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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58화 (58/174)
  • 58화

    동이 튼 서해 바다 위를, 한 무리의 엽사들이 가로질렀다.

    그들의 차림새는 제각각이었지만, 굳이 나누자면 셋으로 나눌 수 있었다.

    타타타타!

    전신을 검은 전투복으로 감싸고 등과 조끼에 여러 정의 마력총과 폭탄을 매단 채 수송 헬기에 탑승한 엽사 무리가 하나.

    쐐애애액!

    마법사의 상징인 로브를 뒤집어쓴 채 하늘을 나는 무리가 하나.

    “키이이이이!”

    그리고 각기 비행형 괴수에 자신의 몸을 실은 엽사 무리가 하나.

    대한 엽사회의 소집령에 응하기 위해 나선 이가와 주가, 유가의 엽사들이었다.

    이미 강화도에 파견을 보낸 서가와 가문의 사정을 이유로 소집령에 불응한 윤가를 제외한 세 가문의 핵심전력들.

    같은 이유로 모였지만, 이들의 목적은 서로 달랐다.

    “우리의 목표는 대장의 안전이다.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

    “몇십 년 만에 나타난 을 급 괴수와 게이트를 연구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다들 장비들은 챙겨 왔겠죠?”

    “을 급 괴수를 윤가의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몇십 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친구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같은 곳으로 날아가던 세 가문은 강화도에 가까워질수록 점차 서로 간의 거리를 벌려 나갔다.

    애초에 협력의 개념이 희미한 게 다섯 엽사 가문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파아아앗!

    강렬한 회색의 빛이 강화도를 덮친 순간.

    “전방에 미확인 초상현상 발생!”

    “강한 마나의 파동입니다! 피해요!”

    “키이이이이!”

    세 가문은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장의 두정갑은 아직 석모도에 있습니다. 대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린 석모도로 이동한다. 대장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투타타타!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이가의 수송 헬기였다.

    시끄러운 로터 소리와 함께, 강화도로 향하던 헬기의 기수가 방향을 틀어 엉뚱한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 마나 패턴, 최현 대장의 것입니다. 설마, 벌써 을 급 괴수와 전투를 벌이는 건가요?”

    “망할, 도착하기도 전에 죽이면 안 되는데!”

    남은 두 가문, 주가와 유가는 곧장 본래 목적지인 강화도로 향했다.

    주가는 게이트와 괴수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표본을 채취하기 위해, 유가는 을 급 괴수를 손에 넣기 위해서.

    허나.

    둘 모두, 목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이건…….”

    “으, 을 급 괴수가…….”

    본 모습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찢겨나간 대지.

    그 위로 을 급 괴수, 여명이무기가 뱃가죽이 뻥 뚫린 채 쓰러져 있었다.

    “……토벌이 벌써 끝날 줄이야.”

    “우, 우리 가문의 보물이…….”

    눈앞에 놓인 참상에, 주소영과 유재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황한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두 명의 남자였다.

    “주가와 유가뿐인가, 이가도 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대한엽사회의 회장이자 일 품의 엽사인 최현.

    그리고.

    “생각보다 늦었군요. 을 급 괴수는 이미 토벌되었습니다.”

    서가의 장남, 서진혁.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을 급 괴수 사체의 소유권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서가가 이양받았습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두 사람의 눈을 올려다보며, 진혁은 미소를 지었다.

    *    *    *

    을 급 괴수를 토벌한 이후, 강화도의 남은 괴수들을 정리하는 과정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진행되었다.

    이미 수많은 괴수들이 석모도에서 죽어 준 덕분에 개체 수가 제법 줄어든 데다.

    “키이이이이!”

    “크아아아!”

    을 급 괴수의 지배 아래 있던 괴수들이, 놈의 죽음과 동시에 서로 싸우기 시작한 탓이다.

    괴수들이 서로 싸워 주는 만큼 망자들과 토벌 2팀의 부담도 줄어들었으니, 강화도 토벌의 진행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혁이 강화도에 들어선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강화도를 뒤덮은 수많은 괴수들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팀장님, 축하드립니다.”

