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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명가 초월급 네크로맨서-44화 (44/174)

44화

다섯 가문이 인천을 갈라 먹은 지도 이십오 년째.

하청길드를 통해 벌였던 다섯 가문 간의 치열한 대리전 중 하나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윤가가 인천에서 발을 뺄 거라던데.”

“아니, 진짜로 철수한다고? 그럼 우리 동네는 누가 지켜?”

“서가가 이겼다니 서가가 알아서 인수하겠지, 뭔 걱정이람.”

본래 윤가의 영역이었던 부평구의 시민들은 새롭게 들어올 서가의 엽사들을 불안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기다렸다.

허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변하는 것은 없었다.

“동수길드의 김동수입니다.”

“굴포길드의 박천진입니다.”

“산곡길드의…….”

기존에 윤가의 지원을 받던 부평의 길드들이, 그대로 서가의 품에 안겼을 뿐이니까.

엽사와 관련 없는 일반인들에겐 그저 가십거리일 뿐.

물론.

“……이제 더 넘겨줄 건 없겠지?”

자신들이 일궈 낸 결과를 고스란히 넘겨줘야 하는 당사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지만.

“차라리 속 시원하군. 이 빌어먹을 땅에서 손을 뗄 수 있으니 말야.”

윤가의 다음 가주가 될 장남, 윤미르는 서진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윤가랑 인연도 없는 곳을 억지로 잡고 있었던 거지. 그쪽과 서가에는 차라리 고마운 마음이야.”

“이번에 죽은 윤가람, 그쪽의 동생일 텐데.”

“윤가에 걸맞지 않은 쓰레기였을 뿐이야, 마인 따위에게 손을 벌리다니.”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윤미르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동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보다는, 동생이 일으킨 사건의 뒷수습을 해야 한다는 게 더 짜증 난다는 듯한 모습.

“그런가.”

그 말을 듣고 진혁은 코웃음 쳤다.

“정말로 그리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미르를 보며 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윤가의 혈족이 마인의 사주를 받아 서가의 장남을 죽이려 했다…… 윤가는 정말로 관련이 없는 건가?”

“그게 무슨 헛소리냐!”

진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르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건, 그냥 그 머저리의 잘못일 뿐이다! 윤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만약에라도, 그의 가문이 이 사건에 엮여 들어간다면 윤가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마인이란, 인류의 대적이란 그만큼 위험한 존재.

마인과의 관계를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오대엽사 가문 중 하나로 꼽히는 윤가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사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겠군.”

“조사라니, 애초에 관련 있다는 증거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근거?”

핏기가 빠져 얼굴이 하얗게 질린 미르의 말에, 진혁은 대답 대신 미리 준비해 둔 사진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주연이 확보해 놓은, 대결 당시 훈련장의 CCTV로 녹화된 윤가람의 모습.

진혁은 그중 한 장을 미르의 눈앞에 내보였다.

“가문에서 마인이 나왔다는 것. 그 이상의 증거가 필요한가?”

검은 눈을 한 동생의 얼굴이 정면으로 찍혀 있는 사진 앞에서, 미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 벗어날 수 없어.’

마인과의 관련성은 이미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다른 가문의 사람이 윤가의 본가에 들어와서 조사를 벌일 수 있단 것.

서가의 말 한마디면 윤가가 숨겨 놓은 온갖 비밀들을 공개해야 하는 그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다른 것도 아닌 마인과 엮여 있는 일이었으니, 무턱대고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아버지, 가주가 직접 나서야 할 일.

허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이 들어간다면 그에게도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

‘젠장, 이걸 어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르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지.”

진혁의 입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뭐?”

“나와 거래를 하는 것.”

말을 마친 진혁은 상대의 떨리는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잠시 입을 다문 채 진혁을 노려보던 상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냐.”

“정령석.”

미르에게, 그 거래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    *    *

세한빌딩의 62층에 위치한 세한보안의 토벌본부장실.

“젠장, 젠장, 젠장…….”

방의 주인인 서상혁은 입술을 깨물며 거대한 집무실 안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사실상 세한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진혁 형님, 언제 이렇게 커 버린 거지…….”

예전,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마음은 유약하고, 능력은 별 볼 일 없는 낙오자.

그렇기에, 상혁은 첫째 형인 진혁을 경쟁 상대로도 여기지 않았었다.

‘그런데…….’

십 년 만에 깨어난 형은, 어째서 이렇게 강해진 것일까.

자신을 날려 버린 식귀하며, 병급의 괴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골들까지.

같은 서가의 일원이자 피를 나눈 형제였지만, 깨어난 형이 어째서 변한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건, 진혁이 이김으로써 자신과 윤가의 연결 고리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것.

‘알려진다면, 파멸이다.’

서가의 영역을 잠식하려던 윤가, 그것도 마인이 되어 버린 자와 내통했다는 게 알려지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게 무너지리라.

그리고 그의 생각에 진혁은 그 배후를 알아낼 만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전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해.’

이 상황에서, 상혁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내키지는 않지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생각을 마친 상혁은 책상에 놓인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본부장실 바깥, 자신의 비서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화.

