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28)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진혁의 제안을 받은 말리아의 첫 마디는 부정적이었다.
“마기에 침식된 자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 큰 피해를 끼치기 전에 죽여야 해.”
에피로나에 괴수들이 도래한 이후 수백 년간 침식을 연구해 왔던 그였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침식을 끝낸 마기가 주변까지 잠식하기 전에 소멸시키거나, 봉인마법으로 영원히 세계와 격리시키는 것.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기에 침식당한 육체를 완전히 봉인시켜 버린다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겠지. 허나, 세계와 격리된 채 영원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죽음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이더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말리아에게, 상대의 말은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영혼이 침식당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뭐라고?”
“영혼과 육체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라면 마기가 직접적으로 파고들 일은 없을 테니, 마룡이 되어 미쳐 버리진 않겠지. 육체에 파고든 마기를 제어할 방법은 따로 찾아야겠지만.”
언뜻, 진혁의 이야기는 맞는 것처럼 보였다.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마기가 아닌 영혼.
그의 말대로 영혼만 마기로부터 지켜 낼 수 있다면, 마기에 찌든 육체가 제멋대로 움직일 일은 없을 테니까.
단 하나, 커다란 문제점이 있을 뿐.
“영혼과 육체의 연결을 끊는다. 보통은 그걸 죽음이라고 부른다네, 인간이여.”
영혼과 육체는 서로 상호 보완적인 존재다.
영혼 없는 육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육체 없는 영혼은 오염되어 망령이 된다.
결국, 진혁의 이야기는 말리아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다르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말리아를 향해,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죽었다 한들, 생전처럼 육체에 영혼이 깃들어 있고 움직일 수 있다면 너희가 짊어져야 할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죽음을 역행하겠단 말이냐?”
죽은 자를 되살려 내는 것은 수천 년의 삶을 살아온 그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이름 없는 신조차도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할 터.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그 불가능한 일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 하는 용의 눈빛 앞에서, 진혁은 입을 열었다.
“내겐, 그럴 자격이 있다.”
붉게 빛나는 주먹만 한 구슬.
무궁한 마나를 머금은 붉은 색의 용심을 쥔 채로.
* * *
‘죽어 가고 있구나.’
청명.
본래 벨레룩스란 이름을 지니고 있었던 용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마기에 의해, 완전히 먹혀 버렸어.’
마기는 탐욕스럽다.
자신과 가까이하는 모든 것에 파고들고, 끝내 집어삼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번엔, 그 대상이 그녀의 육체였을 뿐.
‘아마, 장로가 날 소멸시키겠지.’
이미 에피로나에서 수도 없이 봐 왔던 광경.
청명 역시 마기에 침식당해 몸부림치는 동족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했었으니,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청명은 절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마룡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야.’
그녀의 몸을 빼앗았던 괴수는 소멸한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마기가 주변을 침식한다면 큰 문제가 될 테니까.
세계의 수호자 중 하나로 살아왔던 그녀가 세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단지.
‘그래도…… 아쉽군.’
청명의 마음 한 편에 남아 있는 미련이, 그녀의 명줄을 조금 더 부여잡고 있을 뿐.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녀석의 비밀을 완전히 풀 수 있었을 텐데.’
서진혁.
평범한 인간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능력을 지닌 존재.
그렇기에, 오랜만에 그녀에게 흥미를 준 존재.
진혁을 다시는 못 보게 된다는 사실이 청명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르지, 죽으면 알게 될지도.’
청명은 마음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마기로 범벅된 정신세계 안에서 최후를 준비했다.
‘살고 싶은가?’
한 줄기 음성이 그녀의 정신계를 뒤흔들기 전까지는.
청명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서진혁?’
영혼의 형태로 그녀의 정신세계 안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인간이, 그녀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살고 싶은가?’
어둠으로 가득한 청명의 정신세계에서, 진혁의 모습은 회색빛을 사방에 흩뿌리는 촛불과도 같았다.
‘아니.’
청명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기에 잠식된 채로 세계를 파괴하며 살 바엔, 그냥 소멸당하겠다.’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짊어질 수 있는 수호자의 의무.
진혁의 영혼을 마주 바라보는 청명의 눈엔, 조금의 망설임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청명의 거절에도 진혁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살고 싶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마기에 먹혀 버린 이상, 내 존재 자체가 세계에 위협이 될 테니까. 이대로 조용히 소멸하는 것이 세계를 위한 일이니.’
그 사실은, 마기에 물든 마룡들에게 안식을 주었던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삶을 포기한 듯, 그녀의 하얀 얼굴에 체념이 깃들었다.
그럼에도.
‘내 질문에 답해라, 마지막으로 묻지.’
진혁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살고 싶으냐?’
마지막 질문.
청명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살고 싶은가?’
당연히, 살고 싶었다.
생명체라면 죽음보다 삶을 택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
세계의 수호자로 만들어진 용이라 할지라도 다를 것은 없다.