    “축하?”

    “강화도를 손에 넣으셨잖습니까.”

    의아한 진혁의 물음에 신주연은 미소를 지으며 가지고 있던 태블릿을 보여 주었다.

    “세상이 팀장님 얘기로 떠들썩합니다. 뉴스, 신문, 인터넷…… 어제는 미튜브에 이런 것도 나왔죠.”

    진혁의 시선이 태블릿의 화면으로 향했다.

    화면에 나온 썸네일에는 붉고 푸른색의 글씨로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세계가 경악하는 한국의 엽사! 삼 대 금지구역 중 하나를 한 달 만에 정리한 강화도의 기적, 그 주인공은?]

    [을 급 괴수가 나타나자 한국이 보인 행동에 전 세계가 전율한 이유!]

    [수십 년 동안 버려진 땅을 단 한 달 만에 탈환해 내자 전 세계 엽사들이 한국으로 견학 오는 상황.]

    “마지막 건 금시초문인데.”

    “반쯤은 허풍이니 적당히 걸러 들으시면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팀장님의 이름이 한국에 어느 정도 알려졌단 거죠.”

    “좋은 일이군.”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한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건 진혁도 원하는 바였으니까.

    그의 이름이 유명해질수록, 그 유명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가의 후계 구도를 흔들어 줄 것이다.

    ‘어쩌면, 굳이 가문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

    어느 쪽이건, 외눈박이를 잡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하는 진혁에겐 좋은 일이었다.

    “허. 뭐야, 이게?”

    진혁의 상념을 깬 것은, 옆에서 들려오는 설화의 목소리였다.

    “‘세계가 경악하는 한국의 엽사’? ‘전 세계가 전율한 이유’? 으, 소름 돋아. 뭐 저런 걸 다 보고 있어?”

    태블릿 화면을 살피던 그녀의 눈살이 슬쩍 찌푸려졌다.

    “아, 설화 님 것도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아니, 절대로.”

    “여기, 이겁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K―마도병기! 병 급 괴수도 한 방에?’라는 건데…….”

    “응. 안 보여, 안 들려.”

    제법 친해진 것인지, 설화에게 태블릿을 들이대는 주연과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설화의 모습은 퍽 우스웠다.

    “그, 팀장님.”

    둘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진혁의 시선에 클레어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무슨 일이지?”

    평소와 달리 그늘진 성녀의 표정.

    진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클레어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직 정리가 덜 되긴 했지만, 저는 먼저 서울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교단에 일이 생긴 거 같아서. 죄송해요.”

    “굳이 네 도움은 필요 없다. 서울로 갈 거라면, 설화와 함께 가면 되겠군. 착호갑사대와 함께 곧 떠날 테니.”

    진혁의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아무리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녀의 존재 자체가 흑마력을 쓰는 그에게는 썩 마땅찮았으니까.

    곧 세한그룹의 계열사들이 섬으로 들어올 예정이니, 그녀의 도움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럼, 다녀올게요.”

    진혁이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는 미안한 표정으로 허리를 한 번 숙이고는 호위기사인 렌과 함께 사라졌다.

    ‘교단의 성녀라면, 별일은 없겠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굳이 걱정해 줄 필요도 없었다.

    클레어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린 진혁의 시선은 이내 주변으로 향했다.

    쿵! 쿵!

    석모도로부터 실어 온 사령수들을 망자들이 한 그루씩 땅에 심어 넣고 있었다.

    저 작업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주기적으로 사령수를 강화도에 심어 나갈 예정이었다.

    이 거대한 땅을 진혁의 영지로 만들기 위해서.

    ‘대외적으로는 세한보안의 새로운 훈련장으로 알려지겠지만.’

    그를 위해, 세한건설을 비롯한 계열사들도 곧 강화도에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고립된 섬에 다리를 놓는 것부터, 훈련장을 짓고 주변에 부대시설을 포함한 작은 도시를 세우는 일까지.

