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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26화 (126/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26)

어린 용, 아피루스의 설명을 모두 들은 진혁은 한 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빙의인가.’

자신의 영혼을 다른 이의 육체에 옮기는 기술.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처럼 용들을 공격한 데다 용이라면 다루지 않아야 할 마기까지 능수능란하게 다뤘으니, 청명의 몸을 움직이는 영혼 자체가 바뀌었다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정확한 건 직접 봐야 알겠지만.’

문제는, 어떤 영혼이 그녀의 몸을 차지했는가다.

마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괴수나 마인의 영혼일 가능성이 컸지만.

‘놈들에게 영혼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스칸에서라면 종종 벌어졌던 일이지만 지구에서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 진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명은 지금 어디 있지?”

“벨레룩스 누나라면, 아마도 지금 천경에…….”

진혁의 물음에 아피루스가 대답하려던 그때.

구구궁-!

충격파가 진혁이 묵고 있던 호텔을 뒤흔들었다.

쨍그랑!

진혁은 재빨리 강렬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깨진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곧.

“저기 있군.”

“네?”

알 수 없는 진혁의 말에, 아피루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한 아피루스의 두 눈이 커졌다.

“누, 누나! 장로님!”

“천경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제법 급했던 모양이지.”

허공에서 나타난 두 마리의 용을 바라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붉은 비늘을 전신에 덮은 채 하늘을 날고 있는 거대한 파충류, 청명.

그와 맞서는 것은 노인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용이었다.

구궁! 구구궁!

그들이 공중에서 부딪칠 때마다 일어난 충격파가 도시를 뒤흔들었다.

어느 한쪽도 쉽사리 밀리지 않는 치열한 접전.

진혁의 눈이, 청명의 비늘 위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으로 향했다.

‘마기를 쓰고 있어.’

스으으!

영안을 발동한 그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곧, 거대한 용의 몸을 향한 진혁의 시야에, 세 영혼이 들어왔다.

청명의 육신 전체에 퍼져 있는 검은 영혼 둘과, 그에 밀려 구석에 박혀 있는 하얀 영혼.

그중 하나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혁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영혼이 대체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나.’

주시자.

아스칼론과 악령의 힘으로 처치하는 데 성공한 갑 급의 괴수.

청명의 몸을 움직이는 영혼의 파장은 분명, 놈의 것과 닮아 있었다.

곧, 진혁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제압한다.’

용의 육체에 빙의한 놈의 영혼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선, 그 편이 가장 좋았다.

진혁은 고개를 돌렸다.

“아피루스.”

그의 옆에서 당황한 표정을 지은 어린 용, 아피루스에게로.

“뭐 하고 있는 거지?”

“네?”

아피루스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자, 진혁은 짧게 말했다.

“가서 장로를 도와라. 나도 돕겠다.”

스으으!

말을 마친 진혁은 손을 들어 흑마력을 끌어올렸다.

‘가라.’

곧, 그가 망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을 때.

“키이이이이!”

거대한 용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쾅! 콰광!

연속해서 터지는 폭음이 도시를 뒤흔든다.

‘대체…….’

그 장본인인 중원의 황제이자 용족의 장로, 말리아는 표정에서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아무리 본신의 힘을 쓰지 않았다지만, 고룡인 나와 맞부딪칠 수 있다니.’

콰아앙!

상대인 적룡의 공격을 손을 휘저어 가볍게 막아 내면서도, 그의 눈은 상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인과 괴수들이 다루는 기운, 마기의 흔적.

‘마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일족이란…… 이렇게 강한 것인가.’

마기와 섞인 벨레룩스의 권능은 이전보다 두 배 이상 강했다.

수 천 년을 살아온 고룡 말리아조차도 본신의 힘을 전부 쓰지 않고는 제압하기 힘들 정도로.

‘후폭풍이 크겠지만, 어쩔 수 없나.’

고룡이 가진 힘이 세계의 균형을 깰 수 있기에 스스로 몇 겹의 언령을 덧씌워 봉인해 둔 힘.

하지만, 눈앞에서 미쳐 날뛰는 마룡(魔龍)을 막아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설사, 일족인 벨레룩스가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더라도 감수해야 할 일.

‘그럼…….’

말리아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에 걸어 둔 봉인을 풀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가 봉인을 풀기 전.

“키이이이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말리아는 눈을 뜨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저건……?’

이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무언가를 발견한 말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체적인 몸은 분명 일족의 것이었으나, 목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병 급의 괴수, 천둥비룡의 머리와 목을 용의 몸통에 억지로 붙여 놓은 괴상한 생김새.

‘역겹군. 괴수 놈들, 일족의 육체로 대체 무슨 짓을…….’

미쳐 버린 청명을 돕기 위해 온 괴수의 지원군일 거란 생각에, 말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놈을 제거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허나.

“허.”

그의 생각은 사실과 달랐다.

콰르릉!

기괴한 생김새의 용.

그 머리 위에 난 금색 뿔에서 쏘아진 검은 번개의 목표는, 말리아 자신이 아닌 청명이었으니까.

