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마법사는 엽사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마법을 사용해 괴수를 직접 잡는 것보다는, 마법을 연구하고 초상 능력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에 더욱 집착하는 자들.
하지만 마법을 연구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기에, 마법사들은 마법의 전문가임과 동시에 금융과 경제의 큰손이 될 수밖에 없다.
‘저 기술의 일부만 얻어 낼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은, 엽사대회장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채 서진혁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주소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진혁의 고렘이 상급 정령을 베어 버렸단 소식을 전해 받은 순간, 그녀는 그 기술이 가진 가치를 순식간에 계산해 낼 수 있었다.
‘이 품의 엽사 수준의 고렘을 생산해 낼 수 있다면, 세계 시장을 독점할 수 있어요.’
아니, 경제뿐만이 아니다.
이 품의 엽사는 한 나라에 많아야 백 명 정도만이 존재하는 귀한 존재.
그와 동등한 능력의 고렘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것만으로 주가는 한국 그리고 세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선.
‘서진혁, 저자의 마음을 돌려야 하지만요.’
허나, 첫 시도는 실패.
그녀와 주가의 협력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인지, 진혁은 단번에 제안을 거절했다.
‘아무래도,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이…….’
수많은 엽사들 사이에 숨어 진혁을 훔쳐보면서 쓸 만한 교섭 거리를 찾던 소영은.
‘응......?’
강렬한 마나의 움직임을 느끼곤 생각을 멈췄다.
‘지하?’
그녀의 시선이 발밑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광복관의 지면으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강렬한 기운은 나타날 때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지만, 마나에 민감한 그녀의 감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 정도 깊이면…… 천지 아래인데.......’
그리고 광복관과 천지 아래에 존재하는 것은.
용이 가진 힘의 근원, 용심과 용심을 중심으로 만들어 낸 제어 시스템.
‘...…설마.’
무언갈 떠올린 그녀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 순간.
쿠르르릉―!
거대한 금속의 도시가, 몸을 부르르 떨며 기지개를 켰다.
왜애애앵―!
사이렌의 붉은 빛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전역에서 울렸다.
엽사들 대부분이 모여 있는 엽사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는데…….”
갑작스런 사이렌 소리에 당황한 엽사들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쿠구구궁―!
이번에는, 그들이 밟고 있던 금속 바닥이 파도치듯 흔들렸다.
“지, 지진이다!”
“광복관에 지진이라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볼썽사납게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당황한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성녀님, 조심하십시오!”
“무, 무슨 일이에요, 이게?”
“지진이라니, 광복관이 세워진 이후론 한 번도 없었는데…….”
렌의 품에 안긴 클레어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팀장님, 물러서십시오.”
주연은 진혁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진혁은 생각했다.
‘백두산에 문제가 생긴 건가.’
갑작스런 지진과 긴급 상황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
백두산 아니면 광복관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진혁의 의문에 대한 답은, 곧 알 수 있었다.
광복관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현재 확인 중입니다. 엽사대회에 참석한 모든 엽사들은 질서를 유지하면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럼, 백두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단 말야?”
아무리 목숨을 걸고 괴수와 싸우는 엽사들이라지만, 화산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광복관이 억누르고 있던 백두산이 분화를 시작한다면, 분화구의 위에 세워진 광복관의 엽사들은 모두 개죽음을 당하게 되리라.
“……진혁 님, 우선 자리를 옮기시죠. 여긴 위험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주연이 진혁에게 이곳을 벗어날 것을 권했다.
아무리 강력한 엽사라 하더라도, 자연재해에 맞서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도망가도, 어차피 갈 데는 없어.”
“네?”
“백두산이 폭발하면, 한반도 전체가 영향을 받을 거다. 빨리 죽나 늦게 죽나의 차이일 뿐이야.”
백두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는 태양을 가리고, 뿜어져 나온 용암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초토화시킬 것이다.
관리가 불가능해진 용암 바다 위에 게이트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한반도의 멸망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살아남기 위해선, 광복관의 시스템을 어떻게든 정상화시켜야 했다.
‘그러려면…….’
진혁은 진동하는 대지 위를 흔들림 없이 걸었다.
그가 향한 곳은, 대회장의 중앙에 원형으로 세워진 단상.
그 위에 선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다섯 명의 일 품 엽사들이었다.
진혁이 단상 위에 올라서자, 다섯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여기서 뭐 하는 게냐?”
도시 전체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태산처럼 굳건히 서 있던 아버지, 서강진이 마땅찮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진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넌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서 여길 떠나거라.”
강진은 대답 대신 대회장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가리켰다.
하지만 진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
“서 가주, 지금 같은 상황에 서진혁 팀장 같은 중요한 전력을 내보낼 순 없소.”
