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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101화 (101/174)

101화

도쿄는 불타고 있었다.

대마법진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마법진을 지키던 가디언들도 함께 사라졌지만, 차원의 틈에서 나타난 마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죽여라! 인간들을 모두 죽여!”

“이제부터 이 섬은 우리의 땅이다!”

인간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마인들은 마법진의 가디언보다 질이 나쁜 존재.

마법진 근처의 사람들만 공격했던 가디언들과는 다르게, 도쿄 전역에 나타난 마인들은 살아 있는 인간을 찾아 도시를 헤집었다.

“사, 사람 살려!”

“마, 마인이야! 빨리 도망쳐!”

“도쿄는…… 이제 틀렸어…….’

본래 황도의 방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대마법진은 완전히 작동을 멈춘 상황.

새롭게 등장한 재앙 앞에서, 도쿄의 시민들은 공포에 질린 채 죽음만을 기다렸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서걱!

주변의 건물을 부수던 마인의 몸이 세로로 쪼개졌다.

생명을 잃은 마인의 토막 난 몸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 뒤에서 나타난 것은, 알 수 없는 문양이 빼곡히 새겨진 판금갑옷을 입은 기사들.

그들의 손에, 조금 전 마인을 베어 낸 참마검이 신성력을 응축해 만들어 낸 칼날로 번쩍이고 있었다.

“끝났습니다, 성녀님.”

그들 중 하나, 렌 슈미트가 기사들의 뒤에 서 있던 금발 소녀, 클레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전 마인이 부수려던 건물을 가리켰다.

“잠깐만요, 건물 안에 아직 다친 사람이 있어요.”

아아아아!

그 말과 함께, 소녀는 입을 열어 회복의 기적이 담긴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파앗!

거룩하고 고아한 노랫소리에 섞인 신성력의 빛이 반쯤 무너진 건물을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에 갇혀 있던 시민들이 계단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감사, 감사합니다!”

“죽는 줄만 알았는데……!”

목숨은 물론, 다친 상처까지 말끔하게 치료된 사람들.

그녀의 성가는 멈춘 지 오래였지만, 클레어와 성기사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성녀를 바라보는 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성녀님,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신법은 신의 힘을 인간의 정신과 영혼으로 여과하는 것.

당연히, 인간의 영혼과 정신이 견딜 수 있는 힘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강대한 신법을 여러 번 써 온 클레어의 얼굴엔 핏기가 가신 지 오래였고, 회색 사제복의 소매 안으로 반쯤 가려진 두 손은 오한에 걸린 듯 부들부들 떨려 왔다.

“괜찮……아요.”

그 말에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조금…… 힘들면, 사람들을, 살릴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아직 멀쩡……하다고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은 그녀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도, 호위기사는 차마 그녀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민간인은 저희가 대피시키겠습니다. 부디 신성력을 아껴 주십시오.”

“노력해 볼게요.”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가 말을 듣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는 렌은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의 몸도 챙기셔야 할 텐데…….’

걱정스러운 눈으로 성녀를 지켜보던 렌이 다음 마인을 찾아 주변을 살피던 그때.

스으으!

근처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새어 나왔다.

도쿄에 도착한 그들이 몇 번이고 봐 왔던 현상.

“마인이다!”

파앗!

순간, 렌과 주변 성기사들이 차원의 틈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검신의 길이만 삼 미터가 넘는 참마검, 클레이모어.

어지간한 괴수보다 기다란 검이 마인을 베기 위해 신성력으로 하얗게 물들었다.

그러나.

‘이런.’

마인들이 차원의 틈을 비집고 나온 순간, 그녀는 낭패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크흐흐.”

“일본은 오랜만인데.”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영토인가!”

여섯.

차원의 틈에서 나타난 여섯의 마인이 렌과 클레어, 성기사들을 반원 모양으로 포위했다.

‘정기사 급은 되는 놈들이야.’

다시 말해, 눈앞에 나타난 마인 하나하나가 삼 품에 이른 강자라는 의미.

질적으론 비슷할지 몰라도, 수적으로는 두 배에 가까운 숫자다.

‘지원을 부르기엔 늦었어.’

기사단의 다른 기사들은 드넓은 도시 이곳저곳에 흩어진 마인들을 사냥하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다.

도움을 요청한다 한들, 상황은 그들이 오기 전에 끝나 있으리라.

“호위기사, 성녀님을 모시고 떠나시오.”

“여긴 저희가 막겠습니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불리한 상황인 것을 깨달은 두 성기사들이 거검을 쥔 채 앞으로 나섰다.

“안 돼요! 그러면, 기사님들은……!”

“성녀님.”

그들의 생각을 눈치챈 클레어가 외쳤지만, 기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성녀님께선, 반드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이름 없는 신을 위하여.”

한국에서 클레어가 펼친 강신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자들.

투구 아래로 드러난 성기사들의 눈동자는 성녀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를 위해 목숨 정도는 가볍게 내던질 수 있을 만큼.

허나.

그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마인들에게 달려들려던 그때.

쐐애애액!

하늘에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유성처럼 긴 불꽃으로 된 꼬리를 늘어트린 금속 원통.

녀석의 궤적은, 정확히 마인들을 향하고 있었다.

콰아앙!

원통이 지면과 충돌한 도로가 충격으로 동그란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앙!

때늦게 찾아온 소닉붐이 주변 빌딩의 유리창을 모두 박살 냈다.

