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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29화 (129/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29)

“이런 느낌은 정말이지…… 처음이로구나.”

인간의 형태로 모습을 바꾼 청명은 자신의 전신을 눈으로 훑으며 흥미로워했다.

“화신체로 변했음에도 마기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그녀의 말대로, 인간의 모습을 한 그녀의 피부엔 거뭇거뭇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본체를 잠식한 마기의 흔적.

“그리고, 그런 몸으로도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더더욱 놀라운 일이구나.”

“확실히 해 두자면, 네 육체는 그 몸뚱이가 아니라 뒷덜미에 박힌 영혼그릇이다.”

경탄하는 청명을 향해 진혁은 한 마디를 툭 내던지며 그녀의 목 뒤를 가리켰다.

인간의 형태를 한 화신체임에도, 청명의 목 뒤엔 피부 밖으로 주먹만 한 붉은색의 구슬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영혼구슬이 파괴되지만 않는다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너희 장로보다 오래 살지도 모르지.”

“그건 지금까지와 다를 게 없구나. 용심이 파괴되면 소멸에 드는 것은 똑같은 일이니.”

진혁의 경고 겸 충고를 들은 청명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났으니, 그 정돈 감수해야겠지. 그대 덕에 의무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 수수께끼를 풀기도 전에 답을 알게 되어 버린 건 조금 괘씸하다만.”

수수께끼.

진혁이 가진 특별한 능력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청명의 본래 목적이었지만, 그녀 자신이 진혁의 사령술에 의해 망자로 되살아난 순간 그녀는 답안지를 확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답은 찾았나?”

과연, 망자가 된 용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청명을 바라보는 진혁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물론.”

그 말에, 청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옛 세계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실제로 마주할 줄은 몰랐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혁의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무슨 말이지? 옛 세계라니.”

순간.

그녀를 바라보는 진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피루스, 옛 세계란 말을 들어봤느냐?”

“아뇨.”

깨어난 청명, 벨레룩스와 진혁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아피루스는 고개를 저었다.

말리아는 어린 용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에피로나에 이름 없는 신이 내려오기 수만 년 전에도 우리 일족은 세계를 수호하고 있었단다.”

“……수만 년 전이요?”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용에게도 아득할 만큼 긴 세월.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요.”

잠시 수 만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가늠해보던 아피루스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을 게다. 나 역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말로만 전해 들은 이야기니까.”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에게도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이자, 이제는 그와 몇몇 용들을 빼고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고대의 역사.

지금의 에피로나처럼 멸망해 버린, 이름 없는 신보다 오래된 역사 이전의 세계.

언제 소멸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린 말리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 당시엔 아스칸…… 이라고 불렀다더구나.”

십 년의 잠에서 깨어난 진혁에게, 아스칸과 파슬란은 꿈속의 존재일 뿐이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며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지구의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도 가지지 못한 어딘가의 세계와 사람.

그러나.

“아스칸.”

청명의 입에서 꿈속 세계의 이름이 불린 순간.

“고룡인 장로조차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일이니, 남아 있는 거라곤 거의 없다시피 한 역사 이전의 세계니라.”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일족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 중에는, 영혼을 다루고 죽은이를 살려내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 예전엔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네 능력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지더구나.”

진혁은 입을 뗄 수 없었다.

일 초에도 수백 번씩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래…… 가장 먼저 의심했어야 했는데.’

아스칸의 파슬란이 사령술사로서 가진 명계의 대리인이라는 자격이, 어째서 자신에게 똑같이 주어졌는가.

처음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사령술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파슬란의 세계인 아스칸이 다른 세계가 아니라 에피로나의 과거였다면, 그와 파슬란의 관계도 바뀌게 된다.

‘환생이라.’

그것도, 전생의 자신이 가진 기억을 가진 채 지구의 서진혁으로 태어났다.

명계의 순환시스템을 거치면서 지워졌어야 할 기억이 남아 있다는 건, 그의 환생이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었다는 의미.

‘파슬란이, 뭔가 손을 썼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진혁은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잘된 일이야.’

에피로나가 정말로 아스칸이라면, 그곳엔 분명 파슬란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용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된 과거라고는 하지만, 세계의 반을 다스렸던 망령군주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리진 못했으리라.

에피로나에 갈 이유가, 이로써 하나 더 늘어난 셈.

‘파슬란…… 뭘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용하는 건 나다.

