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60화 (60/174)

60화

“거절한다.”

침묵이 흘렀다.

진혁의 거절은 차가울 정도로 단호했다.

“어……째서……입니까.”

대답을 듣고 석상처럼 굳어 있던 렌은, 한참 뒤에야 고장 난 것처럼 더듬거렸다.

“이유는 두 가지.”

진혁은 천천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렌에게 설명했다.

“첫째는, 서가와 무명교 사이의 관계가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성녀를 구하기 위해서라기엔 너무 큰 대가지.”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성녀 스스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할 수 없으니까.”

말을 멈춘 진혁의 차가운 눈이, 절망한 성기사의 눈과 마주쳤다.

“설사 내가 나서서 성녀를 구해 왔다 하더라도, 그게 진정 성녀를 구한 게 맞는 것인가? 아니, 교단으로부터 성녀를 납치한 납치범이 될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성녀를 보호한다는 성전기사단의 명분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결국, 그녀 스스로가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다. 나나 네가 아니라.”

성녀를 구하기 위해 이곳 강화도까지 달려온 렌에겐 너무나 모질고 잔혹한 말.

동시에,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알겠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혁 님. 그럼, 전 이만.”

힘없이 몸을 일으킨 렌은 그 말과 함께 굳은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나섰다.

돌아서는 그녀의 축 처진 어깨가 너무나도 무거워 보였다.

“……팀장님, 정말로 그냥 내버려 두실 겁니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주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혁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말했다시피, 나와 서가엔 성녀를 구해 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성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지. 그 전엔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주연의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세한의 사람.

함부로 움직였다간 세한에 큰 피해가 될 것이란 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 팀장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것도 잠시.

재빨리 표정을 수습한 주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진혁에게 태블릿의 화면을 보여 주었다.

이메일이었다.

“무명교로부터 팀장님에 대해 검증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조만간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겠다고 합니다만…….”

“일정은 부팀장이 적절한 날에 잡도록 하지. 어차피, 언제고 한 번은 했어야 할 일이야.”

주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혁은, 조금 전 성기사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오른손이 말없이 움직인 순간.

스으으!

영혼 구슬로부터 잠들어 있던 망령 하나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내, 진혁이 한 번 더 손을 휘젓자.

스으으으!

진혁의 명령을 받은 망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마인 검증.

사실, 한국에서 누군가가 마인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엽사회나 다섯 엽사 가문,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일정 이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마인이 아니라는 검증을 받고 검증서를 제출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진혁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무명교에서 직접 검증을 요구해 오는 일은 드문 일이었으니까.

[서진혁에 대한 마인 검증 요청, 무명교에서 직접?]

[서진혁, 그는 마인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의 능력!]

[무명교의 역사와 함께하는 마인 검증(1)]

서진혁이 그 대상으로 지목된 순간,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언론들이 달려들었다.

세한그룹 차원에서 언론 통제에 들어가자 기자들의 입은 곧 다물어졌지만, 이미 서진혁이 마인인가에 대한 문제는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 오래였다.

“그래, 원하는 대로 전 국민이 네 이름을 알게 됐구나. 소감이 어떠냐?”

“이런 식으로 알려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나도 마찬가지다. 에잉, 하이에나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진혁의 대답에 회장실의 의자에 앉아 있던 서강진은 혀를 찼다.

“그래, 마인이냐?”

“마인이면, 아버지께서 절 살려 두시지 않았겠죠.‘

아버지의 물음에 진혁은 코웃음 쳤다. 강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다루는 힘이 기존에 알려진 건 아니지만, 마기는 분명히 아니야. 하지만.”

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상이 진실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무명교에서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강진의 말에 담긴 의미를 눈치챈 진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라면 모를까, 내 대에선 무명교와의 관계가 많이 약해졌으니까. 어쩌면 그걸 빌미로 세한을 압박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자세한 건 더 확인해 봐야 겠다만.”

말을 마친 강진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번 검증은 거부하거라.”

그 말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너를 지목한 순간, 놈들에게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아무리 공정한 방법이라고 떠들어댄다지만, 조작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지.”

세한의 회장 정도 자리에 오르면 이런저런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

무명교의 마인 검증에 대한 의혹 역시 그중 하나.