원통의 낙하 속도가 음속보다 빨랐다는 의미.

당연히, 주변의 마인들 또한 멀쩡하진 못했다.

“케이트가 당했어!”

“미친, 이런 무식한 무기가……!”

원통에 직격당해 몸통째 으깨진 마인이 둘.

나머지도 후폭풍에 휩쓸려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충격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마인들의 표정이 당황과 공포로 일그러지고 있을 때.

푸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원통의 한쪽이 활짝 열렸다.

동시에.

파앗!

원통의 내부로부터 시퍼런 섬광이 터져 나왔다.

섬광의 주인공은 한 자루의 검.

그리고 검날 위로 길게 덧씌워진 오러.

서걱!

상황을 채 인식하기도 전, 푸르게 빛나는 오러의 칼날이 마인들의 몸뚱이를 훑고 지나갔다.

스으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진 마인들의 육체는, 곧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이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성녀와 기사들이 당황해 눈을 부릅뜬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원통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쥔 기다란 곡도에선, 조금 전 베어 낸 마인들의 검은 피가 흔적처럼 묻어 있었다.

“세한보안 특수부의 1과장 박재영입니다. 지금부터 성전기사단과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쐐애애액!

별빛으로 가득한 하늘 위로, 수십 개의 별똥별이 긴 꼬리를 늘어트린 채 지상으로 향했다.

거대한 그림자를 후광처럼 두른 사내.

그를 마주한 진혁의 표정엔 이제까지와는 달리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서무진.’

아버지, 강진의 형이자 진혁의 큰아버지.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까지는, 그랬다.

‘무진 형님…… 기대해도 좋소.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여 버릴 테니.’

‘난 이제 서무진이 아니야.’

어머니의 싸늘한 시신을 끌어안은 아버지와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린 큰아버지.

반쯤 잊혀졌던 기억이, 진혁의 머릿속 한편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그것도 잠시.

“……그래, 당신은 이제 서가가 아니지.”

진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그의 앞에 선 것은, 과거의 큰아버지가 아니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적들 중 하나일 뿐.

“가라.”

“크아아아아!”

딱딱딱딱!

“키이이이이!”

진혁의 손짓과 함께, 그를 따르는 망자들이 두 명의 마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식귀와 스켈레톤 킹 그리고 붉은 용.

갑 급의 괴수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전력.

콰아아아아!

먼저 공격한 것은 공중에 떠 있던 멜리나였다.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전격과 화염이 무진에게로 직접 향했다.

직격한다면 갑 급의 괴수도 버티지 못할 만큼 강력한 공격.

그런데도, 무진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뿐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스으으!

움직인 것은, 그의 등 뒤에 후광처럼 짙게 깔려 있던 그림자였다.

거대한 그림자의 장벽이 용과 무진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순식간의 일.

콰아앙!

갑 급 괴수의 가죽을 뚫을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이 검은 장벽 위로 작렬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

걷힌 화염과 스파크 뒤로 드러난 검은 장막엔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렇게 쉽게 막아 낸다고?

―그러게, 내가 집중해서 쓰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무나 멀쩡한 그림자의 모습을 보고 멜리나가 놀라자, 민호가 핀잔을 줬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촤아아악!

공격을 막아 낸 장벽 위로 수십 개의 날카로운 촉수가 솟아났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꿈틀거리는 촉수들의 날카로운 끝이 하늘 위에 떠 있는 용에게로 향했다.

―뭐, 뭐야 이건 또!

당황한 용은 급히 날개를 움직여 날아드는 촉수를 피해 냈다.

콰아악!

이내, 조금 전 용이 있던 자리를 수십 개의 촉수가 헤집었다.

―위력 좀 봐.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이미 죽은 주제에.

―영감은 좀 닥쳐 봐!

신경을 긁는 민호에게 멜리나는 짜증을 내고는, 다시금 날개를 움직였다.

촤아아악!

빠른 속도로 몸을 뒤틀며 마법을 던지는 용을 쫓아 수십의 촉수들이 달려들었다.

남은 두 망자의 상황도 좋지는 않았다.

챙!

“뭐야, 겨우 이 정도야? 실망인데.”

열기와 냉기.

두 속성의 정령력이 깃든 거검을 채찍 하나로 묶어 버린 미령이 식귀와 스켈레톤킹을 향해 입술을 비틀었다.

―크, 크윽. 검이…….

―어마어마한 힘이야!

가녀린 몸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괴력.

성준과 자이츠가 붙잡힌 검을 빼내려 애를 썼지만, 그녀의 채찍은 뱀처럼 두 검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카게들을 이용해야 하나.’

진혁은 잠시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서무진에 의해 대부분이 소멸당하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카게들을 보낸다 해도 저 그림자의 촉수 앞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더욱 강한 망자가 필요했다.

진혁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림자의 촉수를 피해 움직이는 멜리나와 민호를 향해.

스으으!

그의 손에서 뻗어 나간 흑마력이 향한 곳은, 붉은 용의 몸에 박혀 있던 두 영혼석 중 하나였다.

곧, 진혁의 손엔 구슬만 한 크기의 검은 보석이 쥐어져 있었다.

―주인, 무슨 일입니까.

영혼석의 주인, 도민호의 물음에.

“네게, 육체를 주마.”

진혁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차갑게 식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갑 급 괴수, 전갈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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