네놈……!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적룡이 고개를 돌리며 살기를 내뿜었다.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용의 육체를 뒤집어쓴 주시자의 신경을 거스르기엔 충분한 수준.

고작 이런 힘으로 이 몸을 건드리다니, 단숨에…….

사악한 의지를 주변으로 내뿜어 내던 용의 아가리가 붉게 달아올랐다.

용의 권능 중 하나인 숨결을 내뱉으려는 준비였지만.

콰아아아!

그가 지옥불보다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 것보다, 지상에서 쏘아진 불꽃이 그를 공격하는 게 먼저였다.

콰앙!

하얗게 타오르는 불덩이가 용의 몸과 닿으면서 폭발했다. 폭발의 후폭풍이 주시자의 몸을 밀어내자, 그가 준비하던 숨결의 방향이 어긋났다.

콰아아아!

결국, 그의 입에서 쏘아져 나간 검은 불꽃은 애꿎은 하늘을 가를 뿐.

―대체…… 어떤 놈이……!

두 번이나 방해당해 분노한 주시자가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너희로구나.

그 정체를 확인한 주시자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전갈의 꼬리를 가진 사자와 금속 투구를 쓴 식귀, 그리고 거대한 검을 손에 쥔 해골.

생전의 그를 살해한 존재들이, 그곳에 있었다.

―좋아, 전부 집어삼켜 주마!

분노한 마룡의 의지가 바깥으로 터져 나온 순간.

스으으!

진한 마기가 도시로 퍼져 나갔다.

‘강해.’

하늘을 뒤덮은 검은 기운을 올려다보며, 진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용의 육체를 가졌기 때문일까.

주시자가 내뿜는 마기의 양은 이전에 놈이 사용하던 몸에서 나오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했다.

‘평범한 자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마인이 되겠어.’

결계를 세울게요!

우웅!

심각함을 눈치챈 아피루스가 재빨리 권능을 사용했다.

곧. 반구형의 보이지 않는 결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마기의 움직임을 막아 냈다.

그 덕분에, 진혁을 포함한 용과 망자들이 결계 안에 갇혀 버렸단 게 문제였지만.

‘고룡이 가진 마나라면, 이 정도 농도의 마기에선 충분히 버텨 낼 수 있겠지만.’

결계 안에 갇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마인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추가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리라.

‘그 전에 끝내야 한다.’

그 대가로, 조금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망령이여.”

스으으!

진혁은 품에서 영혼 구슬을 꺼내 들고는 흑마력을 끌어 올렸다.

“주어진 육체에서 벗어나 본래 자리로 돌아오라.”

그의 입이 사령술의 주문을 완성한 그때.

파삭!

지상에서 명령을 대기하고 있던 수백의 스켈레톤들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한때 망자의 육체였던, 이제는 뼈 무더기가 된 해골들 사이로 수백의 회색 영혼이 진혁을 향해 몰려들었다.

―어째서…… 육체를……!

―돌려……줘……!

육체를 잃어버린 수백 망령들의 원한 섞인 목소리가 진혁의 뇌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진혁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돌아와라.”

끼야아악!

그러자 귀곡성과 함께 진혁을 둘러싼 원혼들이 영혼 구슬로 빨려 들어갔다.

우우웅!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육체를 주마.”

분노한 망령들로 가득 찬 영혼 구슬이 그들의 분노로 부르르 진동했지만, 진혁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영혼 구슬을 품속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는, 그의 시선이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결계를 유지하던 아피루스에게로 향했다.

“아피루스.”

“네?”

“내 육체를 지켜라.”

“갑자기 뭔 말이에요, 그게.”

진혁의 말에 아피루스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털썩!

“뭐, 뭐야?”

서 있던 진혁의 육체가 바닥에 힘없이 무너져내린 순간,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수, 숨은 쉬는 거 같은데…….”

갑자기 쓰러진 인간을 바라보며, 아피루스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진혁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정도로.

‘고통스럽구나.’

벨레룩스.

마지막 남은 일곱 용 중 하나이자 팔국의 수호룡인 그녀였지만, 지금의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영혼이.

‘내 육체를 이토록 쉽게 빼앗기다니…….’

하수도에서의 기습이 영향을 준 모양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는 세계의 수호자인 용이다.

괴수에 맞서 세계를 지키는 대신, 괴수에게 육체를 빼앗겨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괴로울 수밖에.

그러나, 육체를 빼앗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하게 자신의 육체가 파괴를 저지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

‘장로께서 깔끔하게 끝내 주시길 바라야겠구나.’

그녀의 몸이 더 이상의 파괴를 저지르기 전에, 누군가가 막아 주는 것.

그것만이, 그녀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파앗!

검은 기운으로 시커멓게 물든 세계를 한 줄기 회색빛이 가로지른 것은.

‘이건……?’

회색빛의 궤적을 바라보던 벨레룩스의 영혼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을 가진 빛줄기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영혼이었다.

신과 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자를 상징하는 회색.

‘서진혁……?’

처음으로 서진혁의 영혼을 마주한 벨레룩스는, 한동안 생각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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