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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23화 (123/174)

123화

홍콩국제공항.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중원을 찾기 위해 드나드는,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가진 곳.

팔국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만큼 수 많은 엽사들과 각종 보호마법들이 공항의 안전을 24시간 지키고 있었지만.

콰아아앙!

끊임없이 몰려드는 괴수의 파도를 견뎌 낼 수는 없었다.

“젠장……!”

눈앞에서 여객기가 폭발하자 이설화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산산조각 난 채 활주로에 흩어진 여객기의 잔해에 그려진 문양은, 이가를 상징하는 금색의 오얏꽃.

“당분간은 홍콩에 머무를 수밖에 없겠구나. 하필이면 이럴 때.”

그녀의 옆에서 파괴된 여객기를 바라보며, 이한은 눈을 찌푸리며 머리에 쓴 갓끈을 풀었다.

이미 구조 신호를 보냈으니 이가에서 곧 구조를 오긴 하겠지만.

“키이이이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수십의 괴수를 막아 주진 못할 테니까.

휘익!

이한은 손에 쥔 검은 갓을 괴수들에게 던졌다.

뇌전의 마나를 머금어 푸른 스파크를 튀기는 갓이 빠른 속도로 괴수 무리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파지지직!

갓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푸른색의 번개 줄기들이, 수십 마리의 괴수를 일순간에 몰살시켰다.

척!

“길을 뚫었으니, 어서 가자꾸나.”

부메랑처럼 그의 손에 돌아온 검은 갓을 다시 머리에 쓴 이한은 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설화는 그 말을 듣는 대신, 세총통을 오라버니에게 겨눴다.

“설화…….”

자신에게 무기를 겨눈 동생을 이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때.

쿠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세총통에서 뿜어져 나간 푸른 뇌전이 이한의 왼쪽 귀를 스쳐 지나갔다.

“키이이…….”

그와 함께 등 뒤에서 들려온 괴수의 신음소리.

이한이 고개를 돌리자, 반투명한 인간형 괴수가 몸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져있었다.

“전장에서 방심하시다니, 현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된 거 아닙니까?”

설화는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세총통을 아래로 내리곤 혀를 찼다.

그 모습에 이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듯하구나. 살다 살다 설화 네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네가 처음 엽사 일을 할 때만 해도…….”

“오라버니.”

“그래, 그래.”

살기 띤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누이동생을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인 이한은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조금 전 달려든 괴수가 마지막인 모양이었다.

“공항이 망가졌으니, 당분간 숨을 곳을 찾아야겠구나. 가문의 도움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 말과 함께 이한은 준비해 둔 홍콩의 지도를 꺼내 적당한 장소를 찾으려 했다.

“오라버니.”

설화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지금 홍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면, 저곳뿐일 텐데요.”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가락이 홍콩섬의 중심으로 향했다.

쿠구궁!

설화가 가리킨 것은, 비명과 폭음이 쉴 새 없이 울려퍼지고 있는 격전지.

그리고.

“키이이이!”

그 위를 떠다니며 번개와 불을 사방에 내뿜는 붉고 푸른색의 거대한 용.

서가의 장남, 서진혁이 부리는 수많은 괴수들 중 하나였다.

“호오.”

동생의 말에, 이한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구나, 설화야.”

“맘에 들지 않는다면, 오라버닌 여기 계시죠.”

“그럴 리가 있겠느냐.”

곧장 설화의 따가운 눈총이 날아왔지만, 이한은 흔히 있는 일인 듯 피식 웃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우우웅!

푸른 스파크를 튀기는 이한의 전신을 두루마리 소매에서 쏟아져 나온 순백의 금속이 감쌌다.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 새롭게 나타난 것은 전신에 온갖 화기를 장착한 2미터 크기의 금속 갑주, 두정갑.

―그럼, 슬슬 움직이자꾸나.

슈우우!

두정갑의 등에 장착된 부스터를 끌어 올리며, 이한은 씨익 웃어 보였다.

홍콩섬의 중심에선 말 그대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로의 아스팔트 위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그 아래로 쏟아져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도로 옆의 하수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이 괴수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딱딱! 딱딱딱!

살점 하나 없이 움직이는 새하얀 백골, 스켈레톤들.

생전에도 괜찮은 실력을 가졌던 엽사들에게 죽지 않는 육체와 즐겨 쓰던 무기, 그리고 수많은 동료들이 주어진 순간.

달려드는 괴수들을 사냥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푸욱!

“크으으으!”

사냥이라기보단 도축에 가까울 만큼, 이들의 손놀림은 정교하고 빨랐다.

거기에, 뼈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지치지 않는 망자의 육체를 가진 스켈레톤들을 아무런 전략 없이 돌진하는 괴수들이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리고.

“키이이이!”

“크허헝!”

그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용과 갑 급 괴수 전갈사자의 마법까지.

괴수들에게 승산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군.”

호텔의 옥상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던 진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좁혔다.

셀 수 없이 많은 괴수를 죽이고 또 죽였지만, 몰려드는 괴수의 숫자는 줄지 않고 있었기 때문.