단지, 그녀에게 주어진 상황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을 뿐.
‘어떤 방법으로라도, 살고 싶은가?’
청명이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자, 진혁이 재차 물었다.
이야기로만 들어본 사신(死神)의 모습이 이랬을까.
회색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진혁의 영혼엔, 용인 청명조차도 거부하기 힘든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나방이 불꽃에 이끌리듯, 그녀의 의지가 저절로 반응했다.
‘……살고 싶어.’
의무와 희생 속에 겹겹이 싸매 놓은 그녀의 본심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네게, 새로운 삶을 주마.’
진혁의 회색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흘러나왔다.
* * *
홍콩 섬 한복판에 쓰러진 검은 용을 두 용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로님, 정말 괜찮은 걸까요?”
그 중 하나.
지구의 일곱 용 중 가장 어린 아피루스의 목소리는 떨려 오고 있었다.
“마기에 물든 누나를 살리겠다니…….”
그것도, 같은 용이 아니라 인간이.
아피루스가 당분간 섬겨야 할 존재였기에 뒷말은 억지로 삼켰지만, 그의 표정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피루스.”
“……네?”
장로, 말리아가 담담하게 내뱉은 말에 아피루스는 당황한 눈을 끔뻑였다.
말리아는 주변의 마나를 움직여 벨레룩스의 육체 속 마기를 통제하며 입을 열었다.
“나 역시 오랜 세월을 살아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죽어야 할 자를 살려 낸다니.”
“그럼, 장로님은 어째서…….”
“최소한, 저 인간이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 것 같더구나.”
그 말과 함께, 말리아는 옆에서 선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진혁을 바라봤다.
진혁의 손에 들린 것은, 아피루스가 사죄의 의미로 건네준 용심.
고요한 진혁의 몸과 달리 격정적으로 날뛰는 용심 속의 붉은 마나를 바라보며, 말리아는 말을 이어 나갔다.
“결국,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감뿐이니까.”
“아…….”
언뜻 어처구니없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아피루스는 장로의 말을 듣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감이 수천 년의 삶을 살아온 고룡의 것이라면, 그건 단순한 감이 아니라 예지에 준하는 분석의 결과일 테니까.
“그러니, 집중하려무나.”
“네?”
“거기, 마기가 새어 나오려 하지 않느냐.”
“앗!”
장로의 말에 화들짝 놀란 아피루스는 다시 집중해 벨레룩스에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용의 몸을 완전히 침식한 마나를 제어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드는 과정.
제법 시간이 지나자, 벨레룩스의 검게 물든 육체에 푸른색의 보호막이 덧씌워졌다.
“이제, 끝났구나.”
말리아는 벨레룩스의 몸에 씌워진 술식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것은 인간의 술법이 성공하는 것.
필요한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 뿐이었다.
‘과연.’
불신 반 기대 반으로, 말리아와 아피루스는 쓰러진 일족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파앗!
벨레룩스의 목뒤에 자리 잡은 용심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온 것은.
“장로님, 누나는 적룡……이지 않았나요?”
“……그렇지.”
적룡의 용심에서 백색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현상에, 두 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하얀빛이 한 곳에 모여들어 진혁의 손에 쥐어진 용심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우웅―!
그가 가진 용심이 붉은빛과 흰빛, 회색빛이 섞인 채 진동했다.
죽은 듯이 고요하게 서 있던 진혁이 눈을 뜬 것은 그때였다.
“……되었나.”
오른손에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진혁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술법이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영혼을 육체에 직접 불어넣는 대신, 육체를 대신할 용기에 불어넣는 사령술, 영혼 그릇의 술법.
회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거무튀튀한 불꽃이야말로, 술법의 성공을 알리는 증표였다.
이제, 진혁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망령이여.”
파슬란으로부터 전수받은 사령술에 따라, 새로운 망자를 되살리는 것.
“명계의 율법에 따라, 새로운 육체에 깃들어라.”
스으으―!
그 말과 함께, 진혁의 손에 쥐어져 있던 용심이 하늘로 떠올랐다.
쐐애액―!
흑마력과 영혼, 그리고 적룡의 힘이 뒤섞여 있는 구슬이 빠른 속도로 벨레룩스의 쓰러진 육체를 향해 날아갔다.
곧, 본래 용심이 자리하고 있던 벨레룩스의 목뒤를 파고들어 간 순간.
“아니……!”
말리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벨레룩스의 눈도 마찬가지로.
쿵, 쿵.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검은 용의 육체는, 살아 있을 때와 다를 바를 느끼지 못 할 만큼 생생했다.
……이런 거였나.
일어선 채 마기로 물든 자신의 앞발을 몇 번 쥐었다 펴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봤다.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 주다니, 흥이 다 깨져 버렸지 않느냐.
머릿속으로 전해져 오는 그녀의 투정에, 진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