―네, 본부장님.

“어, 난데.”

비서의 긴장한 목소리를 들은 상혁은 굳은 얼굴을 조금 폈다.

“무혁 형님, 지금 어디에 계시지?”

―지금은 임무 때문에 프라하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러면 형님께 전해 줘.”

비서의 말에, 상혁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약속을 지킬 때라고.”

*    *    *

세한보안 인천지사.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건물일 뿐이었던 곳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건물의 대회의실에 모인 남녀들이 몸에 걸친 것은 칼이나 창, 활 따위의 무기와 마석이 주렁주렁 박힌 보구들.

얼마 전, 윤가를 벗어나 서가의 품으로 들어간 부평구의 길드장들이었다.

“설마, 윤가가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아무도 생각 못 한 일이 벌어졌어.”

“이십오 년 동안 쌓아 온 것도 한순간이야.”

“빌어먹을, 이제 좀 자리 잡나 했더니.”

회의실에 모인 길드장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십 년 넘게 관계를 이어 온 거래 상대이자 후원자가 단번에 바뀌었으니, 혼란이 없을 리 없다.

상대가 오대엽사 가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서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진혁, 이라고 했던가? 인천을 담당한다던 사람.”

“서가의 피를 이었으면서 괴수를 부린다더군.”

이야기의 방향은 어느새 자신들을 만나기로 한 서가의 사람, 서진혁에게로 향했다.

“괴수를 끌고 다니는 건 나도 봤지만, 어떻게 서가의 피를 타고난 사람이 괴수를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단 말야.”

“듣기로는, 유가의 피가 좀 섞여 있다던데.”

“뭐? 그럼 서진혁이 사실은 유가의…….”

“안 그러면 어떻게 괴수를 통제할 수 있겠어? 유가의 능력은 그 혈통에 흐르고 있잖아.”

“성격도 또라이라던데, 그런 놈이랑 어떻게 일을 같이 해?”

불만은 어느새 험담으로, 비난으로 변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말하는 자신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런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역시,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겠어.”

“그래, 우리가 윤가랑 같이 일한 게 몇 년인데 갑자기 서가의 사생아 밑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

“지금이라도 똑바로 얘기하자고.”

“하다못해, 조건이라도 바뀌어야 할 거 아냐?”

“그래, 여기 모인 모두가 토벌을 거부하면, 제깟 놈이 어떻게 하겠어?”

자리에 모인 길드장들의 의견이 점차 하나로 좁혀졌다.

“남동구랑 연수구 애들이 그랬다가 피 봤단 소문 못 들었어? 일단은 이야기를 좀 해 보고…….”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야? 원래 이런 건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 몰라?”

“걔네가 멍청하게 당한 거겠지. 우리가 단체로 움직이면 어떻게 손을 쓰겠어?”

진혁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몇몇 길드장들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대세를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 이참에 확실히 담판을 짓자고.”

“하다못해, 조건이라도 더 좋게 받아야 할 거 아냐?”

길드장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던 그때.

끼익!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제멋대로 떠들던 길드장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반갑다.”

수십 년 동안 부평에 뿌리를 내린 길드장들에게 서슴없이 반말을 내뱉는, 구겨짐 하나 없는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정장 차림의 여자.

서진혁과 신주연이었다.

“세한보안의 서진혁이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들.

그 앞에서, 진혁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제법 불만이 많아 보이는군.’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영혼조차 꿰뚫어 볼 수 있는 진혁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미,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끝낸 지 오래다.

“모두 알고 모인 것이겠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

이제, 그것을 실행하면 될 뿐.

“오늘부로, 부평구에 생성되는 게이트와 그 부산물에 대한 모든 권한은 세한보안에 귀속되었다.”

말을 이어 나가는 진혁의 눈이 회의실에 모인 길드장들을 훑어 나갔다.

“그건 지금까지 윤가를 대신해 부평구의 토벌을 맡아 온 당신들도 마찬가지.”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과 마주할 때마다, 길드장들의 심장이 서늘해졌다.

“만일, 이 사실에 불만이 있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해 주지.”

길드장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친 다음, 진혁은 두 손가락을 펼쳤다.

“계약을 해지하고 배상금을 문 다음 인천을 떠나거나.”

나와 싸워 이기거나.

스으으!

말을 마친 진혁의 눈이 사납게 번뜩이며 먹잇감을 찾았다.

“…….”

“…….”

서슬 퍼런 그의 눈빛과 함께, 자신들을 조여드는 알 수 없는 한기.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진혁을 비난하고 욕하던 그들의 입이 얼어붙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아무래도 지금의 조건이…….”

“윤가 때랑은 사정이 좀 달라졌는데…….”

개중 용기를 낸 몇몇 길드장들이 말을 꺼내려 시도하기는 했지만.

“크으으으…….”

“키이이이!”

회의실 창문 밖에서 자신들을 노려보는 식귀와 천둥비룡의 울음소리를 마주한 순간.

“아, 아닙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들은 열려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의는 없는 것으로 알지.”

“지금부터 계약서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단상의 진혁과 길드장들에게 계약서를 나눠 주는 주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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