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25화 (125/174)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 (125)

주시자를 처치한 다음, 홍콩 섬에 남아 있던 괴수들을 정리하는 작업은 빠르게 끝났다.

전투의지를 잃은 괴수들이 모두 지하의 게이트를 통해 도주해 버린 탓도 있었지만, 진혁의 망자들과 이가의 두정갑 두 대가 섬 전체로 퍼져 괴수들을 정리한 덕분이었다.

―이 쪽은 끝났어. 더 이상 움직이는 괴수는 없는 거 같아.

―여기도 마찬가지라네.

통신구슬로부터 들려오는 남매의 목소리.

“알겠다.”

멜리나의 등 위에 올라탄 채 하늘을 날고 있던 진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미 괴수의 물결에 휩쓸린 도시는 처참하게 파괴된 상태.

그 사이로, 진혁이 부리는 스켈레톤을 비롯한 망자들이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괴수들에게 칼날을 박아 넣고 있었다.

―진혁 님, 더 이상 살아있는 괴수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요, 주인. 죄다 지하로 도망친 것 같은데?

―여기도 마찬가집니다.

“수고했다. 우선은 대기하도록.”

스켈레톤들을 이끌고 간 성준과 자이츠, 민호를 향해 명령을 내린 그는 자신이 타고 있는 용, 멜리나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로 가지.”

―알았어요.

멜리나는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면서 날개를 움직였다.

쐐애액!

곧, 그녀의 거대한 몸뚱이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도착했어요. 으, 축축해.

오래 지나지 않아, 멜리나는 지면에 발을 디디고는 주인이 내리기 쉽게 꼬리를 바닥에 내리며 불평했다.

진혁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등에서 내려왔다.

곧, 지면에 내려선 그는 자신의 앞에 쓰러져있는 주시자의 사체를 바라봤다.

‘죽었군.’

정 중앙을 관통당한 거대한 눈 형태의 육체에서는 영혼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안으로 영혼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진혁의 생각에, 눈앞의 괴수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갑 급 치고는…… 너무 약했지만.’

수많은 괴수들을 부려 홍콩을 휩쓸어 버린 갑 급의 괴수.

그럼에도, 그 육체는 칼날 하나 막아내지 못할 만큼 연약했다.

갑 급의 보구가 강력한 병기인 것도 이유였지만, 놈의 육체적 능력이 그만큼 약하다는 의미.

‘망자로 부린다고 해도…… 별 쓸모는 없겠지.’

놈의 영혼을 사로잡았다면 갑 급 괴수가 가진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영혼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

허약한 껍데기만 되살려 쓸 바엔, 차라리 연구용으로 팔아 버리는 게 더욱 도움이 되리라.

―저, 주인님.

어느새 진혁에게 가까이 다가온 민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때였다.

―저 갑 급 괴수의 시체, 제가 써도 되겠습니까?

“어디에 쓰겠단 거지?”

민호의 말에 진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망자를 바라봤다.

거대한 사자의 육체에 전갈의 꼬리와 갑각을 덕지덕지 붙인 형태를 지닌 갑 급 괴수, 전갈사자.

흉포하게 생긴 외형과는 달리, 진혁과 주시자의 사체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생전의 연구를 다시 해 보고 싶습니다.

“연구?”

―갑 급 보구를 만들어 내는 연구였죠. 지금까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만.

“갑 급 보구라.”

갑 급 보구.

현대의 마공학으로도 재현해 내지 못한 고대의 강력한 보구들.

그것을 직접 만들어 내겠다니?

민호의 말을 들은 진혁의 표정에 흥미가 어렸다.

아직 갑 급 괴수의 육체를 재료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으니, 어쩌면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뒷말을 흐리며 슬슬 눈치를 살피는 전갈사자.

진혁은 민호와 주시자의 시체를 몇 번 번갈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영지에 연구할 공간을 만들어야겠군. 그 발로 실험도구를 만질 순 없을 테니, 스켈레톤도 몇 붙여야겠고.”

―……감사합니다.

흔쾌히 승낙한 주인을 향해 전갈사자는 고개를 숙였다.

‘갑 급 보구를 얻을 수 있다면, 에피로나에서 활동하기 더욱 편하겠지.’

진혁이 민호의 부탁을 들어준 이유.

성공한다면 저 쓸모없는 갑 급 괴수의 육체를 재료로 아스칼론과 같은 힘을 지닌 보구를 만들 수 있다는데, 거절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외눈박이.

그의 목표를 떠올린 진혁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때였다.

파앗!

진혁의 앞에서 백광이 번쩍였다.

나타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빛무리의 뒤로 나타난 것은, 온몸에 피칠갑을 한 소년.

청명과 함께 진혁이 보냈던 어린 용, 아피루스였다.

“무슨 일…….”

몸에 덕지덕지 묻은 피야 청명의 것이라 하더라도, 겁에 질린 아피루스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진혁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

“베, 베, 벨레룩스 누나가 이상해요!”

아피루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상하다고?”

“갑자기 일어나더니, 장로님을…….”

그 말을 들은 진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쾅! 콰앙!

거대한 충격파가 공중도시 천경을 뒤흔들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번질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세운 조각상과 건물이 박살 나고 무너졌다.

