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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61화 (61/174)

61화

마인 검증 행사의 일정은 빠르게 잡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서진혁 본인이 빠른 검증을 원했기 때문.

그렇게, 검증행사는 무명교의 요청이 있은 지 겨우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진행되었다.

“흠.”

전국적인 관심 아래, 여의도로 향하는 세단의 뒷좌석에 몸을 실은 진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은 토벌 2팀의 부팀장, 신주연의 굳은 표정과는 정반대였다.

“……팀장님, 부디 조심하십시오.”

걱정스런 말투로 먼저 말을 건넨 것은 주연이었다.

“무명교의 마인 검증은 팀장님의 생각보다 더 집요하고 철저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호위팀의 팀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그녀 역시, 무명교의 마인 검증에 대한 의혹은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설사 마인이 아니라 해도, 교단의 의지가 있다면 마인으로 낙인찍어 버린다는 소문.

팀장인 서진혁을 따르기로 결심한 주연에겐, 이번 검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허나 당사자인 진혁은 평온한 표정으로 깍지를 꼈다.

“오히려 잘된 일이지. 무명교로부터 직접 인증받을 수 있다면, 이 짓을 두 번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없는 마인도 만들어 내는 무명교의 검증을 통과해 냈는데, 다른 자들이 이의를 제기할 리 없지 않은가.

검증을 통과만 할 수 있다면, 진혁의 행보는 더욱 자유로워지리라.

통과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건 통과했을 때의 이야기지 않습니까.”

“통과하게 될 거다.”

걱정하는 주연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진혁은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승용차의 천장을 멀거니 올려다봤다.

너무나 태연한 진혁의 태도를 보고 할 말이 없어진 주연은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운전에 집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팀장님,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차를 멈춰 세운 그녀가 상념에 빠진 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다녀오지.”

“부디 조심하십시오.”

걱정하는 부팀장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진혁은,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찰칵! 찰칵!

그가 세단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가 진혁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

이번 검증을 지켜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기자들.

“서진혁 씨,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마인이 아니신 건가요?”

“유가의 혈통이 없이도 괴수를 조종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마기가 아니면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의 아우성 사이를, 진혁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가로질렀다.

‘무명교의 신전인가.’

과거 교회였던 건물을 사들여 무명교의 신전으로 새롭게 치장한 곳.

곳곳에 무명교의 상징과 신화가 새겨져 있는 신전의 외벽 그리고 두꺼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정문을 훑으며 그는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여긴 좀 조용하군.’

기자들로 정신없이 시끄러웠던 바깥과 달리, 허가받지 않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신전의 내부는 비교적 조용했다.

그럼에도 신전의 자리를 채운 사람들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엽사회, 이가와 주가, 유가, 윤가에 성전기사단. 저쪽은…… 타국의 엽사들인가.’

익숙한 얼굴과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 섞여 예배관에 마련된 자리를 가득 채웠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엽사 회장 최현과 곰방대를 손에 쥔 채 눈살을 찌푸리는 이설화,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윤미르와 유재준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르는 얼굴.

‘그리고…….’

지정된 자리로 다가가면서 그들에게 한 번씩 눈을 마주친 다음, 진혁은 마지막으로 예배관의 가장 앞에 앉은 사내들에게 눈을 돌렸다.

서강진, 서무혁, 서상혁.

그의 혈육들.

입을 다문 채 자신을 못 미더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와 무표정한 두 형제를 한 번씩 바라본 다음, 진혁은 단상에 마련된 검증석 앞에 섰다.

―검증대상인 세한보안의 서진혁 팀장이 도착하였으므로, 지금부터 마인검증을 실시하겠습니다.

그가 자리에 서기 무섭게, 예배관의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

곧이어, 무명교의 성가가 예배관을 가득 채웠다.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진 않아.’

성가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에 진혁은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이윽고.

검증을 맡은 무명교 측의 사람들이 예배관 뒤쪽에서 한 명씩 나타났다.

“아, 아니!”

“저 사람은…….”

긴 행렬의 맨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청중들의 눈이 커졌다.

주교복을 입은 채 경건한 표정으로 진혁의 앞에 선 금발의 소녀.

“성녀?”

무명교의 성녀가 검증 현장에 직접 나타났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왔구나.’

검증 대상인 진혁을 제외하고는.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군.’

흔들리는 클레어의 눈빛을 바라보며, 진혁은 미소를 지었다.

*    *    *

성전기사단 서울지부의 건물은 겉으로 보기엔 고작 삼 층 남짓한 크기의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의 지하는 그렇지 않았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 그대로, 지부의 지하에 펼쳐진 공간은 지상에 드러난 건물의 면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드넓었다.

비록, 그 공간의 대부분이 쇠창살로 틀어막힌 감옥이긴 했지만.

