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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51화 (51/174)

51화

석모도.

강화도의 서쪽에 위치한, 과거엔 젓갈로 유명했던 작은 섬.

하지만 이제는 젓갈 대신 괴수로 가득한 지옥이 되어 있었다.

그 지옥의 남쪽에 펼쳐진 평야 위를, 두 남녀가 달리고 있었다.

“사,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몸에 걸친 반짝이는 보구들과 날카로운 무기, 그리고 두꺼운 방호복은 그들이 괴수를 사냥하는 자들, 엽사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허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숨을 헐떡이는 그들의 모습은 사냥꾼보다는 사냥감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들은 쫓기고 있었다.

“컹! 컹!”

정급 괴수, 두 머리 늑대.

이름처럼 머리가 둘 달린 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정급 치고는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괴수다.

그러나.

“으르르르……!”

“아우우우!”

그 숫자가 수십으로 늘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리를 지어 먹잇감을 몰이 사냥하는 두 머리 늑대들의 표적이 된 순간, 두 명의 사 품 엽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도망치는 것뿐.

“거기 아무도 없어요?”

“괴수다! 괴수가 쫓아온다!”

둘은 입에서 단내를 풀풀 풍기며 소리쳐댔지만,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석모도는 그 위험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섬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들처럼 몰래 숨어 들어온 밀렵꾼이 아니고서야, 이 섬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결국.

“아아…….”

“이, 이제 다 끝났어…….”

바다에 가로막혀 더는 도망칠 수 없게 된 두 엽사의 눈에, 서서히 절망이 차올랐다.

“크르르르…….”

추격이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들을 반원으로 포위한 수십의 두 머리 늑대가 입맛을 다시며 기분 좋게 으르렁댄다.

놈들의 눈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두 엽사는 먹기 좋은 먹이일 뿐.

“젠장, 이제 다 틀렸어…….”

“주, 죽기 싫은데…….”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 가는 두 머리 늑대들을 향해, 두 엽사는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들어 올렸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고 죽는 게 나았으니까.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콰르르릉!

그들이 무기를 휘두를 일은 없었다.

콰릉! 콰르릉!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십 줄기의 검은 날벼락.

콰르르릉!

시커멓게 물든 번개들이, 포위망을 만들기 위해 뭉쳐 있던 두 머리 늑대들의 머리 위로 향했다.

“캐캥!”

“끼이잉!”

두 머리 늑대가 제법 민첩하다지만, 번개보다 빠를 수는 없다.

갑작스레 내리치는 번개 줄기를 피하지 못한 늑대들이 하나둘 단말마를 내뱉으며 검게 타 죽어 갔다.

동시에.

쐐애애액!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쿵!

마치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람은 아닌 것들.

“해, 해골?”

착지한 지면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스켈레톤의 모습에, 두 엽사의 동공이 커졌다.

딱딱! 딱딱딱!

이내, 몸을 일으킨 스켈레톤들은 손에 쥔 병장기를 들어 올리곤 아직 죽지 않은 괴수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컹, 컹!”

번개로부터 운 좋게 살아남은 두 머리 늑대들 몇몇이 해골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으드득!

공중으로 도약한 늑대의 아가리가 해골의 목뼈를 일격에 끊어 버린다.

상대가 생물이었다면, 결코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치명상.

그러나.

푹! 푸푹!

상대는 생물이 아니었다.

“끼잉, 끼잉…….”

목뼈가 부러진 해골에게 뱃가죽이 뚫린 두 머리 늑대들이 바닥에 쓰러져 애처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푹! 푸푹!

모여든 스켈레톤들이 몇 번 더 무기를 찔러넣자, 괴수들은 곧 조용해졌다.

“대체…….”

“이게…… 뭐야……?”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두 엽사는 도무지 입을 뗄 수 없었다.

“너희들, 뭐지?”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엽사들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 둘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처, 천둥비룡?”

배 쪽에 거대한 바구니 같은 것을 매달고 있는 푸른색의 비룡.

그 머리 쪽에, 흑청색 정장을 걸치고 한 손에 주먹만 한 구슬을 쥔 남자가 서 있었다.

“오늘부로, 여긴 서가의 영역이다.”

서가의 장남, 서진혁.

“섬에서 나가라, 당장.”

천둥비룡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진혁을 향해, 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진혁과 토벌 3팀이 석모도에 상륙한 지 열두 시간 째.

―팀장님, 이쪽은 끝났습니다.

―이쪽도요! 더럽게 많네, 정말.

통신 구슬 너머로 들려오는 주연과 클레어의 목소리에,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나머진 괴수들에게 맡기고 쉬도록.”

예정대로, 석모도를 반으로 가른 산지까지 괴수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엽사도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이니,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하니까.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들이닥치는 괴수의 파도를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한 일.

교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엽사를 데려온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석모도엔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망자는 다르지.’

망자는 죽지 않는다.

망자는 지치지 않는다.

망자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에.

흑마력만 있다면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망자들에게 스물네 시간 내내 괴수를 막아 내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흑마력을 공급하는 게 까다롭긴 하지만.’

그 문제도, 곧 해결될 참이었다.

쿠웅!

―아우, 무거워. 이젠 나보고 나무까지 나르라 그러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른 몸뚱이만 한 굵기의 검은 나무를 땅에 내려놓은 멜리나가 우는 소리를 냈다.

