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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71화 (71/174)

71화

‘왜, 이렇게 된 거지?’

연무대 위에서 서진혁을 마주한 윤미르의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엽사대회에서 연설을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가의 장남과 맞부딪치게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까.

갑자기 끼어든 진혁의 말을 듣고 열이 올라 일어난, 지극히 우발적인 일이었다.

그렇다 해서, 곱게 물러나 줄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일단 맞붙기로 했으면, 이겨야지.’

서진혁.

고작 삼 품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지만, 그가 지난 반년 동안 해낸 일은 고작이란 말로 깎아내릴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인천의 위기를 순식간에 극복해 내고, 한국의 삼 대 금지 구역 중 하나인 강화도에서 괴수의 흔적을 지워 내는 데 성공한 자.

‘그 과정에, 내 동생의 죽음도 끼어 있지.’

덜떨어진 동생의 죽음이야 그의 알 바가 아니었지만, 정령사로써 동생이 가진 능력이 평범한 삼 품 엽사가 아니었단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30초 후 시작]

‘처음부터 진지하게 상대할 필요가 있겠어.’

훈련실의 천장에 적힌 카운트다운 숫자를 올려다보며, 미르는 반대편의 진혁을 향해 오감을 집중했다.

‘저건…….’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은, 상대가 품에서 꺼낸 두 개의 물건.

그중, 오른손에 들린 하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정령석 아냐?’

석탄처럼 시커먼 빛을 뿜어내고는 있었지만, 다듬어진 형태는 분명 정령석의 그것이었다.

허나.

진혁의 왼손에 들린 물건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별?’

금빛으로 반짝이는 가루를 가득 담아 둔 유리병.

제법 오랫동안 엽사 생활을 해 온 그조차도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대체…… 뭐지?’

[5초 후 시작]

미르가 의문에 빠져 있을 동안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이내.

[0초 후 시작]

[시작]

삐이!

천장의 숫자가 사라지면서, 시작을 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미르는, 진혁이 꺼내 든 두 가지 물건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쏴아아아!

오른손에 든 검은 보석을 허공에 던진 진혁은, 왼손의 유리병에 든 금빛 가루를 허공에 뿌렸다.

그러자.

꾸득! 꾸드득!

허공의 보석을 중심으로 금빛 가루가 뭉쳐 들더니, 서로 엉겨 붙어 덩어리로 변했다.

이내, 금빛의 덩어리에서 팔다리와 머리가 자라났다.

그 모습을 본 윤미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

‘고렘……?’

돌이나 금속과 같은 무생물을 마법으로 가공하여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하지만, 마법에 조예가 깊지 않은 그의 눈으로도 평범한 고렘이 아니란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피부와 머리카락을 포함한 모든 부분이 금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살아 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인간의 모습.

스으으!

금색 인간의 오른손에서 그의 피부와 같은 색의 장검이 자라난 순간.

‘위험해.’

놈과 눈이 마주친 미르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    *    *

‘성공인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금빛의 남자를 바라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진혁 님, 이건…… 식귀의 몸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금빛 인간의 육체를 뒤집어쓴 망령, 성준은 몸 전체에서 끓어오르는 강력한 힘에 감탄했다.

그 말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을 급 괴수의 뼈와 비늘로 만들어 낸 육체니까.’

여명이무기.

용종과 제법 유사한 모습을 지닌 놈의 사체를 눈앞에 둔 순간.

진혁은 곧장 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용아병.’

용의 비늘이나 이빨, 뿔 따위를 재료로 만들어 낸 망자.

용의 모든 육체가 아니라 일부만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그 힘은 분명 원본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대신, 거대한 용을 직접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지.’

그것이, 날 수조차 없는 이무기라면 더더욱.

이무기의 뼈와 비늘로 만들어 낸 육체는 용종을 재료로 한 원본에 비하면 분명 손색이 있었지만.

팟!

그것만으로도, 고작 정 급의 괴수인 식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파파팟!

즉석에서 만들어 낸 금색 검을 손에 쥔 성준의 신형이 순식간에 맞은편의 상대, 윤미르에게로 향했다.

화르르륵!

달려나가는 그의 검에서 불의 정령력과 융합된 오러가 예고도 없이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오라, 이그니스.”

우웅!

윤미르가 정령과 맺은 계약의 시동어를 발동한 순간.

그의 눈앞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정령계와 연결된 차원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차 정도는 쉽게 나다닐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문을 비집고 나온 것은, 전신이 푸른색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독수리.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

계약자인 윤미르에게 이 품 엽사의 품계를 안겨 준 강력한 정령.

가까이 가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청염의 독수리를 향해, 성준의 검이 휘둘러졌다.

파지지직―!

불과 불.

서로 같은 속성을 띤 강력한 힘이 한자리에서 맞부딪치자, 붉고 푸른 스파크가 둘의 영역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대체, 이건 뭐야?’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모습에 당황한 것은 윤미르였다.

‘상급 정령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마법사들이 부리는 고렘은 분명 강력하고, 실제로도 유용한 보조 전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아무리 잘 만든 고렘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탑승하는 게 아닌 이상 병 급의 괴수 이상의 출력을 내진 못한다.

을 급의 괴수조차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불의 상급 정령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을 급의 출력을 내는 고렘이라니, 이런 미친……!’

