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50화 (50/174)

50화

서상혁.

서가의 막내아들이자 세한보안의 토벌본부장으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스물다섯 해.

어린 나이가 무색한 토벌 실력과 수완 덕에, 이제는 세한의 비공식적인 이인자가 되어 버린 그였지만.

“……후우.”

고급 세단의 뒷좌석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의 낯빛은, 세한그룹의 이인자답지 않게 어두웠다.

그가 건강 때문에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문 이유는 분명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따지고 보면,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가문을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외세의 힘을 빌려 서가의 장남을 쳐 내려는 작업.

만일 이 일이 아버지, 서강진의 귀에 들어간다면.

‘난 끝장이겠지.’

가주가 되려던 상혁의 꿈은 그대로 박살 나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어.’

그러기엔 맏형이 너무 커 버렸다.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의 형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가리라.

그 꼴을, 눈 뜨고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몇 명만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야. 새어 나갈 이유는 없어.’

그렇게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본부장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도착했다는 비서의 말에, 상혁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차에서 내린 그의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3층짜리 회색 건물의 입구였다.

[무명교 성전기사단 서울지부]

무명교의 무력 단체, 성전기사단의 지부가 상주하고 있는 건물.

상혁은 한국어와 독일어, 그리고 에피로나의 언어로 /쓰여 있는 명패를 슥 훑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름 없는 신을 모시는 무명교의 건물답게 내부는 장식 없이 수수했다.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성전기사단.’

이름 없는 신의 상징이 새겨진 중갑옷을 전신에 걸치고, 등에는 성전기사단의 상징인 참마검을 맨 자들.

‘전원이 사 품 이상이라고 했던가, 서가만은 못해도 제법 봐 줄 만은 해.’

서울이 무명교의 본단과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상혁이 성전기사단의 단원들을 보며 감탄하던 사이.

“오, 미스터 서. 오랜만입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두꺼운 중갑옷을 걸친, 갈색 눈에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서양인.

상혁이 오늘 만날 상대, 지부장 슈헤르트 마이어다.

“오랜만입니다, 마이어.”

“더울 텐데, 일단은 안으로 들어오시죠.”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슈헤르트는 상혁을 이끌고 자신의 집무실로 갔다.

허나, 그의 웃음은 문이 닫히기 무섭게 지워졌다.

“미스터 서, 이렇게 직접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군요. 설마, 아다만티움 문제를 해결하기라도 한 겁니까?”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상혁을 바라보는 슈헤르트의 눈은 뱀처럼 싸늘했다.

자신과 교단이 힘들게 구해 놓은 아다만티움을 그대로 빼앗겨 버린 멍청한 놈.

눈앞의 머저리 때문에 그가 본 손해가 얼마나 큰지는, 감히 계산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 문제 때문에 온 건 맞습니다만.”

“분명히, 직접 해결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전 그 말을 믿고 충분히 시간을 드린 건데 말이에요.”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오랜 친구로서 말이죠.”

쿵!

말을 마친 상혁은 미리 준비해 둔 서류 가방을 꺼내 슈헤르트의 책상에 올렸다.

언제나처럼, 상혁이 그를 만날 때마다 주었던 ‘선물’.

딸깍!

상혁이 잠금장치를 풀자 가방이 입을 쩍 벌렸다.

그 안에서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보석은, 괴수에게서 드물게 얻을 수 있는 마정석.

그것도, 제법 높은 순도의 물건이었다.

“미스터 서…… 그래, 우리가 오랜 친구였긴 하죠.”

가방의 마정석들이 뿜어내는 마나의 광채를 마주하자, 슈헤르트는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작은 도움 정도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일이고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친절하게 미소를 짓는 지부장.

‘돈만 밝히는 주제에.’

상혁은 내심 역겨웠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에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가문 내에 마인으로 보이는 자가 있는데, 그 사실을 기사단에서 공증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인이라니, 그것참 놀랄 일이군요. 미스터 서의 가문처럼 명망 있는 가문에 마인이 숨어 있다니.”

슈헤르트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사진을 내밀었다.

“아마, 지부장도 잘 아는 사람일 겁니다. 아다만티움을 가져간 장본인이니까요.”

사진에 찍힌 것은 흑청색 정장을 입은 미청년.

서가의 장남, 서진혁이었다.

“흠…… 알고 있어요. 당신의 큰형 아닌가요? 그래, 분명 이 사람이었죠. 이 사람이, 마인이라고요?”

“저희 특수부장의 판단입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데몬헌터?”

이미 무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슈헤르트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데몬헌터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상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녀께서 막으셨다더군요. 직접 마인이 아니라는 보증을 내리셨다 합니다.”

“성녀께서요?”

“네, 현재도 저희 가문에서 머물고 계십니다. 진혁 형님과 함께요.”

성녀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서가에 있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찾아뵙기라도 할 걸 그랬군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찾아가지 않은 게, 슈헤르트는 조금 후회되었다.