“분명, 놈들은 규정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하는 널 마인으로 몰아갈 거다. 굳이 함정 속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

아들뿐만 아니라 세한과 서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일까.

권유하는 강진의 표정은 그만큼 진중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진혁은 그 권유를 물렀다.

“거부하면, 거부한 대로 문제가 생길 게 뻔하잖습니까.”

검증을 거부하는 순간, 진혁에 대한 의심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없던 마인도 새롭게 생겨날 판이다.

“정말로 무명교에서 의도한 게 맞다면, 어느 쪽이건 빠져나가기는 힘들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정면으로 돌파하는 게 저들의 허점을 찌를 확률이 높겠죠.”

“그래서,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겠단 말인 게냐?”

장남이 담담하게 이야기하자, 강진은 못 미덥다는 눈치로 아들을 바라봤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함정인 걸 알고 들어간다면, 함정이 아닙니다.”

적을 낚을 미끼일 뿐이죠.

진혁은 말을 마치고는, 아버지를 향해 엷게 웃었다.

하지만.

‘찾아낸다.’

그의 눈은 웃지 않았다.

*    *    *

―이번 일은 월권일세, 지부장.

무명교의 신법에 의해 보안 처리된 스마트폰으로부터, 근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네가 아무리 동아시아 교구의 이단자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지만, 이런 거물을 건들 생각이었다면 미리 보고를 했어야지.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자신을 질책하는 것 같은 상대의 말에, 성전기사단의 서울지부장이자 동아시아 교구의 이단심판관인 슈헤르트는 갈색 눈을 슬쩍 찌푸렸다.

“하하. 월권이라니요, 주교님. 이단자를 색출하고 심판하는 게 이름 없는 신께서 내려 주신 제 임무지 않습니까. 저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너머의 주교를 향해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표정과 달리 쾌활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니 더 이상 책잡진 않겠네.

주교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그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작한 이상, 확실히 매듭 지어야 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게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까요.”

―자네만 믿겠네.

삑!

그 말과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정말, 걱정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니깐.”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은 슈헤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녀님?”

클레어.

무명교에서 가장 존귀한 자, 신과 인간을 잇는 이름 없는 신의 지상대행자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 밝게 웃던 평소와는 달리, 슈헤르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엔 그림자가 져 있었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길 바래요?”

“사실, 대답을 바란 건 아닙니다. 이단심판관으로 일하면서 생긴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라고 해 두죠.”

쏘아붙이는 클레어의 말에 슈헤르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 제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입이 막혀 있거나 혀가 뽑혀 있거든요, 주문을 외우기라도 하면 문제가 돼서. 그래서 혼잣말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남자가 끔찍한 말을 태연한 표정으로 꺼내자, 클레어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단심판관.

교단과 인류에 반하는 모든 적을 멸살하는 것이 임무인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겁이라도 먹을 거 같아요?”

두려움에 몸을 떤 게 부끄러웠는지,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쏘아댔다.

“겁을 주다니요, 제가 어찌 성녀님께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슈헤르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까지 저희 지부에 머무시면서 최대한의 편의를 봐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부족한 부분이 있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소녀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성녀를 모시는 성기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물론,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희 기사단의 견습 기사에겐 교육이 좀 필요해 보이더군요.”

“당신, 렌을 어떻게 한 거야.”

지부장이 흘리듯 한 말에, 클레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녀의 눈이 보기 드물게 분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슈헤르트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할 건 없었습니다. 기사단의 규율을 어기고 지부를 무단으로 침입하려는 견습 기사 하나를 체포했을 뿐이죠. 물론…….”

말을 멈춘 슈헤르트의 미소 속에, 날카로운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견습 기사가 기사단의 지부에 침입하는 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니, 제 주관하에 이단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단 검증? 말이 이단 검증이지, 그냥 처형이잖아요!”

다시 말해, 슈헤르트의 말 한마디에 렌의 목숨이 달려 있단 뜻.

그 말을 들은 클레어가 놀라 소리쳤지만, 남자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이단이 아니라면 이름 없는 신께서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녀님. 물론…….”

눈물이 그렁그렁한 금발의 소녀를 바라보며, 슈헤르트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성녀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이름 없는 신의 의지가 더 확실히 전달될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사실상 협박과도 같은 말을 마친 슈헤르트가, 물빛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성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그 모습을 망령 하나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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