우웅―!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윤미르는 이를 악물고 체내에 쌓아 둔 정령력을 더 끌어 올렸다.

순수한 불의 속성으로 이루어진 정령력의 오라가 그의 주변 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허나.

상대 역시, 그것을 가만히 두고만 보지는 않았다.

타앗!

이그니스와의 반발력을 이용해 뒤로 슬쩍 물러난 성준은, 새롭게 얻은 육체의 상태를 빠르게 파악했다.

‘이 몸이라면.’

쓸 수 있다.

생전의 그도, 죽어서 식귀의 몸으로도 사용할 수 없었던.

칠성무의 기예를

화르르륵―!

검 위로 타오르던 정령의 불길이 사그라든다.

정령력이 다했기 때문은 아니다.

밖으로 빠져나가 장비되는 마나와 정령력을 검에 응축한 끝에 만들어진 것은.

형체 없는 그림자조차도 베어 버릴 수 있는 백염(白炎)의 칼날.

칠성무(七星武)

절영(切影)

검을 휘둘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그니스에게로 향한 것은 휘둘러진 검에 응축된 오러의 칼날뿐.

소리 없이 날아든 순백의 칼날이 새의 몸뚱이에 스며들 듯 파고들었을 때.

―……!

이그니스는.

을 급의 괴수와 비견되는 불의 상급 정령은.

화르륵!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한 줌 불꽃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령의 본체에 충격을 받으면서, 현계의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강제로 소환이 해제된 것.

그리고.

“커, 커헉…….”

당연히, 그 타격은 정령의 계약자에게도 이어졌다.

“마, 말도…… 어떻게…….”

울컥!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검은 피를 입에서 토해 낸 윤미르의 몸이, 차가운 돌바닥 위에 힘없이 쓰러졌다.

“부, 부상자 발생!”

“빨리 의료진 불러!”

이 품의 엽사가 단 일격에 패배한, 믿을 수 없는 결과.

대결을 구경하던 엽사들 사이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쓰러져 버렸으니, 사과 받기는 틀렸군.”

스으으으―!

성진의 영혼석과 여명이무기의 뼛가루를 회수한 진혁은 아무 말 없이 연무대를 내려갔다.

윤미르에게 부상을 입힌 당사자였지만, 그 자리에서 진혁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엽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훈련장을 유유히 빠져나갈 때까지.

*    *    *

윤이랑.

그가 광복관의 별관에 마련된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지도 벌써 닷새.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침실에서 그 누구와의 접촉도 피하고 있었다.

“가주님, 오늘 식사는 하셨어요?”

“벌써 닷새째 물 한 모금도 안 드시고 계셔. 아무리 정령의 가호를 받고 있다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이시길래…….”

그를 모시는 윤가의 사람들은 갑작스런 가주의 칩거에 걱정스러워 했지만.

“후우…….”

그들의 생각과 달리.

윤이랑이 자신의 침실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 기어코 내게 똥을 쥐여 주다니.”

예순을 넘긴 노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콩알만 한 크기의 구슬.

검은색으로 불길하게 번들거리는 구슬을 바라보며, 윤이랑은 얼굴을 구겼다.

여명이란 가명으로 자신을 찾아온 옛 친우이자 배신자.

놈이 남기고 간 독이 든 성배.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 하.”

놈이 사라지기 전 남겼던 말을 떠올린 이랑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 말을 꺼낸 여명의 표정은,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 것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윤가의 가주가, 마인의 오명을 뒤집어쓸 순 없지.”

지난 닷새 동안, 이랑의 생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마인.

인류의 공적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오대 엽사 가문의 수장 중 하나인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를 충동질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성은 아직까지 감정을 잘 조절하고 있었다.

“복수로 달라지는 건 없다. 서가의 손에 윤가가 멸망할 뿐이야. 어서 대회가 끝나야 버리건 말건 할 텐데, 젠장.”

그럼에도, 윤이랑의 손은 쉽사리 검은 구슬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 윤가람의 복수를 하고 싶다는 미련.

그 미련이, 그의 마음속에 아직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가, 가주님.”

그때였다.

굳게 닫힌 침실의 문밖에서, 한 남자가 그를 부른 것은.

윤가의 가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조하는 비서.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떨려 오고 있었다.

허나, 이랑의 대답은 이제까지와 같이 침묵이었다.

이성과 감성이 뒤죽박죽된 머릿속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는, 그조차도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그러나.

“유, 윤미르 도련님께서…….”

비서가 그의 유일한 후계자, 아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무슨 일이냐.”

윤이랑은 침묵을 깰 수밖에 없었다.

“훈련장에서, 서가의 장남과 결투 도중 부상을…….”

곧, 비서의 입에서 자세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윤이랑의 귀에 들린 것은 앞의 한마디가 전부.

“서진혁……또 그놈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자신의 하나 남은 아들마저 다치게 한 서진혁의 얼굴.

곧, 터져 나온 분노가 그의 남아 있던 이성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구나. 참을 수가 없어……!”

붉게 달아오른 윤이랑의 눈이 오른손으로 향했다.

마인이 자신에게 쥐여 준 검은 구슬.

놈이, 불길한 빛을 뿜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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