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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05화 (105/174)

105화

진혁이 아버지를 만난 이후. 며칠 동안은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강화도에 남은 토벌 2팀과 망자들은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를 자신의 방식대로 사용했다.

챙! 채챙!

식귀와 스켈레톤 킹의 몸을 뒤집어 쓴 성준과 자이츠.

두 망자가 검을 맞대는 상대는, 두 명의 여자였다.

채챙!

망자들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네 명의 싸움은 제법 팽팽했다.

칠성무(七星武)

삼성투(三星投)

파파팟!

주연의 허벅지에 매달아 둔 단검 세 개가 빛을 뿜으며 쏘아져 나갔다.

하나하나가 진한 오러를 담고 있는 강력한 공격.

―제법 하는군!

티팅!

자이츠는 놀랐지만, 기괴한 각도로 날아드는 세 개의 단검을 튕겨 내는 데에는 한 번의 휘두름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니!

어느새 코앞까지 접근해 온 그녀를 발견한 해골은 급히 검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칠성무(七星武)

파산권(破山拳)

콰아앙!

주연의 주먹에 담긴 거력과 전봇대만 한 검이 맞부딪치면서 생긴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오러와 정령력으로 감싸진 검의 옆면에 자그마한 금이 갈 만큼 강력한 힘에, 자이츠는 무의식중에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공격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공격이야.’

낌새를 눈치챈 주연이 급히 몸을 빼며 아래로 숙였을 때.

칠성무(七星武)

일섬(一閃)

파앗!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불의 정령력으로 붉게 타오르는 거검이 휩쓸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까맣게 타 버린 잡초들과 후끈한 열기가 그녀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물론.

‘나도 혼자는 아냐.’

주연은 방금 전 검을 휘두른 식귀의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자신보다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것은, 은발의 성기사.

채채챙!

―제법 성장했군.

기척도 없이 나타난 참마검을 손쉽게 막아 낸 성준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두 사람과 두 망자가 검과 주먹을 나누고 있을 동안.

‘흠.’

진혁은 외눈박이의 잘려 나간 왼팔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주변엔, 알 수 없는 괴수들의 살점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외눈박이의 왼팔과 다른 괴수를 조합해 키메라를 만들려던 수많은 시도의 흔적들.

‘버티지 못하는군.’

외눈박이의 왼팔을 다른 괴수와 접합할 때마다, 괴수의 몸뚱이는 마치 견딜 수 없다는 듯 팽창하다가 폭발해 버렸다.

짐작할 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역시, 놈을 죽여야 하나.’

갑 급의 괴수는 분리된 신체와도 어느 정도 연결 상태를 유지한다.

반쯤은 생체나 다름없는 녀석을 억지로 이어 붙이려 했으니,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에피로나로 직접 넘어가서 외눈박이를 토벌하기 전에는 해결하기 어려우리라.

‘아니면, 아예 다른 육체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 방법은 아직 시기상조였으니, 시간이 필요했다.

“흐응. 실패한 모양이로구나.”

옆에서 진혁의 실험을 지켜보던 용, 청명이 콧소리를 내며 발밑에 흩어진 살점들을 내려다봤다.

“확인해 봤을 뿐이다.”

“실패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냐? 생긴 것 답지 않구나.”

진혁은 용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곧, 그는 외눈박이의 거대한 왼팔을 향해 손짓했다.

―……!

그러자, 영혼 구슬에서 튀어나온 망령들이 놈의 왼팔에 들러붙었다.

“흥미롭구나.”

창고로 거대한 왼팔을 옮기는 망령들을 잠시 지켜보던 진혁의 귓가에 청명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뭐가 흥미롭단 거지?”

“바닷속에서, 마기가 느껴지는구나.”

진혁의 물음에,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뭐라고?”

그 말에, 진혁은 표정을 굳혔다.

바닷속에서 마기가 느껴진다는 건, 괴수가 그 아래에 존재한다는 뜻.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해양형 괴수라면, 이미 멸종했을 텐데.”

거대한 해양형 괴수들이 무역로를 틀어막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십 년 전의 일.

어째서, 멸종한 괴수가 다시 등장했단 말인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느냐? 숨어 있었다거나 이십 년 동안 알이라도 깨어난 것이겠지.”

청명은 아무렇지 않단 얼굴로 말했지만, 진혁은 그럴 수 없었다.

‘빨리 제거해야 한다.’

개체 수는 적지만 그 거대한 덩치와 수중이라는 지형적 이점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괴수.

더 성장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토벌대를 꾸려야 한다.

하지만, 진혁이 채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

우우웅!

자켓 속 스마트폰이 울렸다.

진혁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버지.”

……네가 한 게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앞뒤가 잘려 있는 강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진혁이 되물었다.

곧,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미국 헌터 협회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항의라고요?”

오스틴 젠킨스의 사체를 회수하기 위해 회수팀을 보냈다는데, 서해에서 실종되었다더구나.

순간.

‘괴수.’

진혁은 그 이유를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일단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혁의 눈이 번쩍, 빛났다.