그 수많은 감옥 중 한 곳에.

“성녀님…….”

성녀, 클레어의 호위기사였던 렌이 갇힌 채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삼 품의 경지에 올랐으니, 몰래 잠입할 수만 있다면 혼자서도 충분히 성녀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삼 품의 엽사는 오러를 뿜어낼 수 있는 강자이니 보통이라면 맞는 이야기.

그러나, 삼 품의 정기사로 드글거리는 성전기사단에 통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러 명의 성기사에게 제압당한 그녀는 무기를 빼앗긴 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성녀님이 위험한데…….”

무슨 이유에서 성녀를 억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직 가문, 소위 ‘직계’라 불리는 자들이 성녀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는 곁에서 성녀를 지켜 온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본단에서도 모르는 눈치였어. 이대로 간다면…….’

성녀는 억류당한 채 성직 가문과 슈헤르트의 꼭두각시로 전락당할 게 분명했다.

다름아닌 렌, 그녀를 인질로 잡아서.

‘성녀님이라면, 거절하지 못하겠지.’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긴 했지만, 그녀를 아껴 왔던 클레어다.

자신이 인질로 잡혀 있단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성녀는 분명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만 해.’

우웅―!

결심한 렌의 오른손으로부터, 신성력의 백광이 흘러나왔다.

성전기사단의 정기사가 뿜어낼 수 있는 홀리오러.

물론, 성기사인 그녀를 가두기 위해 신성력을 흩어 버리는 술법이 걸린 눈앞의 쇠창살을 자르기엔 턱없이 모자란 힘이었지만.

‘내 몸이라면, 다르겠지.’

손에서 빛나는 하얀 광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렌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성녀님, 부디 무사하시길.”

마음을 정리한 그녀가 결단을 내리려던 순간.

철컹!

‘뭐지?’

쇠창살로 이루어진 철문에서 들려온 금속음에, 그녀는 내리치려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한 그녀의 두 눈이 커졌다.

“철문이……!”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를 가두고 있던 철문이 언제 닫혀 있었냐는 듯 활짝 열려 있었다.

‘설마, 함정인가?’

처음엔 의심했다.

허나.

활짝 열린 철문 앞에 선 그녀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설사, 함정이라 하더라도.’

나간다.

나가야만 한다.

“이름 없는 신이시여.”

우웅―!

기도문을 외는 그녀의 몸에서, 이름 없는 신이 내려 준 신성력의 백광이 뿜어져 나왔다.

*    *    *

클레어.

무명교의 성녀인 그녀의 마음은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렌…….’

자신의 호위기사이자 친구.

그녀의 목숨이 달린 일 앞에서, 평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마디, 한마디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겁니다.’

성전기사단 서울지부의 지부장, 슈헤르트 마이어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그의 말대로였다.

딱 한마디만 내뱉는다면, 그녀의 호위기사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컸지만.

‘서진혁 씨를…… 마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가 마인이 아니란 사실은 가까이에서 지켜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거기에, 그는 이름 없는 신께서 내린 계시의 주인공.

그런 그를 마인으로 몰아 죽인다는 건, 문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허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렌은…… 죽고 말거야.’

아니, 죽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이단 심판관의 이단 검증은 언제나 극악한 고문을 동반하니까.

몸도, 정신도 정상이 아니게 된 채 죽기만을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성녀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귓속말을 건넨 것은, 슈헤르트였다.

‘한 번이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갈 겁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성녀님의 주관하에, 서진혁 씨에 대한 마인 검증을 실시하겠습니다.”

슈헤르트의 목소리가 예배관에 퍼져 나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성가가 멎어 들고, 장내는 침묵했다.

자리에 앉거나 선 모두의 시선이 이 검증의 결과를 내놓을 클레어, 그녀에게로 향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클레어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앞에 선 검증의 당사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진혁을 마주한 그녀는 당황했다.

‘웃고…… 있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순간 앞에서.

서진혁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제법 오랫동안 진혁을 봐 왔던 클레어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확신……하고 있어.’

자신감으로 가득한 확신.

자신은 결코 마인이 아니라는 그 결백함이 그녀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난, 난 못해. 아무리 렌의 목숨이 걸려 있다지만…….’

이름 없는 신이 보고 있는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의 입은 진실을 말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렌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무슨 일을 불러 일으킬지 잘 알고 있었으니, 클레어의 입술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걱정하지 마라.

그녀의 귓가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간질인 것은.

슈헤르트의 따뜻한 목소리와는 달랐다.

마치 귀신의 흐느낌과도 같은, 영혼을 통해 전해져 오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러나.

―기사는 풀려났으니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차갑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존재의 말이 그녀의 영혼을 통해 전해진 순간.

“아…….”

미소짓는 서진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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