“흐음…… 곤란한 일이군요. 성녀께서 마인으로 의심되는 자와 함께 지내신다니.”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달리, 성녀에 대해 말하는 슈헤르트의 표정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곧.

“성녀님의 안위도 걸려 있는 일이니. 저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미스터 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상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성녀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클레어 성녀님께서는 성녀로 서임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식견이 넓지 않으십니다. 성녀께서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도, 저희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은, 이름 없는 신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슈헤르트의 미소가, 상혁은 어딘가 모르게 역겨웠다.

*    *    *

세한보안 인천지사의 대회의실.

“강화도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상에 올라선 토벌 3팀의 부팀장 신주연은 레이저포인터로 프로젝터에 띄워진 지도를 가리켰다.

강화도와 그 주변의 조그마한 섬들을 나타내고 있는 지도.

지도를 가득 채운 섬들 위엔, 위험을 가리키는 붉은색이 덧칠되어 있었다.

“현재 강화군에선 하루 평균 여섯 개의 던전이 붕괴하고 있으며, 강화도 본섬의 괴수만 일만 개체가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먹을 게 부족한 괴수들끼리 서로 죽이면서 숫자가 주는 만큼, 던전이 붕괴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이 빈자리를 채워 나가는 곳.

“때문에, 본섬으로 바로 진입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팔짱을 낀 채 브리핑을 지켜보던 진혁의 물음에, 주연은 강화도 옆의 두 섬을 가리켰다.

“인근의 석모도와 교동도를 먼저 토벌하고,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아서 본섬을 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육지에서 곧바로 움직이기엔 너무 머니까요.”

“위험도는?”

“괴수가 제법 있긴 합니다만, 본섬에 비하면 낮은 편입니다.”

말이 그렇단 것이지, 실제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강화도가 봉쇄된 이후로, 수십 년간 제대로 된 토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섬이니까.

“그러면, 그 계획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하지만 진혁은 별 지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앉아 있던 클레어와 렌을 바라봤다.

“너흰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나와 부팀장 둘이서도 충분하니까.”

성녀와 기사가 걱정되어서는 아니었다.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곧 자신의 영지가 될 땅에 신성력이 흩뿌려지면 조금 귀찮아질 테니까.

“아뇨, 저도 갈 거예요.”

허나 클레어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당신을 곁에서 지켜볼 의무가 있으니까요.”

“인천보다 위험할 텐데.”

“그런 거에 겁먹을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죠.”

“저 역시, 성녀님을 곁에서 모셔야 합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마음대로 해라.”

굳이 사지로 걸어 들어오겠다는데, 막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며 회의실을 나섰다.

이윽고, 그의 발걸음은 건물 밖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천둥비룡과 식귀, 스켈레톤 킹.

서진혁이 다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망자들.

한여름 밤의 더위에 흠뻑 젖은 아스팔트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지만, 이미 죽어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망자들은 마치 온돌이라도 되는 것 것처럼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진혁은 가장 멀리서 몸을 둘둘 말고 있는 천둥비룡에게로 다가갔다.

―뭐야, 야밤에 무슨 일이에요? 또 귀찮은 거 시키려는 건 아니죠?

주인을 발견한 멜리나의 목소리엔 귀찮음이 묻어 있었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물어볼 게 있다.”

―물어볼, 거요?

“멜리나, 넌 생전에 마법사라고 했었지.”

―어…… 그렇죠? 나름 중급까진 익혔으니까, 마법사라곤 할 수 있죠. 근데, 그건 왜요?

멜리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진혁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지금, 그 몸으로 마법을 쓸 수 있나?”

―어…… 농담이죠?

하지만.

돌아온 것은 황당해하는 그녀의 대답뿐이었다.

―주문 영창이 뭐야, 이 아가리론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게다가, 이 짜리몽땅한 앞발은 발가락도 잘 안 접혀서 수인도 못 맺는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마법을 써요?

마법은 마나를 가공해 법칙을 비튼다.

마법사가 마나를 가공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영창과 수인.

두 가지 모두 막혀 있는 상태로는, 마법을 쓸 수 없다.

―내가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니거든요? 근데,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정 마법을 쓰게 하고 싶으면 좀 사람 같은 몸뚱이를 주든가! 내가 무슨 말이나 소인 줄 알아요? 맨날 짐만 나르게?

대답하다 말고 급발진한 멜리나가 슬쩍 짜증을 부렸다.

‘흠.’

진혁은 대답하는 대신 천둥비룡의 손과 입을 자세히 살필 뿐이었다.

―왜, 왜 그래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순간.

주인의 시선에서 불길함을 감지한 멜리나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진혁에겐 이미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해 볼 만하겠는데.’

그의 머릿속을 떠도는 것은, 파슬란이 남긴 수많은 사령술의 비전들.

그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던 진혁의 미소가, 서서히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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