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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16화 (116/174)
  • 116화

    청명과 이야기를 나눈 진혁은 곧장 준비를 시작했다.

    “……중원이라고 하셨습니까?”

    상사의 물음을 들은 주연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한보안의 중원에서의 활동 현황을 알고 싶다.”

    “소속 엽사들이 개인적으로 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직 회사 차원에서의 진출계획은 없습니다.”

    중원은 인간이 아닌 용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

    백 년 전에는 그 사실이 지구에 대한 외계의 침략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인식은 많이 사라졌다지만 여전히 남아 있다.

    자연히 중원은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수십 년간 고립되어 있었고, 최근에서야 교류가 벌어지는 상황.

    서울과 그 주변의 괴수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세한보안이, 굳이 중원이란 거대하면서도 낯선 땅에 진출해 괴수를 잡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군.”

    진혁은 턱을 긁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중원에 관심이 생긴 이유라도 있으신 거예요? 어차피 용들의 허가 없이는 외국인이 드나들기 힘들어서, 원하셔도 당장 갈 수는 없을 거예요.”

    그 깐깐한 용들의 심사를 통과하고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니, 그녀의 말에는 틀린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허가라면 이미 받았다.”

    주연이 진혁의 다음 말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네?”

    “아니, 정확하면 초청이라고 해야겠지.”

    “초청……이라니, 설마, 그 용에게 받으신 건가요?”

    “곧 팔국에 방문해야 하니, 준비해 두도록.”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진혁은 당황한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큼지막한 서류 가방.

    말 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진혁의 걸음이 멈춘 곳은, 망자들이 모여 있는 영지의 중심부였다.

    용과 전갈사자, 식귀와 스켈레톤 킹.

    ―진혁 님?!

    ―주인, 무슨 일이에요?

    다가오던 진혁을 발견한 성준과 멜리나가 앉아 있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다른 두 망자들도 그제야 진혁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오, 주인?

    ―표정이 심상치 않구먼. 저 손에 들린 건…… 흐음.

    갑 급 괴수, 전갈사자의 육체에 깃든 민호의 세로로 째진 눈동자가 진혁의 손에 들린 가방으로 향했다.

    딸깍.

    진혁은 대답 대신 가방의 잠금장치를 푼 다음 열어젖혔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네 개의 주먹만 한 보석.

    다이아몬드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는 보석의 내부에, 푸른색의 기운이 연기처럼 꾸물거리고 있었다.

    이건…….

    마정석 아니에요, 주인?

    그것도, 최상급이구려. 네 개의 최상급 마정석이라니.

    대번에 마정석의 등급을 알아본 민호가 눈을 빛냈다.

    요즘은 매물이 없어서 구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용케 네 개나 구하셨군요.

    괴수로부터 나오는 마정석은 주로 발전 연료나 마법사들의 연구 등에 활용된다.

    가격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산업용으로는 잘 쓰이지 않지만, 품고 있는 마나의 양 만큼은 상급의 마정석 다섯 개와 맞먹는 귀한 물건.

    어째서 이런 보물을 네 개나 가져온 것인지, 망자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 말에, 진혁은 웃어 보였다.

    “에피로나는 위험한 곳이지.”

    게이트 주변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역이 괴수에게 장악당한 지 백 년이 넘었다.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괴수들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일.

    하지만 언젠가는 에피로나로 떠나야 한다. 그 전에, 너희가 가진 힘을 강화해야겠지.”

    진혁이 큰 돈을 써가며 최상급 마정석을 구해 온 이유였다.

    정확히는, 최상급 마정석이 가진 웅혼한 마나만이 지금부터 그가 사용할 파슬란의 비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너희에게, 한계를 넘어설 힘을 주마.”

    스으으으!

    네 개의 주먹만 한 보석 중 하나를 들어 올리며, 진혁은 흑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 속으로, 시퍼런 귀기가 들끓고 있었다.

    이가, 이화그룹의 기반은 부동산이다.

    한국이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대한제국의 황가라는 신분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전국에 보유한 궁궐과 거대한 토지는 여전히 사유재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독립전쟁에 큰 역할을 했던 다섯 엽사 가문 중 하나였기에 가능했던 일.

    이제는 엽사 관련 산업과 마공학 기반 제조업의 비중이 더 커졌지만, 그룹의 모기업은 여전히 이가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이화개발이었다.

    그리고.

    “홍콩에 새로운 호텔을 짓는다라…… 성공할 성싶더냐? 이미 포화상태인 곳이거늘.”

    이화그룹의 회장이자 이가의 가주인 이정은, 아들이 들고 온 검은 파일을 뒤적이며 물었다.

    그 말에, 이가의 장남이자 익문사의 주인인 이한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해야 하옵니다.”

    중원의 용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우리 가문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질 터.

    호텔은 그저 관계의 물꼬를 트는 단계일 뿐이다.