하지만, 도시의 주인인 말리아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여자의 손에 깃든 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닿기만 해도 침식당할 만큼 진한 농도의 마기.

콰아앙!

마기를 가득 머금은 그녀의 주먹이 보이지 않는 벽과 부딪치며 충격파를 내뿜었다.

무엇이든 부술 것만 같은 파괴적인 기운이 투명한 장벽을 타고 주변으로 퍼져 나가 도시를 망가트렸다.

허나, 그녀는 결국 벽을 뚫지 못했다.

뒤로 물러선 여자는 입술을 뒤틀었다.

“……그래, 역시 고룡이란 말이군. 같은 용이라도 이 정도의 차이가 날 줄이야.”

“수 천 년의 시간이란 벽이 그리 쉽게 뚫리진 않는다네.”

이를 악문 벨레룩스, 아니 주시자의 말에 말리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말투와 달리 벨레룩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분노로 가득했다.

감히, 몇 남지 않은 일족의 육체를 빼앗은 괴수에 대한 분노.

“그러니, 이만 포기하게.”

말리아는 손을 휘저었다.

우웅!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고룡의 의지에 의해 재배열된 주변의 마나가 세계의 법칙을 비틀었다.

그 대상은, 말리아의 앞에 선 여자.

“허억!”

자신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에 여자는 무릎을 꿇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수백 배로 강화된 도시의 중력에 끌어당겨진 것이었지만.

쩌저적!

그녀가 무릎을 꿇은 대리석 바닥에 자잘한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강력한 용의 육체와 마나를 지녔음에도, 주시자는 중력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일은 나도 수천 년 동안 본 적이 없으니, 당장 해결하진 못할걸세.”

힘겨워하는 주시자를 내려다보며, 말리아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지. 그동안 자네를 봉인할 거라네, 벨레룩스.”

“난 벨레룩스가 아니다.”

“나도 자네에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 몸의 원래 주인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

조금도 당황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말리아를 바라보며, 주시자는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그 오싹함의 이유는 명확했다.

“천 년 정도라면 충분히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겠지. 어쩌면, 그 전에 자네의 몸을 움직이는 자가 소멸할지도 모르고.”

천 년.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가는 용에겐 짧은 시간이지만, 그 몸을 사용하는 괴수에겐 아니었다.

‘천…… 년이라고?’

그 역시 백 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천 년과 비교할 수는 없다.

아무리 괴수라 하더라도, 살아온 시간의 열 곱절 동안 봉인당한 채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그것만은, 그것만은 안 돼!”

주시자의 행동은 빨랐다.

콰아앙!

한계까지 쥐어짠 마기가 폭발하면서 여자의 몸을 밀어냈다.

그 반동으로 용의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지만, 수백 배의 중력이 짓누르는 압력에서 벗어나는 것엔 성공할 수 있었다.

파앗!

“……안일했군. 나도 이제 늙은 모양이야.”

검은빛과 함께 사라진 용.

미처 사라지지 않고 남은 마기의 검은 흔적을 바라보며, 말리아는 작게 읊조렸다.

하지만, 천천히 눈을 감는 그의 표정에 아쉬움이나 걱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팔국이라, 멀리 가지는 않았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살아남은 모든 용에게 새겨 둔 추적마법.

“곧, 정상으로 돌려 주마.”

감은 눈 너머로 보이는 벨레룩스의 다친 모습을 바라보며, 말리아는 손을 휘저었다.

곧.

파앗!

하얀빛과 함께, 용의 모습이 사라졌다.

‘젠장, 이제 어쩌지?’

주시자는 후회하고 있었다.

강력한 용의 육체를 운 좋게 손에 넣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원하지 않던 것까지 같이 딸려 왔으니까.

파앗!

“도망가봐야 소용없네.”

“웃기지 마!”

주시자는 백광과 함께 나타난 용족의 장로를 노려보고는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파앗!

또다시 바뀐 주변의 풍경.

하지만 주시자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놈은 날 추적할 수 있어.’

벌써 열 번이 넘는 공간이동을 해 왔지만, 그때마다 저 빌어먹을 고룡은 번번이 그녀를 쫓아왔다.

‘최소한, 게이트를 열 시간 정도는 벌어야 하는데…….’

아무리 고룡이라 한들 괴수들의 땅이 되어 버린 에피로나까지 쫓아오지는 못하겠지만, 게이트를 여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단 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겠어.’

파앗!

생각을 마친 주시자는 곧장 떠올린 위치로 이동했다.

공간이동을 마친 그녀의 앞에, 익숙한 치파오 차림의 여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용……?”

그녀를 마주한 여자, 백묘의 표정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아니, 이건 껍데기일 뿐이다.”

“그럼…… 당신, 살아 있었다고?”

그 한마디로 용의 정체가 주시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백묘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

푸욱!

마기에 물든 용의 검은 손이, 백묘의 복부를 관통했다.

“커…… 커헉!”

느끼지도 못할 만큼 빠른 공격.

내상을 입은 백묘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대…… 대체…… 왜…….”

“시간을 벌려면, 도움이 좀 필요해서.”

죽어가는 백묘를 내려다보던 주시자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