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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46화 (46/174)

46화

서가의 차남으로 태어난 무혁은 선천적으로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탐마(探魔)의 능력.

마기의 존재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희귀한 능력을, 그를 세한보안 특수부의 부장이자 마인 사냥꾼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 그에게.

스으으!

진혁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악취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

‘형님, 결국 이 길을 택한 겁니까.’

검을 빼어 든 무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때는 나약하게 태어난 형을 안쓰럽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허나.

이제는 마기에 잠식당해 버린, 인류의 적일 뿐.

‘죽인다.’

우웅!

뽑아 든 장검에서 푸른색의 오러가 피어오른다. 검신을 온전히 감싼 기운이 태양처럼 일렁인다.

이 품의 엽사가 끌어낸 강대한 힘의 종착지는, 한때 자신의 혈육이었던 적.

그의 검과 손발이 마나의 흐름을 타고 나아간다.

칠성무(七星武)

일섬(一閃)

파앗!

검에서 피어오른 한 줄기 섬광이 공간을 베어 나간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의 형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가쇼, 형님.’

한때 형이었던 자의 목을 노리며, 무혁은 속으로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카앙!

‘……이건.’

누군가가 그의 검을 막아서자, 무혁은 눈을 꿈틀했다.

그의 시선이 자신 앞의 거대한 검으로 향했다.

‘인간이 휘두를 만한 무기는 아냐.’

전봇대만 한 검은, 그 무게 이전에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무기였으니까.

허나.

그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식귀?’

검을 막아 낸 상대를 확인한 무혁은 자신의 눈을 믿기 힘들었다.

정급 중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괴수.

근력으로는 병급의 괴수와도 겨룰 수 있는 존재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러가 가득 담긴 그의 검을 막아 낼 수 없었으니까.

가능한 이유는, 오직 하나뿐.

‘재밌네, 식귀가 오러를 쓴다니.’

전봇대만 한 검을 가득 물들인 검붉은 기운과 정령력이 뒤섞여 만들어진 불꽃의 모습은, 분명 오러와 유사했다.

마기를 다룰 수 있는 병급도 아닌, 정급의 괴수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

‘이게, 진혁 형님이 얻은 힘인가.’

하지만 무혁은 조금 놀랐을 뿐, 동요하지 않았다.

마기를 손에 넣은 인간이라면, 괴수를 강화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래 봐야, 의미 없는 일이지만.’

채앵!

오러를 뿜어낼 수 있다지만, 그 근본은 정급의 괴수.

이미 이 품의 자격을 얻은 그가, 식귀 따위에게 패배할 이유는 없었다.

칠성무(七星武)

낙성격(落星擊)

채채챙!

무혁의 몸이 순간 흐릿해진다.

그가 쥔 검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찔러 나간다.

“크으으으!”

식귀가 제법 잘 막아 내기는 했지만, 그는 탐마의 능력을 가진 자.

식귀와 식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방향이 오감으로 느껴지니, 상대의 검을 피하고 막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푸푸푹!

식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그의 검은 괴수의 심장을 향해 섬광처럼 짓쳐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공격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이건.’

배후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기운.

무혁은 식귀를 향해 뻗던 검을 거둠과 동시에 몸을 비틀었다.

카앙!

상대의 기습을 막는 것은 이 품의 엽사인 그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지만.

‘……해골?’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무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검을 막은 건, 괴수는커녕 살아 있다고 보기 힘든 존재였으니까.

심지어, 식귀와 비슷한 덩치의 해골이 휘두른 검엔 검푸른 냉기가 서리처럼 앉아 있었다.

‘일단…… 부수고 생각해야겠어.’

찰나의 순간, 생각을 마친 그의 검이 재차 휘둘러지려던 그때.

“무슨 짓이에요!”

들려온 가녀린 음성에, 무혁은 빠르게 물러나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발머리를 뒤로 묶은 이국적인 생김새의 소녀와 은색의 단발머리를 찰랑이는 여검사.

‘성녀?’

수 년 동안 세계를 떠돌며 마인을 사냥해 온 그가, 무명교의 성녀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성녀가, 왜 여기에?’

놀란 성녀의 눈은 괴수들이 아닌 무혁에게로 향해 있었다.

저들이 아닌, 자신을 적으로 대한다는 의미.

스릉!

“물러나십시오, 성녀님.”

그 생각을 증명하듯, 곁에 있던 호위기사가 검을 빼들고는 성녀의 앞에 나섰다.

‘……이거, 완전히.’

내가 악당이 된 것 같잖아?

검을 내린 무혁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던 그때.

“오랜만이다, 무혁아.”

식귀의 등 뒤에서, 흑청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십 년 만인데, 인사가 좀 거칠군.”

무혁의 형이자 서가의 장남, 서진혁.

말을 마친 진혁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으으!

그의 심장에서 빠져나간 흑마력이 식귀와 스켈레톤에게로 스며든다. 소모한 흑마력을 회복한 두 망자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 식귀 주제에 칠성무라니.’