‘이대로라면, 오래 걸리겠어.’

망자들의 싸움은 원래 장기전에 강한 법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곤란했다.

사람들의 피해가 커질수록, 그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은 저 괴수들이 아닌 서진혁 자신이었으니까.

양지에 나서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진혁은 결심했다.

‘끝을 봐야겠군.’

곧, 진혁은 품에서 검은 구슬을 꺼내 들었다.

용심.

세계의 수호자인 용들이 가진 힘의 원천.

이 강력한 에너지 덩어리의 일부를 이용한다면, 싸움을 조금 더 빨리 끝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진혁은 용심이 가진 힘을 사용하기에 적합한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스으으!

그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흑마력이 손에 쥔 용심을 감쌌다.

우웅!

생소한 기운에 위협을 느낀 용심이 급히 마나를 뿜어내 주변의 흑마력을 밀어냈다.

그러기를 잠시.

‘되었군.’

안정을 되찾은 용심을 내려다보던 진혁은 눈을 빛내고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좁쌀만 한 하얀 점이 박힌 검은 영혼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뭐, 뭘 하시려고요?

자신을 바라보는 진혁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악령은 겁먹은 목소리로 슬쩍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스으으!

진혁의 흑마력은 도망가려던 악령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사, 살려 주십쇼!

흑마력에 붙잡힌 악령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진혁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곧, 그의 입이 열렸다.

“네게, 새로운 육체를 줄 것이니.”

그 말과 함께 손에 쥔 용심을 악령에게 내미는 진혁의 눈이, 귀기로 번들거렸다.

―좋구나.

불타오르는 도시가 내지르는 끔찍한 비명에, 주시자는 만족했다.

권능으로 부리는 괴수 없이는 아무런 위해도 끼칠 수 없는 허약한 육체를 가진 그가 직접 지구에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 기회에 힘을 길러 둔다면, 외눈박이 놈을 밀어 버릴 수 있겠지.

그의 영토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갑 급 괴수, 외눈박이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그와는 달리 강력한 육체를 바탕으로 에피로나를 나눠 가진 괴수를 제거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쪽 팔이 잘려나가 전투력이 급감한 상태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백 년 만에 인간사냥이라니. 즐겁군, 즐거워.

에피로나에 처음 나타난 그가 괴수를 부리기 전 힘을 길렀던 방법.

그리고.

―그 용의 힘까지 흡수한다면…….

빈사 상태로 도망쳐 버린 용을 떠올린 주시자의 마음속에서, 한 줄기 욕심이 피어올랐다.

놈을 완전히 흡수한다면, 그가 에피로나의 모든 괴수를 발아래 두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그러기 위해선.

―우선은, 이 곳의 인간들부터 챙겨야겠지만.

백 년 전의 에피로나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모인 도시.

인간을 흡수해 힘을 키우는 그의 눈에, 불타는 도시는 거대한 연회장이나 다름없었다.

“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흐흐흐.

괴수들에게 붙잡혀 끌려오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주시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우웅!

도시의 중앙에서 터져나온 강렬한 기파가 그의 육체에 전해지기 전까지는.

―큭…….

그의 연약한 육체를 뒤흔들만큼 강렬한 기운에, 주시자의 시선이 기파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건?

눈 앞에 나타난 무언가를 마주한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지닌 인간형의 괴물.

주변의 고층 빌딩과 엇비슷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주시자가 당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체…… 뭐로 이루어진 거지?

괴물의 피부는 마치 모자이크처럼 온갖 색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괴수의 피부를 누더기처럼 기워 놓은 것 같은 모습.

허나, 거대한 눈으로 상대를 자세히 살핀 주시자는 곧 깨달았다.

―……괴수들이야.

놈을 이루고 있는 가죽과 근육, 뼈.

그 모든 것들이, 바닥에 쓰러진 괴수들의 것이었다.

스으으!

―감히…… 내 것을 건드려?

쓰러진 괴수들의 원래 주인이었던 주시자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

우웅!

분노한 그의 거대한 눈동자를 중심으로, 강렬한 기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자.

“키이이이이!”

“크으으!”

기파를 정면으로 맞닥트린 괴수들이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지배하는 괴수들의 수명을 깎아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그의 권능 중 하나.

―감히 내 것을 노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괴수들의 뒤에서, 주시자는 커다란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상대가, 단순히 괴수의 시체로 만들어진 고렘 따위가 아니란 사실을.

휘익!

주변의 시체를 흡수해 몸집을 불리면서, 거인은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괴수들에게 손을 뻗었다.

이윽고, 괴수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육체가 놈들에게 닿았을 때.

꾸득! 꾸드득!

거인의 팔을 이루고 있던 괴수들의 시체가 일제히 사지를 내밀어 괴수들을 낚아챘다.

“키이이이이!”

“크으…….”

엄청난 힘으로 몸을 당기는 고통에 괴수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놈들의 울음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이놈…….

자신이 보낸 괴수들이 거인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주시자의 거대한 눈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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