뒤에 서 있던 최현이 고개를 저으며 강진을 말렸다.
그의 시선이 진혁에게로 향했다.
“지금, 윤가의 가주 윤이랑이 광복관의 시스템을 공격하고 있소.”
“최 회장! 그걸 이곳에서 이야기하면……!”
“다른 엽사들이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최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네 가문의 가주들이 놀랐지만, 최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머지않아 알려질 사실이오. 미리 협조를 구하는 것일 뿐이고. 저기, 도와줄 사람이 더 오는군.”
그 말에 진혁이 고개를 돌리자, 단상 위로 올라오는 몇 명의 남녀가 보였다.
이한, 이설화, 주소영, 유재준.
부상당한 윤가람을 제외한, 남은 세 가문의 후계자들.
“아바마마.”
“가주님.”
“아버지.”
단상 위에 오른 네 사람의 표정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잘 왔소.”
네 사람을 바라보며 최현은 다시 한 번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윤 가주께서?”
“이런 미친.”
“일 품의 엽사가, 어떻게 그런 일을……!”
상황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아버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유재준의 물음에,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유가의 가주, 유시현이 입을 열었다.
“윤 가주는 나를 제외한 우리가 내려가서 막을 거다. 다섯의 일 품 엽사라면, 윤 가주 하나를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러니, 그대들은 가주들과 본인의 빈 자리를 맡아 주시오.”
말을 마친 최현의 시선이 엽사대회장에 모인 엽사들에게로 향했다.
“이게 단순한 윤 가주의 돌발행동인지, 아니면 더 큰 무언가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소. 우선은 엽사회의 엽사들이 통제하겠지만, 그들 외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하오.”
진혁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일 품의 엽사가 상대라면, 내 힘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다섯 명의 엽사가 함께 나선다면 제아무리 최상급 정령을 부리는 윤이랑이라도 버틸 수 없을 터.
회장의 말대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쪽이 차라리 나았다.
“그럼, 우린 먼저 가 보도록 하지.”
말을 마친 최현과 다른 네 명의 엽사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럼, 먼저 자기 가문의 엽사들을 모아 오시게.”
일 품 엽사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이가의 장남인 이한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엽사들을 통제하려면, 우선 그만한 숫자가 있어야 하니.”
“윤가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방금 전, 본가의 엽사들을 보냈네.”
주소영이 묻자, 이한은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이 사건에 윤 가주가 연루되어 있는 이상,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나? 죄가 없다 하더라도, 우선은 억류해 둬야겠지. 우리 동생이 착호갑사대도 호출했으니, 오래 걸리지 않아 지원이 도착할 걸세.”
“그럼, 전 먼저 가 보죠. 대원들과 집결지에서 만나기로 해서.”
이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그럼, 나도 먼저 가 보지.”
그것은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단상에서 뛰어내린 진혁은 곧장 자신을 기다리는 토벌 2팀의 팀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들의 앞에 도착한 진혁의 시선이 향한 곳은, 금발의 소녀였다.
“클레어.”
“네, 네?”
“혹시, 마기가 느껴지는 곳은 없나?”
“……있어요. 조금 전부터.”
성녀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발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광복관의 지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혁은 알 수 있었다.
‘일 품의 엽사가, 마인이 되는 것을 택한 것인가.’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흔한 일도 아니다.
일 품의 엽사가 되어 완성된 육체와 정신은, 기본적으로 마기에 대한 저항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일 품의 엽사가 마인이 되기를 택한다면.
마기는 그에 걸맞는 강력한 힘을 사용자에게 쥐여 준다.
‘……어쩌면, 제법 길어질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진혁에게도 준비가 필요했다.
‘멜리나.’
네?
‘지금 당장, 영지로 돌아가 망자들을 데려와라. 전부.’
……알겠어요.
진혁의 의지에서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그녀는, 투정 한마디 없이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곧, 진혁의 눈에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비룡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망자들을 불러온다면, 이곳의 통제는 더더욱 쉬워지겠지.’
아무리 윤이랑이 마인이 되어 강력한 힘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다섯 명의 일 품 엽사.
시간의 문제일 뿐, 그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진혁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 시간을 지켜 내는 것.
그때였다.
“이, 이건!”
클레어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은.
“무슨 일이지?”
그녀의 심상찮은 반응을 본 진혁은 눈을 좁혔다.
하지만.
왜애애앵―!
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클레어가 아니었다.
경고합니다. 현재 압록강 북쪽에서 추산 삼천 마리의 을 급을 포함한 괴수 관측. 을종 경보를 발령합니다.
왜애애앵―!
다시금 광복관을 가득 메운 사이렌 소리와 경보 방송.
‘……노린 건가.’
그 사이에서, 서진혁과 토벌 2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