무혁은 식귀의 익숙한 자세를 보고 코웃음 치고는, 진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님, 실망이 큽니다. 아무리 능력이 부족했기로서니, 마기를 몸에 받아들일 줄이야.”

“마기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형님도 제 능력에 대해선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말을 마친 무혁은 그의 형을 경멸 어린 눈으로 내려다봤다.

서가의 피를 이어받은 주제에, 감히 마기를 몸에 담다니.

‘그놈’과 마찬가지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직 가문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장 목을 내미십쇼. 그래도 형님이시니, 고통 없이 끝내드리겠습니다.”

우우웅!

그의 말에 호응하듯, 오러를 가득 머금은 무혁의 검이 짧게 울었다.

하지만.

“마인이 아니에요.”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서진혁 씨가 마인이었다면, 이름 없는 신을 모시고 있는 제가 못 알아챘을 리가 없잖아요?”

오러가 담긴 검 앞에 선 클레어의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쥔 그녀의 발은 못 박힌 것처럼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성녀님, 성녀님께서도 이곳에 가득한 마기를 느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무혁이 황당하단 표정으로 물었지만, 클레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마기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맞지만, 마기는 분명히 아니에요. 마인의 상징인 검은 반점도 찾아볼 수 없고요. 그리고.”

말을 멈춘 클레어의 눈이 무혁과 마주쳤다.

“서진혁 씨는, 이름 없는 신께서 주시하는 분이에요. 저를, 교단을 존중하신다면, 이만 멈춰 주세요.”

무혁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문 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성녀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요.”

철컥!

무혁은 검을 집어넣고는 클레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그 결정이 옳은 것이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진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문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휴우우우…… 죽는 줄 알았네.”

무혁이 담장 너머로 사라지기 무섭게, 다리가 풀려 버린 클레어의 몸이 휘청거렸다.

“성녀님!”

“괜찮아요, 그냥 긴장이 풀린 거니까.”

그녀를 부축한 렌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클레어는 고개를 저은 다음 진혁을 바라봤다.

“저 사람, 대체 누구예요?”

“서무혁, 내 동생이다.”

“되게 친한가 보네요. 아주 죽이려고 하던데.”

“그런 편이지.”

클레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지만, 진혁은 대강 넘기고는 성준과 자이츠에게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진혁님. 제 실력이 모자랐습니다.

―그건 아니에요, 그냥 방금 그자가 너무 강했던 거지. 못해도 익스퍼트 최상급은 되는 수준이었어.

―맞아요, 조금만 더 넓었으면 나도 꼈을 텐데.

성준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자, 자이츠와 멜리나가 그를 위로했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 품의 엽사다. 너희가 압도할 수 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무혁이 언제 이 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둥비룡 멜리나도 없이 제법 오래 버텨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물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지만.’

갑급의 괴수, 외눈박이와 비교하면 무혁 역시 한참 부족한 상대.

지금까지는 진혁 자신의 힘만을 키워 왔지만.

이제부터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영지(靈地).’

마당에 뿌리내린 검은 나무.

사령수를 바라보며, 진혁은 눈을 빛냈다.

*    *    *

“그래, 인천 일은 제법 잘 처리했더구나.”

세한의 회장, 서강진은 회장실의 자기 자리에 앉아 장남을 바라봤다.

‘설마하니, 정말로 해낼 줄이야.’

본가의 지원을 받지도 않고, 오롯이 혼자의 힘만으로 윤가의 영역을 흡수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대로, 그의 아들은 자신에게 후계자로서의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서가에 어울리진 않지만, 가문을 키울 능력은 분명히 있어.’

진혁이 부리는 괴수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결과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가가 스스로 무너져 준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진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저와 제 권속들의 힘이 크긴 했습니다만.”

“그래, 네 힘이 크긴 했지.”

아들의 말은 오만했지만, 진혁은 평소와 다르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진혁에겐,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아버지.”

진혁이 말을 꺼낸 것은 그때였다.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부탁이라,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강진의 눈에 흥미가 떠올랐다.

십 년 전이라면 모를까, 깨어난 아들은 그에게 부탁이란 말을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말해 봐라. 보구가 필요한 것이냐?”

이번에 세운 공을 생각하면, 들어주지 못할 일도 아니다.

진혁이 해낸 일이라면, 병급이나 을급의 보구를 원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구해 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강진은 깍지를 낀 채 진혁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섬이 필요합니다.”

진혁의 요구는,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섬?”

“훈련장으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섬이라, 못 줄 것도 없지. 서해 쪽에 널린 게 무인도니까.”

그 말에, 강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권의 절반을 영역으로 하는 서가에게, 무인도 한두 개쯤 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허나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원하는 건 훨씬 더 큰 섬입니다.”

“그럼, 강화도라도 가 보지 그러느냐. 서가의 손이 닿는 섬 중에선 거기가 제일 크니까.”

강진의 말은 농담에 가까웠다.

수십 년 전 게이트크러시가 일어난 이후, 강화도는 서가조차 손쓰기 힘든 죽음의 섬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진심인 게냐?”

그 의미를 알아챈 강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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