    “팔국을 담당하는 수호룡은 다른 용들에 비해 인간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호텔과 연계된 대규모 개발계획으로 볼 수 있는 이익을 제시한다면 조금은 관심을 보일지도 모르옵니다.”

    이가의 존속을 도모하기엔, 그거면 충분했다.

    설화와 진혁의 혼약이 성사되지 않고, 서가와의 결합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준비한 일종의 보험.

    이한의 설명에, 가주는 잠시 생각해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노라.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문의 재산을 늘리기엔 충분하겠지.”

    “감사하옵니다, 아바마마. 곧, 자세한 내용을 준비해 보고드리겠사옵니다.”

    그 말과 함께, 이한은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곤 근정전을 빠져나갔다.

    ‘성공한다면, 이 궁궐의 모습을 백 년은 더 지킬 수 있겠지.’

    중건된 지 백 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궁궐.

    기와와 돌담으로 이루어진 궁궐의 풍경을 둘러보며, 이한은 근정전의 근처에 위치한 익문사 건물로 향했다.

    허나.

    “아니, 이건…….”

    익문사에 도착한 그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한그룹, 중원에 진출?]

    [세한의 서진혁, 팔국 방문계획 발표!]

    [서진혁과 팔국의 수호룡 사이의 관계는?]

    그것은, 인터넷과 방송을 순식간에 뒤덮은 하나의 소식 때문.

    “서진혁이…… 팔국에 간다라.”

    예상한 적도, 예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곤란해졌어.”

    기사를 확인하던 이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일이 잘못 흘러간다면, 그가 짜 놓은 계획이 모두 엉켜 버릴 상황.

    그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팔국으로 간다. 지금 당장.”

    “옛!”

    명령을 받은 익문사의 엽사가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또 만나겠구나, 진혁아.”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서진혁의 미소를 떠올리며.

    홍콩.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이제는 중원의 아홉 나라 중 하나인 팔국의 수도가 된 거대도시.

    오래전부터 교역의 창구였던 도시인 만큼, 도시의 뒷골목과 지하엔 홍콩의 부를 뜯어먹기 위해 몰려든 범죄조직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왕이가…… 죽어?”

    그들의 여왕, 백묘는 보고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광동성에서 제법 악명을 떨칠 범죄조직의 두목이었지만, 그녀의 기분이 상한 이유는 왕이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면, 물건들은?”

    “왕이와 함께……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합니다.”

    “그 병신같은 놈…… 그 물건이 얼마나 만들기 힘든 건데!”

    분노와 함께 가녀린 몸에서 쏟아져나오는 진득한 마기에, 보고를 맡은 조직원의 낯빛은 숨이 막히기라도 한 듯 시퍼래졌다.

    허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마기의 일부를 떼어서 만든 걸…… 그대로 바다에 빠트려 버렸다고?”

    마기를 사물에 심을 수 있는 전이의 권능.

    그녀가 마인으로서 가진 권능을 아낌없이 부어 만들어 낸 회심의 작품이 모조리 바닷속으로 사라졌으니,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놈의 소행인데?”

    “세한보안의 서진혁……인 것 같습니다.”

    서슬 퍼런 백묘의 눈빛과 진득한 마기에,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서진혁…….”

    그녀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익숙한 이름이다.

    판데모니엄의 일원이었던 흑룡대를 사실상 홀로 몰살시킨 자.

    그리고 중원의 뒷세계를 지배하는 그녀가 작은 나라인 한국에 손을 뻗치기로 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래, 이렇게 선수를 치시겠다……?”

    빠득.

    웃고 있는 마인의 입에서,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 그리고…….”

    그러나.

    “오늘, 서진혁 그자가 팔국에 정식으로 방문할 거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뭐?”

    “이미 한국의 인터넷과 방송에선 온통 이 이야기뿐입니다.”

    “어…….”

    그 말에 백묘는 순간 이해하지 못한 듯 눈만 깜빡였다.

    그녀가 남자의 말을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오 초쯤이 지나서였다.

    “이거…… 그거네.”

    “네?”

    “도발.”

    스으으!

    그녀의 몸 주변에서 안개처럼 감돌고 있던 마기의 안개가, 서서히 짙어졌다.

    “어디서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나에 대한 정보를 얻은 거겠지. 그래서, 내게 말하고 있는 거야.”

    직접 찾아갈 테니, 나올 수 있다면 나와 봐라.

    너무나 뻔한 의도.

    그럼에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도발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 정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 드려야겠지.”

    모든 역량을 다해, 저 도련님을 이 세상에서 치워 버리는 것.

    홍콩의 모든 범죄조직을 수족처럼 부리는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한 번 더 불러 모아야겠어. 애들에게 전달해.”

    “네. 아,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허나, 그녀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서진혁…….”

    일을 방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존심에 상처를 냈으니, 편히 죽게 놔둘 생각은 없다.

    “후회하게 해 주마.”

    주먹을 꾹 쥔 백묘의 붉은 입술 한 쪽이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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