생각을 정리한 진혁의 눈이 차갑게 번쩍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가 굳은 표정으로 한참 동안 침묵하자, 청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것도.”

진혁은 고개를 흔들고는, 청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아스칸에 대한 모든 것을 듣고 싶다.”

꿰뚫을 듯 날카로운 인간의 눈빛에, 청명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팔국에서의 일이 끝난 지 일주일.

진혁과 주연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착이군요. 고생하셨습니다, 팀장님.”

“부팀장이야말로.”

게이트를 통과하며 주연이 고개를 숙이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직접 전투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한 일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전투 이후의 복구작업이나 배상문제, 사업문제 등을 담당한 것은 다름 아닌 주연 혼자였으니까.

“……감사합니다.”

설마 칭찬을 들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주연은 당황한 눈으로 진혁을 빤히 바라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 한국이야?”

그들의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두 사람을 따라온 어린 용, 아피루스.

“와, 되게 자그마한데?”

“중원과 비교하면 작을지 모르지만, 만만히 봐선 안 된다. 서진혁의 나라니까.”

그러자, 그 옆에서 함께 걷던 청명이 조언했다.

“하긴, 그건 맞아.”

“그만 떠들고 이쪽으로 오도록.”

진혁은 자기들끼리 뭐라 중얼대는 용들을 향해 손짓하고는, 게이트 바로 옆에 준비된 서가 전용의 출입로를 향해 걸어갔다.

출입로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세한의 직원이 진혁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서진혁 팀장님, 신주연 부팀장님. 뒤에 두 분은?”

“손님이다.”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국에선 서가라는 성이 곧 신분증이나 다름없었으니, 입국 심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진혁 님, 굳이 이런 걸 타야 돼요? 날아가면 금방인데.”

미리 공항에 준비해 둔 진혁의 차에 탄 아피루스가 답답한지 칭얼댔다.

진혁의 답은 짧았다.

“시끄럽다.”

아피루스는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영종도의 공항에서 진혁의 영지가 위치한 강화도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이곳도 오랜만이구나. 고요한 것은 여전히 똑같아. 모습은 조금 변했다만.”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던 청명은 하나둘씩 올라가는 건물들의 모습에 흥미를 보였다.

딱딱! 딱딱딱!

사람만큼…… 아니, 사람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스켈레톤들이 줄지어 무거운 자재들을 옮기고 쌓아 가며 건물을 짓는 광경이, 그녀의 눈엔 마치 굴을 파는 개미들 같았다.

그녀의 말에 진혁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마기를 다루는 연습을 하는 게 좋을거다.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길 테니까.”

진혁이 청명과 아피루스를 굳이 인적이 없는 자신의 영지로 데려온 이유였다.

그 말에, 청명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입을 열었다.

“곧 떠날 사람처럼 말하는군. 갈 곳이라도 있나?”

그녀의 질문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유럽.”

이한과 이설화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며칠 전의 일.

허나.

“허어…….”

홍콩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음에도, 이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이토록 근심이 가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서가의 기세가 너무…… 너무 강해졌어.”

정확히는, 그중 한 사람.

“진혁이…… 자네의 목적을 도저히 알 수 없단 말이야.”

이한은 책상 위에 올려둔 서진혁의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렇게 하면, 상대의 의도가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서진혁은 요정과 연을 맺었고, 중원의 용들과도 친분을 가지고 있지.”

요정과 용.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진 몇 세력 중 둘이 그와 연관되어 있었다.

배경으로만 따진다면, 진혁이 가진 배경은 이제 세계의 그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

기껏해야 한반도를 영역으로 삼는 엽사 가문들과는 그 격차가 너무 컸다.

다른 네 가문이 힘을 합쳐도 막기 버거울 정도로.

“이대론…… 막을 수 없겠구나.”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한반도는 서서히 서가와 서진혁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일부러 그러지 않더라도, 서가의 위세에 눌린 다른 가문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 것이다.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숙이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럴 수는 없지.”

이한의 생각은 달랐지만.

“결국,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야 하는가.”

진혁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용이나 요정에 버금가는 세력과 손을 잡고, 한반도에서 서가와 서진혁을 견제하는 것.

당연히, 이한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되지 않았다.

“무명교라…….”

무명교를 상징하는 회색의 성표가 새겨진 대신전.

“결국, 이 방법뿐인가.”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 속 신전.

그 한구석에 선 어린아이를, 이한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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