급히 세한빌딩으로 향한 진혁은 아버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다음, 승용차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광화문 인근에 위치해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을 향해.

대사관 안에 들어선 진혁과 주연을 반긴 것은, 몇 명의 미국인이었다.

괴수용 방어구와 무기, 보구를 곳곳에 걸친 자들.

‘엽사…… 아니, 헌터인가.’

아마도, 미국 헌터 협회에서 나온 자들일 터.

이미 진혁을 범인으로 단정 지은 것인지, 그들의 표정은 싸늘했다.

“제니퍼 메이슨, 미국 헌터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운데에 선 여자의 표정은 더욱 차가웠다.

대놓고 진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수많은 별들이 새겨진 헌터 라이센스를 내보이는 그녀를, 진혁은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다.

“소개는 생략하지. 당신들은 이미 내가 누군지 아는 것 같으니까.”

“국제 헌터법에 따라 당신에겐 일 주일간의 소명 기간이 주어집니다. 그때까지는, 제게 당신을 구속할 권한이 없다는 말이죠.”

진혁의 말에 반응하는 대신, 제니퍼는 기계처럼 진혁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그 소명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쩌적. 쩌저적!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빙결능력자 특유의 차가운 한기가 서서히 방 안을 잠식했다.

“당신은 구속될 겁니다. 현장의 판단에 따라 사살도 가능하니, 부디 허튼짓은 하지 마시길.”

말과는 달리, 진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보는 눈만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진혁의 목을 쥐어뜯어 버릴 것 같은 기세.

허나.

“그래, 그러면 일주일 뒤에 다시 이야기하면 된다는 말이겠군.”

칼날처럼 날카로운 살기를 앞에 두고도, 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쪽에서 판단한 바로는, 서해에 해양형 괴수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해상에서 공격받았다면, 놈의 짓일 확률이 높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해양형 괴수가 멸종한 지 이십 년이 넘었는데.”

그 말에, 제니퍼는 마치 놀림이라도 당한 듯 분노한 표정으로 진혁을 노려봤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거리를 들이대면서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두고 보도록 하지. 일주일 뒤에 보자고.”

여자의 뜨거운 눈빛을 뒤로하고, 진혁과 주연은 대사관을 나섰다.

“제니퍼 메이슨. 미국 헌터 협회 소속 S급 헌터이자, 센티널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실종된 애덤 사무엘의 아내죠.”

“분노한 이유가 있었군.”

운전대를 잡은 주연의 말에, 진혁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S급. 일 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도 평정심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윤가의 전 가주처럼 마인이 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리라.

‘물론, 화풀이 대상이 돼 줄 생각은 없지만.’

그러기 위해선, 놈을 잡아야 했다.

바다 밑 어딘가에 숨어있을 해양형 괴수.

‘놈을 찾을 만한 방법은…… 하나 있군.’

방법을 떠올린 진혁은, 턱을 괸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진혁이 바다 밑 어딘가에 있을 괴수를 찾아 움직인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쐐애액!

―에휴, 내 팔자야. 하루도 쉴 틈이 없네. 공부하라는 영감탱이에, 주인은 시도때도 없이 불러대고…….

진혁을 등에 태운 거대한 붉은 용, 멜리나의 투덜거림이 머릿속으로 전해졌지만, 그는 흙탕물처럼 탁한 바다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는 게 쉽지 않겠어.’

그 크기가 거대하다곤 하지만, 이곳은 바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탁한 바다.

흙탕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황해의 바닷물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괴수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놈의 정체 정도는 확인할 수 있겠지.’

진혁이 굳이 서해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온 이유.

그의 손엔 미국으로부터 전해 받은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잠수함이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낸 시각과 좌표, 수심 등이 적힌 자료.

‘최소한, 가라앉은 회수팀은 놈의 모습을 확인했을 터.’

그렇다면.

이 서해 어딘가에 있을 망령에게 그 기억이 남아 있으리라.

‘저기인가.’

자료에 적힌 좌표 근처까지 도달하자, 바다를 살피는 진혁의 영안을 통해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분명, 망령의 흔적이었다.

“멈춰라.”

빠르게 날던 멜리나를 멈춰 세운 다음, 그는 망령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스으으!

그의 오른손바닥을 타고 진한 흑마력이 바닷속으로 전해졌다.

마치 그가 뻗은 손이 연장된 것처럼, 흑마력의 줄기는 망령을 찾아 어두운 바닷속을 촉수처럼 헤집었다.

이내.

‘찾았다.’

진혁은 흑마력과 맞닿은 영혼 하나를 찾아내고는 눈을 빛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뿐.

“망령이여.”

스으으!

그의 몸에서 흑마력이 더욱 강하게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강화된 영안으로부터 시퍼런 귀기가 칼날처럼 내뿜어졌다.

곧,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영혼이 물 밖으로 끄집어내어졌을 때.

“명계의 율법에 따라, 네 기억을 내게 보여라.”

진혁의 입에서,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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