀 클레어가 아니라 대주교의 그것이었다.
허나.
진혁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럼.”
그 말과 함께, 진혁은 저택의 문을 나섰다.
“……후우. 부디 다시 만날 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문 너머로 사라진 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클레어는 작은 한숨만을 푹 쉴 뿐이었다.
“팀장님, 출발할까요? 준비는 마친 상태입니다.”
“그러지.”
문을 나서자마자 자신에게 묻는 주연의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려 했다.
“서진혁.”
주연의 등 뒤에서 이설화가 그를 부르기 전 까지는.
“잠깐 할 말이 있는데. 단 둘이.”
오른손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곰방대를 쥔 그녀가 자리를 옮기자는 듯 턱짓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연을 바라봤다.
“잠깐 다녀오지.”
“네, 기다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주연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복구가 한창인 쾰른의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십 분여를 걷자, 거리에 보이는 자는 전부 그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뿐.
설화가 걸음을 멈추고 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린 것은 그때였다.
“그래,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지?”
진혁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눈을 마주하며, 설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가문으로 갈 거야?”
“그렇다.”
진혁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교가 납득할 만한 결과를 보여 줘야겠지.”
무명교는 이가를 적으로 규정했다.
교단의 광신도들이 한국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손을 쓰는 것이, 둘 모두와 관련 있는 진혁이 편해질 방법.
“가문을 멸하진 않겠지만, 그만한 책임은 져야 할 거다. 최소한, 네 오라비 정도는.”
그녀의 가문을 공격하겠단 말을 담담하게 내뱉는 진혁의 눈빛은 무심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문이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건 상관없어.”
설화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이후니까.”
“그 이후?”
무감했던 진혁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설화가 말을 이어 나갔다.
“모든 게 끝난 다음, 내가 가주가 될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인 것 같은데. 설마 네 오라비가 사라지고도 후계자 자리를 뺏길 만큼 능력이 없진 않을 테고.”
“가주가 되는 게 다가 아냐. 가문을 완벽히 장악한 다음에도 너와 서가의 힘이 필요할 테니까. 좀 더 강한 연결고리가 필요해.”
“그래서, 뭘 원하는 거냐.”
계속해서 말을 돌리는 설화를 내려다보며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
곧, 그녀가 조금은 붉어진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혼약.”
“뭐?”
“너와의 혼약이 필요해.”
같은 시간.
이미 지난 주에 쾰른을 떠난 이한은 경복궁의 동궁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밝구나.”
자정을 지나 새벽에 가까운 시간.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별자리들을 올려다보며, 그는 감탄했다.
단순히,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이한이 마주하고 있는 밤하늘이,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일지도 몰랐으니까.
“서진혁……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그를 막을 수 없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을 무리해서 진행한 것 역시,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서진혁의 폭주를 멈추지 못할거란 계산에서였으니까.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 광오한 걸음을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가문을 위기에 빠트리고 말았구나.”
오백여 년의 왕가와 십여 년의 황가, 그리고 백 년의 명가.
수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위기를 겪고도 살아남아 온 가문이 순식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한.
그 자신의 손에 의해서.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이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자해지(結子解之).
직접 만들어 낸 위기였으니, 그 위기를 끌어안는 것도 자신이 되어야 했다.
설사,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할지라도.
그때였다.
“대주.”
마루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던 그의 앞에, 느닷없이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눈만 빼고 온통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그는 이한을 향해 절을 한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명령만 하신다면, 언제든지 실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잘했다.”
자신이 누구보다 믿는 부하의 말에 이한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허나, 부대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선 착잡함을 숨길 수 없었다.
“자네까지 나설 필요는 없네. 이건 오롯이 나의 잘못이니. 내가 죽어서 지옥까지 안고 가야 할 과오일세. 지금이라도 떠나게. 익문사를 이끌 사람은 남아 있어야 하니.”
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후임은 정해 두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이…….”
“처음부터 제게 하늘은 전하와 대주뿐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데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후우.”
고개를 숙인 부대주를 내려다보며,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남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럼, 이만 일어나게. 곧 죽을 사람인데, 그때까지 말동무나 하세.”
이한은 무릎 꿇은 부대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든 남자의 눈동자가 잠시 떨렸다.
이윽고.
“……알겠습니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킨 부대주를 바라보던 이한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검독수리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진혁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세한빌딩의 회장실이었다.
“그래, 팔다리는 멀쩡히 붙어 있구나.”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약간의 살기를 담아 자신을 쏘아보는 아버지, 서강진의 눈빛에 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세한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자각하라고 한 지가 언젠데, 이렇게 몸을 막 굴리면 어쩌겠다는 게냐?”
“아버지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전 직접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 원, 말을 말아야지…….”
뻔뻔한 아들의 대꾸에 강진은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이미 이야기는 들었다.”
아들이 쾰른에서 벌인 모든 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
진혁은 오히려 잘 됐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중으로 이가에 찾아갈 생각입니다.”
그 말에, 강진은 의아한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진혁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역시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무명교를 대신해, 이번 일을 저지른 이가를 징벌하는 것.
“빠르구나. 지원이라도 필요한 게냐?”
“아닙니다. 서가까지 끼어들어선 일이 복잡해집니다.”
진혁은 고개를 젓고는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저, 다른 가문에서 개입하지 못하도록만 해 주십시오.”
“굳이 내가 손쓰지 않더라도, 네 행사에 개입하려는 머저리는 없을 테니 걱정 말거라.”
아버지의 코웃음을 들으며, 진혁은 슬슬 회장실을 떠나려 했다.
‘우선은, 이한을 찾는다.’
이설화의 오라비이자 이 사태의 진정한 원흉.
그를 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가의 다른 자들에 대한 징벌은 그 다음.
‘굳이 거기까진 손댈 필요도 없겠지만.’
진혁이 신앙의 수호자라는 허명을 받아들인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우웅!
그의 주머니가 부르르 떨려 온 것은.
진혁은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무슨 일이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연의 목소리에, 진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경복궁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겠다.”
진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