    이가로부터 강화도의 점유를 허락받은 이상,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진혁의 영지는 베일 속에 가려지리라.

    ‘그리고…….’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진혁은 고개를 돌려 여명이무기의 사체를 바라봤다.

    강화도를 찾아온 주가의 도움을 받아 보존 마법을 걸어 놓은 사체는 야외에 방치했음에도 조금도 변질되지 않고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가에서 딴지를 걸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겠어.’

    을 급 괴수의 사체를 바라보는 진혁의 눈이 빛났다.

    *    *    *

    “오랜만이야, 꼬맹이. 소식은 이미 들었다. 을 급 괴수를 잡았다며?”

    진혁이 구로에 위치한 세한금속에 도착하자마자 반겨 준 것은, 사장인 난쟁이 글리펜이었다.

    “여명이무기입니다. 저 녀석이죠.”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글리펜을 바라보던 진혁은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거대한 금빛의 괴수가 천둥비룡의 배 아래에 묶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주인, 빨리 이 짐 덩어리 좀 풀어 달라 그래요, 답답해 죽겠으니깐!

    “키이이…….”

    강화도에서 서울까지 을 급 괴수를 실어 나른 천둥비룡, 멜리나가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칭얼댔다.

    하지만.

    “오오, 이게 바로 그, 을 급 괴수란 말이지. 어디 보자…….”

    먼저 움직인 것은 글리펜이었다.

    “오, 오오, 이건…….”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여 천둥비룡에게 다가간 난쟁이는, 여명이무기의 비늘과 가죽을 만지고 들여다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뱃가죽이 찢어진 게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상품이야. 얼마 줬냐?”

    “오백억입니다.”

    진혁이 아르카나에서 구입한 천둥비룡의 다섯 배 가격인,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금액.

    서가의 장남인 진혁도 가지고 있는 카드만으로 처리하는 건 곤란했던지라, 강화도에 남은 괴수들의 사체 일부를 현금화해서 지급하는 조건을 붙여서야 간신히 성사시킬 수 있었다.

    “엥?”

    그러나, 글리펜이 놀란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겨우 그거밖에 안 줬다고? 아무리 뱃가죽이 찢어졌다지만, 이 정도면 천억은 받아야 할 텐데…….”

    수십 년 만에 한국에 나타난 을 급 괴수니, 그 희소성을 생각한다면 저렴한 가격이었으니까.

    “제가 토벌을 도운 덕이죠. 엄밀히 말하면, 제가 받을 몫을 빼고 오백억을 준 겁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횡재했구만. 크흐흐.”

    이무기의 몸에 달린 비늘을 만지작거리는 글리펜의 눈이 난쟁이 특유의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래, 뭘 만들어 주랴?”

    한참 동안 이무기를 만지작거리던 난쟁이의 시선이 진혁에게로 향했다.

    “뼈로는 무기를 만들면 되겠고, 비늘로는 방어구를 만들면 딱이겠어. 주가나 귀쟁이들을 부를 수 있다면, 살과 피에 마법처리를 해서 보구나 마력 엔진을 만들어도 될 거고. 아, 보수는 돈 말고 이 녀석 일부로 챙겨 줘. 이번에 한정판을 낼 건데, 거기에 이 녀석의 피라도 한 방울 넣으면 반응이 장난 아닐 거 같거든!”

    벌써부터 을 급 괴수의 사체를 다룰 생각에 신이 났는지, 글리펜은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를 들썩였다.

    “일단은…… 잘게 부숴 주십시오.”

    진혁의 입이 열리기 전까진.

    “……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순간, 당황한 글리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를 후볐지만.

    “뼈부터 비늘까지, 하나도 남김 없이 잘게 부숴 주시면 됩니다.”

    안타깝게도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진혁이 글리펜을 향해 재차 요구사항을 말한 순간.

    “……야, 이 미친놈아. 저거 오백억짜리라며? 너 돌았냐?”

    황당함과 분노로 뒤섞인 난쟁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혁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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