“고통도 느끼지 못할 텐데, 힘이 들 리 없다.”

―기분이 그렇거든요, 기분이! 안 그래도 아까 쓴 마법 때문에 흑마력도 바닥났다고요.

뾰로퉁한 표정을 지은 멜리나에게서 눈을 뗀 진혁은 그녀가 내려놓은 나무, 사령수를 바라봤다.

그가 칠성원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여 키워 온 사령수는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뿌리를 아래로 뻗어 나갔다.

스으으!

이내, 뿌리를 내린 사령수의 두꺼운 줄기로부터 흑마력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이제, 시간문제로군.’

한 그루로는 모자랄지도 모르지만, 몇 그루를 더 심는다면 망자들이 소모하는 흑마력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터.

그때부터는, 천천히 이 섬과 강화도 본섬의 괴수를 몰아내면 될 뿐이다.

‘그러면, 완성이지.’

몰아낸 자리에 사령수를 빼곡이 심을 수만 있다면, 진혁의 사령술은 한두 단계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으리라.

진혁이 섬의 중앙을 가로지른 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그때.

―팀장님, 병 급 괴수입니다.

통신 구슬에서 주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암비룡 둘이 방금 날아올랐습니다.

“보고 있다.”

진혁은 산 위로 날아오르는 두 마리 비룡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게이트크러시가 일어난 지 수십 년도 더 지난 섬이다.

병 급 괴수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자신의 구역이 침범당했단 걸 깨닫고, 적을 몰아내기 위해 날아오른 것이리라.

‘의미 없는 일이지만.’

진혁이 부리는 망자 군단의 힘은, 이미 병 급 괴수 따위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강했으니까.

“곧 처리될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용암비룡 둘 정도라면, 굳이 그가 신경 쓰지 않더라도 망자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리라.

“멜리나, 처리해라.”

그렇게 생각한 진혁은 곁에 있던 멜리나에게 명령을 내리곤, 두 용암비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봤다.

허나.

지이이잉!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지이이잉!

하늘에서 굵은 빛줄기가 내려온다.

무형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짙은 청색의 기둥들.

마치 신의 천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러 개의 빛줄기가 용암비룡들의 몸 이곳저곳을 꿰뚫었다.

“키에에에에!”

빛줄기들이 용암비룡의 날개와 비늘에 닿을 때마다, 비늘이 녹고 날개에 구멍이 뚫린다.

날벼락을 맞은 용암비룡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지이이이잉!

하지만,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더 많은 빛줄기뿐.

쿠우웅!

이내, 날개를 잃어버린 용암비룡들은 땅으로 추락했다.

땅 위에서 피 묻은 몸을 잠시 꿈틀거리던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을 멈췄다.

―와…… 마법인 거 같은데, 제법 강력한데요! 무슨 마법이지?

병 급의 괴수를 단숨에 침묵시킬 정도의 놀라운 위력에, 날아오르려던 멜리나는 입을 벌린 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곧.

‘저건가.’

하늘을 살피던 진혁은 천둥비룡을 사살한 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

전신을 금속 갑옷으로 뒤덮은 형태의 거인.

거인의 등과 어깨, 팔과 다리 곳곳엔 제각기 다른 크기의 마나 캐논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었다.

거인의 머리에 씌워진 투구 한가운데에는 이가를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박혀 있었다.

진혁은 저 거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두정갑인가.’

이가가 자랑하는, 마도 공학의 정수로 만들어진 병기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존재.

동시에, 이가의 정예인 착호갑사들 중에서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없는 귀한 물건.

석모도까지 저 강철 거인을 끌고 올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야, 서진혁! 도와준다고 말했으면, 같이 가야 할 거 아냐!

등에서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날아오는 거인에게서 들려오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괴수란 괴수는 다 끌고 오겠군.”

섬을 쩌렁쩌렁 울리는 이설화의 외침에 진혁은 혀를 찼다.

*    *    *

석모도를 포함한 강화군의 모든 섬은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합법적으로 저 섬들을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와…… 저게 다 뭐람?”

그걸 감안하고도, 서해 한가운데에 선 두 남녀의 모습은 너무나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조금 전 석모도에서 두 머리 늑대 무리에게 쫓기던 두 사 품 엽사.

허나, 그들의 발밑에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푸른 바닷물뿐이었다.

보트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건, 분명 사 품의 엽사에겐 불가능한 일.

그러나, 그들에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깐 말야. 저게 다 서진혁, 저 사람이 끌고 다니는 거란 말이잖아?”

“무슨 골렘도 아니고, 괴수들을 저렇게 많이 부릴 수 있다니. 심지어 지치지도 않는 게 말이 돼?”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두 남녀의 입가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피어 있었다. 그들의 눈은 어느새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마인.

“대장이 지켜보라고만 하긴 했는데…….”

“그냥 내버려 두면, 큰일 날 거 같지 않아?”

마치 한 몸이라도 되는 듯, 둘의 대화는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마침 이가의 그년도 있으니까, 이참에 다 쓸어버리면 되겠다.”

“그러면, 대장도 분명히 좋아할걸?”

비릿한 웃음을 짓는 두 남녀의 시선이 저 멀리 보이는 섬, 석모도로 향했다.

망령 하나가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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